< 호위병 2호 (1) >
‘······?’
‘나는 누구? 여긴 지금 어디?
이상했다.
이 우스꽝스러운 모습은 대체 뭘까?
꿈인가?
‘왜 내가 이런 모습으로?’
크라겔은 지금의 황당한 현실을 도무지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아니 이 상황을 이해할 수조차 없었다.
‘대체 지금 뭐가 어떻게 된 건가?’
* * *
방금 전까지 크라겔은 좀비로 빙의한 상태에서 최후의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다.
로안이 그를 내버려두고 마쿠스 공작 등이 있는 곳으로 이동하자 잠깐이지만 살아날 희망을 가져보기도 했지만, 그것은 그저 헛꿈에 불과했다.
로안이 다시금 끝까지 집요하게 모든 좀비들의 최후를 확인하려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결국 삶을 포기했다.
억울하게 죽은 누나의 복수를 위해 흑마법사가 된 이후, 이 부조리한 세상을 뒤집어 엎고 새롭게 만들겠다는 계획을 가졌지만.
그의 복수 대상이 누나를 죽인 흑사문주만이 아니라 세상 전체로 확대되었었지만.
이제는 모든 것이 끝이었다.
분하고 허망하지만 패배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게 눈을 감고 있었는데.
갑자기 어둠 속의 빛처럼 그에게 희망을 주는 알림.
[당신에게 특별한 행운의 힘이 작용합니다.]
[죽음이 임박한 당신에게 새로운 삶의 기회가 주어집니다.]
[당신의 새로운 운명을 받아들이겠습니까?]
그것은 신비한 알림이었다.
어둠 속에서 별처럼 찬란하게 빛나는 두 개의 광채가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새로운 삶의 기회?’
새로운 운명?
살아날 수 있는 기회라고?
완전히 절망 속에 빠져있던 크라겔에게 기적같은 희망이 생겨난 것이다.
‘좋아! 받아들이겠다.’
크라겔은 망설이지 않았다.
지금 자신에게 손을 내민 존재의 정체가 무엇인지 궁금했지만.
‘다시 살아날 기회만 준다면 누구라도 상관없다.’
흑마법사가 되며 악마와도 거래를 했다.
그런데 뭔들 겁나겠는가.
믿었던 악마가 그토록 무력하게 패배했다는 것이 충격이었지만.
어쨌든 새로운 기회를 준다면, 그 대상이 또 다른 악마이건 아니면 악마보다 더한 존재이건 상관없었다.
‘누군지 모르지만 운명을 받아들일 테니 날 살려줘라. 그렇다면 그 보답은 반드시 하지.’
그렇게 크라겔은 간절히 새로운 운명을 받아들였다.
[당신은 새로운 운명을 받아들였습니다.]
[당신에게 새로운 삶이 주어집니다.]
환생이라도 하는 것일까?
크라겔은 가슴이 벅찼다.
새로운 삶의 기회라면 당연히 환생일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존재로 환생하는 것일까?
‘기왕이면 그 빌어먹을 로안이라는 놈이 있는 세계로 환생해야 한다.’
그래야 복수를 할 수 있을 테니까.
그렇게 크라겔은 새로운 삶에 대한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당신의 모든 상태가 초기화되며 새로운 존재로 태어납니다.]
오오! 드디어?
온몸이 상쾌했다.
전신에 힘이 넘쳤다.
사지(四肢)가 잘린 채 엎어져 있는, 말 그대로 소멸 직전의 좀비에서 새로운 생명체로 환생한 것이다.
그런데.
[당신은 레벨 1 좀비 마법사가 되었습니다.]
[당신의 등급은 영웅입니다.]
몸체가 왠지 이상해진 것 같다.
이 괴상한 비율은?
‘그보다 환생했는데 왜 또 좀비인가?’
한숨이 나왔지만 그나마 영웅 등급이라는 것이 위안이 되었다.
다만 기존 갖고 있던 상식과는 뭔가 달랐다.
보통 희귀나 영웅과 같은 등급은 직업을 획득하는 레벨 10 때나 붙기 때문이다.
그런데 레벨 1부터 좀비 마법사, 게다가 영웅 등급이라니!
아무튼 크라겔은 이때까지 자신이 정확히 어떤 운명인지 자각하지 못했다.
사방이 빛으로 휩싸여 있어 여기가 어딘지도 알 수 없었다.
[당신의 새로운 운명을 각성합니다.]
그때 다시 들려오는 알림.
[당신의 이름은 호위병 2호입니다.]
이어지는 알림이 뭔가 이상했다.
‘무슨 이름이 호위병 2호냐?’
그런데 그건 시작일 뿐이었다.
[당신의 주인은 전설 펫 토실이입니다.]
‘뭐라?’
이건 대체 무슨 개소리?
잘못 들었나 했지만 아니었다.
[당신의 어떤 능력도 주인에게 대적하는 용도로 쓸 수 없습니다.]
[다음은 당신이 반드시 기억하고 복종해야 할 대상들입니다.]
【대주인(大主人)】 로안
【주인】 토실이
‘······!’
이게 뭐냐?
꿈이 아니었다.
현실이었다.
악몽과도 같은 현실!
‘그러니까 나 크라겔이 로안이라는 놈의 펫이 된 거라고?’
그냥 펫이라도 미쳐죽을 지경일 것이다.
그런데 펫의 펫이다.
그래서 이름도 호위병 2호!
이 무슨 개같은 현실이란 말이냐?
‘이 미친!’
어이가 없다 못해 참담한 현실이다.
‘차라리 죽자.’
혀라도 깨물고 죽는 거다.
그러나 그것이 뜻대로 되지 않았다.
갑자기 거대한 크기의 토끼 즉, 주인 토실이가 다가와 그를 앞발로 쥐더니 얼굴을 비볐다.
‘뭐, 뭐냐? 저리가라, 토끼 놈아!’
그러나 그는 저항할 수 없었다.
부비.
‘음?’
토끼의 볼 비빔질 한번에 모든 원망과 분노가 눈 녹듯 사라진다.
“헤!”
크라겔은 어느새 헤죽거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렇게 그의 정신 줄이 나가는 순간이었다.
* * *
【이름】 호위병 2호
【레벨】 1
【등급】 영웅
【종족】 좀비 마법사
【소속】 토실이
한편 로안은 새롭게 토실이의 펫이 된 좀비를 내려다 보며 깜짝 놀란 상태였다.
‘오! 좀비 마법사라고?’
단번에 영웅 등급이라니!
보통은 희귀 등급으로 만들어지는데 엄청난 행운이 작용한 것이다.
아니다.
과연 행운만일까?
아무리 그래도 펫이 마법사가 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도 한낱 좀비가 말이다.
물론 확률상 불가능한 건 아니다.
게임을 해보며 이 비슷한 경우를 몇 번 겪어봤으니까.
그러나 그거야 그날 운빨이 엄청났을 때의 얘기고.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로안은 왠지 호위병 2호가 수상했다.
‘혹시 저 놈 크라겔이 빙의했던 좀비는 아니겠지?’
좀비 중에 조금이라도 숨이 붙어 있던 녀석은 다 죽였다.
딱 한 놈만 빼고.
그게 바로 방금 전 호위병 2호가 된 저 녀석이다.
‘설마 아니겠지?’
그 사이 토실이가 좀비 펫 즉, 호위병 2호를 앞발로 붙잡고 부비부비하고 있었다.
“잠깐 줘봐라.”
로안은 호위병 2호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손가락으로 툭 건드리며 물었다.
“말해봐. 너 진짜 이름이 뭐냐?”
그러나 호위병 2호는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당연하다.
펫이 되며 말을 할 수가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럼 고개만 끄덕여라. 너 크라겔 맞냐?”
로안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호위병 2호를 노려보며 물었다.
그러나 녀석은 겁먹은 듯 멀뚱하게 눈만 꿈뻑이고 있을 뿐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아닌가?’
그러고 보니 왠지 귀엽긴 하다.
물론 귀여움의 순위로 따지면 토실이, 몰캉이, 그리고 이 좀비 녀석의 순이지만.
넙대대한 얼굴에 짤막한 팔과 다리. 그냥 놔두면 전혀 좀비같지 않은 자그만 인형처럼 보인다.
“허! 그 녀석 참! 전설 펫답게 별 괴상한 능력을 다 가지고 있구나. 좀비를 펫으로 만들어버릴 줄이야.”
마쿠스 공작이었다.
그 사이 아이템 배분이 끝났는지 그가 어느새 다가와 로안의 손바닥 위에 있는 호위병 2호를 보며 황당해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저는 아무래도 이 녀석이 크라겔이 아닐까 의심 중입니다.”
로안은 솔직하게 말했다.
만약 정말로 크라겔이 빙의한 좀비가 토실이에 의해 펫으로 변해버렸다면?
그럼 어떻게 되는 걸까?
로안도 모른다.
게임에서도 이런 경우는 없었으니 말이다.
“흐음, 듣고 보니 그렇구나. 좀비 마법사가 된 걸 보니 말이야.”
마쿠스 공작도 의심어린 눈빛을 지었다.
뒤에 와서 물끄러미 쳐다보던 헤로스와 플로리 또한 고개를 끄덕였다.
“로안! 내 생각도 그렇다. 그놈은 분명 크라겔이 빙의한 좀비일 거야.”
“와아! 근데 너무 귀엽잖아. 혹시 필요없으면 나에게 주면 안 될까?”
플로리는 호위병 2호에게 꽂힌 모양이었다.
안 줄 걸 뻔히 알면서도 그래도 혹시 모른다며 찔러보는 것이리라.
“그보다 저는 이 녀석이 크라겔이라면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고민입니다.”
그러자 상급 사제 도미닉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무얼 그리 고민하는가? 설사 그 좀비 펫이 본래 크라겔이었다고 해도 지금은 새로운 존재로 태어난 것이나 다름없는데 말이야.”
“새로운 존재?”
“이를 테면 새로운 운명으로 환생한 것이라 할 수 있지. 과거를 기억하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고, 설령 기억한다고 해도 펫이 된 이상 그대에게 아무런 해를 끼칠 수 없을 것이네.”
그러고 보니 맞는 말이다.
펫은 주인에게 그 어떤 대항도 할 수 없으니까.
‘정말 크라겔이라면 미쳐 죽고 싶을 텐데.’
크라겔의 입장에서는 미치고 환장할 일일 것이다.
뭔가 정신 줄이 나간 것 같은 멍한 표정만 짓고 있는 걸 보면 왠지 크라겔인 것 같기도 했다.
‘이놈이 진짜 크라겔인지 아닌지는 두고보면 알게 되겠지.’
급할 건 없다.
천천히 알아내면 된다.
놈이 크라겔이건 아니건 토실이의 펫이 된 이상 영원히 벗어날 수 없게 됐으니까.
“그보다 아프릴리스 님께서 지금도 계속 고민 중이신 듯하니 문제야. 펫도 하나 새로 생겼는데 토실이를 성펫으로 바칠 생각은 정말 없는 건가?”
도미닉이 물었다.
[정성의 시험]
-전설 등급의 펫을 바치라!
-조건 흥정 중
바로 여신의 퀘스트 중 이 정성의 시험 때문이다.
‘여신이 여전히 토실이를 탐내고 있나 보네.’
즉, 도미닉을 통해 로안을 떠보고 있는 게 분명했다.
물론 어림도 없는 일이다.
“토실이는 절대 안 됩니다. 전설 펫이 아닌 영웅 펫은 어떤가요? 이 녀석이라면 얼마든지 성펫으로 바칠 수 있습니다.”
로안은 호위병 2호를 가리키며 제안했다.
그러자 옆에서 듣고 있던 마쿠스 공작이 끄덕이며 맞장구쳤다.
“오호라! 그거 아주 좋은 생각이구나. 도미닉, 당장 아프릴리스 님께 여쭤보게나. 로안의 공적도 있고 하니 전설 펫이 아닌 영웅 펫 정도로 조건을 낮춰달라고 간청해보게.”
“알겠습니다, 공작님. 저 또한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군요.”
도미닉 또한 로안이 빨리 악마 크루스의 인장을 통제하게 되길 바라고 있던 터라 초조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곧바로 그는 눈을 감고 기도에 열중했다.
그러나 그의 기도는 좀처럼 끝나지 않았다.
뭐라고 기도하는 지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왠지 표정을 보니 아프릴리스가 안 된다고 하는 것 같았다.
정말 토실이에 대한 집착이 장난이 아닌 모양이다.
‘안 되겠어. 흥정 레벨을 더 높여보자.’
30레벨이 되면 고유능력인 흥정의 레벨도 4단계로 오른다.
과연 그런다고 아프릴리스가 흥정에 응할지 알 수 없지만 그래도 아무것도 안하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그 사이 저는 잠시 승급 좀 해도 될까요? 지난 번에 공작님께서 주신 승급 아이템이 있어서 여기서도 승급이 가능해서요.”
마쿠스 공작이 미소 지었다.
“물론이다. 우리가 있으니 염려 말고 승급 수련을 시작하도록 해라.”
“감사합니다.”
로안은 즉각 환영도를 꺼냈다.
[당신의 경험치가 승급을 하기에 충분합니다.]
[환영도의 수련을 통해 30레벨 중급 마도객으로 승급할 수 있습니다.]
[지금 승급 수련을 시작하겠습니까?]
‘예.’
로안이 환영도를 쥐고 수락하자 그의 몸이 알아서 도를 휘두르며 수련을 하기 시작했다.
휘리릭! 파팟―
로안이 의식하지 않아도 몸이 자동수련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건 편해서 좋네.’
환영도의 움직임에 몸을 맡기고만 있으면 되니까.
그렇게 대략 20여 분의 시간이 지나자.
[환영도의 수련을 마쳤습니다.]
[승급에 성공했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당신은 중급 마도객이 되었습니다.]
[당신의 명성이 100 증가합니다.]
[누적 명성 5,950]
드디어 30레벨 달성!
진작 이를 수 있었지만 20레벨로 돌아갔다 다시 돌아오느라 시간이 걸렸다.
덕분에 스탯 9점 추가로 획득 완료!
아마 스탯 총합만 따지면 마쿠스 공작까지는 아니어도 헤로스나 도미닉 등보다 높을 것이다.
[당신의 마법 저항력이 크게 증가합니다.]
[근력과 지력 스탯이 각각 1 증가합니다.]
[아공간이 1 증가합니다.]
중급 마도객이 된 승급 보너스로 스탯 2포인트 추가!
거기에 아공간도 늘었다.
[마도객 전용 능력 〈불의 칼〉이 Lv3이 되었습니다.]
[마도객 전용 능력 〈오러 생성〉이 Lv2가 되었습니다.]
[도(刀)에 오러를 생성할 때 소모되는 마나의 양이 크게 감소합니다.]
[마도객 전용 능력 〈분신Lv1〉을 배웠습니다.]
[마나를 소모해 당신의 분신을 생성 가능합니다.]
[생성된 분신은 당신이 보유한 스탯의 80% 만큼의 스탯을 가지며 일정시간 동안 적을 공격할 수 있습니다.]
‘좋아! 이제 좀 할만해졌네.’
이 분신의 전투력은 본신의 스탯에 비례한다.
레벨에 비해 사기적 스탯을 가진 로안에게 특히 유용한 스킬인 것이다.
[고유능력 〈냄새동화〉가 Lv4가 되었습니다.]
[고유능력 〈흥정〉이 Lv4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바라던 대로 흥정이 4단계로 올랐다.
< 호위병 2호 (1) > 끝
ⓒ 오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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