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성의 시험 (2) >
팍! 콰직!
로안은 계속해서 조금이라도 수상해 보이는 좀비들이 있으면 즉각 마룡도를 휘둘러 동강을 내버렸다.
‘내가 그놈에게 한두 번 속았어야지.’
크라겔을 완전히 죽였다고 생각하고 안심했다가 뒤통수를 맞았던 것이 몇 번이던가?
게임에서야 다시 하면 되지만 여긴 현실이다.
두 번의 기회는 없다.
방심은 곧 죽음을 의미한다.
당연히 로안으로서는 좀 심하다 싶을 정도로 신중하지 않을 수 없었다.
꿈틀.
그때 그의 앞에서 웬 여자 좀비 하나가 몸을 떨었다.
이미 헤로스 등의 공격에 의해 처참히 망가져 죽음 직전의 상태다.
그래도 로안은 혹시 모른다는 생각에 가서 도를 내리쳤다.
써걱!
“끄아악!”
크라겔이 여자 좀비에 빙의하지 않으리란 법이 없으니까.
콰직! 촤아악!
그렇게 로안이 계속 좀비들의 사체를 확인참살(確認慘殺)하고 있자 멀리 밀실의 귀퉁에 엎드려 있던 웬 좀비 하나가 은밀히 몸을 떨었다.
‘빌어먹을······! 무슨 저런 집요한 놈이 다 있나?’
그는 다름 아닌 크라겔이었다.
로안의 예상대로 그는 죽음을 당하는 척하며 좀비 중 하나에 빙의한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다른 좀비 하나를 움직여 기어가게 만들기도 했다.
물론 그 또한 로안을 속이기 위함이었다.
좀비에 빙의한 채로 탈출하다 죽임을 당하는 것처럼 위장할 수 있으니까.
그런데 로안은 그 정도에서 멈추지 않았다.
계속해서 다른 좀비들을 죽이고, 또 죽였다.
심지어 누가 봐도 죽었으리라 확신할 만한 처참한 상태의 좀비라고 해도 확인참살하는 지독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콱! 콰직!
“끄아아악!”
조금이라도 숨이 붙어 있던 좀비들이 처참히 죽임을 당하는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으! 정말 이대로 끝장인가?’
그는 최후의 마력을 소모해 지금 이 좀비에 빙의한 상태다.
사지가 잘려나간데다 내장까지 흘러나와 있을만큼 엉망이 된 좀비.
이 또한 철저히 로안을 속이기 위함이었다.
이제는 마력은 한줌도 없을뿐더러 도망칠 기력조차 없다.
좀비의 상태가 숨이 끊어지기 직전이니까.
물론 좀비의 특성상 이대로 두면 저절로 기력과 마력을 회복하겠지만, 저 죽음의 사신과 같은 로안이 그를 이대로 놔둘 리가 없었다.
저벅! 저벅!
점점 가까워지는 발소리.
콰직! 푸확!
“끄아아악!”
그 사이 또 하나의 좀비가 처참히 죽었다.
이제 불과 10여 미터 정도 남은 상황.
크라겔은 허망하기 이를 데 없었다.
‘세상을 뒤집어 엎으려던 내가 결국 이렇게 죽는 것인가······.’
로안의 도가 날아오면 피할 수도 없다. 그냥 그대로 죽음을 맞이해야 할 것이다.
“로안! 뭣 하느냐?”
그때 마쿠스 공작이 로안을 향해 물었다.
“크라겔이 좀비로 빙의했을 수도 있습니다. 혹시 모르니 한놈 한놈 다 다시 죽이는 중입니다.”
“허허! 보기보다 지독한 구석이 있구나. 그쯤해두고 이쪽으로 오너라.”
헤로스 또한 로안에게 손짓했다.
“어서 와봐라, 로안. 정말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졌어.”
믿기지 않은 일이라니!
이건 또 무슨 말일까?
“내가 보스들을 많이도 잡았다만 신화 등급 아이템이 나온 건 손에 꼽을 정도다. 하지만 이건 그중 으뜸이라 할 수 있다.”
순간 로안은 깜짝 놀랐다.
‘신화 등급이라니!’
잘못 들은 게 아니다.
분명 마쿠스 공작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그러니까 지금 신화 등급의 아이템이 드롭되었다는 말인가?
‘설마?’
그러고 보니 마쿠스 공작 등의 앞에 드롭템들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전투가 끝나자 옥토리가 몸속에 보관해둔 걸 내놓은 모양이다.
마쿠스 공작이 그중 뭔가를 살피며 경탄하고 있었다.
[위대한 업적을 달성한 당신의 파티원 모두의 명성이 크게 증가합니다.]
[명성 300이 증가합니다.]
[누적 명성 5,850]
곧바로 들리는 알림.
명성까지 증가했다.
스켈레톤 로드를 죽였을 때 100이 올랐는데, 드롭템 중의 하나가 명성 300을 올려주다니!
“허허! 명성을 이렇게 높이 올려주다니 역시 대단한 보물이로군.”
마쿠스 공작이 크게 웃었다.
“하아! 세상에! 이건 국보급 보물이에요.”
“말로만 듣던 악몽 장비를 제 눈으로 보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연이어서 플로리와 헤로스 또한 뭔가를 보며 시선을 떼지 못했다.
국보급 보물?
악몽 장비?
악몽!
정말로 그렇다면 초대박 드롭템이다.
현재 로안이 가진 고블린의 마룡도는 일명 마룡 장비라 불리는 전설 템이다.
동급의 전설 장비에는 현자 장비가 있다.
그런데 마룡과 현자를 월등히 뛰어넘는 장비들이 있다.
흑룡(黑龍)
천룡(天龍)
악몽(惡夢)
성자(聖者)
모두 신화 등급의 장비인데, 드롭률은 정말 극악하다 할 수 있다.
그중의 하나인 악몽 장비가 드롭되었다는 것이다.
“뭐하느냐, 로안? 어서 오지 않고.”
“예, 갑니다.”
로안은 마지막 남은 좀비의 사체 하나를 힐끔 쳐다보다가 이내 신형을 돌렸다.
‘그래. 이쯤했으면 그놈도 죽었을 거야.’
로안은 크라겔의 죽음을 확신하고는 드롭템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왔느냐, 로안?”
“예.”
그 순간 모두들 묘한 표정으로 로안을 쳐다봤다.
마쿠스 공작은 경탄과 감회, 심지어 숙연하기까지한 표정이다.
그와 달리 헤로스와 플로리, 도미닉의 표정은 기괴할 만큼 비슷했다.
부러움과 알 수 없는 탄식, 심지어 몸을 부르르 떨기조차 했다.
뭔가 로또 1등에 담청된 사람을 바라보는 듯한 시선이랄까?
‘저건?’
그러던 로안은 마쿠스 공작이 들고 있는 거무튀튀한 빛깔의 무기 하나를 보고는 그들이 왜 그런 표정을 짓는지 알 수 있었다.
[스켈레톤 로드의 악몽도(惡夢刀)]
-등급 : 신화
-봉인 해제 : 레벨 80
-봉인 제한 : 도객, 마도객 외 도(刀)를 다룰 수 있는 직업
‘맙소사!’
정말이었다.
신화 등급의 악몽 장비!
그런데 그것이 다름아닌 도(刀)였다.
여기 있는 사람들 중 도를 무기로 쓸 수 있는 직업을 가진 이는 로안 뿐이다.
따라서 이 엄청난 보물인 스켈레톤 로드의 악몽도는 로안의 소유가 되는 것이 맞다.
그러나 그거야 서로 합의가 되었을 때의 얘기다.
방금 전 플로리가 말한 대로 이 도는 가히 국보급 보물이라 할 수 있다.
이걸 쩔을 받기 위해 온 로안에게 준다?
그것도 가장 저렙인데?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닌 것이다.
따라서 로안도 무작정 달라고 할 만큼 양심이 없지는 않지만.
“받거라. 직업상 장차 이 도를 쓸 수 있는 건 로안 너 뿐이다. 물론 이 도를 쓸만큼 네가 강해지려면 무수한 난관을 거쳐야 할 것이다. 나는 네가 부디 그렇게 되기를 바라고 있다.”
놀랍게도 마쿠스 공작이 너무나 쿨하게 그것을 로안에게 건네는 것이었다.
“정말 제가 받아도 됩니까?”
“물론이다. 내가 주겠다는데 누가 뭐라 하겠느냐?”
마쿠스 공작은 그렇게 말하며 불만있냐는 듯 헤로스 등을 쳐다봤다.
그러자 그들 중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가장 고렙이자 사실상 스켈레톤 로드를 단독으로 해치운 마쿠스 공작이 결정한 일이다.
그들로서는 감히 토를 달 수가 없었다.
아니 애초부터 토를 달 생각도 하지 않았다.
“로안! 부담갖지 마라. 오늘 사악한 흑마법사 크라겔과 악마를 제거하게 된 데는 너의 공로가 매우 크다.”
“맞아. 로안 넌 받을 자격이 충분해.”
“소년! 그대가 그같은 보물을 얻은 건 그만한 책임이 주어졌음을 의미하지. 부디 그 무기를 사용할 수 있을 만큼 강한 존재가 되어주게나.”
이렇게 착한 사람들이 있다니!
마쿠스 공작이야 비빌 언덕이 되어주겠다고 말한 것이 있어 그럴 수야 있다지만.
“정말 감사합니다.”
로안은 마쿠스 공작이 내민 무기를 공손히 받았다.
[스켈레톤 로드의 악몽도를 얻었습니다.]
[스켈레톤 로드의 악몽도를 아공간에 입고했습니다.]
‘하하, 진짜 대박 득템이다.’
이건 로안도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것이다.
아무리 고인물인 그라고 해도 신화 등급 장비는 쉽게 얻기 힘들다.
극악한 드롭률!
흔한 말로 운빨이 엄청나게 따라줘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저렙 장비도 아니고 80레벨 신화 장비라니!
“그럼 이제 나머지 드롭템들을 분배할 시간이군.”
마쿠스 공작이 바닥에 수북히 쌓여있는 드롭템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오! 오늘은 정말 무슨 날인 것 같군. 비싼 아이템들이 꽤 많이 나왔어.”
“하하하! 정말입니다, 공작님. 로안이 얻은 신화 장비도 그렇고, 오늘 아주 운이 좋은 것 같습니다.”
“매일 매일이 오늘만 같으면 좋겠어요.”
반짝이는 드롭템들을 보며 헤로스와 플로리도 행복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로안은 왠지 뿌듯했다.
저들은 오늘따라 운이 좋은 것 같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다른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환생 후 다시 해당 구간 최대 레벨에 이르기까지 작용하는 특별한 버프.
그중에 아이템 드롭률 증가가 있으니까.
어쩌면 신화 무기인 악몽도가 나온 것도 그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럼 제가 분배를 시작하겠습니다.”
분배 담당은 도미닉이었다.
사제인 만큼 가장 공평하게 드롭템을 분배할 것이다.
“잠깐, 저는 빠지겠습니다. 드롭템 분배는 저를 제외하고 해주세요.”
로안은 재빨리 한 걸음 뒤로 물러나며 말했다.
경험치 쩔을 받은 데다 80레벨 악몽 무기까지 챙겼다.
양심이 있다면 다른 드롭템의 분배에서는 빠져주어야 한다.
“네 뜻이 그렇다면 그렇게 해라.”
이번에는 마쿠스 공작도 끄덕였다.
도미닉과 플로리 등도 반색했다.
그들 또한 인간인 터라 로안에게 모든 걸 양보만 할 수는 없는 일.
이 순간 로안이 적절히 빠져준 건 아주 잘한 일이었다.
‘내가 그래도 이 정도 개념은 있지.’
그러나 호구 용사 헤로스는 무슨 소리냐는 듯 로안을 잡았다.
“왜 빠지려는 거지? 드롭템이 많으니 로안 너도 와서······.”
“백작님! 로안의 뜻도 존중해주셔야죠.”
그러나 플로리가 나서 그의 말을 막자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나중에 뭐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 내게 말해라, 로안.”
“예, 백작님.”
로안은 그렇게 말하며 몇 걸음 더 물러났다.
확실히 드롭템은 꽤 많았다.
수백 마리가 넘는 스켈레톤들에게서 나온 것들이다 보니 그야말로 수두룩했다.
언뜻 봐도 각성석이나 승급석같은 값비싼 것들도 보인다.
그러나 그것들을 다 합쳐도 80레벨 악몽 무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당연히 빠져주는 게 예의!
‘저것들을 모두 분배하려면 시간이 좀 걸리겠군.’
로안은 그동안 다시금 밀실을 살펴보기로 했다.
‘내가 너무 크라겔 그놈을 의식하는 건지 모르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그런데 그때.
밀실의 구석에서 토실이가 뭔가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 뭔가는 다름아닌 좀비다.
“어라?”
로안은 왠지 짚이는 것이 있었다.
토실이는 눈치가 매우 빠르다.
어떤 때는 로안이 미처 알지 못하는 것도 알아채는 재주가 있다.
‘혹시 녀석이 크라겔을 발견한 건 아닐까?’
정확히 말하면 크라겔이 빙의한 좀비 말이다.
그런데 토실이의 근처로 가보니 그건 아니었다.
거기 있는 좀비의 상태는 말 그대로 처참한 상태였으니까.
사지가 잘린 데다 내장까지 흘러나와 있는 좀비다.
크라겔이 머리에 총을 맞았다고 해도 이런 처참한 상태의 좀비에 빙의할 일은 없으리라.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어쨌든 단 0.001%의 가능성이라도 없애겠다는 생각에 로안은 이 좀비의 최후 숨통을 끊어놓기로 했다.
그런데.
갑자기 토실이가 로안의 앞을 막았다.
“왜 그래, 토실아?”
그러자 토실이가 매우 귀여운 표정으로 눈을 반짝였다.
[전설 펫 토실이가 호위병을 선택했습니다.]
[당신이 허락하면 좀비 제논(Lv13)은 토실이의 호위병이 됩니다.]
“뭐, 호위병?”
로안은 어이가 없었다.
이 녀석의 독특한 취향이 또 발동된 것이다.
지난번에는 마물 베르미스에 꽂히더니 이젠 좀비냐?
[토실이가 당신의 허락을 구합니다.]
[허락 시 100코인이 소모됩니다.]
‘하여간 취향 참.’
물론 좀비도 호위병 펫이 되면 징그럽지 않고 제법 귀여워지긴 한다.
호위병이 되는 순간 초기화로 인해 망가진 육체도 멀쩡히 돌아오고 말이다.
“얘는 좀 그렇지 않냐? 상태도 매우 안 좋은데 말이야.”
[토실이가 당신의 허락을 구합니다.]
“기왕이면 몰캉이처럼 귀여운 애벌레 시리즈로 가는 게 어때?”
처음엔 애벌레를 싫어했지만 이제는 애벌레 예찬론자가 된 로안이다.
몰캉말캉한 감촉이 얼마나 귀여운지는 당해보지 않으면 모를 것이다.
[토실이가 당신의 허락을 구합니다.]
부비.
그러나 토실이는 애교까지 피우며 뜻을 굽히지 않았다.
고양이처럼 볼을 계속 비벼댄다.
심지어 눈물을 글썽이기도 한다.
‘에효!’
이렇게까지 애원하니 어쩌겠나.
펫 이기는 주인 없다더니.
팔자에 없는 좀비 펫 하나 두게 생겼다.
“그래. 해라. 해.”
로안은 결국 허락하고 말았다.
순간 토실이가 폴짝 뛰며 좋아했다.
[베로 100코인이 소모되었습니다.]
[좀비 제논(Lv13)이 토실이의 호위병 2호가 되었습니다.]
곧바로 신비한 광채가 일어나 좀비 제논 아니, 호위병 2호의 몸체를 감쌌다.
뭉개진 고깃덩이처럼 처참한 상태의 몸체가 순식간에 멀쩡해졌다.
스스스.
그러던 호위병 2호의 몸체는 점점 작아졌다.
엄지손가락만한 크기의 좀비.
머리와 몸체의 비율이 이등신 캐릭터 인형을 연상케 한다.
몰캉이에 이어 토실이의 펫이 된 호위병 2호.
녀석은 이 상황이 충격적인지 두 눈을 크게 뜬 채 멀뚱하니 서 있었다.
< 정성의 시험 (2) > 끝
ⓒ 오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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