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설 펫의 능력 (2) >
토실이와 함께 크라겔을 추적하기 직전.
로안은 아공간에서 20레벨 일반 승급석 2개를 꺼냈다.
그리고 그것들을 하일과 데라에게 건넸다.
“오! 이건? 우와아! 20레벨 승급석이잖아.”
“세상에! 정말 고마워, 로안.”
그들은 깜짝 놀라며 좋아했다.
로안은 미소 지었다.
“아까 오크 지휘관을 죽이고 나온 드롭템들이니 부담갖지 말고 받으세요. 아쉽지만 닐스 형 것은 없으니 나중에 구해줄게요.”
“하하, 난 희귀 직업이라 어차피 각오하고 있어. 천천히 승급해도 되니 걱정마라.”
창투사인 닐스는 20레벨 일반 승급석으로는 승급이 불가능하다.
이런면에서 보면 직업의 등급이 높다고 꼭 좋은 건 아니다.
승급 한 번 할 때마다 다른 하위 등급 직업보다 몇 배의 노력을 해야 하니까.
그런데 그때.
멀찍이서 로안과 닐스의 대화를 듣고 있던 레이가 다가와 말했다.
“닐스! 그대의 창투사 20레벨 승급 아이템은 내가 구해주도록 하마.”
“레이 아가씨께서요? 정말입니까?”
“물론이야. 오늘 로안을 비롯해 그대의 파티가 세운 공로가 적지 않으니까. 페덴 경 들었죠?”
“예, 아가씨. 마침 창투사 20레벨 승급 아이템이라면 저에게 하나 있습니다만.”
페덴은 30레벨 기사인 만큼 아공간 스탯도 하나 소유하고 있었다.
그는 거기서 자그만 책자 하나를 꺼냈다.
제목은 〈창투술의 기본〉.
그것이 바로 창투사 20레벨 승급 아이템이다.
“자, 받거라, 닐스.”
닐스는 깜짝 놀랐다.
“정말로 받아도 됩니까?”
“하하, 물론이다. 승급 미리 축하해.”
“정말 고맙습니다, 페덴 님.”
닐스는 승급 아이템을 받아쥐고는 감격의 표정을 지었다.
20레벨 승급은 한참이 걸릴 거라 예상했는데 이렇게 빨리 그 기회가 올 줄이야.
레이가 페덴을 뜻밖이라는 듯 쳐다봤다.
“그건 경의 개인 소유 아이템 아닌가요?”
“하핫, 괞찮습니다. 어차피 저에게는 필요없는 물건이니 신경쓰지 마십시오, 아가씨.”
사실 페덴은 오늘 아주 큰 실수를 했다.
크라겔을 즉각 기습하라는 레이의 명령을 그대로 따르지 않았다가 놈을 놓쳐버리는 우를 범하고 말았으니까.
페덴은 레이의 불같은 성격을 잘 안다. 그녀는 지금 속으로 화를 꾹꾹 눌러참고 있을 게 분명했다.
그가 오래도록 그녀를 지켜온 호위 기사였기에 넘어갔을 뿐, 다른 기사들이었다면 호된 추궁을 당했을 것이다.
따라서 그로서는 이렇게라도 조금이나마 그녀의 화를 풀기위해 노력 중이었다.
“오오! 축하해요, 닐스 형.”
“축하해, 닐스. 정말 잘됐어. 우리만 승급하기 미안했는데.”
“으하하하! 축하한다, 닐스. 이제 우리 셋 모두 20레벨이 될 수 있겠구나.”
로안과 데라, 하일이 닐스를 축하해줬다. 특히 로안이 무척 기뻐하는 표정을 짓는 걸 본 레이의 안색이 급격히 밝아졌다.
곧바로 그녀는 로안을 향해 말했다.
“로안, 오늘 그대의 놀라운 활약이 아니었다면 우리 측 피해는 이 정도로 끝나지 않았을 거야. 카젤 가문을 대표해 진심으로 고맙게 생각해.”
“별말씀을요, 레이 아가씨.”
“지금은 드라우트 성의 지원이 급박한 상황이니 그대에 대한 보상은 나중에 따로 특별히 챙겨주도록 할게.”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하는 레이의 태도는 이전과 달리 무척 상냥했다.
어떤 보상인지 모르지만 카젤가의 영애가 특별히 챙겨준다고 했으니 가벼운 것은 아닐 것이다.
로안으로서는 사양할 이유가 없었다.
“그럼 저는 달아난 흑마법사 크라겔을 처치하고 합류할 테니 먼저 드라우트 성으로 출발하시지요.”
“크라겔은 아주 악명 높은 흑마법사인데 그대 혼자서 괜찮을까?”
“혼자가 편합니다.”
“그럼 조심해. 지금은 이것밖에 줄 것이 없네.”
레이는 아공간에서 포션 4병을 꺼내 로안에게 건넸다.
[중급 생명력 회복 물약 2병을 얻었습니다.]
[중급 마나 회복 물약 2병을 얻었습니다.]
하급도 아닌 중급 물약.
이 정도면 대폭 늘어난 로안의 생명력과 마나가 소진되어도 단번에 회복시켜줄 수 있다.
꽤 비싼 편인데 별 것 아니라는 듯 내주다니.
하긴 200코인 짜리 전설 펫 당근들을 무더기로 내줄 정도로 통이 큰 금수저 아가씨다.
한 마디로 친해져서 손해될 것이 없는 존재.
로안은 정중히 감사의 인사를 했다.
“지원 감사합니다, 레이 아가씨. 이 포션들은 제게 아주 큰 힘이 될 것 같군요.”
그러자 레이의 입가에 다시 미소가 빙긋 피어났다.
“그렇게 말해주니 고마워. 그리고 이건 토실이 것.”
그녀가 아공간에서 자색빛 당근들을 잔뜩 꺼내 로안에게 건넸다.
무려 10개다.
대체 또 언제 사둔 걸까?
레이가 조금은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부담갖지 말고 받아. 지난 번에 말했지만 이건 그냥 순수하게 토실이가 좋아서 주는 거야.”
“아, 네.”
“그렇다고 오해하지 말고. 난 더 이상 토실이를 탐내지 않아. 난 그저 토실이가 행복하면 그것만으로 충분하거든.”
후!
이건 거의 병적인 팬심(?)이다.
그냥 팬도 아닌 열혈팬 랭킹 1위라고 해야겠지.
“감사합니다, 레이 아가씨. 덕분에 당분간 당근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겠군요.”
[전설 펫 전용 당근 10개를 얻었습니다.]
순간 토실이가 레이의 볼에 부비부비 팬서비스를 해주었다. 덩달아서 몰캉이 녀석도.
“꺄하하! 귀여워! 이 애벌레도 너무 귀여운 걸.”
레이는 세상 모든 걸 얻은 듯 기뻐했다. 그녀는 몰캉이의 몰캉말캉한 감촉에도 놀라기는커녕 오히려 좋아했다.
약 30초가 지나자 토실이와 몰캉이는 돌아왔다. 아쉬운 표정으로 쳐다보는 레이를 향해 로안은 작별을 고했다.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레이 아가씨.”
“부디 조심해, 로안.”
“예, 아가씨도요.”
로안은 곧바로 토실이를 쳐다봤다.
그러자 토실이가 폴짝 도약한 후 허공에서 새처럼 날 듯 이동하기 시작했다.
휘익!
녀석의 속도는 꽤 빨라 마치 하얀 바람 같았다.
민첩 스탯이 낮다면 쫓아가기 힘든 속도겠지만, 로안은 무리없이 녀석의 뒤를 따라갔다.
그렇게 로안이 토실이와 함께 시야에서 멀어지는 모습을 레이는 한동안 물끄러미 바라봤다.
“이만 우리도 출발해요, 페덴 경.”
“네, 레이 아가씨.”
그 사이 흩어진 짐꾼들과 각성자들 중 다수가 다시 모여들었다. 레이와 페덴은 그들을 인솔해 드라우트 성으로 떠났다.
* * *
험악해 보이는 절벽 아래에는 이름없는 수많은 무덤들이 늘어서 있다.
고대부터 전쟁이 있을 때마다 시체들을 파묻은 장소.
인간은 물론이고 온갖 괴물들의 사체도 이곳에 묻혀 있다.
그곳에 나타난 웬 40대 남자.
【이름】 맥스
【레벨】 0
【직업】 없음
【신분】 방랑자
턱이 수염으로 뒤덮인 이 털보 남자 맥스의 인상은 아주 평범해 보인다.
물론 그의 진정한 정체는 크라겔.
소년 론에서 다시 털보 맥스로 변신한 상태로 이곳에 온 것이다.
‘그 기사 놈이 얼간이 짓을 한 덕분에 살아났다만.’
그는 아까의 일만 생각하면 식은땀이 차올랐다.
하마터면 어이없이 기습을 받아 죽을 뻔했으니까.
‘대체 그놈들이 나의 정체를 어떻게 알아낸 건가?’
무려 50만 코인짜리 위장의 팔찌가 주는 현혹 마법이 간파될 줄이야.
그가 전재산을 털어 이것을 산 이유는 외모와 신분을 철저히 위장하기 위함이었다.
‘마쿠스 공작조차 알아보지 못했는데.’
위장의 팔찌는 오직 전설의 통안 능력을 가진 존재만 꿰뚫어볼 수 있다.
‘설마 통안의 능력을 가진 존재가 있었다는 건가?’
누군가 통안을 가졌다 치자.
그럼 그가 누군지를 반드시 알아내야 한다.
‘마법사 레이? 기사 페덴? 아니야. 그들에게 그런 능력이 있었다면 진작 나를 공격했겠지. 대체 누구인가?’
크라겔은 혼란스러웠다.
‘어쨌든 당분간 함부로 밖에 나가지 않는 게 좋겠군.’
그는 굳은 표정으로 무덤들의 중앙으로 향했다.
불쑥! 쑤욱!
순간 근처의 무덤들에서 무수한 괴물들이 뛰쳐나왔다.
몸체가 잿빛의 뼈로 이루어진 존재들.
다름아닌 스켈레톤이라 불리는 언데드들이었다.
크라겔은 무심한 표정으로 그것들을 쳐다봤다.
“오셨습니까······주인이시여!”
다른 녀석들보다 신장이 5배는 더 커보이는 거대한 스켈레톤이 크라겔을 향해 넙죽 허리를 숙였다.
【이름】 그리프스
【레벨】 80
【직업】 스켈레톤 로드
【소속】 크라겔
스켈레톤 로드 그리프스!
놈은 이곳에 있는 수백여 스켈레톤 전사들의 우두머리로, 크라겔의 스승이 죽기 전 그에게 남겨준 가디언이었다.
그리고 이 아래에 바로 비밀 아지트인 카타콤이 있었다.
그그그긍.
그가 중앙의 무덤 앞에 위치한 비석을 비틀자 땅이 갈라지며 아래로 향하는 지하 계단이 나타났다.
“요즘 나를 노리는 놈들이 많으니 아무도 오지 못하게 철저히 지켜라.”
“염려마십시오, 주인님······.”
그리프스는 공손히 다시 허리를 숙였다.
크라겔은 지하 계단으로 사라졌고 곧이어 갈라진 땅이 원상복구됐다.
그것을 멀리 절벽 위에서 내려다보는 이가 한 명 있었다.
다름아닌 로안.
‘저기가 크라겔의 비밀 아지트였나?’
게임에서도 알아내지 못했던 장소다. 놈이 악마가 된 이후에는 다른 곳을 근거지로 사용하는 터라 여기에 와 볼 여지가 없었던 것이다.
‘토실이가 아니었다면 이번에도 못 찾았겠지.’
그런데 이대로는 승산이 전혀 없었다.
여긴 무려 80레벨이나 되는 거대한 보스급 괴물이 지키고 있는 곳이니까.
저 정도면 단신으로 성이건 도시건 파괴할 수 있는 재앙급 괴물이다.
‘왜 흑사문 멸망 때 저걸 동원하지 않았을까?’
물론 짐작은 간다.
괴물들 중에는 특정 장소를 벗어나면 힘을 쓸 수 없는 녀석들이 존재하니까.
아마 저 스켈레톤 로드도 그런 류의 괴물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래도 크라겔이 저 안에만 처박혀 있지는 않겠지.’
놈을 잡으러 굳이 위험한 비밀 아지트로 들어갈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근처에 대기하고 있다가 놈이 밖으로 나왔을 때 공격하면 손쉽게 해치울 수 있으니까.
“토실아, 당근 하나줄까?”
끄덕끄덕.
[전설 펫 토실이가 당근을 원합니다.]
굳이 알림까지 안해도 되는데.
“그래. 당근 많으니 하나 먹어라.”
여기까지 안내하느라 고생했다.
당근을 내주자 토실이 녀석은 사각사각 맛나게 먹었다.
기특하게도 녀석은 몰캉이에게도 한조각 베물어 나눠줬다.
몰캉이는 사양하지 않고 그 조각을 냠냠 핥아먹기 시작했다.
‘이 녀석들이 먹는 걸 보니 나도 배고프네.’
곧바로 아공간에서 빵 한 덩이와 물을 꺼내 간단히 허기와 갈증을 풀었다.
그런데 그때.
로안이 있는 근처로 일단의 인물들이 나타났다.
화아아악!
갑자기 환한 빛과 함께 근처에 타원형의 마법진이 생겨났고, 그와 동시에 그 위에서 도합 4명의 인물들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뭐지?’
놀란 건 로안만이 아니다.
마법진에서 모습을 드러낸 자들도 앞에 로안이 있자 놀란 듯했다.
“너는 웬놈이냐?”
황금빛 갑옷으로 무장한 건장한 청년 하나가 바람처럼 달려와 로안을 향해 검을 겨눴다.
까앙!
로안은 마룡도로 그 검을 쳐내며 옆으로 멀리 거리를 벌렸다.
그런데 도를 쥔 손목과 팔뚝이 얼얼했다.
‘엄청난 힘!’
로안은 놀랐다.
사기적인 근력 스탯을 지닌 그 자신과 비등한 정도의 힘을 가진 존재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정보 창을 보니 레벨이 55나 되는 검사다.
【이름】 헤로스
【레벨】 55
【직업】 상급 검사
【신분】 백작
【소속】 레온 왕국 근위 기사단
‘어쩐지.’
신분이 백작인데다 왕국의 근위 기사단 소속이란다.
55레벨의 상급 검사라면 저 정도 힘을 가진 것이 이해가 된다.
‘잠깐, 헤로스라면?’
그러고 보니 설마 용사 헤로스?
기억대로라면 장차 악마들과 맞서 싸우게 될 7명의 용사 중 하나다.
물론 헤로스가 용사로 각성하는 건 한참 후의 일.
아마도 그는 자신이 용사가 될 운명인 것조차도 모를 것이다.
‘용사 헤로스를 또 이렇게 만나네.’
그런데 로안의 힘에 헤로스 또한 깜짝 놀랐다.
불과 20레벨 마도객에 불과한 로안이 휘두른 도에 자신의 검이 밀려난 것이 믿기지 않았던 것이다.
“멈춰라, 헤로스. 로안은 내가 잘 아는 녀석이야.”
그때 갑자기 울리는 웬 노인의 음성.
이상하게도 왠지 낯익은 음성이다.
로안은 고개를 돌려 그쪽을 쳐다봤다.
‘어? 저 분은?’
밖으로 나온 헤로스를 제외하고 마법진의 신비로운 광채 위에 아직 3명의 인물이 더 보였다.
그중의 한 명이 로안을 향해 묘한 미소를 흘리고 있었다.
카리스마 넘치는 거친 인상을 가진 60대 노검사.
마쿠스 공작이었다.
< 전설 펫의 능력 (2) > 끝
ⓒ 오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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