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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으로 독존한다-38화 (38/240)

< 악마의 인장 (3) >

악마의 인장(印章).

사실 어떤 식으로든 이것을 얻게 되면 악마의 노예가 되어야 한다.

악마가 직접 인장을 새겨넣는 경우는 물론이고, 심지어 강력한 힘으로 그 인장을 강탈한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즉, 악마 크루스의 분신을 해치우고 놈의 인장을 강탈하려는 시도는 매우 위험한 일이라 할 수 있다.

‘그거야 평범한 사람들 얘기고.’

로안이 괜히 고인물일까?

그는 강탈한 인장을 별탈 없이 쓸 수 있는 노하우가 있다.

악마의 힘을 통제해 사용한다?

누가 들어도 허무맹랑한 얘기지만.

‘여신들이 주는 임무를 수행하면 저 인장의 힘을 제한적이나마 활용할 수 있지.’

여신들은 코인의 종류만큼 다양하다.

트렐 코인의 트렐라, 아프릴 코인의 아프릴리스, 베로 코인의 베로니카, 루넬 코인의 루넬리스 등등.

어디든 신전을 찾아가면 된다.

‘그 임무가 상당히 귀찮다는 게 문제지만 말이야.’

그래도 당연히 해야 한다.

그 귀찮음과 번거로움만 좀 감수하면 악마의 인장이 가진 막강한 힘을 쓸 수 있으니까.

『어리석구나, 하찮은 미물이여! 그렇게 자취를 감춘다고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은가?』

콰아아앙! 콰아아앙!

거대한 발이 마결계 안의 공터를 빠른 속도로 짓밟기 시작했다.

발의 크기가 무려 5미터 남짓.

밟히는 순간 온몸이 터지는 끔찍한 신세가 되고 만다.

그러나 로안은 무척이나 여유로웠다.

‘처음엔 시계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다 중앙으로 복귀, 그 후는 시계 방향으로 돌지.’

현재 크루스는 로안의 위치를 알지 못한다. 로안이 고유능력으로 냄새를 감춰버렸으니까.

그 상황에서 로안은 크루스가 움직이는 패턴을 훤히 알고 있는 터라 미리 피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중앙에 있다가 돌아오기 직전 잠시 빠지고, 다시 중앙으로 들어가고.’

혹시나 했지만 역시 그 패턴 그대로다.

그러고 보면 역사적 흐름은 바뀐 것이 있어도 개별적인 설정까지 변한 건 아닌 모양이다.

[냄새 동화 종료까지 10분 남았습니다.]

그렇게 놈의 공격 패턴을 확인하는 사이 5분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났다.

이제 남은 시간은 10분.

그 안에 어떤 식으로든 이 상황을 벗어날 방법을 찾아야 한다.

[마도비경이 아공간에서 출고되었습니다.]

로안이 선택한 건 승급이었다.

승급하면 레벨이 상승해 그만큼 더 강해진다.

놈에게 더 강한 타격을 줄 수 있다는 뜻.

‘10분이면 승급에 충분한 시간이지.’

전투 중에 무슨 승급이냐고 하겠지만, 게임에서 이미 검증된 일이다.

이 상황에서 마법사 전직도 해봤으니까.

촤라락!

로안은 크루스의 발이 오지 않는 사각지대로 계속 이동하며 책장을 넘겼다.

본래라면 이 비급에서도 냄새가 나겠지만 로안이 손에 쥔 순간 그것이 사라진다.

즉, 냄새동화는 로안의 몸뿐 아니라 입고 있는 옷, 소지품 모든 것에 적용된다.

나중에 스킬 레벨이 오르면 그를 중심으로 일정 반경 자체의 냄새를 없애는 것도 가능하다.

심지어 특정 시간 동안 냄새가 완전히 사라지게 만드는 무취(無臭)의 버프를 다른 사람에게 걸어줄 수도 있다.

[마도비경의 학습을 시작합니다.]

[학습 종료까지 4분 59초]

[20레벨 마도객이 될 수 있는 고대의 지식을 터득 중입니다.]

예상대로 딱 5분이다.

로안은 책장을 넘기며 동시에 계속 위치를 이동시켰다.

물론 표정은 여유롭지만 속으로는 당연히 긴장하고 있다.

자칫 이동 중 실수라도 하면 끝장이니까.

『인간 너의 교활함은 인정해줄만 하구나. 그러나 언제까지 피할 수 있을 것 같은가?』

말은 차분하지만 크루스의 움직임은 무척이나 난폭했다.

여긴 인간에게는 넓은 공간이지만 그에게는 매우 비좁은 곳이다.

그런데 이 좁은 곳에서 인간 하나를 찾아내지 못하니 당연히 분노할 수밖에 없으리라.

콰아아앙! 콰아앙! 쾅쾅쾅쾅!

놈의 움직임은 더욱 더 과격해졌다. 발을 구르는 속도도 빨라졌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로안도 뛰어야 했다.

중앙으로 뛰어들었다가 다시 밖으로 나가고.

그 와중에 책까지 넘긴다.

누가 봐도 황당해할 것이다.

‘내가 진짜 뭐하는 짓인지.’

하지만 이 상황에 이보다 더 나은 선택지는 없다.

[냄새 동화가 5분 후 종료됩니다.]

그때 울리는 경고 알림.

[마도비경 학습 종료까지 38초]

‘됐어. 조금만 더 버티자.’

30여 초만 지나면 레벨 20으로 승급한다.

승급이 주는 특수 효과 중 하나.

‘스킬 쿨 타임도 초기화되지.’

본래는 냄새동화 효과 종료 후 30분이 지나야 다시 쓸 수 있지만, 승급일 경우에는 예외다.

재사용 시간이 초기화되어 그 즉시 사용이 가능하다.

게다가 승급으로 냄새동화의 레벨도 상승해 지속시간도 늘어나게 될 테니, 승급이야 말로 신의 한수!

‘마쿠스 공작을 만나면 고맙다고 해야겠군.’

비록 로안이 도움을 주긴 했지만, 마쿠스 공작에게 20레벨 승급 아이템인 마도비경을 요청한 적은 없다.

그런데 그는 알아서 그걸 구해다 줬다.

그걸 여기서 이토록 유용하게 쓸 수 있게 될 줄이야.

[마도비경의 학습이 종료되었습니다.]

[당신은 마도객에 대한 고대의 지식을 터득했습니다.]

오! 드디어!

바라던 순간이 다가왔다.

[승급에 성공했습니다.]

[당신은 레벨 20이 되었습니다.]

[당신의 마법 저항력이 크게 증가합니다.]

[근력과 지력 스탯이 각각 1 증가합니다.]

승급 보너스 스탯!

이건 영웅 등급 직업의 승급 특혜라 할 수 있다.

[고유능력 〈냄새동화〉가 Lv3이 되었습니다.]

[고유능력 〈흥정〉이 Lv3이 되었습니다.]

예상대로 고유능력들도 레벨 상승!

능력 창을 보니 재사용 시간도 초기화되어 있다.

[마도객 전용 능력 〈불의 칼〉이 Lv2가 되었습니다.]

[새로운 전용 능력 〈오러 생성〉을 배웠습니다.]

[마나를 소모해 도(刀)에 오러를 생성할 수 있습니다.]

오러 생성은 검으로 치면 검기(劍氣)를 의미한다.

당연히 마도객은 검기가 아닌 도기(刀氣)를 생성시키게 된다.

도기를 쓰지 않았을 때보다 공격력이 2배는 더 강해진다고 보면 된다.

[흑사광살도법을 5성으로 올릴 수 있습니다.]

[1600코인을 소모해 흑사광살도법의 경지를 높이겠습니까?]

‘예!’

4성과 5성은 불과 1성이지만 전투력이 판이하게 차이 난다.

도법을 몇 년 더 수련해야 얻을 수 있는 경지를 코인으로 불과 몇 분만에 성취할 수 있는데 안 하면 바보다.

[트렐 1600코인이 소모되었습니다.]

[당신의 몸에 흑사광살도법이 체화됩니다.]

[성취도 5성 체화 진행 중 1%]

곧바로 흑사광살도법의 체화가 시작됐다.

[냄새 동화의 효력이 곧 종료됩니다.]

[재사용 시간이 초기화되어 냄새 동화를 즉시 펼칠 수 있습니다.]

[냄새 동화(Lv3)를 즉시 재시전하시겠습니까?]

‘예.’

[냄새 동화가 재시전되었습니다.]

[20분 동안 누구도 당신을 후각으로 감지할 수 없습니다.]

다시 20분 확보!

그러나 그 사이 악마 크루스의 움직임은 더욱 빨라졌다.

‘시간이 갈수록 저 발은 더 빨라진다.’

나중에는 가히 순간이동을 하듯 그 속도가 빨라져 피할래야 피할 수가 없다.

이렇게 도망만 다니다간 결국 죽을 수밖에 없다는 뜻.

‘20분 안에 저놈을 끝장내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

로안은 흑사광살도법의 체화가 끝나기를 기다리며 마룡 반지를 왼손가락에 끼었다.

[당신의 마법 저항력이 100 증가합니다.]

[당신의 마법 치명타 확률이 1% 상승합니다.]

[당신의 근력이 3 상승합니다.]

사기적인 옵션의 전설 반지.

덕분에 로안의 근력이 또 증가했다.

【근력】 30(+3)

【체력】 24

【민첩】 25

【지력】 19

Lv16에서 Lv20이 되며 얻은 보너스 스탯은 각각 근력 2, 체력 1, 민첩 1로 균형있게 분배했다.

반지의 +3 근력 추가 효과로 인해 힘이 넘치다 못해 폭발할 지경이다.

전투력이 급증 정도가 아니라 폭증한 것이다.

그런데도 아직 로안은 공격하지 않고 크루스의 발을 피하기만 했다.

‘조금만 더.’

[······체화 진행 중 100%]

[흑사광살도법 5성에 도달했습니다.]

드디어!

이것을 기다렸다.

비로소 계속 피하기만 하던 로안의 반격이 시작됐다.

화르르!

먼저 마룡도에서 불의 칼(Lv2)이 쏟아져 나가 크루스의 발에 작렬했다.

순간 종횡무진 마결계의 공간을 누비던 거대한 발이 우뚝 멈춰섰다.

『어리석은 인간이여! 그깟 하위 마법이 내게 통한다고 생각하는가.』

크루스의 음성에서 가소롭다는 기색이 느껴졌다.

당연히 그렇게 느껴지겠지.

하지만 마법을 펼친 건 다 이유가 있다.

멈춰야 공격을 펼치기 수월하니까.

[오러가 생성되었습니다.]

마룡도의 은빛 도신이 환한 빛으로 물들었다.

오러 즉, 도기가 피어난 것이다.

촥! 촤각!

마룡도가 공간을 가르는 순간 크루스의 거대한 발에 긴 자상들이 생겨났다.

『크으윽! 감히!』

크루스의 발이 인근의 바닥을 미친 듯 밟아댔다.

쾅! 콰쾅! 콰콰쾅!

반경 수십 미터가 초토화됐다.

그러나 로안은 이미 치고 빠진 후다.

그리고 다시 전진해서 베고 베고 또 벴다.

촥 촤촥! 촤악!

거대한 발등의 곳곳이 갈라지며 피가 솟구쳐 나왔다. 피칠갑을 한 그 발이 신경질적으로 사방을 짓밟았다.

콰쾅! 콰아앙! 콰쾅!

물론 로안은 또 다시 멀리 물러났다. 냄새동화로 인해 크루스는 로안의 종적을 찾을 수 없으니 끝없이 헛발질만 해댔다.

『인간 놈―! 너는 반드시 죽는다!』

크루스가 광분했다.

순간 놈과 동일한 형상의 발이 또 하나 나타났다.

크루스가 아득히 먼 어딘가에 있는 또 다른 발을 이곳으로 소환한 것이다.

콰쾅! 콰쾅! 쾅쾅쾅쾅!

두 개의 발이 함께 날뛰었다.

가공스러운 광경이었지만 이미 놈들의 공격 패턴을 알고 있는 로안에게는 별다른 위협이 되지 못했다.

만약 몰랐다면?

제아무리 민첩 스탯을 높여도 반사신경만으로 저것들의 공격을 피하기란 불가능했을 것이다.

물론 마쿠스 공작처럼 고렙 상태라면 별 것 아니겠지만 말이다.

‘그러고 보니 내가 20레벨에 저놈과 싸워보는 건 처음이군.’

정말 황당한 일이긴 하다.

게임에서도 말도 안 되는 일이 현실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니까.

본래는 아무리 놈들의 패턴을 알아도 50레벨 정도는 되어야 승산이 있다.

그러나 환생사의 사기적인 스탯빨이 레벨 20에 그것을 가능하게 만든 것이다.

촤가각!

『크으으으으!』

다른 발의 소환이 해제되어 사라진 순간을 노려 로안의 마룡도가 크루스의 새끼 발가락을 잘라냈다.

『감히! 죽인다······!』

그러나 발가락 하나가 잘려나간 놈의 움직임은 대폭 느려진 상태다.

‘슬슬 끝낼 때가 왔군.’

냄새동화의 효력도 잠시 후면 사라진다. 그 전에 끝내기 위해 로안은 사력을 다해 마룡도를 휘둘렀다.

촤아악! 써거걱!

이어서 또 다른 발가락이 놈의 발에서 떨어져나갔다.

『끄아아아아악!』

어느덧 모든 발가락이 분리되자 그로부터 누적된 대미지로 인해 놈은 더 이상 움직이지 못했다.

『인간······! 너는 진정 감당할 수 있겠느냐? 지금의 너의 행동에 뒷감당을 할 수 있느냐?』

물론 겁난다.

솔직히.

게임이었을 때는 그냥 플레이를 즐기는 입장이니 악마의 분신이고 뭐고 겁날 것도 없었지만.

그것이 현실로 나타난 세계에서 악마의 분신을 죽이고 있으니 겁이 나는 건 당연하다.

이거 정말 뒷감당이 될까?

‘만일 여신들이 모른척하면 끝장이겠지만 그럴 리는 없지.’

어차피 지금은 선택의 여지도 없다.

이미 크루스의 발가락을 다 잘라놓고 이제와서 멈춰봤자 무슨 소용일까?

그렇다.

악마와 협상은 없다.

놈에게 굴종하던가 아니면 죽여 없애거나, 그 두 개의 선택지만 있을 뿐.

‘이놈을 죽이고 인장을 챙긴다.’

로안의 마룡도가 크게 수직선을 그렸다.

촤아아악―!

『크아아아아악!』

처참한 비명과 함께 크루스의 거대한 발이 바위가 갈라지듯 두 쪽이 나기 시작했다.

동시에 그 사이에서 활활 타오르는 작은 태양과 같은 물체가 둥둥 떠 있다가 로안의 손으로 빨려들어왔다.

츠읏!

그것은 로안의 손바닥으로 이내 스며들었다.

번쩍!

곧바로 그의 팔뚝에 이글거리는 태양과 같은 문양이 생겨났다가 투명화되어 사라졌다.

[당신은 악마 크루스의 인장을 강탈했습니다.]

악마의 인장을 얻는데 성공했다.

『크으으윽······! 나 크루스가 맹세컨대 네놈에게 영원한 저주를 내리겠다! 너는 고자······가 될 것이다! 환생을 해도 또 해도 영원히 고자가 될 것이다······!』

뭐?

지금 뭐라고 했냐?

아, 잠깐! 악마 양반···?

대화를 시도해보려고 했지만 크루스의 부서진 발은 이내 먼지로 변해 흩어졌다.

[악마 크루스의 인장을 강탈한 당신에게 저주가 임합니다.]

[정력 스탯이 봉인됩니다.]

[VP의 사용이 제한됩니다.]

[지속시간 : 47,533,945일]

4753만 일이면 대체 몇 년이냐?

계산해보니 13만 년.

‘후! 그러고 보니 이런 게 있었지.’

게임에서는 그러려니 했던 저주다. 어차피 현실의 자신이 아닌 아바타가 당하는 거니 별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근데 이건 지금 현실이다!

‘하하, 뭐 괜찮아. 당황할 것 없어.’

어차피 여신의 퀘스트를 수행하면 이 따위 저주는 바로 풀린다.

하지만 왜 눈물이?

‘내가 고자라니······.’

< 악마의 인장 (3) > 끝

ⓒ 오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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