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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으로 독존한다-36화 (36/240)

< 악마의 인장 (1) >

대검과 마룡도가 연신 격돌했다.

카앙! 카캉!

오크 지휘관 우르스는 광전사 특유의 압도적인 힘을 이점으로 적을 몰아붙이는 게 특기다.

그의 대검 역시 그에 맞게 제작된 중검이다.

워낙 무거워 어지간한 오크들은 그걸 들고 휘두를 수조차 없다.

이 대검은 상대가 무기로 막아도 피해를 본다. 넉백과 동시에 쇼크 상태에 빠지게 되니, 우르스는 무력화된 적을 손쉽게 요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그가 마주한 적은 달랐다. 근육질의 인간도 아닌 평범한 체격의 인간 소년이 그의 대검을 가볍게 받아내는 것은 물론이고 오히려 그를 몰아붙이고 있었다.

‘으으! 무슨 인간 놈이 이렇게 힘이 센 건가?’

까앙―! 촤악!

은빛 검신의 마룡도가 번쩍이며 날아들 때마다 우르스는 연신 뒤로 밀려났다.

게다가 이미 그의 신체는 두 군데나 상처를 입었다. 도에 베인 상처가 깊어 피가 물뿌리듯 사방으로 흩어지고 있었지만 지혈을 하거나 상처를 치료할 여유는 없었다.

“쿠아아아! 뒈져랏!”

우르스는 발악을 하듯 대검을 휘둘렀다.

붉은 빛에 휩싸인 대검의 검신이 전방으로 포물선을 그리자 공간이 붉게 물든다.

콰앙!

‘으윽!’

이번에는 로안이 밀렸다.

‘제길! 역시 광검사인가?’

광검사나 광전사처럼 앞에 광(狂)이라는 글자가 붙은 직업은 대부분 전투에서 상처를 입으면 공격력이 대폭 증가한다.

상처 입은 맹수가 무서워지듯, 그때부터 미쳐날뛰기 시작한다.

이때 조심하지 않으면 다 이겨놓고도 불의의 일격에 치명상을 입을 수 있는 것이다.

“크카카캇! 어디 계속 내 공격을 받아봐라, 인간 놈!”

우르스의 몸은 두 곳의 상처에서 뿜어져나온 피로 인해 붉게 변해 있었다.

‘온통 시뻘건 색이군.’

붉은 오크는 원래 눈알도 붉고 털도 붉다.

거기에 핏빛 상갑도 장착하고 있어 보는 것만으로도 섬뜩함을 주는데, 우르스의 경우는 피칠까지 한 상태이니 꿈에 볼까 두려울만큼 끔찍한 괴물이 되어 있었다.

쒸익! 쒜에엑!

광분. 폭주. 놈은 지금 말 그대로 망나니 그 자체다.

콰쾅! 촤가각! 콰아앙!

놈의 대검이 가르는 궤적 앞에 바위가 있으면 부서졌고, 나무가 있으면 그대로 동강나 넘어갔다.

그러나 그중 어떤 공격도 로안의 균형을 무너뜨리지 못했다.

로안은 차분히 마룡도로 대검을 빗겨내거나 피했다.

“쿠아아아! 이 쥐새끼 같은 놈!”

광검사의 미친 괴력이 실린 대검의 막강한 파괴력을 정면으로 받지 않고 노련하게 빗겨내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로안은 오래도록 도를 수련한 도객처럼 능숙하게 그것을 해냈다.

어떻게 그게 가능하냐고?

당연히 비급의 능력 때문이다.

【비급 능력】

-흑사광살도법 4성

‘이걸 미리 4성으로 올려두기 잘했다.’

이전에는 코인이 없어 3성까지만 올렸지만, 경매장에서 염화의 지팡이를 판 코인을 받는 순간 가장 먼저 흑사광살도법의 경지부터 올려두었다.

5성은 20레벨 제한이라 현재는 4성까지가 한계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광검사 우르스의 무지막지한 대검의 공세를 방어하는데는 큰 지장이 없었다.

물론 이는 단순히 비급의 능력 때문만은 아니다.

사실상 스탯빨이 더 위력을 발휘한다고 보는 게 정확하다.

【근력】 27

【체력】 23

【민첩】 23

【지력】 18

외부로 표시된 그의 레벨은 19.

그러나 그의 실제 레벨은 15다.

그럼에도 환생사 특유의 사기적인 스탯으로 인해 근력이 무려 27이나 된다.

레벨 30의 기사 페덴을 일방적으로 몰아붙였던 광검사 우르스도 광폭 상태가 아닐 땐 로안에게 힘으로 밀릴 정도니까.

그뿐이 아니다.

23포인트의 민첩 스탯이 주는 경이적인 명중률과 회피율!

또한 23이나 되는 체력 스탯은 지치지 않는 스테미나를 제공해준다. 아무리 싸움을 잘해도 금방 지쳐버리면 전투에 패배할 수밖에 없는데 로안의 체력은 오히려 오크들을 능가한다.

그뿐인가?

물리 전투 계열에게는 거의 쓸모없는 스탯으로 여겨지는 지력 스탯이 마도객인 로안에게는 전혀 쓸모없는 것이 아니다.

다른 기본 스탯보다 다소 낮은 18포인트에 불과하지만, 한 번씩 〈불의 칼(Lv1)〉이 펼쳐질 때마다 우르스를 곤경으로 몰아넣었다.

화르르!

지금이 바로 그때.

폭주 상태로 미친 듯 대검을 휘두르던 우르스는 갑자기 커다란 칼 모양의 불덩이가 날아들자 기겁했다.

“크헉!”

재빨리 대검으로 그것을 막아냈지만 화염이 검을 타고 그의 팔뚝까지 올라왔다.

“크윽!”

엄청나게 뜨겁다.

하마터면 대검을 놓칠 뻔했다.

가뜩이나 욱신거리던 양손과 팔뚝에 화상까지 생겨났다.

“우라질!”

힘에서도 밀린다.

기술에서도 밀린다.

그런데 거기에 마법까지?

이건 도저히 이길 방법이 없다.

‘대체 어디서 저런 말도 안 되는 괴물이 나타난 거냐?’

우르스의 눈에 비친 로안은 괴물이었다.

“큭! 오늘은 여기까지 하는 게 좋겠군.”

우르스는 결국 도주를 선택했다.

붉은 오크 지휘관으로서 상당히 쪽팔리는 일이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이게 바로 보통의 오크들과 붉은 오크 족의 다른 점이다.

죽어도 절대 물러나지 않는, 오직 자존심에 목숨을 거는 일반 오크들과 달리 붉은 오크들은 사태가 불리하면 퇴각을 선택할 줄 아니까.

“도망치게 둘 것 같냐?”

로안은 장차 49 악마 중 하나가 될 녀석을 해치울 절호의 기회를 이대로 날릴 수 없었다.

지금의 우르스는 붉은 오크 지휘관들 중에 그리 강한 수준이 아니다.

그러나 악마로 각성하면 붉은 오크 중 최강자가 되어 대혈풍을 일으키게 될 것이다.

‘불의 칼!’

곧바로 마룡도에서 화염이 쏘아져나갔다.

화르륵!

칼 모양의 화염이 바람처럼 날아가 우르스의 뒤통수에 작렬할 찰나.

스스스.

갑자기 생성된 괴상한 흑색의 막이 불의 칼을 그대로 흩어버렸다.

‘실드?’

로안은 놀랐다.

마법으로 펼쳐진 실드다.

그것도 불의 칼을 단번에 흩어버릴 정도면 적어도 최소 레벨 20 이상의 마법사 아니, 흑마법사가 펼친 것이어야 한다.

방금 건 어둠의 기운이 물씬 느껴졌으니까.

‘어떤 놈이 흑마법을?’

놀라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츠츳! 츠츠츠츠!

그 사이 앞쪽에서 흑색 빛의 검들이 십여 개나 생성된 것이다.

흑마법사의 공격이다.

‘다크 소드를 무더기로? 이건 보통 놈이 아닌데?’

로안은 즉각 멈춰섰다. 그리고는 날아드는 다크 소드들을 마룡도를 휘둘러 하나씩 박살냈다.

그러자 도주하던 우르스가 뒤를 돌아보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지금 누가 나를 돕는 건가?”

「멍청한 놈이군. 지금 그 딴 것을 궁금해 할 때인가? 어서 빨리 저 로안이라는 놈을 처치해라!」

그의 귀로 은밀히 파고드는 정체불명의 음성.

멍청이라고 부르는 놈의 말투가 기분 나빴지만 우르스는 이내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큭! 좋아! 네가 누군지 모르지만 일단 저 인간 놈부터 처치한 후에 대화를 나누도록 하지.”

그는 즉시 로안을 향해 대검을 휘두르며 돌진해왔다.

“크카카캇! 두 동강을 내주마, 인간 놈!”

그로인해 로안은 다크 소드들뿐 아니라 우르스의 공격까지 받아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휘휭! 카캉! 카아앙!

‘대체 흑마법사 놈은 어디에 있는 거지?’

우르스의 대검을 쳐내며 로안의 시선이 주변을 빠르게 훑었다. 그러나 흑마법사는 철저히 은신한 상태라 종적을 찾을 수 없었다.

* * *

한편 그렇게 로안과 우르스가 전투를 벌이는 사이 인간과 오크 양쪽 진영도 멀뚱히 구경만 하고 있지 않았다.

고작 19레벨에 불과한 로안이 기사 페덴조차 패퇴시킨 오크 지휘관 우르스를 상대로 비등한 전투를 벌이자 모두들 경악했지만, 지금은 놀라고만 있을 때가 아니니까.

“모두 돌격! 오크들을 쓸어버려라!”

기사 페덴이 멀쩡한 상태가 아니다 보니 명령을 내린 이는 다름아닌 레이였다.

26레벨 마법사인 만큼 그녀는 공격의 신호로 오크들을 향해 마법을 날렸다.

번쩍!

지팡이의 끝에 푸른 기운이 모여드는가 싶더니 그것이 번개의 형상으로 뻗어나갔다.

파지지직!

그것에 휘말린 오크 4마리가 고압 전기에 감전된 듯 몸부림 치다가 쓰러졌다.

이에 격분한 오크들이 레이를 향해 창과 화살을 날렸지만 그녀의 앞에 있던 기사들이 방패와 검으로 그것들을 모조리 쳐냈다.

“크아아아! 공격!”

“인간들을 죽여라!”

“붉은 오크의 용맹을 보여줘라!”

오크들이 몰려오자 창투사 닐스를 비롯한 각성자들 또한 각자의 무기를 앞세우고 돌진했다.

“우리도 가만 있을 수 없지.”

“오크 놈들 다 죽었어!”

닐스의 창이 오크의 목을 찔렀고, 하일의 도끼도 오크 한 놈의 머리를 쪼갰다.

데라는 뒤쪽에서 안전하게 거리를 벌린 채 활을 쏴 닐스와 하일을 엄호했다.

그들을 필두로 다른 각성자들도 오크들을 사정없이 몰아붙였다.

물론 오크들 또한 호락호락 당하지만은 않았다. 오크 둘이 죽어나가면 인간 각성자 하나는 죽어나갔다.

“키키! 뒈져랏, 인간 놈!”

“아아악!”

“망할 오크 놈 죽어라!”

“꿰에엑!”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오크들의 피해가 더욱 속출했다.

이는 마법사 레이 때문이었다.

피가 튀고 죽음이 난무하는 살벌한 전장이지만 그녀는 왕국 최강의 검사 마쿠스 공작의 외손녀답게 무척이나 침착했다.

각성자들이 불리한 지경에 처하면 여지없이 그녀의 마법이 그쪽에 있는 오크들을 향해 날아들었다.

그러다 보니 그녀를 향한 오크들의 적개심은 극에 달했다.

“으득! 저 마법사 년부터 죽여라!”

“찢어죽여버리겠다!”

오크들이 악을 쓰고 달려들었지만 그녀를 지키는 기사들은 방어에 특화된 각성자들이었다.

게일(Lv28, 방패기사)

쉬트(Lv29, 방패기사)

거대한 방패를 쥔 이들 두 명의 기사들은 레이의 앞 뒤에서 전방위 방어를 담당했다.

화살이건 도끼든 그들의 방패를 뚫지 못했다.

그들은 또한 방패를 휘둘러 오크들을 뒤로 밀어내기도 했다.

그렇게 육중한 방패 공격에 밀려 비틀거리는 오크들을 향해 푸르고 투명한 가시들이 무더기로 날아갔다.

냉기마법 중 하나인 얼음 가시!

오크들은 고슴도치가 되어 쓰러졌다.

“커어억!”

“꿰엑!”

오크들이 죽는 것을 무심한 눈빛으로 쳐다보던 레이의 표정이 돌연 굳어졌다.

‘저건 흑마법?’

우르스와 함께 로안을 공격하고 있는 시커먼 검들.

그것이 흑마법의 일종인 다크 소드라는 걸 그녀는 단번에 간파했다.

‘디스펠!’

그녀는 즉각 다크 소드의 마법을 해제하는 주문을 펼쳤지만 통하지 않았다.

오히려 다크 소드 중 하나가 방향을 틀어 그녀를 향해 날아왔다.

‘이런! 나보다 상위 레벨의 흑마법사야.’

침착하던 그녀의 표정이 당혹스러움으로 물들었다.

콰앙!

다행히 날아오던 다크 소드는 방패기사인 게일이 훌쩍 도약해 막아냈다.

“페덴 경!”

레이가 다급히 외쳤다.

“예, 말씀하십시오, 레이 아가씨.”

그 사이 페덴은 포션으로 체력을 회복하고 레이의 주변으로 달려드는 오크들을 죽이고 있었다.

“근처에 흑마법사가 있어요. 빨리 찾아야 해요.”

“흑마법사라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레이가 지팡이로 로안이 있는 쪽을 가리켰다.

“저 흑색 검들은 흑마법으로 펼친 다크 소드예요. 빨리 흑마법사를 찾아내지 않으면 로안이 위험해져요.”

페덴의 안색도 굳었다.

“근처에 흑마법사가 있다. 그놈부터 찾아 죽여라.”

그러나 그들이 아무리 살펴도 흑마법사의 종적은 찾아낼 수 없었다.

* * *

한편 그때 로안 역시 흑마법사의 종적을 찾고 있었다.

‘틀림없어. 크라겔! 그놈이야.’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짓을 할 놈은 단 한 명뿐이다.

놈은 어젯밤에도 어새신들을 보내 암살을 시도했으니까.

‘그놈이 포기하지 않고 집요하게 노릴 거라 예상은 했지만.’

그런데 하필 이럴 때, 그것도 오크 쪽에 붙어서 공격해 오다니.

‘딱 그놈다운 짓이야.’

게임에서도 그랬다.

놈은 항상 정면으로 나서지 않고 뒤에서 은밀하게 암습해 온다.

불리해질 것 같으면 귀신같이 잠적하거나 튀어버리니 잡기가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럼 각성자들이나 짐꾼으로 위장해 있었다는 건데?’

하지만 아무리봐도 크라겔로 보이는 자는 없었다. 아니 그런 걸 자세히 살필 만한 여유가 없었다.

“크카카캇! 죽어라! 죽엇!”

다크 소드들이 끝없이 날아드는 데다 우르스까지 미친듯 대검을 휘둘러오니 로안은 막기에 급급했다.

그런데 그때 뜻밖의 상황이 발생했다.

[경험치를 얻었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로안은 현재 닐스 등과 파티 상태이다 보니 그들이 오크들을 죽일 때마다 파티 경험치를 얻고 있었다.

-파티장 : 닐스(창투사, Lv17)

-파티원 : 하일(전사, Lv16)

-파티원 : 데라(궁수, Lv16)

-파티원 : 로안(마도객, Lv19)

창투사와 전사, 그리고 궁수의 조합은 빠른 사냥을 가능하게 만들었고, 그로인해 하일과 데라의 레벨이 한 단계 상승했다.

로안 또한 실제는 레벨 15라 한 단계 상승해 레벨 16이 된 것이다.

동료들 덕을 봤다.

파티는 이래서 좋은 거다.

‘이러면 얘기가 달라지지.’

로안은 즉각 보너스 스탯 포인트를 민첩으로 분배해 24로 만들었다.

단 1 포인트지만 그 1의 차이가 놀라웠다.

다크 소드들의 움직임이 미세하지만 느리게 보였으니까.

우르스의 움직임 또한 마찬가지다.

[전설 펫 토실이가 호위 기사 1호를 출동시킵니다.]

그때 발생한 또 하나의 이변.

로안을 향해 사정없이 대검을 휘두르던 우르스가 돌연 비명을 지르며 비틀거렸다.

“크억!”

난데없이 팔뚝만한 굵기의 커다란 벌레 괴물이 나타나 그의 한쪽 팔을 꽉 물어뜯은 것이다.

“우라질! 어디서 이런 벌레 따위가!”

큰 상처를 입은 건 아니지만 순간적으로 팔이 마비가 될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크윽! 죽인다!”

화가 난 우르스는 대검의 자루로 벌레를 후려쳐 떨어뜨렸다.

벌레가 바닥에 나동그라지자 우르스는 발로 놈을 밟았다.

아니 밟으려 했지만.

“내 앞에서 한눈을 팔다니 죽으려고 작정했군.”

어느새 로안의 마룡도가 우르스의 목을 노렸다.

번쩍이며 날아드는 은빛 섬광!

‘이크!’

우르스는 기겁하며 뒤로 황급히 굴렀다. 그렇게 간신히 로안의 도를 피했지만, 로안은 그대로 도를 회전시켜 내리찍었다.

콰직!

마룡도가 수직으로 번개치듯 내리꽂혔다. 그곳은 정확히 우르스의 심장이 있는 곳이었다.

< 악마의 인장 (1) > 끝

ⓒ 오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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