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으로 독존한다-35화 (35/240)

< 미안하다 애벌레야! (2) >

“짐꾼을 지원하겠다고?”

“예.”

닐스의 부탁으로 짐꾼을 찾고 있던 로안에게 마치 기다렸다는 듯 다가온 소년 론.

“헤헤! 저는 힘쓰는데는 자신 있어요. 짐꾼도 많이 해봤죠. 일당은 5델이면 충분하고요. 보세요. 배낭 한 두 개는 충분히 들 수 있다고요.”

론은 근처에 있는 무거워보이는 바윗돌 하나를 거뜬히 들어보였다.

로안은 감탄했다.

‘비각성자 치고는 제법 힘이 센 녀석이네.’

게다가 짐꾼의 삯은 일당 10델은 줘야 한다고 했는데 5델이라면 매우 싼 값이다.

“그보다 넌 왜 굳이 위험한 일을 하려는 거지?”

“그게 무슨 말이죠?”

“저기 있는 도시 외벽 공사는 일당 7델이다. 돈을 벌고 싶으면 저걸 하는 게 낫잖아.”

론의 힘 정도면 도시 외벽 공사에 지원해도 될 것이다.

훨씬 안전하고 돈도 더 벌 수 있는데 굳이 5델에 위험한 일을 지원하는 건 바보짓이다.

흠칫.

순간 론은 말문이 막혔다.

‘뭐야, 이 녀석은?’

그냥 반값으로 짐꾼을 지원한다고 하면 흔쾌히 수락할 것이지 뭐 그런 걸 따지는가 싶어서다.

‘웃기는 놈이군.’

물론 론은 크라겔이다.

그는 로안이 닐스와 대화를 하는 것을 듣고는 기회다 싶어 접근했다.

사실 이곳 도시에서는 로안을 죽이는데 거추장스러운 게 너무 많았다.

이러다 혹시라도 마쿠스 공작이 돌아오기라도 하면 불가능에 가까워질 것이다.

그러나 로안이 도시를 떠나 이동 중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짐꾼이 되면 언제든 로안의 방심을 틈타 죽이기 쉬울 테니까.

“내 말을 알아들었으면 어서 공사장으로 가봐.”

그러나 그의 기대와 달리 로안은 더 이상 볼일 없다는 듯 다른 곳으로 방향을 돌렸다.

이게 아닌데.

론은 어쩔 수 없이 따라붙으며 말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돈을 버는 것보다 드라우트 성에 꼭 가보고 싶어요. 오크들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거든요.”

“그럼 굳이 짐꾼을 지원하지 말고 그냥 가면 되잖아.”

“헤헤! 그래도 여비 정도는 벌어야죠. 5델이 부담스러우시면 3델은 어때요?”

론은 순진무구한 표정을 지으며 사정했다. 누구라도 지금의 그를 보면 정말로 호기심 많은 평범한 소년으로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로안은 무엇 때문인지 론을 본 순간 알 수 없는 이질감을 느꼈다.

흔한 말로 그냥 싫은 녀석이 있다.

아무 이유도 없지만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존재 말이다.

지금의 론이 딱 그랬다.

외모만 보면 전혀 밉상이 아닌데, 아니 누가 봐도 착해보이는 녀석인데, 이상하게 마음이 들지 않았다.

과민반응인 것일까?

아니다.

로안은 자신의 직감을 무시하지 않았다.

“난 됐으니 그렇게 싸게 봉사하고 싶으면 다른 사람에게 가봐.”

“잠깐만요!”

“계속 귀찮게 하면 가만 안 둔다.”

로안이 슥 한 번 노려본 순간 그의 두 눈에서 차가운 안광이 섬광처럼 번쩍였다.

일부러 하려고 한 것이 아니다.

【근력】 27

【체력】 23

【민첩】 23

【지력】 18

기본 스탯 총합 91.

거기서 자연스레 나오는 기세다.

그보다 스탯이 낮은 자는 위축될 수밖에 없는.

“헉!”

역시나 론은 움찔 놀라 뒷걸음질 쳤다.

그런 그를 무시한 채 로안은 다른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전생에도 그랬지. 이런 느낌을 받고 좋게 끝난 녀석이 없어.’

사람이 아무리 좋아보여도 그를 보면서 뭔가 이질적이거나 꺼림칙한 느낌이 든다면 무조건 거리를 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언제고 반드시 그에게 뒤통수를 얻어맞게 된다.

이것은 게임의 지식이 아니다.

전생의 인생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다.

살면서 몇 번 뒤통수도 얻어맞고 사기도 당해본 적 있던 터라 로안은 그후로 이런 직감을 신뢰했다.

뭐 아니면 말고.

신중해서 나쁠 건 없으니까.

한편 론은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선 채로 생각에 잠겨 있었다.

‘방금 뭐지?’

그는 속으로 충격을 받은 상태였다.

로안이 힐끗 한 번 그를 노려보는 순간 오금이 얼어붙는 듯한 한기를 느꼈기 때문이다.

심지어 로안이 대뜸 도를 휘둘러 자신을 두 쪽으로 쪼개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몸을 떨고 말았다.

그것은 명백히 그보다 고렙에게서나 느껴지는 무서운 위압감이었다.

‘믿기지 않는군. 내가 고작 19레벨 마도객 따위에게 위축되다니.’

본래라면 로안의 기세 따위는 가소롭게 느껴져야 정상이다.

그의 레벨은 최근 1단계 올라 31이니까. 그것도 영웅 등급 직업인 흑마법사로 말이다.

그런데 고작 19레벨 마도객에게 위축되다니!

그는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여러모로 당혹스러웠다.

‘저놈은 대체 뭔가?’

어떻게 이토록 단시간에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기세를 보유하게 된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렇게 된 이상 계획을 변경해야 한다.’

지금은 로안을 공격했을 때 그 자신이 이길 수 있을지 승산이 확실하지 않았다.

그는 승산이 확실하지 않은 일에는 절대 섣불리 나서지 않는다.

물론 그렇다고 포기할 생각은 없다.

‘일단은 좀 더 멀리서 저놈을 관찰해볼 필요가 있겠어.’

다행히 주변에는 짐꾼을 찾는 각성자들이 많았다. 대부분 드라우트 성으로 향하는 각성자들이다.

곧바로 그는 그 각성자들 중 한 명의 짐꾼으로 드라우트 성 지원대에 합류했다.

말똥말똥.

그런 론의 모습을 멀리서 뭔가가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귀여운 토끼의 어깨에 붙어있는 한 자그만 애벌레.

몰캉해보이는 몸체를 지닌 그 녀석의 두 눈에서 투명하지만 신비한 빛이 번쩍였다.

【이름】 크??

【레벨】 ??

【종족】 인?

【직업】 흑???

이상하게도 애벌레의 눈에 비친 론의 정보 창 내용은 사람들이 보는 것과 달랐다.

왜 저 소년의 정보에는 ???가 많은 걸까?

애벌레는 그것이 수상했다.

주인에게 말해볼까 했는데 그 사이 주인은 쿨쿨 자고 있었다. 그렇다고 주인의 주인에게 직접 전달할 용기는 없었다. 그는 매우 두려운 존재니까.

주인 잔다. 나도 자야지.

애벌레는 멀어지고 있는 괴상한 ??? 투성이의 소년을 무시한 채 주인의 어깨에 기대 잠을 청했다.

물론 이 애벌레는 펫인 호위기사 1호다.

로안의 어깨 위에 토실이가 앉아 있고, 그 토실이의 어깨 위에 호위기사 1호가 붙어 있는 상태.

쿨쿨.

그때 로안은 자신의 어깨에서 토실이가 자고 있는 걸 힐끗 보고는 어이가 없었다.

‘이 시끄러운 와중에 잘도 자는군.’

주인의 어깨가 무슨 이동식 침대도 아니고.

세상 모르게 태평스레 잘도 잔다.

더 어처구니가 없는 건 애벌레 녀석도 함께 자고 있다는 거다.

‘상팔자들이 따로 없네.’

뭐 둘 다 귀엽긴 하다.

귀여우니 봐준다.

* * *

사막의 붉은 오크들의 공격으로 위기에 처한 드라우트 성.

그곳으로 향하는 도시 헤르바의 지원군은 대부분 10레벨 이상 20레벨 이하의 각성자들이었다.

그들의 숫자는 80여 명.

그리고 그들 중 일부가 고용한 짐꾼들이 40여 명이 추가되었다.

거기에 도시 경비대에서 차출한 60명의 인력이 20대의 수레를 끌고 있었다.

각각의 수레에는 드라우트 성에 보낼 보급품과 식량이 잔뜩 실려 있었다.

그렇게 대략 200여 명의 인원이 긴 행렬을 이루고 있었다.

“너무 심려치 마십시오, 레이 아가씨. 지금 행군 속도면 내일 안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인원이 생각보다 너무 적네요. 각성자가 이백 명은 모이길 바랐는데.”

“그건 그렇지만 다행히도 레벨 15이상이 일행 중 절반을 넘습니다. 이 정도 전력이면 충분히 성에 도움이 될 겁니다.”

행렬의 선두에서 기사 펠스와 레이가 말을 타고 나란히 지원군을 이끌고 있었다.

그중 로안의 일행은 레이와 페덴의 바로 뒤에 위치했다.

[각성자 닐스의 파티]

-파티장 : 닐스(창투사, Lv17)

-파티원 : 하일(전사, Lv15)

-파티원 : 데라(궁수, Lv15)

-파티원 : 로안(마도객, Lv19)

[파티 보조]

-짐꾼 : 후프(Lv0)

-짐꾼 : 페더(Lv0)

두 명의 짐꾼을 포함해 로안의 일행은 총 6명.

짐꾼들은 이런 일에 노련해 보였고 닐스 등은 사기가 충천해 있었다.

도끼를 어깨에 걸쳐맨 채로 걷던 하일이 닐스를 보며 물었다.

“궁금한 게 있다, 닐스. 붉은 오크들은 레벨이 몇이냐?”

“글쎄! 오크들은 대부분이 10레벨 중후반이니 비슷하지 않을까?”

“흐흐, 그럼 우리에게 딱 적당한 수준이군. 잘하면 이번에 우리 모두 20레벨도 가능하겠다.”

“중요한 건 승급석이야. 그러니 꼭 공을 세워 20레벨 승급석을 얻도록 하자고.”

곧 20레벨이 될지도 모른다는 말에 평소에 침착하던 닐스도 들떠 있었다. 데라와 하일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런 그들의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은 건 다름아닌 로안이다.

“사막의 붉은 오크들은 레벨이 낮아도 상당히 전략적으로 움직이는 놈들이라 만만히 봤다간 큰코 다칠 수도 있어요.”

“전략적이라고?”

“쉽게 말해 잔머리에 능해요. 드라우트 성의 공략이 어려우면 멀리 우회해서 다른 곳을 공격할 가능성도 있어요.”

그러자 앞에 있던 페덴과 레이가 놀란 표정으로 로안을 쳐다봤다. 그들에게도 생소한 정보를 로안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

페덴이 곧바로 물었다.

“이봐, 로안? 그게 무슨 뜻이지? 그놈들이 우회해서 다른 곳을 공격할 수도 있다고?”

“그냥 그럴 수도 있다는 걸 말하는 겁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생각이라면 그놈들도 할 수 있으니까요.”

“그러니까 네 말대로라면 그놈들이 도시 헤르바를 공격할 수도 있다는 거냐?”

“아니길 바랄 뿐이죠.”

아무리 게임의 지식으로 무장한 로안이라도 모든 걸 다 알 수는 없다.

무엇보다 전반의 흐름에 변수가 하나둘 나타나고 있으니까.

‘사막의 재앙이 벌써 시작된 건가? 붉은 오크들은 그때부터 움직이는데.’

사막의 재앙.

그것은 공포의 포식자들이 사막에 출몰함을 의미한다.

붉은 오크들은 그 포식자들을 피해 서쪽으로 이동하게 된다.

그러다 놈들은 사막의 끝 즉, 레온 왕국의 동쪽 국경에 위치한 드라우트 성을 공격하게 되는데, 지금이 바로 그 상황일 것이다.

“기우일 수도 있지만, 혹시라도 그놈들이 식량과 보급품을 약탈하기 위해 우릴 공격해올 수도 있으니 미리 대비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 말이 끝나기도 전.

앞쪽에 출발했던 레인저 하나가 피투성이 상태로 달려왔다.

“크윽! 앞에 오크들입니다, 페덴 님!”

“그게 무슨 소리냐?”

페덴은 깜짝 놀랐다.

도시 헤르바에서 나온지 이제 겨우 1시간 남짓.

드라우트 성까지 가려면 하루 정도는 있어야 하는데 어떻게 여기에 붉은 오크들이 나타났다는 말인가.

팍!

그런데 그때 화살이 날아와 페덴에게 보고하던 레인저의 뒤통수에 박혔다.

“크아악!”

화살촉이 머리를 꿰뚫고 삐져나왔다. 레인저는 그대로 즉사했다.

동시에 핏빛 상갑으로 무장한 오크 1백여 마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봐, 인간들! 좋은 말로 할 때 식량과 보급품, 그리고 각자의 물건들을 놓고 꺼져라. 그러면 살려준다.”

오크들의 선두에는 보통의 오크보다 덩치가 두 배는 되어 보이는 거대한 녀석이 대검의 자루를 한 손으로 움켜쥔 채 서 있었다.

【이름】 우르스

【레벨】 28

【종족】 붉은 오크

【직업】 광검사

“하지만 반항하면 단 한놈도 남기지 않고 다 죽인다. 그러니 잘 선택하는 게 좋을 거야. 크크큭!”

붉은 오크 지휘관 우르스!

놈이 외치는 음성은 마치 천둥과 같았다.

그러나 로안이 놀란 건 그 소리가 커서가 아니다.

‘미친! 저놈이 왜 여기서 나와?’

붉은 오크 광검사(狂劍士) 우르스.

놈 또한 크라겔과 더불어 장차 세상을 피로 물들일 49 악마 중 하나가 되어야 할 운명을 타고 났기 때문이다.

“크하하하! 미친 오크 놈 같으니! 다들 뭣들 하는가? 즉각 전투 태세를 갖추라!”

전쟁 지원을 위해 각성자 부대를 모아온 페덴이 퇴각을 명령할 리가 없었다.

더구나 그는 카젤 자작가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검사다.

레벨은 30.

우르스보다 2단계나 높은 레벨.

“레이 아가씨는 뒤로 피해계십시오. 기사들은 아가씨를 보호하라!”

그말을 끝으로 그는 우르스를 향해 바람처럼 돌진했다.

스르릉.

검집에서 푸른 검신의 검이 뽑혀 나온 순간 그는 어느새 우르스의 앞까지 도달해 있었다.

“건방진 오크 놈! 세상 무서운 걸 알려주마.”

그가 다짜고짜 돌진한 건 단번에 우르스의 목을 날려버려 오크들의 기세를 꺾어버리기 위함이다.

그래야 아군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그렇게 할 수 있으리고 확신했다.

【근력】 18

【체력】 16

【민첩】 17

【지력】 3

지력은 포기한 채 오직 근력과 체력, 민첩을 균형있게 올린 그다.

스탯 총합 54

공격과 방어 모든 것에서 아주 조화로운 능력을 보유한 상태.

“단번에 머리를 잘라주마, 오크 놈!”

그러나 로안은 무겁게 고개를 흔들었다.

‘저놈에겐 안 될 텐데.’

광검사 우르스는 평범한 28레벨이 아니기 때문이다.

카앙!

아니나다를까, 기세 좋게 돌진했던 페덴이 검과 함께 뒤로 쭉 밀려났다.

‘크으윽! 어떻게 이런 엄청난 괴력이······!’

놈의 대검과 한 번 격돌했을 뿐인데 전신이 부서진 것 같은 충격이 느껴졌다.

우욱!

비틀거리는 그의 입에서 울컥 피가 흘러나왔다.

“큭큭! 뭐야? 이거 실망이네. 단 한 방을 버티지 못하는 건가?”

우르스가 키득거리며 달려왔다.

“고작 그따위 실력으로 내게 덤빈 거냐? 분명 경고를 했는데 말이야.”

놈은 즉각 페덴을 향해 대검을 휘둘렀다.

쒸에엑!

섬뜩한 파공음과 함께 날아드는 대검! 페덴은 사력을 다해 검을 들어 막았다.

카앙!

“크윽!”

이번에는 밀려나다 못해 그대로 주저앉았다. 그런 그를 조소하며 우르스가 성큼 다가와 대검을 내리찍었다.

“크큭! 그만 뒈져랏, 인간 놈!”

바로 그 순간.

까앙!

뭔가가 그의 대검을 가로막았다.

황금빛 자루에 은빛으로 번쩍이는 도신(刀身).

고블린의 마룡도였다.

그 마룡도를 쥔 한 소년.

“뭐냐, 너는?”

우르스는 깜짝 놀라 물었다.

놀랍게도 방금 전 그의 대검이 밀려났기 때문이다.

그 충격에 팔이 다 얼얼한 상태였다.

“뭐긴. 널 죽일 사람이지.”

로안이 돌진하며 마룡도를 휘둘렀다.

< 미안하다 애벌레야! (2) > 끝

ⓒ 오렌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