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으로 독존한다-34화 (34/240)

< 미안하다 애벌레야! (1) >

【VP】 13/100

강화를 하기 전 먼저 강화지수인 VP를 확인해봤다.

‘겨우 13?’

이건 뜻밖이다.

비록 중간에 어새신들의 침입으로 잠이 깨긴 했지만 그래도 꽤 오래 잠을 잔 것 같은데 고작 13포인트만 회복되어 있다니 말이다.

‘이건 레벨이 올라도 자동 회복되는 게 아닌가 보네.’

생명과 마나와 같은 것들은 레벨이 오르면 최대치까지 자동 회복된다.

이것이야 말로 레벨 업이 주는 최고의 혜택이자 선물이라 할 수 있는데, VP는 그와는 관계없이 오직 휴식만을 통해 회복되는 것이다.

게다가 그 회복량도 많지 않다.

간밤에 13포인트 회복된 걸 보면 하룻밤에 많아야 20포인트라는 뜻.

그나마 다행인 건 VP가 달랑 13포인트만 남아 있는데도 몸이 피곤하거나 졸리거나 하지는 않는다는 것.

오히려 방금 전 레벨이 오른 덕분에 인해 컨디션은 최상인 상태다.

이는 곧 VP는 0이 되지 않는 한 전투력이나 신체의 컨디션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뜻이다.

즉, VP는 0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관리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최대한 아껴 써야겠군.’

물약 등으로 손쉽게 회복이 가능한 MP 즉, 마나와 달리 VP는 회복이 매우 더딘 기운이다.

강화가 실패하면 허무하게 VP를 날리게 되니 반드시 토실이의 행운 버프를 받아야 한다.

“토실아! 준비됐냐?”

그런데 토실이가 그동안과는 달리 상당히 긴장한 표정이었다.

또한 로안의 손가락에 잡힌 채 꾸물거리던 호위병 1호는 이제 체념한 듯 눈을 감고 있었다.

‘그냥 하지 말까?’

토실이가 긴장하는 걸 보면 강화 확률을 100%로 만들지는 못한다는 뜻이다.

그말은 곧 실패할 가능성이 있다는 뜻.

그 경우 호위병 1호는 먼지로 변해 사라질 것이다.

‘하긴 아무리 녀석이 벌레라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지.’

생각해보니 못할 짓이다.

로안의 손가락에 잡힌 채 눈을 감고 있는 호위병 1호가 몸을 한번씩 경련하듯 떨었다.

겁이 엄청나는 모양이다.

‘그래. 관두자. 이 녀석을 강화한다고 갑자기 드래곤처럼 되는 것도 아니잖아.’

지금 당장 좀 더 강하게 만들어보겠다고 위험스러운 강화를 시도하는 건 확실히 가혹한 짓이다.

100% 확률이라면 모를까.

그렇게 로안이 호위병 1호를 그대로 바닥에 내려놓으려는 순간.

[전설 펫 토실이에 의해 강화의 운이 10초 동안 대폭 상승합니다.]

[10, 9······]

갑자기 토실이가 강화 행운 버프를 발동했다. 로안은 황당한 표정으로 녀석을 쳐다봤다.

“뭐야? 강화하라고?”

그러자 녀석은 어서 강화를 하라는 듯 고개를 빠르게 끄덕였다.

못먹어도 Go?

호위병 1호가 죽던말던 일단 지르고 보자?

설마 그런 거냐?

당연히 그런 건 아니리라.

우리 귀여운 토실이가 그렇게까지 비정한 녀석일 리는 없으니까.

“좋아. 그럼 간다.”

어쨌든 토실이가 준 기회를 이대로 날릴 수 없는 일.

버프를 준 순간 토실이가 살짝 비틀거리는 걸 보아 녀석은 지금 작정하고 상당한 힘을 쓴 것이다.

‘확률을 최대한 높인 게 분명해.’

로안은 즉각 강화를 시도했다.

“강화!”

[호위병 1호(Lv13, 희귀)의 강화를 시도합니다.]

[VP가 10 소모됩니다.]

[VP 3/100]

번쩍!

순간 엄청난 광채가 일어나 호위병 1호의 몸을 뒤덮었다.

‘뭐지, 이건?’

이 효과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광채가 강렬한 걸 보니 뭔가 대단한 변화가 있는 것 같은데 이상하게도 아무런 반응이 없다.

시스템의 알림도 들려오지 않고 말이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까으!”

호위병 1호가 갑자기 괴상한 비명을 질렀다. 녀석이 로안의 손을 벗어나 거실 바닥에서 몸부림을 쳤다.

“끄이아!”

본체로 돌아온 것도 아니고 애벌레 상태에서 저런 비명을 지른다는 건 그야말로 엄청난 고통을 느끼고 있다는 뜻이다.

‘실패인가?’

아무래도 그런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 난리가 날 리가 없는 것이다.

다만 여전히 강렬한 광채가 호위병 1호의 몸을 휘돌고 있어 섣불리 판단하기가 힘들었다.

‘뭐가 어떻게 되는 거지?’

성공이면 성공이고, 실패면 실패라고 왜 알려주지 않은 건가?

상황을 보니 실패일 가능성이 매우 높지만.

토실이 또한 이 상황에 놀랐는지 두 눈이 커져 있었다. 커다란 눈에 눈물이 그득 고여있는 걸 보니 녀석도 무척 걱정되는 모양이다.

‘저대로 놔두면 안 돼.’

로안은 어쩔 수 없이 도를 집어 들었다.

무생물인 강철도는 그냥 먼지로 변해 부서졌지만, 호위병 1호는 아무리 마물일지라도 생물이다.

강화 실패의 저주를 온몸으로 받으며 서서히 죽어가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계속 저렇게 고통스럽게 죽어가게 둘 수는 없으니 차라리 내 손으로 없애자.’

그런데 순간 토실이가 화들짝 놀라며 로안을 막았다.

안 된다, 주인. 우리 호위병 1호 죽이지 마라.

녀석은 필사적이었다.

“네 마음은 알지만 저대로 두는 게 더 못할 짓이야. 고통 없이 보내주고 양지 바른 곳에 묻어주자.”

로안은 토실이를 설득했다.

그러자 녀석은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로안의 말이 옳다고 느낀 것이다.

그렇게 토실이가 비켜서고.

로안은 비장한 표정으로 호위병 1호를 향해 다가갔다.

‘후!’

요 조그만 애벌레를 칼로 내리치려고 하니 왠지 코끝이 찡하다.

‘젠장!’

설마 그 사이 정이라도 든 것일까?

이 상황이 되니 그동안 녀석을 막 대한 것이 미안하게 느껴진다.

“벌레라고 괄시해서 미안하다, 호위병 1호야.”

무엇보다 녀석이 볼에 부비부비한 걸 혼낸 것이 특히 마음에 걸린다.

그깟 말캉한 감촉이 뭐가 그리 싫다고 말이다.

미안하다. 미안해.

‘그만 끝내자!’

이제 두 번 다시 살아있는 생명체에게는 강화를 시도하지 말자!

그런데 로안이 그렇게 다짐하며 도를 번쩍 쳐든 순간.

화아아악!

갑자기 지금보다 더욱 강렬한 광채가 시야를 가렸다.

동시에 들려오는 알림.

[강화에 대성공했습니다.]

‘뭐······?’

로안은 귀를 의심했다.

성공이라고? 그것도 그냥 성공이 아니고 대성공이라고?

강화에도 크리티컬이 존재한다.

그것이 바로 대성공!

같은 1강이라도 대성공 강화면 보통의 1강과는 차원 자체가 다른 효과가 나타나는 것이다.

‘세상에! 대성공이 뜨다니!’

정말 믿기지 않았다.

지금 상황이 진정 실화인가?

그러고 보니 환생 버프 중에 제작시 대성공 확률 증가가 있다.

아무래도 그게 강화에도 적용된 모양이다. 제작에만 적용될 줄 알았는데 말이다.

[호위병 1호(Lv13, 희귀)가 강화 대성공으로 인해 호위기사 1호(Lv1, 영웅)로 승급되었습니다.]

[호위기사 1호의 공격력이 상승합니다.]

[호위기사 1호의 방어력이 상승합니다.]

‘영웅 승급?!’

이건 대박이다!

등급 상승이라니!

로안뿐 아니라 토실이의 두 눈도 휘둥그레 커졌다. 녀석도 자신의 펫인 호위병 1호의 변화를 알게된 것이다.

이제 저 애벌레는 더 이상 호위병이 아니다.

무려 호위‘기사’다.

‘오! 모습도 달라졌네.’

그 사이 광채가 사라지고 드러난 호위기사 1호.

보석처럼 빛나는 푸른 색 피부.

길이는 그대로지만 조금더 굵어진 몸체에 두 눈이 아주 똘똘하게 빛났다.

여전히 애벌레 형상이지만.

뭔가 훨씬 더 귀여워진 것 같다.

부비부비.

토실이가 녀석을 안고 볼에 비벼댔다. 녀석이 죽지않고 살아난 게 너무 기쁜 모양이다.

힐끔.

그런데 그때 호위기사 1호가 똘망똘망한 눈으로 로안을 쳐다봤다.

로안의 눈치를 보는 기색이다.

‘녀석!’

로안은 호위기사 1호에게 손가락을 가져다댔다. 그러자 녀석이 다시 힐끔 눈치를 보더니 조심스레 몸체를 비빈다.

몰캉말캉.

‘윽!’

여전히 이 감촉은 적응이 안 된다.

토실이의 부드러운 감촉과는 비교조차 안 되지만.

그래도 로안은 아까처럼 녀석을 손가락으로 튕겨 날려버리거나 하지 않았다.

“그래. 비벼라. 이제 너도 그래도 된다.”

그렇게 로안에게 부비부비 펫이 두 마리로 늘어나는 순간이었다.

* * *

다음 날 아침.

창문으로 햇살이 비춰오자 로안은 눈을 떴다.

간밤에 어새신들 때문에 잠을 설치긴 했지만 다시 푹 자고 일어나자 몸이 개운했다.

【VP】 11

그 사이 회복된 VP로 한 번의 강화를 더 시도할 수 있게 됐지만 당장 이걸 쓸 생각은 없었다.

‘이건 일단 놔두자.’

욕실로 가서 씻고 아공간에 챙겨둔 말린 열매를 꺼내 간단히 아침을 해결했다. 토실이에게도 당근 하나를 줬다.

참고로 호위기사 1호에게는 아무것도 줄 필요가 없다. 녀석은 애벌레 상태에서는 아무것도 먹지 않으니까.

물론 녀석의 본체는 포식자 그 자체다. 포식을 많이 할수록 레벨이 올라가는 식이니까.

‘슬슬 레벨을 또 올리러 가볼까?’

일단 밖으로 나갔다.

번화가의 광장 근처 시장에는 상인들이 상점을 열고 있었고 몰려드는 사람들로 시끌벅쩍했다.

“자자, 어제 갓 따온 거뜨 열매 팝니다!”

“오늘 아침 막 구운 신선한 빵이 한 덩이에 1델!”

“드레크 호수에서 잡은 생선들 좀 보고 가세요!”

싱싱한 과일과 채소, 각종 곡물과 고기류가 풍성하게 펼쳐져 있었다.

‘만일을 대비해 비상식량은 필수지.’

아공간도 늘어났으니까 유사시 먹을 식량을 좀 더 사두는 게 좋을 것이다.

곧바로 시장을 돌아다니며 하드 치즈나 육포처럼 가급적이면 용량을 적게 차지하는 것들 위주로 사서 아공간에 넣었다.

여기선 굳이 코인을 쓸 필요도 없다.

델이라고 불리는 화폐가 있기 때문이다.

어제 도시 방어 보상으로 5000델을 받았다. 식량을 사는데 든 돈이 30델 정도이니 이 정도면 꽤 부자인 셈이다.

‘식량은 이제 됐고, 여기 퀘스트 게시판이 어디였더라?’

카오니아 세계 각 도시들의 광장에는 거의 대부분 퀘스트 게시판이 존재한다.

심지어 도시가 아닌 작은 규모의 마을이라고 해도 마을 회관 근처에 퀘스트 게시판이 있다.

‘저기군.’

도시인 만큼 퀘스트 게시판은 큼직한 규모로 만들어져 있었다. 이미 수백 명의 사람들이 몰려와 있는 상태였다.

[임무] 도시 외벽 복구 공사

-자격 제한 없음

-모집 인원 : 40명

-일당 : 7델

이런 식으로 이곳 도시의 관청에서 만든 임무도 시스템이 알아서 퀘스트 게시판에 올려준다.

비각성자들 중 많은 이들이 일당을 벌기 위해 저와 같은 임무에 지원을 한다.

[임무] 멘티스 소탕

-자격 : 레벨 1 이상 각성자

-보상 : 경험치, 5코인

-내용 : 도시 헤르바 서쪽에서 기승을 부리는 소형 괴물 멘티스를 10마리 이상 소탕하십시오.

반면에 각성자들은 위와 같은 퀘스트를 받아 코인도 벌고 경험치 보상도 받을 수 있다.

‘저런 것 말고 좀 더 고레벨 건 없나?’

멘티스는 레벨 1에서 레벨 5 정도의 최하급 괴물이라 경험치 획득에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

로안은 물론이고 용병 동료들인 닐스 등과 함께 사냥을 해서 효율을 보려면 적어도 10레벨 초중반 정도 되는 괴물들이어야 하는 것이다.

“오오! 거기 로안 아니냐?”

그때 누군가 로안의 이름을 불렀다.

레벨 17의 창투사 닐스.

그는 로안이 준 고블린 족장의 창을 지팡이처럼 쥔 채 늠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로안은 미소 지었다.

“형도 퀘스트를 보러 왔군요.”

“후후, 레벨을 올리려면 퀘스트 확인은 필수지. 진작부터 와서 살피고 있었다.”

“뭐 좀 쓸만한 것 좀 찾았나요?”

“아쉽게도 우리가 할 만한 건 없어. 비각성자들이나 10레벨 이하 저렙들이 할 퀘스트만 잔뜩이야.”

퀘스트 종류가 꽤 많아 다 확인해보려면 시간이 한참 걸린다.

부지런한 성격의 닐스는 이미 퀘스트를 꼼꼼히 훑어본 듯했다.

그런데 그때.

《긴급 신규 임무 공지입니다!》

광장 전체로 울려퍼지는 시스템의 알림이다.

《도시 헤르바 동쪽에 위치한 카젤 자작가의 드라우트 성으로 사막의 붉은 오크들이 쳐들어 왔습니다. 이에 카젤 자작가에서 긴급히 병력 지원을 요청해 왔습니다.》

《최근 마물들이 출몰한 터라 도시 경비대의 지원은 어려운 상황입니다. 부디 각성자들의 지원을 바랍니다.》

그와 함께 퀘스트 게시판에 새로운 임무가 생겨났다.

[임무] 드라우트 성 지원

-자격 : 레벨 10 이상 각성자

-인원 : 제한없음

-보상 : 대량의 경험치, 300코인, 명성의 증표, 상급 공적을 세운 자에게는 20레벨 승급석 지원

-내용 : 사막의 붉은 오크들과 전쟁 중인 드라우트 성의 방어전에 참전. 용맹한 각성자들의 지원을 바람.

곧바로 누군가 크게 외쳤다.

“모두 들어라! 나는 카젤 자작 가문의 기사 페덴이다. 드라우트 성의 전쟁에 지원하려는 자들은 이쪽으로 오라. 잠시 후 출발할 것이다.”

페덴의 옆에는 백색 로브의 미소녀 레이가 갈색의 말 위에 오른 채 초조해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드라우트 성이 무너지면 카젤 자작령은 쑥대밭이 되고 말 것이니 걱정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로안! 네 생각은 어때?”

그때 닐스의 눈이 빛났다. 그의 표정을 보니 당장 참전하고 싶은 눈치다.

“이런 건 당연히 가야지요. 광렙의 기회인데.”

“흐흐, 좋아! 그럼 하일과 데라를 불러올 테니 너는 그 사이 짐꾼 한둘만 구해라. 아마도 일당 10델은 준다고 해야 할 거야. 비용은 내가 델 테니 염려말고.”

“짐꾼이 필요해요?”

“체력 소모를 줄이고 손을 가볍게 하려면 짐꾼이 필수다. 우리는 무기 외에는 들지 않는 게 좋아. 너의 아공간에 우리 짐을 다 넣을 수는 없잖아?”

그건 그렇다.

아공간이 늘어나긴 했지만 닐스와 데라, 하일의 짐을 다 넣긴 무리니까.

“그럼 짐꾼을 찾아보죠.”

그 사이 기사 페덴이 있는 쪽으로 각성자들이 대거 몰려들고 있었다.

위험하지만 대량의 경험치는 물론이고 잘하면 20레벨 승급석까지 얻을 수 있는 기회를 각성자들이 놓칠 리 없었다.

그들 중 일부는 각자의 짐을 들어줄 짐꾼을 개별적으로 고용하기 시작했다.

짐꾼 지원자는 많았다.

위험한 만큼 보수가 많기 때문이다.

“저기 혹시 짐꾼이 필요하지 않나요, 각성자님?”

그때 로안을 향해서도 누군가 다가왔다.

【이름】 론

【레벨】 0

【종족】 인간

【신분】 방랑자

【소속】 없음

아주 순박한 인상을 가진 소년이었다.

< 미안하다 애벌레야! (1) > 끝

ⓒ 오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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