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괴한 무엇 (2) >
강철도(+1)의 날이 어새신의 뒷목에 닿자 살짝 베어지며 피가 흘렀다.
【이름】 ??
【레벨】 ??
【직업】 ??
【종족】 ??
【소속】 ??
놈의 정보창은 모든 게 물음표다.
이건 어떤 특별한 아이템 때문이 아니다.
스스로의 모든 정보를 감출 수 있는 어새신 전용 능력이 발동된 것이다.
‘레벨 20이상 어새신이야.’
로안은 당연히 어새신도 해봤기에 안다.
“말해. 누가 너를 보냈지?”
단번에 죽여버리는 건 쉬운 일이지만 문제는 배후다.
어새신들은 절대 그냥 움직이지 않으니까.
“큭! 멍청한 놈! 내가 그것을 말할 것 같으냐?”
놈은 목에 피가 나고 있는 데도 오히려 비웃듯 대답했다.
당연히 이렇게 나올 것이다.
어새신들은 의뢰자에 대한 정보는 발설하지 않는 게 그 바닥의 룰이니까.
‘룰이고 뭐고.’
그러나 로안 또한 그 바닥의 생리에 대해 잘 안다.
다른 데도 아니고 카오니아 세계의 어새신들이라면.
“말하면 300코인 준다.”
그렇다.
돈으로 안 되는 게 없다는 게 이 바닥의 또 다른 생리다.
“그럼 400코인은?”
반응이 없자 코인 금액을 높였다.
“좋아! 500코인을 준다.”
순간 어새신이 드디어 입을 열엇다.
“500코인이라? 그 정도면 이름 정도는 알려줄 수 있지.”
역시 예상대로다.
“그놈이 누구냐?”
“그전에 코인부터 쏘시지.”
상대가 소지 중인 코인은 그를 죽인다고 획득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따라서 코인을 강탈하고 싶으면 죽기 전에 미리 협상을 통해 받아내는 것이 현명한 일.
[트렐 500코인을 ??에게 보냈습니다.]
코인을 주는 건 간단하다.
그냥 금액과 대상을 지정한 후 보낸다고 하면 시스템이 알아서 보내주니까.
“지금 보냈으니 확인해봐.”
“흐흐, 이미 확인했다. 500코인은 아주 잘 쓰도록 하마.”
“이제 말해봐라. 너희들을 누가 사주했지?”
“랄프.”
랄프?
이건 또 누구야?
처음 듣는 이름이다.
“랄프가 누군데?”
“몰라. 내가 그런 것까지 알려줘야 하나? 나는 그저 랄프라는 떠돌이 녀석에게 의뢰를 받은 것 뿐이다. 그 외의 것은 네가 직접 알아내도록 해라. 물론 오늘 살아난다는 보장이 있어야겠지만.”
뒤통수를 보이고 있는 상태라 놈의 표정은 볼 수 없지만 말투를 보니 뭔가 꿍꿍이가 있는 듯했다.
‘다른 놈들이 도와줄거라 생각하는 가보군.’
그 사이 밖에서 암살자들과 호위병 1호의 전투가 벌어졌는데 어느새 조용해졌다.
안타깝게도 호위병 1호가 당한 모양이었다.
‘애벌레 녀석 죽은 건가?’
어새신들은 레벨 20이 넘는 자들이다.
그에 반해 호위병 1호의 레벨은 고작 12. 마계에서 온 마물인 터라 전투력은 20레벨에 육박하지만 전문 어새신 셋을 상대하기란 역부족이었으리라.
콰당!
곧바로 침실로 들이닥치는 3명의 어새신.
그 타이밍에 맞춰 로안 앞의 어새신이 번개처럼 몸을 돌려 단검을 찔렀다.
“크흣! 그만 뒈져랏!”
그러나 로안의 움직임이 더 빨랐다.
서걱!
강철도(+1)의 칼날이 번쩍이는 순간 어새신의 상체와 하체가 사선으로 분리되었다.
“으아아악!”
두 동강이 난 어새신은 처참히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그 상황에 로안도 황당했다.
그냥 베려고 했을 뿐이지 동강을 낼 생각은 없었는데 예상보다 위력이 너무 강했던 것이다.
‘뭐 지금 내 스탯이면 이러고도 남지.’
사기적인 근력과 민첩 스탯, 거기에 1강으로 강화된 강철도로 흑사광살도법이 펼쳐지자 20레벨이 넘는 어새신이 단번에 동강나버린 것이다.
[대량의 경험치를 얻었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베로 32코인을 얻었습니다.]
상대적으로 고렙인 어새신을 해치운 덕분에 단번에 레벨 13으로 상승!
환생으로 인해 경험치 획득량 증가 버프도 있는 상태이니 당연한 일이다.
【미분배 보너스 스탯 포인트】 3
근력에 2점, 민첩에 1점.
로안은 거실에서 들어온 3명의 어새신들을 향해 달려가면서도 보너스 스탯을 분배하는 걸 잊지 않았다.
이런 거야 기본이다.
【근력】 25(↑2)
【체력】 23
【민첩】 23(↑1)
【지력】 18
【아공간】 2
【정력】 1
힘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넘친다. 그런데도 몸은 가볍다.
스탯이 오른 만큼 또 강해진 것이다.
“감히!”
“죽어라!”
어새신 중 하나가 순간이동을 하듯 번쩍 로안의 등뒤로 이동해 단검을 찔렀다.
그러나 로안은 등에도 눈이 있는 것처럼 가볍게 허리를 비틀어 그것을 피해냈다. 동시에 회전하며 도를 빠르게 휘둘렀다.
촤각!
도의 궤적이 혈선을 그리는 순간 로안을 향해 단검을 찔렀던 어새신의 머리가 사선으로 잘려나갔다.
“크아아악!”
[경험치를 얻었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다시 레벨이 14로 한 단계 추가 상승!
쿠웅!
그렇게 한명이 쓰러지자 나머지 둘이 흠칫 당황하며 뒷걸음질 쳤다.
그들 중 가장 강했던 어새신이 죽은 것도 모자라 뒤에서 기습을 펼친 이도 맥없이 당했다.
로안의 전투력은 그들이 예상했던 수준이 아니었다.
“두고보자!”
그들은 승산이 없다 판단했는지 빠르게 철수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때 그들의 발을 뭔가가 잡았다.
“으윽!”
“이놈이!”
그것은 촉수 형태의 기다란 혀였다.
죽은 줄 알았던 거대 벌레 괴물의 혀 촉수가 밧줄처럼 그들의 발을 칭칭 휘감아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질긴 녀석이군.”
“어서 이 혀를 잘라라!”
어새신들의 단검이 번쩍이는 순간 호위병 1호의 혀 촉수가 맥없이 잘려나갔다.
“꾸아아악!”
호위병 1호가 고통에 몸부림쳤다.
녀석은 전신이 만신창이는 물론이고 허리 아래가 반쯤 잘려나간 상태였다. 그 와중에 혀 촉수까지 잘리자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축 늘어졌다.
‘저런!’
로안은 호위병 1호가 아직 살아있다는 것에 놀랐다.
특히나 방금 전 녀석이 시간을 벌어준 덕분에 그는 이미 현관문 근처로 도달한 상태다.
촤악!
그가 휘두른 강철도에 어새신 하나가 등이 갈라지며 고꾸라졌다.
“으아악!”
“제길! 뒈져랏!”
마지막 어새신이 악을 쓰며 덤벼들었지만 로안의 도가 먼저 그의 가슴을 갈랐다.
“크아아악!”
놈이 비명을 지르며 나동그라졌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이로써 레벨 15.
그 즉시 로안은 강철도(+1)를 아공간에 넣은 후 15레벨 제한 전설 무기인 고블린의 마룡도를 꺼내 손에 쥐었다.
‘드디어 이걸 다시 장착했군.’
노강 상태지만 강화된 강철도보다 훨씬 강한 무기다.
이제 이걸 손에 쥔 이상 방금 전 해치운 어새신들 정도는 떼로 몰려와도 두렵지 않았다.
‘더 이상은 없는 건가?’
로안은 잽싸게 현관문 밖으로 나가 주변을 살폈다.
그러다 캄캄한 어둠 속에 둥둥 떠 있는 시뻘건 눈알 하나를 발견했다.
‘저건?’
썩은 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는 저 눈알의 정체가 뭔지 로안은 잘 알고 있다.
‘죽은 자의 눈알!’
흑마법사가 펼치는 원거리 주시 마법.
팍!
즉시 도를 휘둘러 눈알을 박살냈다.
‘역시 크라겔 그놈이었군.’
놈이 어새신들을 사주해 로안에게 보낸 후 은밀히 상황을 살피고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그럼 그놈이 지금 이곳 헤르바에 와있다는 건가?’
이런 일이 벌어질까봐 극히 조심했는데.
그러나 한편으로 크라겔이 나타났으면 했다.
불과 며칠 전까지는 크라겔이 두려운 상대였지만 지금은 아니다.
스탯만으로 치면 크라겔보다 월등한 상황이니까.
‘크라겔! 넌 여전히 날 얕잡아보고 있겠지. 제발 지금 내 앞에 나타나라.’
어쩌면 49 악마 중 가장 끔찍한 존재가 될 녀석을 지금 없애버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일지도 모른다.
‘분명 그놈이 지금 어디선가 나를 지켜보고 있을 텐데.’
바로 그 순간.
짙은 어둠에 휩싸인 번화가의 거리 안쪽.
로안의 예상대로 누군가 그가 있는 숙소를 노려보고 있었다.
【이름】 론
【레벨】 0
【종족】 인간
【신분】 방랑자
【소속】 없음
그의 이름은 론.
어디서나 볼 법한 평범한 용모의 소년이었다.
그러나 멀리 저택을 노려보는 그의 눈빛은 매우 차갑기 이를데 없었다.
‘로안 저놈이 그 짧은 사이에 저토록 강해지다니 믿을 수 없군.’
그렇다. 그의 정체는 크라겔.
그는 은폐의 팔찌를 이용해 랄프라는 소년으로 변신했다가 지금은 다시 론이라는 소년의 모습으로 변신한 상태다.
‘하지만 허접한 어새신 몇 놈 죽인 것으로 기고만장하지 마라.’
그의 두 눈이 섬뜩하게 빛났다.
‘크큭! 진정한 악몽은 지금부터 시작이니까.’
그가 어새신들과 함께 죽은 자의 눈알을 그곳으로 보낸 건 로안의 주위에 그를 돕는 누군가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혹시라도 카젤 자작가나 마쿠스 공작과 관련된 존재가 있으면 곤란하니까.
‘그럼 이제 내가 갈 차례인가?’
그의 입가에 사악한 미소가 피어났다. 그러나 그 미소는 나타난 즉시 다시 사라졌다.
‘저들은?’
중무장을 한 수십 명의 무사들이 광장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필이면 저들이? 오늘은 틀렸군.’
크라겔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도시 헤르바의 경비대장이 직접 경비병들을 이끌고 순찰을 돌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물들이 또 나타났을 수도 있으니 거리를 유심히 살펴라.”
“예, 대장님.”
엊그제 균열로 인해 난리가 벌어진 이후 성의 경비와 순찰이 강화된 모양이었다.
어새신들은 그 틈조차 노려 로안을 습격했지만 실패한 것이다.
“어이, 넌 뭐냐?”
그때 경비병 중 하나가 크라겔을 발견하고 다가왔다. 순간 크라겔은 순박한 소년의 표정으로 대답했다.
“산책중인데요?”
“밤이 깊었다. 마물들이 나올 수도 있으니 썩 집으로 들어가거라.”
“예.”
비각성자인데다 착해보이는 외모이다 보니 경비병은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고 지나갔다.
크라겔은 유유히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 * *
한편 현관 앞에서 크라겔이 오기를 기다리던 로안은 도시의 경비대가 나타나 순찰을 도는 걸 보고는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아, 하필이면 지금 순찰이야?’
이렇게 되면 크라겔은 다음 기회를 노리고 어디론가 숨어버릴 것이다.
놈은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위협이 될만한 상황이라면 절대 직접 나서지 않기 때문이다.
‘여우처럼 뒤에서 지켜보다가 승산이 있을 때만 움직이는 놈이지.’
어쩔 수 없다.
언제든 놈이 나타나도 당해낼 수 있도록 준비를 철처히 하는 수밖에.
‘그나저나 호위병 녀석은 살아있으려나?’
생각해보면 오늘 호위병 1호의 공이 아주 컸다. 물론 뒤에서 토실이가 지휘했겠지만, 그래도 훌륭한 경비병으로서의 임무를 수행한 것이다.
하지만 아까 상태로 보면 놈은 죽었을 가능성이 높다.
온몸에 부상을 입은데다 허리 아래가 끊어지기 직전에 혀까지 잘려버렸으니까.
‘토실이가 슬퍼하겠지만 어쩔 수 없지.’
어떻게 보면 잘 된 건지도 모른다.
비록 전투 중이 아닐 땐 귀엽게 변한다지만 벌레는 좀 그렇긴 했다.
토실이는 조만간 새로운 호위병을 들이게 될 것이다.
‘굳이 몬스터로 할 거면 차라리 오우거와 같은 녀석이 백배 낫지.’
오우거가 호위병이 되면 제법 쓸만하다.
잘 키우면 전투력도 막강한 데다 보통 때는 신장이 엄지손가락만한 크기의 2등신 캐릭터 인형처럼 변한다. 소형화 상태에서 얼굴과 두 눈은 비율에 안맞게 큰 편이라 생각보다 귀엽다.
‘강시나 좀비도 그럭저럭 봐줄만하고.’
어쨌든 벌레는 아니라는 생각을 하며 현관 안에 들어선 로안은 두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어라?’
죽은 줄 알았던 호위병 1호가 멀쩡하게 살아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그 사이 나타난 토실이의 옆에서 깜찍한 애벌레의 모습으로 변한 상태다.
【이름】 호위병 1호
【레벨】 13
【종족】 베르미스
【소속】 토실이
게다가 레벨도 한 단계 올랐다. 그 사이 어새신들의 시체들을 포식한 건가?
‘빠르게도 먹어치웠군.’
물론 마물 베르미스라면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대로 놔두면 녀석은 점점 더 엄청난 포식자로 성장할 것이다.
‘근데 뭐가 이렇게 깨끗해?’
이곳은 방금 전까지 살벌한 칼부림이 일어난 전쟁터였는데 어느새 말끔한 숙소로 변해 있었다.
이 또한 호위병 1호의 능력.
포식의 능력에 청소까지 포함되어 있는 모양이다.
“아무튼 너 오늘 고생했다.”
로안은 호위병 1호의 머리를 형식적으로 한 번 쓰다듬었다.
어쨌든 공을 세웠으니 포상이다.
그러자 녀석이 로안의 손가락에 슬쩍 얼굴을 비볐다.
이 말캉말캉한 감촉은 뭐냐?
‘으!’
역시 벌레는 아무리 귀여워도 취향이 아니다.
“이런 거 하지 말랬지?”
로안은 손가락을 튕겨 녀석을 멀리 날려버렸다.
빙글빙글. 착.
그러나 녀석은 수미터를 날려가다가 멋들어지게 착지했다.
대단한 민첩성이다.
괜히 마물이 아니다.
‘가만! 기왕 이렇게 된 거 저 녀석을 강화해볼까?’
하긴 오늘 같은 상황이 또 벌어질 때를 대비해 저 녀석의 전투력을 높여놓을 필요가 있다.
비록 1강뿐이더라도 강화를 하게 되면 어떤 식으로든 상당히 강해질 것이다.
물론 강화에 실패하면 녀석은 그 즉시 죽게 되겠지만, 행운 펫 토실이가 있으니 그럴 염려는 없을 테고.
“1호 너 이리 와봐.”
로안은 호위병 1호를 향해 손가락을 까닥였다.
파르르르.
그런데 녀석이 뭔가 불길한 운명을 직감한 듯 몸을 떨었다.
동시에 슬금슬금 로안과 거리를 벌리기 시작했다.
‘뭐지? 저 녀석은?’
눈치 한 번 기가 막히다.
말도 안 했는데 로안이 뭘할지 짐작한 것이다.
그러고 보면 로안이 강철도 강화에 9연속으로 실패하는 걸 두 눈 초롱초롱하게 빛내며 구경한 녀석이다.
즉, 성공보다 실패 확률이 매우 높다는 걸 아주 잘 알고 있는 것이다.
“괜찮아. 걱정말고 이리 와.”
로안은 도망치는 호위병 1호를 걸어가 냉큼 집어들었다.
그러자 녀석이 꾸물댔다.
눈에는 그렁그렁 눈물도 맺혀 있었다.
마치 제발 살려주세요! 라고 외치는 것 같았다.
“토실아 강화 준비 됐지?”
순간 토실이가 조금 불안해하는 표정으로 로안을 쳐다봤다. 하지만 알았다는 듯 이내 비장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 기괴한 무엇 (2) > 끝
ⓒ 오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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