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또 다시 환생 (1) >
고양이?
레이는 로안이 갑자기 엉뚱한 말을 꺼내자 의아했다.
처음에는 지네를 좋아하냐고 물어보더니, 이번에는 고양이를 좋아하냐고 묻는다.
“고양이는 좋아해. 지네 따위는 당연히 싫어하지만.”
그러자 로안이 미소 지었다.
“그렇군요. 잘 알았습니다.”
사람들이 고양이는 대체로 좋아한다. 그러나 개중에 고양이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으니 확인해봤을 뿐이다.
‘그래. 고양이로 결정했다.’
레이에게 줄 선물 확정.
물론 지금 당장은 불가능하다.
영웅 고양이 녀석은 대략 50레벨 정도는 되어야 도전이 가능한 험악한 던전에 숨어 있으니까.
“그런데 왜 내게 그런 걸 묻는 거지?”
“토실이 일도 있고 해서 나중에 제가 귀여운 고양이 펫을 찾으면 선물드리려고요.”
로안은 솔직하게 대답했다.
그러자 레이는 뜻밖이라는 듯 눈을 크게 떴다.
“그 생각은 고맙지만 난 괜찮아. 그보다 네게 부탁이 있는데.”
부탁이라?
혹시 고양이 말고 다른 종류의 펫을 구해달라는 얘기일까?
“말씀하시지요, 아가씨.”
“저기 그러니까 앞으로 토실이를 보러 가끔 놀러와도 될까? 대신 토실이의 당근은 내가 책임질게.”
레이는 말하는 도중에도 토실이를 힐끔거렸다. 여전히 토실이에 대해 미련이 많은 모양이었다. 하긴 오래도록 정성을 들인 펫이었을 테니 당연한 일.
“물론입니다. 언제든 부담없이 와서 토실이랑 놀아주세요.”
“정말? 그래도 돼?”
“네. 당연히 되죠. 토실이도 아가씨를 여전히 친구처럼 생각하고 있을 걸요.”
“그렇게 말해줘서 정말 고마워.”
레이의 표정이 놀랍도록 밝아졌다. 시무룩했던 그녀의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피어나 있었다.
‘정말 좋아하네.’
로안은 어려운 부탁도 아니고 해서 그냥 그러라고 했을 뿐인데 그녀가 저토록 좋아하는 표정을 지을 줄은 몰랐다.
‘덕분에 당근 걱정은 안해도 되는 건가?’
그 사이 토실이는 수북히 쌓인 당근들 위로 올라서더니 한없이 뿌듯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아마도 사람이 돈방석 위에 앉으면 저런 표정일 것이다.
* * *
레이가 돌아가고 잠시 후 닐스 등이 깨어났다. 레이가 가기 전 간단한 치료 주문을 펼치고 간 터라 모두의 몸은 상처 하나 없이 멀쩡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냐?”
“우리가 왜 바닥에 누워있지?”
그들은 암흑의 사슬에 끌려오는 순간 혼절한 터라 그 사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마쿠스 공작님과 잠시 오해가 있었어요.”
“뭐라고?”
닐스 등은 경악했다.
왕국의 전설적인 검사인 마쿠스 공이 방금 전 이곳에 있었다는 말이 믿기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 그 오해는 풀렸으니 염려하지 않아도 돼요.”
로안은 그들에게 대략적인 상황 설명을 해주고는 안심시켰다.
“이럴 때가 아니에요. 벌레 괴물들이 아직 좀 남아있는 것 같으니 빨리 가서 해치우도록 하죠.”
“그러자!”
닐스 등은 즉각 동의했다.
파티원들이 모두 10레벨 승급에 성공한 지금은 레벨 업만큼 중요한 것이 없으니까.
* * *
사냥은 밤이 지나고 새벽이 밝아올 때까지 계속됐다.
그 사이 하늘을 음산하게 수놓았던 균열의 홀은 사라졌다.
또한 끈질기게 나타나 사람들을 공격하던 벌레 괴물들도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후! 드디어 끝난 건가?”
“정말 지겨운 녀석들이었어.”
“흐흐, 이제 드디어 쉴 수 있겠구나.”
투덜거리는 것과 달리 모두의 표정은 밝았다.
[용병 닐스의 파티]
-파티장 : 닐스(Lv17)
-파티원 : 데라(Lv15)
-파티원 : 하일(Lv15)
-파티원 : 로안(Lv19)
간밤의 일이 도시 헤르바에는 재앙이었지만 닐스 등에게는 강해질 수 있는 기회였다.
고블린 던전에 비할 수 없이 풍부한 경험치를 얻을 수 있었으니까.
“고생들 하셨어요.”
“그래, 로안. 너도 수고 많았다. 데라, 하일! 너희들도 고생많았어.”
“그보다 난 졸려 죽겠어.”
“으! 나도. 밤샐 때까진 괜챃은데 지금처럼 해뜰 때가 제일 졸린다.”
데라와 하일은 눈커풀이 금세라도 감길 듯했다.
아무리 레벨이 올라 모든 상태가 회복된다고 해도 졸음까지 해결해주지는 않는다.
며칠 동안 진행되는 던전 사냥 중에도 안전한 장소를 찾아 텐트를 치고 수면을 취하는 건 기본.
“그럼 오늘은 다들 푹 쉬고 내일 아지트에서 보자고.”
“그래.”
“내일 봐.”
아지트는 숙소가 아닌 일종의 사무실 개념이다. 당연히 닐스 등은 각자의 숙소가 있다. 물론 월세로 방을 임대해서 지내는 식이지만.
“참, 로안 너 여기에 숙소 있냐?”
“아직요. 이제 구해봐야죠.”
“그럼 중개소부터 가야지. 이 골목을 따라 쭉 가면 붉은 간판 건물이 나온다. 거기가 중개소야. 그럼 내일 보자.”
닐스는 친절하게 중개소의 위치를 알려준 후 그의 숙소가 있는 쪽으로 사라졌다.
도시 헤르바에서는 정식 시민이 되지 않으면 집을 구매할 수 없다.
즉, 시민이 아닌 떠돌이 용병이나 모험가, 여행자들은 숙소 임대만 가능하다.
임대 기간은 자유.
돈만 있으면 몇 년이고 상관없이 지낼 수 있다.
그리고 숙소를 구하는 거야 로안에게는 매우 익숙한 일이다. 게임에서 한두 번 해본 일이 아니니까.
‘카오니아가 숙소 시스템은 비교적 잘 되어 있지.’
현실로 변한 세계에서도 그 시스템을 그대로 가져왔을 것인가?
‘그전에 일단 코인부터 챙겨가자.’
로안은 경매장에 들러 염화의 지팡이 낙찰 대금 19,000코인을 받아 챙긴 후 유유히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잠시 걸었을까?
‘저기가 중개소군.’
닐스가 말한 대로 〈숙소 중개소〉라고 적힌 붉은 간판 건물.
“어서오세요. 숙소를 구하러 오셨나요?”
후덕한 인상의 중년 여성이 로안을 맞았다. 전생에서 공인중개사 사무실에 가면 흔히 볼 수 있을 법한 아주 인상 좋은 아주머니 스타일이다.
“방은 좀 있나요?”
“방이야 많죠. 시설이 좋은 숙소를 찾으신다면 한달에 최소 50코인은 주셔야 하고요. 저렴한 곳은 10코인 정도부터 있답니다.”
“헤르바 중심가 13-8번지 3층은요?”
“어머? 번지수까지 정확하게 알고 있는 걸 보니 여기 처음이 아닌가 봐요? 거긴 한달 200코인이나 되는 비싼 숙소인데 괜찮아요?”
“예. 거기로 하겠습니다.”
도시 헤르바의 번화가가 한눈에 들어오는 아주 전망이 좋은 숙소다.
게임에서 도시 헤르바에서 머물 때면 항상 거기를 숙소로 잡았을 정도다.
[도시 헤르바 중심가 13-8번지 3층이 당신의 숙소로 지정되었습니다.]
[200코인이 지불되었습니다.]
[중개료 1코인이 지불되었습니다.]
선불 지급 방식!
이후로 퇴거하지 않으면 매 30일마다 200코인씩 계좌에서 자동으로 지불된다.
200코인!
그러고 보니?
로안은 돌연 자신의 어깨위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토실이를 힐끗 쳐다봤다.
‘내 한 달 방값이 이 녀석 한끼 식사 값이네?’
굳이 비교할 필요는 없지만 왠지 자괴감이 든다.
아무리 전설 펫이라지만 식대가 너무 비싼 것이다.
물론 다행히 금수저 스폰서인 레이가 있어 당분간 당근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겠지만, 계속 그런 신세를 질 수는 없는 일.
‘나중에 카멜 농장에 가서 당근 노가다라도 좀 해야 하나?’
카멜 농장에 있는 60레벨 몬스터들을 사냥하면 전설 펫 전용 당근이 드롭템으로 떨어진다.
사냥은 꽤 지루하긴 하지만 레벨도 올리고 당근도 얻고!
일석이조다!
한동안 사냥만 하다보면 어느새 당근이 수북하게 쌓여 있는 걸 보게 된다.
다만 거긴 레벨 60이 넘어야 갈 수 있는 사냥터라서 지금은 그림의 떡일 뿐.
“손님, 그럼 숙소로 안내해드릴게요. 여기서 좀 멀어서 마차로 이동할 거예요.”
“예, 부탁합니다.”
잠시 후 로안은 마차를 타고 헤르바 번화가에 위치한 붉은 지붕 건물 앞에 멈췄다.
“이곳이에요. 3층으로 올라가시면 돼요. 기본 시설은 갖춰져 있지만, 추가 시설이 필요하면 코인으로 구매하시면 된답니다. 혹시 불편하신 것 있으면 언제든 저를 찾아주세요.”
“알겠습니다.”
로안은 토실이를 품에 안은 채로 계단을 따라 3층으로 올라갔다.
거실 외에 큼직한 방이 3개. 또한 수세식 화장실과 현대식 욕실까지 잘 갖춰져 있는 호텔같은 숙소다.
게임이 아무리 혼합 세계관이라 해도 시대적 배경이 중세 유럽 풍인데 현대식 화장실과 욕실은 좀 생뚱맞아보였다. 하지만 막상 그 현실로 들어와보니 너무 다행스럽다는 생각이다.
‘이제야 푹 좀 쉴 수 있겠구나.’
숙소를 얻고나니 뭔가 안도감이 든다.
이곳 세계로 환생 이후 제대로 발을 뻗고 잠을 자본 적이 없으니까.
긴장해서 버텼는데 그동안 밀렸던 잠이 한번에 쏟아진다.
‘그래. 일단 좀 자고 나서 생각하자.’
곧바로 욕실에 가서 몸을 씻은 후 침실로 가서 몸을 뉘였다.
* * *
얼마나 잠을 잤는지 모른다.
정신없이 곯아떨어졌던 로안이 잠을 깬 건 갑자기 들려오는 시스템의 알림 때문이다.
[균열의 재앙으로부터 도시 헤르바를 지켜낸 로안!]
[당신은 도시 헤르바의 방어에 매우 큰 공을 세웠습니다.]
‘그래. 이게 왜 안 나오나 했다.’
어젯밤 죽은 자들은 시체가 되어 땅에 묻히지만, 살아남은 자들은 시스템이 각자의 공적에 대해 개별 보상을 준다.
파티를 했다고 파티 전원에게 같은 보상이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이 귀신처럼 개별적인 공적을 파악해 그에 합당한 보상을 주는 것이다.
다만 이 보상은 도시 헤르바의 재정에서 나오는 터라 정산 시간이 좀 소요된다.
이제서야 시스템 알림이 나오는 건 바로 그 때문.
[명성이 100 올랐습니다.]
[누적 명성 1950]
[보상으로 베로 500코인을 얻었습니다.]
[보상으로 5000델을 얻었습니다.]
[대량의 경험치를 얻었습니다.]
코인은 물론 실생활에서 쓸 수 있는 화폐인 델까지!
거기에 경험치도 대량으로 들어왔다.
[당신은 20레벨이 되기 위한 요구경험치를 모두 얻었습니다.]
[20레벨이 되려면 승급 아이템이 필요합니다.]
본래라면 승급 아이템을 구해 곧장 마도객 20레벨로 승급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건 평범한 마도객 얘기이고 로안에게는 또 하나의 직업이 존재한다.
[환생사 고유능력인 〈환생〉이 활성화되었습니다.]
지금 갑자기 활성화된 능력이다.
매 10레벨 구간에서 딱 한 번씩만 쓸 수 있는 환생사 히든 스킬!
이로써 스탯 초기화 없이 레벨 10으로 돌아갈 수 있다.
‘드디어 환생이 가능해졌군.’
밤 사이 레벨 19가 되었지만 20레벨을 위한 경험치가 부족해 환생 커맨드가 활성화되지 않았던 것이다.
[지금 환생하시겠습니까?]
당연히 해야지.
이런 건 안전한 숙소에서 하는 거다.
“예. 하겠습니다.”
그러자 신비하고 강렬한 빛의 폭풍이 로안의 몸을 휘감았다.
[당신은 환생했습니다.]
[당신의 레벨이 10이 되었습니다.]
【이름】 로안
【레벨】 10
【직업】 마도객 / 환생사(秘)
【신분】 방랑자
【소속】 없음
그냥 정보 창만 보면 별다른 차이를 못 느끼지만, 상태창의 스탯을 보면 차원이 다를 것이다.
[레벨 19까지 환생 버프가 적용됩니다.]
[경험치 획득량이 대폭 증가합니다.]
[사냥 중 아이템 획득 확률이 크게 증가합니다.]
[제작 중 대성공 확률이 크게 증가합니다.]
곧바로 이어지는 버프 알림까지!
로안은 뿌듯한 표정으로 상태 창에 있는 스탯들을 확인했다.
【이름】 로안
【레벨】 10
【생명】 230/230
【마나】 180/180
【근력】 23
【체력】 23
【민첩】 22
【지력】 18
【아공간】 1
【미분배 보너스 스탯】 0
【고유능력】 냄새동화(Lv2), 흥정(Lv2)
【직업능력】 환생, 마도(魔刀)의 기운, 불의 칼(Lv1)
【비급능력】
-흑사광살도법 : 3성
역시나 당연히 스탯은 물론이고, 각종 능력, 또한 흑사광살도법의 성취도도 초기화되지 않았다.
레벨 10 중에는 그야말로 사상최강의 전투력을 지닌 존재이리라.
[레벨 감추기 능력이 활성화됩니다.]
[외부에 표시될 당신의 레벨을 선택해 주세요.]
[레벨 10부터 레벨 19사이에서 선택 가능합니다.]
‘오! 이게 가능하다고?’
이 또한 환생 버프의 하나.
레벨 19에 도달할 때까지 가능한 능력이다.
그렇지 않아도 레벨이 하락하면 환생사란 것에 대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설명할지 고민이긴 했다.
“레벨 19로 합니다.”
[외부에 보이는 당신의 레벨이 19로 변경되었습니다.]
【이름】 로안
【레벨】 19
【직업】 마도객
【신분】 방랑자
【소속】 없음
이제 다른 사람들에게는 이렇게 보일 것이다.
“히히히히힝!”
그런데 그때.
밖에서 아주 우렁찬 말의 울음 소리가 울렸다. 그 소리는 맹수의 포효보다 훨씬 강렬했다.
‘저 소리는?’
창문을 열고 밖을 봤다.
전설의 유니콘처럼 머리에 뿔이 박혀 있는 푸른 말이 3층 높이의 허공에 둥둥 떠 있었다.
영웅 펫인 청마 파르두스!
그리고 그 위에 한 노인이 오연한 눈빛으로 앉아 있었다.
물론 마쿠스 공작이다.
【레벨】 80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바로 80이라는 숫자였다.
< 또 다시 환생 (1) > 끝
ⓒ 오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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