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으로 독존한다-25화 (25/240)

< 당근 사왔다! (2) >

[염화의 지팡이의 입찰가가 6,500코인으로 올랐습니다.]

[염화의 지팡이의 입찰가가 6,600코인으로 올랐습니다.]

지팡이의 입찰가는 계속 오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그 올라가는 텀이 길어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1분도 안 되어 입찰가를 올리더니, 지금은 무려 20분 만에 100코인을 슬쩍 올렸다.

‘한쪽에서 일부러 천천히 올리고 있네.’

이는 경쟁자를 지치게 만들 속셈임이 분명하다.

[염화의 지팡이의 입찰가가 6,700코인으로 올랐습니다.]

이번에는 무려 30분.

이는 20분으로 공격하자 30분으로 맞받아쳤다는 뜻.

‘둘 다 강적들이군.’

설마 다음은 40분일까?

이대로라면 입찰이 종료되는 3일 동안 둘은 피 말리는 입찰경쟁을 벌이게 될 것이다.

‘후! 이러다 날 새겠다. 알아서들 해라. 난 나가볼 테니까.’

입찰을 지켜보다 보니 어느덧 2시간 넘는 시간이 훌쩍 흘러가 버렸다.

둘 다 즉시 구매가인 20,000코인을 지불할 생각은 없어 보이니 계속 지켜보는 건 의미 없는 일.

‘바로 코인이 들어오면 당근이라도 몇 개 더 사가려고 했는데 어쩔 수 없지.’

3일 후 최대한 높은 가격으로 낙찰되기를 기대해보자.

* * *

[은폐의 망토를 장착합니다.]

[당신의 외부 공개 정보 창에 있는 내용이 임의로 변경됩니다.]

[당신보다 레벨이 높은 이들에게는 통하지 않으니 주의하십시오.]

【이름】 딕

【레벨】 8

【신분】 방랑자

【직업】 없음

【소속】 없음

‘됐다!’

이렇게 다른 정보가 나타나는 식으로 본래 정보가 감춰진다.

이제 영웅 등급 직업인 마도객이라는 이유로 평범한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일은 없어진 것이다.

‘그럼 어디 걸어볼까?’

확실히 길가는 사람들 중 로안을 쳐다보며 호들갑을 떠는 이는 없었다.

간혹 한 번씩 호기심 어린 시선을 보내는 이들은 레벨이 높은 이들이었다.

그들에게는 로안의 본래 정보가 보이니 당연한 일.

그런다고 호들갑을 떨거나 선망의 눈빛으로 쳐다보지는 않았다.

그래도 자신이 더 고렙이라는 자부심 때문이리라.

‘휴! 이것만으로도 좀 살 것 같군.’

로안은 남들의 관심을 끄는 관종 기질은 없는 터라 조용히 살고 싶을 뿐이다.

콰르르릉!

그런데 이게 무슨 소린가?

느긋하게 블랙호크 용병단의 아지트로 향하던 로안은 난데없이 울리는 상공의 굉음에 깜짝 놀랐다.

날이 저물고 있지만 아직은 푸른 기가 많이 남아있는 하늘이다.

구름도 별로 없는 맑은 하늘에 웬 날벼락인가?

콰르르릉!

다시 또 울린다.

아까보다 더 거대한 굉음.

이런 걸 보고 청천벽력이라고 하겠지?

심지어 상공의 공간이 뒤틀리는 듯한 착시 효과까지 느껴진다.

‘착시가 아니야. 이거 설마?’

로안은 하늘을 뚫어져라 노려봤다.

요동치던 상공의 공간 한 곳에 검은 소용돌이처럼 생성된 홀 하나.

콰아아아―!

마치 블랙홀을 보는 듯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맙소사! 저게 왜 지금 나타나?’

저건 이른바 차원의 균열이라는 것이다.

아득한 차원 너머 존재하는 마계의 사악한 힘이 저 균열을 통해 이곳 세계로 밀려들어오는 것으로, 저런 균열이 다수 생겨나게 되면 악마로 예정된 이들이 스스로를 각성하기 시작한다.

장차 악마가 될 49명에게는 축복과 같은 현상이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끔찍한 재앙.

‘뭐야? 이거 설정과는 완전히 다르네.’

게임에서는 붉은 달이 뜬 후 대략 게임 시간으로 1년 정도 지난 후에야 균열 현상이 시작된다.

그리고 그 균열의 틈을 타고 마물들이 건너와 살상을 벌인다.

하지만 아직 붉은 달이 뜬지 불과 10여일 밖에 안됐다.

‘확실히 내가 알던 흐름이 아니야.’

콰르르릉! 콰콰콰콰!

상공의 균열은 더욱 거세졌다.

《긴급! 긴급! 도시 헤르바의 상공에 균열 발생!》

그때 시스템의 긴급한 알림이 울렸다.

‘역시 균열이 맞네.’

한 사람이 아닌 다수에게 전파하듯 시스템의 음성은 웅장했다.

《긴급! 긴급! 도시 헤르바의 상공에 균열 발생!》

“균열이 뭐래?”

“글쎄! 아마도 저 구멍이 균열인가 본데?”

“왜 갑자기 저런 게 생겨난 거야?”

사람들이 황당해하는 표정으로 하늘을 쳐다봤다.

당연한 일이다.

그들은 균열이 뭔지 모를 테니까.

지금 이 순간 균열이 뭔지 알고 있는 이는 아마도 시스템 외에는 로안  뿐일 것이다.

“아무튼 찜찜해요!”

“괴물이 나타날 것 같아요!”

“다들 피합시다!”

그래도 위기 본능 때문인지 대부분의 비각성자들은 다급히 안전한 건물을 찾아 부리나케 이동했다.

《긴급 상황입니다! 균열의 틈을 타고 마물 베르미스들이 헤르바에 침투하고 있습니다!》

‘미친! 베르미스라고?’

로안은 베르미스가 뭔지 잘 안다.

몸체의 길이가 수십 미터도 넘는 거대 애벌레 형상의 괴물.

‘그거 레벨 70 보스 급인데?’

그냥 70레벨도 아니고 보스급 괴물!

단 한 마리만 나타나도 이곳 도시 헤르바는 오늘 지상에서 사라지게 될 것이다.

일전 흑사문에서 크라겔이 벌였던 좀비들의 재앙은 이에 비하면 재앙이라 할 것도 없다.

‘최악이야. 경매장에서 도와줄 리도 만무하고.’

비밀 경매장에 있는 녀석들이라면 베르미스 따윈 어렵지 않게 처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이런 재앙이 닥치면 그 즉시 어디론가 철수해버리니 기대를 안 하는 게 낫다.

《긴급! 다시 전달합니다!》

《균열의 틈을 타고 다수의 베르미스들이 도시 헤르바에 침투했습니다.》

《각성자들은 전력을 다해 도시를 방어해 주십시오!》

‘뭐냐? 다수의 베르미스들?’

로안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한 마리만 나타나도 끝장인데 다수라니! 대체 몇 마리가 쏟아져 나온다는 건가?

‘피해야 해. 여기 있다간 개죽음이다.’

일단 아지트를 향해 달렸다.

닐스와 데라, 하일, 그리고 토실이를 두고 혼자 도망갈 수는 없는 일이니까.

스스스스.

그 사이 균열에서 흘러나온 암흑의 안개가 사방을 뒤덮었다. 그로인해 날이 순식간에 어두컴컴해졌다.

“으아악! 살려줘!”

“크아아악!”

벌써부터 사방에서 비명이 난무했다.

동시에 로안의 앞을 뭔가가 가로막았다.

대략 1미터 길이의 애벌레 형상 괴물.

[베르미스 Lv1]

‘레벨 1?’

녀석의 위에 표시된 정보를 보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새끼들이었나? 후! 그러면 그렇지.’

하늘을 보자 그 사이 구멍의 크기는 작아져 있었다.

처음에만 요란했지 그리 큰 균열이 아니다.

‘그러고 보니 소형 균열이었군.’

게임이 아닌 현실에서 처음 당해보니 당황했던 것이다.

역시나 벌써부터 베르미스 성체가 나타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

‘다행이야. 설정이 완전히 바뀐 건 아니다.’

이런 유의 이벤트는 드물지만 초반에도 랜덤하게 등장한다.

어느 도시가 될지 알 수 없을 뿐이지.

그래도 도시를 멸망시킬 정도는 아니지만 상당한 피해는 입힌다.

추아악!

그때 베르미스(Lv1)가 달려들며 입을 벌렸다. 뾰족한 촉수가 튀어나와 날아드는 순간 로안은 가볍게 옆으로 피하며 강철도를 내리그었다.

서걱!

촉수가 잘렸다. 연이어 휘두른 도의 공세에 놈의 머리도 도마 위의 소시지처럼 썰려나갔다.

“꾸아아악!”

머리가 잘려나간 베르미스는 꼴사납게 몸부림치다 이내 축 늘어졌다.

[경험치를 얻었습니다.]

[트렐 1 코인을 얻었습니다.]

‘내가 이렇게 빨랐나?’

아무리 스탯빨이라고 해도 너무 자연스럽다.

몸이 알아서 저절로 공격을 피하고 도를 휘둘렀기 때문이다.

특히나 도를 쥐는 것조차 아주 익숙하게 느껴진다.

‘흑사광살도법 때문이군.’

3성으로 올린 흑사광살도법이 전투 시 자동으로 위력을 발휘한 것이다.

거의 자동 사냥 수준이랄까?

‘잘됐어. 최대한 베르미스들을 찾아내 죽이자.’

베르미스가 1레벨이라고 해서 방심해서는 안 된다.

그 자체로는 별것 아니지만, 놈은 사람들을 포식하며 스스로 레벨을 올리기 때문이다.

놈은 승급석 같은 것이 필요 없다. 심지어 매 10레벨마다 각성을 통해 엄청나게 강해진다.

그러다 30레벨 정도 되면 상대하기가 상당히 까다로워지며, 그 상태로 놈이 어딘가 숨어서 레벨 70을 달성하게 된다면 재앙급 괴물로 변하는 것이다.

그전에 다 잡아 죽여야 한다.

‘저쪽에도 한 놈 있군.’

[베르미스 Lv3]

벌써 레벨 3?

입가로 붉은 혈액이 분칠을 하듯 번져있는 걸 보니 벌써 사람 한둘을 포식한 것이 분명했다.

“저 죽일 놈 같으니!”

그때 놈 역시 로안을 발견했는지 캥거루처럼 훌쩍 점프해 덤벼들었다.

‘윽! 놀래라.’

1미터가 넘는 거대 벌레가 이런 식으로 점프해 덤벼드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지는 직접 당해보지 않으면 모를 것이다.

베르미스가 생긴 건 굼벵이처럼 굼떠 보이지만 속도와 움직임은 무지 빠르니까.

로안은 차분히 놈의 공격을 피한 후 강철도를 휘둘렀다.

휘휙! 파팟―

도가 쾌속하게 공간을 가르며 파공음을 내는 순간 놈은 오던 그대로 머리가 두 쪽이 났다.

“꾸아아악!”

단 한 방으로 끝!

[경험치를 얻었습니다.]

[베르미스의 촉수를 얻었습니다.]

이 와중에도 득템이라니!

* 베르미스의 촉수

-분류 : 제작 재료

-등급 : 희귀

-설명 : 희귀 등급 활이나 새총 등을 만드는 재료로 쓰인다.

베르미스가 살아있을 때는 촉수가 매우 징그러웠다. 그런데 그것이  드롭 템으로 변해 있으니 생각처럼 흉물스럽지는 않았다.

‘으! 뱀을 만지는 감촉인데?’

다시 보니 징그럽다.

‘그래도 경매장에 올리면 몇 십 코인이라도 벌 수 있지.’

이런 건 일단 보관.

[베르미스의 촉수가 아공간에 입고되었습니다.]

로안은 힐끗 다시 하늘을 쳐다봤다. 그 사이 홀은 작게 변한 채로 점차 사라지고 있었다.

‘홀에서 몇 마리나 쏟아져 나왔을까?’

사방에서 들리는 아우성을 보면 최소 수십 마리, 아니면 1백 마리도 넘을지 모른다.

물론 지금쯤 도시 내에 있는 다른 각성자들도 베르미스를 처치하고 있을 것이다.

‘나도 서두르자. 한 놈이라도 더 죽여야 해.’

로안은 아지트 쪽으로 향하며 눈에 베르미스가 보이면 모조리 죽였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Level Up!

덕분에 레벨 11.

현재는 파티 중이 아니라서 경험치를 혼자 먹는 중이다.

[경험치를 얻었습니다.]

[경험치를 얻었습니다.]

[아프릴 1코인을 얻었습니다.]

[경험치를 얻었습니다.]

베르미스들이 계속 쏠쏠한 경험치와 코인을 주고 있었지만, 조금씩 높은 레벨의 베르미스들이 보여 기분이 착잡했다.

그건 그만큼 놈들이 사람을 잡아먹었다는 뜻이니까.

‘저기 아지트 건물이 보인다!’

드디어 아지트 건물 도착.

닐스 등이 제발 무사해야 할 텐데.

[베르미스 Lv9]

‘입구에 한 놈이 있네?’

근데 레벨이 벌써 9라니!

놈에게 당한 사람들의 시체 조각들이 사방에 널려 있었다.

이대로 두면 잠시 후 놈은 레벨 10으로 승급해 몇 배나 더 강해지게 될 것이다.

“아악! 저리가!”

때마침 지금 막 여성 한 명이 놈에게 잡혀죽기 직전.

그런데 낯이 익었다.

다름 아닌 데라.

한바탕 전투를 벌였는지 그녀의 몸은 온통 피투성이 상태였고, 활은 부러진 채 한쪽에 나동그라져 있었다.

“멈춰!”

로안의 도에서 칼 형상의 화염이 생겨나 전방으로 쏘아져나갔다.

번쩍!

반사적으로 날린 스킬!

마도객 전용 능력인 〈불의 칼〉이 드디어 펼쳐졌다.

시전 시간이 0이라 스킬 네임만 외치면 즉각 쏟아져나간다.

확! 화르르!

불의 칼이 적중하자 베르미스(Lv9)의 혀 촉수가 시뻘건 화염으로 휩싸였다.

“꾸아악!”

놈이 고통스러운지 몸부림쳤다.

그 틈을 타 데라가 뒤로 구르며 놈의 공격 반경에서 아슬아슬하게 벗어났다.

“괴물 놈 죽어라!”

그 사이 성큼 다가간 로안이 강철도로 베르미스(Lv9)의 몸체를 난도질했다.

촥! 촤촥!

베고 찌르고 다시 베고 또 베고 잘라버린다!

파파팟! 서걱!

그것이 눈 깜짝할 사이에 이루어졌다.

이 도법에 광살(狂殺)이란 말이 공연히 붙은 게 아니다.

“꾸어어억!”

베르미스가 만신창이 상태로 나동그라졌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오! 레벨 12!

그러나 지금 기뻐할 때가 아니다.

로안은 아공간에서 생명력 회복 물약을 꺼내 데라에게 먹였다.

“어서 먹어요, 누나.”

“으! 로안, 너 왔구나.”

혼절 직전의 데라는 포션이 들어가자 두 눈에 약간 생기가 돌았다.

“안에 대형 벌레 괴물이 있어. 어서 닐스와 하일을 도와줘야 해.”

로안은 그 말을 듣자마자 아지트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 즉시 보이는 3미터 길이의 거대 벌레.

[베르미스 Lv10]

딱 봐도 10레벨로 승급한 녀석이다.

한쪽 벽에는 피투성이가 된 닐스가, 다른 쪽 벽에는 만신창이 상태의 하일이 각각의 무기를 쥔 채 쓰러져 있었다.

‘다행이야. 죽지 않았어.’

로안은 닐스 등이 죽었을까봐 걱정했다.

그런데 그들은 쓰러져 있을 뿐 아직 살아있었다. 죽었으면 정보 창에 〈사망〉이라고 나와 있었을 것이다.

‘근데 왜 저놈이 안 먹었지?’

정말 천만다행한 일이지만 한편으로 이상하긴 했다.

10레벨 대형 베르미스는 포식 욕구가 더욱 강해져서 시체건 뭐건 가리지 않고 모조리 먹어치워야 정상이니까.

‘그러고 보니 놈이 몸을 떨고 있네.’

로안이 나타났는데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쥐죽은 듯 떨고만 있었다.

마치 상전이라도 만난 듯 뭔가의 눈치를 보며 말이다.

“왔냐, 로안?”

그때 닐스가 막 혼절에서 깨어났다.

“닐스 형, 괜찮아요?”

“난 괜찮아. 그보다 우리가 저 벌레 놈에게 죽기 직전에 갑자기 토끼가 나와서 살려줬다.”

토끼라면?

‘크! 깜빡했네.’

로안은 실소를 흘렸다.

그러고 보니 베르미스의 거대한 덩치에 가려 보이지 않았을 뿐이다.

놈의 앞에서 팔짱을 낀 채 삐딱한 눈빛으로 기선을 제압하고 있는 자그만 토끼 하나.

다름 아닌 토실이다.

기력은 없어 보이지만 그래도 명색이 전설 펫이다.

한낱 10레벨 벌레 괴물 따위가 어찌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닌 것이다.

“좋아! 아주 잘했어, 토실아.”

그러자 토실이가 힐끔 로안을 쳐다보며 기대어린 눈빛을 보냈다.

[토실이가 당근을 원합니다.]

그럴 줄 알았지.

“걱정 마. 당근 사왔다!”

< 당근 사왔다! (2) > 끝

ⓒ 오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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