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으로 독존한다-19화 (19/240)

< 레벨 4 vs 레벨17 보스 (2) >

추렉은 즉각 방문을 박차고 튀어나왔다.

“크아아아아!!!”

놈이 분노의 포효를 지르자 주변에 있던 고블린들이 일제히 모여들었다.

‘바글바글 하군.’

언뜻 봐도 수십 마리가 넘는 고블린들.

로안은 놈들의 반대편으로 빠르게 뛰었다.

‘지금부터가 중요해. 최대한 빨리 움직여야 한다.’

멈추는 순간 포위된다.

또한 가이드 타워에 있는 고블린 궁수의 공격을 받게 된다.

하지만 움직이는 순간에는 민첩 스탯 22가 만들어내는 불가사의한 회피율이 작용한다.

그때는 화살이 날아와도 피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어서 잡아라! 저 쥐새끼 같은 놈을 잡아!”

추렉은 로안을 쫓아오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고블린들이 로안을 향해 달려들었다.

“인간 놈! 여기가 어딘 줄 알고 왔느냐?”

“감히 족장님의 방에 침입하다니!”

검과 방패는 물론이고 장창이나 활로 무장한 고블린 패거리들의 공격을 피하며 이동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로안의 움직임은 바람과 같았다. 허리를 숙여 날아드는 화살을 피하고, 녹슨 칼을 휘둘러 창날을 쳐냈다.

‘이놈들의 움직임이 느리게 보인다.’

이것이 바로 민첩 스탯의 위력.

즉, 로안은 슬로우 모션으로 덤벼드는 고블린들 사이를 누비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틈을 봐서 한 놈씩 반격해 쓰러뜨리는 것도 가능했다.

촥!

녹슨 칼이 고블린 하나의 목을 스쳤다. 갈라진 목에서 피가 뿜어져 나오며 놈이 비틀거리다 뒤로 넘어갔다.

[경험치를 얻었습니다.]

[베로 1 코인을 얻었습니다.]

뭔가 드롭템도 하나 떨어진 것 같은데 그것을 주울 여유는 없었다.

잠시라도 멈춰 섰다간 창날과 화살이 몸에 박혀들 테니까.

“크아아아아!!!”

그렇게 로안이 요리조리 고블린들의 공격을 피하는 것을 본 추렉은 열통이 터지는지 다시 크게 포효를 날렸다.

“이 멍청한 놈들아! 저놈은 고작 레벨 4다. 레벨 4 따위 하나 못 잡는다는 말이냐?”

그러자 고블린들의 인상이 일그러졌다. 자존심이 상한 모양이었다.

“키익! 고작 레벨 4 따위가!”

“용서 못해!”

놈들 중 일부는 로안의 머리 위에서 빛나는 정보 창을 살펴보고는 더욱 분개한 표정을 지었다.

“후후, 그래! 나 레벨 4다. 레벨 4가 뭐 어쨌다는 거냐?”

로안은 고블린들을 더욱 자극했다.

그래야 놈들의 이목이 그에게 쏠리게 되고, 그 사이 닐스 등이 작전을 펼치기 쉬울 테니까.

“크아! 난 레벨이 11인데?”

“난 12다! 근데 레벨 4 따위가 감히!”

“저놈 잡아!”

이곳 카오니아 세계에서 레벨은 다른 무엇보다 큰 의미를 갖는다.

일단 레벨이 낮으면 무시하고 보는 것이 인간들만의 사회가 아니라 몬스터들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고블린들에게도 레벨은 자존심이다. 어쩌다 보니 던전에 소속되어 몬스터 노릇을 하고 있지만 자신들보다 저렙에게 당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

다른 무엇보다 로안의 레벨이 그들에게 분노를 일으켰다.

“크아아아아! 잡아라!”

“저렙 인간 놈! 거기 서라!”

덕분에 로안은 족장 추렉을 필두로 수십 마리의 고블린들을 줄줄이 사탕처럼 끌고 다닐 수 있었다.

‘잘들 따라오는군. 내 스탯을 보면 놀라 자빠질 녀석들이 말이야.’

그러나 로안 자신 말고는 그의 스탯을 볼 수 없다. 남들 눈에는 그저 레벨만 보일 뿐.

그래서 더 도발이 쉽다.

특별한 도발 스킬이 없지만 저렙인 것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어그로를 끌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로안이 고블린들의 주의를 끄는 사이 닐스 등은 족장 추렉의 방으로 올라와 밖의 상황을 살폈다.

“하! 맙소사!”

“로안 저 녀석 완전히 미쳤네.”

“정말 직접 보지 않고는 도저히 믿기 힘든 장면이다.”

로안이 추렉 뿐 아니라 수십 마리의 고블린들을 끌고 다니는 모습을 보며 모두들 기절초풍하고 말았다.

그러나 닐스는 이내 눈을 빛내며 말했다.

“놀라고 있을 시간이 없다. 로안이 어렵게 만들어준 기회를 놓치면 안 돼.”

로안이 정말로 모든 고블린들의 주의를 끄는 기적 같은 일을 해낸 것이다.

그 사이 로안은 집의 뒤뜰 쪽으로 고블린들을 몰고 갔다.

“지금이야. 서둘러라, 데라! 지붕 위로 올라가 고블린 궁수들을 처치해.”

“좋아. 하일, 나 좀 도와줘.”

데라가 방밖으로 뛰어나갔다. 하일이 끄덕이더니 그녀를 따라 나갔다.

“엿차!”

그리고는 데라의 몸을 안아 지붕 위로 던졌다. 데라는 사뿐히 지붕 위로 내려섰다. 하일이 우려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조심해! 고블린 궁수들을 단 번에 맞춰라. 안 그럼 네가 당한다.”

“훗, 염려 마.”

데라는 즉각 가이드 타워의 고블린 궁수를 노려 화살을 날렸다.

피잉―

화살이 고블린 궁수의 뒤통수를 향해 빛살처럼 날아갔다.

타앙!

그러나 화살의 방향이 기울어지더니 기둥에 박히고 말았다.

“앗!”

이에 당황한 건 데라 뿐이 아니었다. 로안을 향해 막 발리스타의 쇠화살을 쏘려던 고블린 궁수들은 난데없이 근처로 화살이 날아와 박히자 깜짝 놀랐다.

“저기다! 지붕 위에 인간 여자가 있다!”

“인간 년! 죽어라!”

급하게 발리스타의 방향을 바꿀 수는 없는 상황. 그들은 어쩔 수 없이 활을 들고 데라를 향해 쐈다.

핑! 피잉―

그러나 데라는 곡예를 넘듯 훌쩍 옆으로 돌며 화살들을 피함과 동시에 다시 화살을 날렸다.

팍!

화살 하나가 고블린의 머리에 박혔다.

“꾸아아악!”

놈은 비명을 지르며 바닥으로 추락했다.

“크윽! 죽인다, 인간!”

옆에 있던 고블린 궁수가 데라를 노려 다시 활을 날리려 했지만, 갑자기 밑에서 날아든 돌멩이에 맞아 비틀거렸다.

“으윽!”

하일이 바닥의 돌을 주워 놈에게 던진 것이다. 그렇게 놈이 비틀거리는 틈을 데라는 놓치지 않았다.

“아주 좋았어, 하일!”

그녀의 활에서 쏘아져 나온 화살이 고블린 궁수의 이마에 박혔다.

팍!

“쿠악!”

고블린 궁수는 뒷걸음질치다 그대로 난간 아래로 추락했다.

“지금이다!”

밑에서 마음을 졸이며 그 장면을 지켜보고 있던 닐스와 하일이 가이드 타워를 향해 달렸다. 하일은 힐끗 데라를 보며 투덜거렸다.

“너 한 번에 못 맞추냐? 간 떨어질 뻔 했잖아.”

“쳇! 니가 쏴봐! 그게 그렇게 쉬운 줄 알아?”

이 와중에도 툭탁거리는 그들을 보며 닐스는 한숨을 내쉬었다.

하여간 못 말리는 동료들이다.

“지금이 싸울 때냐? 어서 타워 위로 올라가자.”

“알았다.”

그들은 다람쥐처럼 타워의 기둥을 타고 올라갔다. 곧바로 하일이 발리스타를 붙잡고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발리스타 확보했다!”

데라가 환호했다.

“우리 정말로 잘하면 족장을 잡겠는데?”

닐스가 끄덕였다. 그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말했다.

“이제부터가 중요하다. 족장 놈을 정확히 겨눠 적중시켜야 해.”

소형 발리스타에 걸어 날리는 쇠 화살은 창이라고 봐도 될 만큼 길다.

아무리 족장이라고 해도 이것에 맞으면 치명상을 입고 말 것이다.

[파티원 로안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로안의 레벨이 5가 되었습니다.]

그 사이 로안은 추렉 패거리를 끌고 다니면서도 앞을 막아서는 고블린들을 한 놈씩 쓰러뜨렸고 덕분에 레벨이 한 단계 올랐다.

“오우! 고맙다! 덕분에 레벨이 올랐거든. 나 이제 레벨 5야!”

그는 일부러 고블린들에게 들으라는 듯 크게 외쳤다.

그러자 추렉 등은 눈이 뒤집혔다.

그야말로 울화통이 터져 죽을 상황.

“크아아아아아! 이 죽일 놈! 거기 안서냐?”

“너 같으면 서겠냐?”

“크큭! 결국 넌 잡힌다. 그러니 좋게 말할 때 서라. 지금 서면 최대한 고통 없이 죽······아니, 특별히 살려주마.”

추렉이 살려주겠다는 말로 꼬득였지만 그런 것에 넘어갈 로안이 아니다.

“잔머리 굴리지 말고 열심히 뛰어서 날 잡아봐!”

“크아아아아! 네놈 진짜 잡히면 찢어 죽인다!”

추렉은 이성을 완전히 상실한 상태였다. 그야말로 세상 끝까지 추격해올 기세였다.

‘됐어. 이제 잠시 후면 발리스타로 맞추기 좋은 지점이 나온다.’

추렉의 정신은 온통 로안을 향해 있는 상황. 다른 고블린들도 마찬가지다. 가이드 타워가 장악되어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할 때다.

딱 한 번의 기회!

실패하면 추렉이 경계를 하게 될 테니 그때는 난이도가 몇 배는 상승하게 된다.

‘닐스가 잘 해줘야 할 텐데.’

발리스타를 쏘는 일은 하일보다 집중력이 높은 닐스가 맡았다.

추렉이 어느 지점에 왔을 때 발리스타를 날려야 하는지는 이미 몇 번이고 설명해줬다.

“쿠아아아아! 거기 서라! 이 쥐새끼 같은 놈아!”

로안은 가이드 타워 쪽으로 달리며 힐끗 닐스를 쳐다봤다. 닐스가 걱정하지 말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쇠화살이 장전된 발리스타의 끝이 로안의 바로 뒤를 따라오는 추렉의 목을 향했다.

“딱 한 방에 맞춰야 한다, 닐스!’

하일이 긴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닐스는 끄덕였다.

“염려마라!”

그의 표정은 의외로 차분했다. 오히려 멀리 지붕 위에서 그를 쳐다보고 있는 데라가 더욱 긴장한 기색이었다.

‘실패는 없다! 반드시 맞춘다!’

닐스의 두 눈이 번뜩였다. 그는 극한 상황일수록 오히려 침착하게 변한다. 하일과 데라가 그를 대장이라 인정하며 따르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지금이에요! 쏴요!”

그때 로안이 크게 외치고는 잽싸게 허리를 숙이며 앞을 굴렀다.

순간 추렉은 고개를 갸웃했다.

갑자기 앞에 뛰던 로안이 엎어지며 구르는 걸 보며 황당했던 것이다.

‘쏘라니. 뭘 쏘라는 거냐?’

뭔가 수상함을 눈치 챘지만 그땐 이미 늦었다.

쒜에엑―!

가이드 타워에서 날아온 커다란 쇠화살이 앞에 도달해있었으니까.

‘크헉!’

추렉은 깜짝 놀라 피하려 했지만 쇠화살은 그대로 그의 목을 관통해 버렸다.

푸화악!

목에서 핏줄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야말로 상상도 못했던 기습에 추렉은 기가 막혔다.

치명상!

단 한 방이었지만 발리스타의 강한 파괴력에 그는 쇼크 상태에 빠졌다.

“쿠으윽! 이, 이런 개 같은······!”

주변은 피바다가 되었다.

쇼크에 빠져 비틀거리는 그의 몸을 뭔가가 마구 후려쳤다.

촥! 촤악!

다름 아닌 로안.

조금이라도 대미지를 더 줘서 놈을 쓰러뜨려야 하니까.

“크으! 네놈이 감히!”

금세라도 쓰러질 듯 비틀거렸던 추렉의 두 눈에서 붉은 빛이 번쩍였다.

그는 악을 쓰며 로안을 향해 달려들었다. 아니, 달려들려고 했다.

그러나 그 사이를 노려 재장전한 발리스타의 쇠화살이 다시 추렉의 몸에 적중했다.

팍!

이번에는 가슴이었다. 관통되지 않고 가슴에 박힌 채로 화살대가 부르르 떨렸다. 그에 따라 추렉의 몸도 세차게 흔들렸다.

“내 것도 받아라!”

데라가 날린 화살도 연거푸 날아와 추렉의 몸에 박혔다. 레벨이 낮아 큰 피해를 주지 못하지만 지금은 그 미약한 정도라도 무시할 수 없다.

“그만 죽어라!”

그리고 레벨은 비록 낮지만 스탯이 높은 로안의 공격이야말로 치명적이었다.

그는 근거리에서 번개처럼 움직이며 녹슨 칼로 추렉의 몸을 난도질했다.

“쿠으으으······! 빌어먹을!”

결국 추렉의 얼굴에서 핏기가 완전히 가셨다. 그는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고블린 던전의 보스 족장 추렉이 죽었습니다.]

곧바로 들려오는 알림.

[어려운 도전에 성공한 당신들에게 특별 보상이 주어집니다.]

[파티원 전원의 명성이 상승합니다.]

[당신의 명성이 100 올랐습니다.]

[누적 명성 650]

역시 예상대로다.

로안의 입가에 미소가 피어났다.

‘다행이군.’

명성 100포인트라면 매우 성공적이다.

“우리가 족장을 잡았다!”

“우와아! 으하하하! 해냈어!”

“호호, 이게 꿈이야 생시야?”

가이드 타워 위의 닐스와 하일, 지붕 위의 데라 모두 환호성을 질렀다.

[대량의 경험치를 얻었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보스 몬스터니 대량의 경험치를 주는 거야 당연한 일.

이미 한계 레벨에 도달한 닐스 등과 달리 로안의 레벨은 단번에 Lv9로 상승했다.

[베로 75 코인을 얻었습니다.]

거기에 대량의 코인까지!

본래는 300코인인데 파티원 넷에게 공평하게 분배된 것이다.

그런데 그뿐이 아니다.

반짝! 반짝!

족장 추렉의 사체 주위에서 빛나는 세 개의 아이템.

하나는 창이었고, 두 개는 신비로운 빛에 가로막혀 주워보기 전에는 알 수 없는 것들이다.

하지만 딱 봐도 승급 아이템들.

‘대박! 승급 아이템이 두 개씩이나.’

저렙 파티로 고레벨 보스를 잡으면 드롭률이 높아지는 방식이 이곳 세계에서도 역시 적용되는 것일까?

“어? 저기 누가 온다!”

그때 데라가 다급히 외쳤다. 닐스 등도 타워 위에 있다 보니 확인이 가능했다.

번쩍이는 갑주로 무장한 4명의 남자와 백색의 로브를 입은 여자 마법사 하나.

“이런! 카젤가의 사람들이야.”

하필이면 이때 카젤 자작가의 사람들이!

머뭇거릴 때가 아니다.

‘일단 아이템부터 챙기고.’

로안은 잽싸게 바닥의 드롭 템들을 주웠다.

< 레벨 4 vs 레벨17 보스 (2) > 끝

ⓒ 오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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