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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으로 독존한다-9화 (9/240)

< 탈출 (2) >

‘저쪽이군.’

암옥은 건물로 들어가 지하 계단을 따라 한참 내려가야 있다.

본래라면 엄중한 경비로 인해 허락 없이 들어갈 수 없는 곳이지만.

‘여기도 완전히 난리가 났군.’

죄수들이 쇠사슬에 묶여있던 그대로 좀비들에게 뜯어 먹혀 신체의 일부들만 남아있으니 도저히 눈뜨고 보기 힘들었다.

‘정말 끔찍하네.’

어두컴컴한 공간이지만 좀비 상태이다 보니 사물 분간이 어렵지 않았다.

좀비가 되어 편해진 점이 있다면 바로 이런 것이다. 신체의 감각이 인간이었을 때보다 확장되어 있으니까.

그러나 그렇다 해도 비급이 숨겨져 있던 곳을 찾는 건 쉽지 않았다.

‘저 안쪽 같은데? 아니야. 이쪽인가?’

이 암옥은 게임에서 그가 와봤던 곳이다. 그러나 PC 모니터를 통해서만 익숙할 뿐이지 현실에서는 매우 낯설었다.

‘비급이 숨겨진 곳은 암옥 복도에서 우측 일곱 번째 옥실 바닥이었어.’

로안은 차분하게 암옥의 복도를 따라 걷다가 하나의 옥실 앞에 멈췄다.

‘여기 같은데?’

철창은 부서져 있고 옥실 내부는 시뻘건 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누군가 갇혀 있다가 좀비에게 잡아먹힌 것이다.

‘여기야말로 바닥을 꽤 깊이 파야 해.’

비급이 얕은 곳에 숨겨져 있었으면 다른 죄수들에 의해 진작 발각되었을 테니까.

“그럼 또 땅을 파볼까?”

그가 삽을 쥐고 온 건 이 때문이다.

팍팍!

그렇게 한동안 흙을 퍼냈을까?

갑자기 뒤쪽에서 누군가 다가왔다.

‘뭐야? 누구지?’

개미 새끼 하나 살아남지 않은 이곳에 움직이는 존재가 있을 줄이야.

그런데 그곳엔 낯익은 녀석이 서 있었다.

다름 아닌 장삼.

녀석은 삽을 쥔 채 멀뚱히 서 있었다.

‘저놈 안 죽었나?’

분명 흑사문주 추마광의 흑사멸혼장에 온몸이 으스러진 채 죽었는데.

그러나 장삼은 블러디 좀비다.

만약 그때 머리와 심장이 완전히 박살나지 않았다면 죽지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놈의 입가에 흥건히 묻어있는 피를 보니 시체를 뜯어먹은 게 틀림없었다.

‘시체는 좀비에게 포션과도 같은 효능을 주긴 하지만.’

로안은 문득 물었다.

“잠깐, 너 설마 추마광의 시체를 뜯어먹은 거냐?”

순간 장삼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고 보니 놈에게 추마광이라고 하면 모를 것이다.

로안은 정정해서 물었다.

“혹시 좀 전에 죽인 놈의 시체를 먹었냐고?”

“큭! 그걸 어떻게 알았냐? 내가 그놈의 뼈와 고기를 한 점도 남기지 않고 모조리 먹어치웠다.”

“뭐? 그 시체를 다 먹어?”

“그래.”

장삼은 배를 두드리며 자랑스럽게 대답했다.

흑사문주 추마광은 허망하게 죽은 것도 모자라 좀비가 된 부하의 뱃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어차피 죽을 놈이 그렇게 됐으니 안타까울 건 없지만.

문제는 그렇게 되면 상당히 골치가 아파진다는 것.

‘크라겔이 추마광의 시체를 봐야 되는데.’

로안은 조만간 크라겔이 돌아와서 추마광의 시체를 발견하기를 기대했다. 블러디 좀비 장삼과 양패구상한 상태로 말이다.

그런데 장삼이 살아났을 뿐 아니라 크라겔의 시체까지 먹어버린 터라 상황이 복잡하게 되고 말았다.

‘크라겔은 추마광이 살아있는 것으로 생각할 테고, 어쩌면 나를 그놈으로 오인할지도 몰라.’

악마 크라겔에게 쫓긴다?

그건 악몽보다 끔찍한 일.

‘이럴 때가 아니야. 빨리 비급을 챙기고 최대한 멀리 피해야 한다.’

크라겔이 쫓아올 수 없는 곳으로 도주해야 안심이 될 것이다.

팍! 팍!

로안은 조급히 삽으로 흙을 팠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장삼이 성큼 다가왔다.

“이봐 멍청이! 삽질은 그렇게 하는 게 아니다.”

장삼은 로안이 시키지 않았는데도 삽질을 시작했다.

푹푹푹푹!

레벨 9 각성자 좀비이다 보니 그 속도는 로안보다 2배는 더 빨랐다.

‘저 녀석 정말로 내 종이 된 건가?’

아까는 긴가민가했지만 왠지 지금은 확신이 들었다.

물론 무리한 명령을 하면 듣지 않을 수도 있으니 적당히 눈치를 봐가며 부려먹어야 할 것이다.

“좋아! 좋아! 아주 잘하고 있어. 장삼 너 삽질에 재능이 있는데?”

“큭큭! 뭐 이 정도야. 너는 비켜라! 내가 다 파줄 테니.”

장삼은 신이 나서 더욱 열심히 살집을 했다.

역시나 칭찬은 좀비도 춤추게 한다.

‘아주 단순한 녀석이군.’

로안은 속으로 웃었다.

덕분에 작업은 쉽게 끝났다.

잠시 후 땅속에 파묻힌 목곽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됐으니 이제 그만 파라.”

로안은 장삼의 삽질을 멈추게 하고는 그 목곽을 집어 들었다. 뚜껑을 열자 꽤 오래 되어 보이는 서적 하나가 들어 있었다.

‘찾았다!’

흑사문의 실전 비급인 흑사광살도법(黑蛇狂殺刀法)!

그것이 로안의 손으로 들어온 것이다.

[당신은 흑사문의 숨겨진 비전 흑사광살도법을 얻었습니다.]

[당신의 명성이 10 증가합니다.]

[명성 510]

명성도 약간 올랐다.

*흑사광살도법

-봉인된 비급

-봉인 해제 : 레벨 10

봉인되어 있어 설명이 나오지 않지만 로안은 이 비급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검(劍)이 아닌 도(刀)가 있어야 펼칠 수 있는 무공.

그런데 도라고 해서 그리 거창한 것만 있는 게 아니다. 부엌에서 요리를 할 때 쓰는 식칼도 도의 일종이니까.

과일을 깎는 과도(果刀)와 같은 칼만 손에 쥐고 있어도 흑사광살도법을 펼치는데 지장이 없다는 뜻이다.

‘어서 각성하고 레벨 10이 되면 좋겠다.’

아쉽지만 아직은 사용할 수 없는 아이템이었다. 로안은 상의를 벗고 비급을 천으로 싸맨 후 등 뒤로 단단하게 묶었다. 그리고 그 위에 다시 상의를 입었다.

‘이제 탈출이다.’

서둘러야 한다.

추마광을 찾지 못한 크라겔이 확인 차 돌아올 가능성이 높지만, 그 못지않게 조심해야 할 건 레온 왕국의 군대다.

흑사문이 비록 양아치들이 몰려있던 사악한 문파라 해도 왕국 입장에서는 따박따박 세금을 바쳐온 수익원 중 하나.

심지어 흑사문주 추마광은 왕국의 남작 작위를 가진 귀족이었다.

그 흑사문이 멸망한 상태이니 이 상황을 왕궁에서 좌시할 리가 없었다.

‘곧 조사단이 들이닥쳐 샅샅이 수색하겠지.’

왕궁의 기사, 마탑의 마법사들은 물론 신전의 사제들까지 포함된 대규모 조사단.

‘여기에 있다간 뼈도 못 추릴 거야.’

하필 지금은 좀비로 변한 상태다. 걸리는 순간 변명조차 할 여지도 없을 것이다. 그냥 즉결 처형일 테니까.

그 즉시 로안은 흑사문 밖으로 이동했다.

* * *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로안의 예상대로 일단의 무리들이 흑사문으로 들이닥쳤다.

크라겔과 그의 권속 부하들이었다.

“근처를 아무리 뒤져도 놈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 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어쩌면 그놈은 아직 이 안에 숨어있을 지도 모릅니다.”

“모두 흩어져 놈을 찾아라!”

“예, 로드.”

흑색 후드로 얼굴을 가린 자들이 흑사문 곳곳으로 어둠처럼 스며들었다가 다시 나타났다.

“어디에도 살아있는 이들의 흔적은 느껴지지 않습니다, 로드.”

“하긴 놈이 이곳에 남아있었다 해도 그 사이 도주했겠지. 내가 놈을 너무 우습게 본 건가?”

그런데 그때.

크라겔의 오른팔이라 할 수 있는 권속 드보니아가 상기된 표정으로 나타났다.

“로드! 지금 블러디 좀비 두 녀석이 남쪽으로 이동하고 있어요. 통제를 벗어나 멋대로 움직이는 걸 보니 뭔가 수상합니다.”

좀비들 대부분은 현재 드보니아의 통제를 따르고 있다. 사방으로 흩어진 채 주변을 수색하던 좀비들에게 수상한 좀비들이 눈에 띄었다는 것.

“너의 통제를 따르지 않는 좀비가 있다고?”

“아마도 데릭의 권속들 같은데 현재 데릭의 행방은 묘연한 상황이에요.”

“그렇지 않아도 데릭이 보이지 않아 이상하다 생각했지.”

“추마광 놈이 데릭을 죽이고 무슨 수작을 부린 것이 아닐까요?”

“틀림없어. 어쩌면 놈이 좀비로 위장했을 수도 있다.”

크라겔은 굳은 안색으로 말을 이었다.

“곧 이곳으로 왕국의 조사단이 들이닥칠 것이다. 그 전에 여길 모조리 불태워라! 아무런 흔적조차 남지 않게!”

“예, 로드!”

곧바로 흑사문의 모든 건물들은 시뻘건 화염에 휩싸였다.

그 화염을 바라보는 크라겔의 두 눈에서 핏빛의 안광이 일었다.

“이제 우리는 그 좀비 놈들 아니, 추마광을 뒤쫓는다. 세상 끝까지라도 놈을 놓치지 마라.”

크라겔과 그의 권속들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 * *

한편 그 사이 로안은 흑사문 남동쪽 숲 지대를 달리고 있었다.

“히히히!”

“키키!”

그때 그 앞을 좀비 두 놈이 가로막았다.

‘여기도 좀비들이?’

사방에 크라겔의 부하 좀비들이 깔려 있을 것이라 예상은 했다. 그래서 최대한 은밀히 움직이려했지만, 그러기엔 좀비들의 숫자가 너무 많았다.

“크크, 걱정마라. 저 따위 놈들은 이 형님이 없애주마.”

‘뭐? 형님?’

언제부터 형님이 된 거냐?

그 사이 장삼은 앞으로 달려 나갔다. 그의 손에는 곡괭이가 들려 있었는데 이는 좀비들이 쥐고 있던 무기를 빼앗은 것이었다.

“크큭! 뒈져랏!”

괴력의 장삼은 곡괭이를 가벼운 나뭇가지처럼 휘둘렀다.

퍽! 퍽!

놀랍게도 딱 두 방에 상황은 종료되었다.

곡괭이에 머리가 터져나가자 좀비들은 그대로 쓰러져 움직이지 않았다.

‘대단하군.’

지금의 로안은 흉내도 낼 수 없는 정확하면서도 강력한 공격이다.

장삼이 공연히 레벨 9 블러디 좀비가 아닌 것이다.

“흐흐, 어떠냐? 이 형님의 솜씨가!”

계속 형님이란다.

로안은 어이가 없었지만 지금은 장삼을 칭찬해서 춤추게 만들어야 할 때다.

“그래. 형 정말 대박이다!”

그러자 장삼이 흐뭇한 듯 히죽 웃었다.

“크큭! 어떤 녀석들이든 다 죽여줄 테니 걱정마라.”

설마 대박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들은 건가?

하긴 여긴 게임 세계관에서 비롯된 세상이니 그럴 수도 있겠다만.

어쨌든 지금은 여기서 머뭇거릴 때가 아니다.

‘지금쯤 크라겔도 이 상황을 눈치 챘겠지. 그놈의 추적을 피하려면 다른 방법이 없어. 일단 저주받은 숲으로 피한다.’

여기서 조금만 더 남쪽으로 내려가면 항상 짙은 안개로 뒤덮여 있는 저주받은 숲이 나타난다.

그 숲에는 온갖 흉악한 괴물들이 득실거리는 것은 물론이고, 던전들도 몇 개 존재한다.

‘아직 초반이라 거기에 던전이 있다는 사실은 누구도 모른다. 물론 나만 빼고.’

특히 숲의 초입에 미궁의 형태로 되어 있는 은밀한 던전이 하나 있다.

그곳으로 피하면 크라겔의 추적을 완벽하게 따돌릴 수 있을 것이다.

‘그놈들이 벌써 거의 따라 붙은 것 같으니 서두르자.’

잠시 후 로안은 잿빛 안개로 뒤덮인 숲 앞에 도착했다.

‘저게 저주받은 숲인가?’

게임이 아닌 현실에서 보는 건 처음이다. 잿빛과 핏빛이 뒤섞여 있는 안개 숲.

‘정말 음산하네.’

귀신이 나와도 이상할 게 없을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보니 로안 역시 좀비다. 귀신이나 좀비나 정상인 입장에서 보면 그게 그것일 것이다.

“키키키!

그 사이 몰려드는 좀비들의 숫자는 점점 많아졌다.

“크히히! 모조리 뒈져랏!”

다행히 앞을 막는 녀석들은 장삼이 곡괭이를 휘둘러 쓰러뜨렸다.

‘어? 저건?’

그런데 그렇게 쓰러지던 좀비들 중 하나가 뭔가를 드롭했다.

검은 액체가 들어있는 작은 유리병.

‘저거 혹시 어둠의 물약 아니야?’

좀비들이 드롭하긴 하지만 드롭률이 상당히 낮은 편이라 기대도 안했는데.

뜻밖의 득템이다!

‘다른 건 몰라도 저건 챙겨야지.’

어둠의 물약을 마시면 언데드 마스터의 가호 기간을 좀 더 늘릴 수 있다.

앞으로 이틀 안에 각성석을 확실히 얻는다는 보장이 없는 터라 그에게 있어서는 어둠의 물약이 가히 생명의 물약과 다름없는 것이다.

“저쪽이다!”

“저기에 그놈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때 크라겔 패거리가 멀리서 모습을 드러냈다.

‘에잇!’

그래도 로안은 잽싸게 달려가 물약을 주웠다.

[어둠의 물약을 얻었습니다.]

몬스터 드롭 아이템을 주워서인 것일까?

시스템의 음성이 친절하게도 이 물약의 정체를 확실히 알려줬다.

‘좋았어!’

로안은 쾌재를 부르고는 그 즉시 잿빛 안개 속으로 진입했다.

“형 이쪽으로!”

“알았다.”

장삼도 좀비 하나를 쓰러뜨리고 로안을 뒤따라 안개 속으로 뛰어들었다.

< 탈출 (2) > 끝

ⓒ 오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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