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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으로 독존한다-7화 (7/240)

< 위기를 기회로 (2) >

‘추마광이 저런 사술을 알고 있었나?’

로안은 눈으로 보지 않았지만 청각만으로도 지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파악이 가능했다.

‘부하를 자신의 모습으로 변신시킨 후 그 자신은 귀식대법으로 철저히 숨어서 대기한다?’

물론 추마광이라면 자신의 부하를 희생시켜 살아남는 짓을 하고도 남을 자다.

그러나 크라겔이 두 눈을 부릅뜨고 있는 상황에서 도망치기란 불가능해 보였는데, 이런 기막힌 수법을 쓸 줄은 상상도 못했다.

‘어쨌든 이제야 알겠군.’

추마광이 크라겔의 포위를 뚫고 도주한 건 게임에서도 상당히 미스터리한 일이었다.

그는 흑사문 밖이 아닌 내부에 숨어 있었다. 크라겔은 추마광에게 완벽하게 속은 것이다.

‘잔머리 하나는 알아줄만하네.’

그러나 로안은 골치가 아팠다.

‘근데 하필이면 내 밑에 숨어 있는 거야?’

추마광이 죽어 마땅한 놈이긴 하지만, 오늘 당장 놈이 살아나건 말건 로안에게는 중요한 일이 아니다.

그 자신이 오늘 살아남는 게 중요할 뿐.

‘죽음 위장술은 8시간이면 풀리는데.’

그때 섣불리 움직였다가 추마광에게 걸리게 되면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잠깐, 그러고 보니 그게 아니야.’

추마광은 지금 귀식대법을 펼치고 있다. 귀식대법 중에는 적의 어떤 공격도 방어하지 못한다.

말 그대로 무방비 상태!

따라서 귀식대법 중 적의 공격을 받지 않도록 남들이 절대 찾을 수 없는 장소에 숨어있어야 하는 건 절대 상식이다.

물론 추마광은 실제로 그런 장소를 잘 선택했다. 그 누구도 그가 감옥 그것도 좀비의 사체 밑에서 귀식 대법을 펼치고 있음을 알지 못할 테니까.

단 한 명 로안만 빼고 말이다.

‘나의 위장술이 풀릴 때까지 추마광이 계속 귀식대법 상태라면?’

아까는 추마광에게 걸려 죽임을 당할 거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다.

놈은 귀식대법으로 무방비 상태지만, 로안은 멀쩡히 움직일 수 있다.

그것도 괴력의 블러디 좀비 상태로.

‘이거 잘하면 내가 추마광을 죽일 수도 있겠는데?’

레벨 30의 추마광을 레벨 0의 비각성자가 죽인다?

정말로 말도 안 되는 얘기지만, 귀식대법을 펼치고 있는 상황이라면, 게다가 로안이 괴력의 블러디 좀비 상태라면 결코 말이 안 되는 일이 아니다.

‘잘하면 대박이다.’

로안이 흑사문의 문주 추마광을 죽이는 쾌거를 달성한다는 뜻이다.

‘이런 경우 비록 경험치는 얻지 못하지만 대신 명성을 얻을 수 있지.’

레벨 0의 비각성자 상태에서는 적을 아무리 죽여도 경험치 획득을 할 수 없다.

그러나 명성은 각성 여부와 상관없이 얻을 수 있는 카오니아 세계 시스템 중 하나다.

명성이 높아야 할 수 있는 일들도 적지 않은 터라 미리 높여둬서 나쁠 건 없다.

‘물론 그놈이 먼저 깨어난다면 헛꿈에 불과하지만.’

로안은 추마광의 동정을 살피며 어서 시간이 흐르길 기대하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어느덧 사방에서 들려오던 처참한 비명들이 완전히 잦아들었다.

좀비들의 거친 숨소리 외에는 모든 것이 조용했다.

흑사문의 무사들은 물론 노예들과 식속들, 심지어 짐승들이나 벌레들까지 모조리 죽었으니까.

“모두 죽였습니다, 로드.”

“이제 흑사문 내에 살아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사옵니다, 로드.”

검은 후드를 눌러쓴 자들이 한 사내 앞에 넙죽 엎드린 채 말했다.

그러자 사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또한 암흑처럼 검은 후드를 눌러쓰고 있었는데, 이내 그 후드를 뒤로 넘겨 얼굴을 드러냈다.

신비한 은발 아래 가히 조각처럼 아름다운 이목구비를 가진 청년.

그가 바로 흑마법사 크라겔이었다.

“그런데 데릭이 안 보이는구나.”

그러자 그의 권속들이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저희도 잘 모르겠습니다.”

“데릭 녀석은 아까부터 보이지 않았습니다.”

크라겔의 두 눈이 사나워졌다.

“감히 허락도 없이 임무지를 이탈하다니! 데릭을 보는 즉시 내 앞으로 데려와라.”

“예, 로드.”

크라겔은 그 말을 끝으로 자신의 발아래 있는 한 구의 시체를 내려다봤다.

흑사문주의 신물이라 할 수 있는 흑사패도를 한손에 쥔 채 처참히 죽어있는 시체.

“흐흐흐······.”

그 시체를 보며 크라겔은 웃는지 우는지 알 수 없는 기괴한 소리를 냈다.

그러던 일순.

무정하게만 보이던 그의 두 눈에 눈물이 약간씩 고이기 시작했다.

“이제 그만 편하게 눈을 감아, 누나. 이 쓰레기 같은 놈이 드디어 죽었어.”

10여 년 전 죽은 누나 제니아를 떠올리며 크라겔은 한없이 슬픈 표정을 지었다.

지금 이 순간 보면 그는 사악한 흑마법사도, 좀비 군단을 이끄는 잔혹의 살육자도 아니었다.

억울하게 죽은 누나의 복수를 이루고 눈물을 흘리는 평범한 인간 청년이었다.

그러나 숙연했던 것은 잠시일 뿐 곧바로 그의 몸에서 섬뜩한 기세가 뿜어져 나왔다.

‘이 날을 위해 나는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다. 하지만 후회하지 않는다. 그만한 힘을 얻었으니까.’

그의 두 눈에 살짝 고였던 눈물 또한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이건 시작일 뿐, 앞으로 나는 더욱 강해질 것이다. 세상의 모든 것들을 나의 발아래 둘 것이다.’

그는 차갑게 웃으며 다시 땅바닥에 널브러진 추마광의 시체를 내려다봤다.

“큭! 꼴좋구나, 추마광. 네놈은 내가 이날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를 것이다.”

그러던 일순.

그의 붉은 두 홍채에서 섬뜩한 빛이 일었다.

‘······!’

그는 쭈그려 앉은 채로 죽은 추마광의 사체를 다시 한 번 살폈다.

‘아무래도 이상해. 아무리 죽었다지만 이놈에게서 풍겨나는 기운은 추마광에 비하면 너무 형편없단 말이야.’

사람이 죽으면 기운이 사라지지만 생전에 가졌던 기운의 흔적은 남아 있다.

보통 사람은 그 흔적을 볼 수 없지만 크라겔은 달랐다.

당연히 추마광일 것이라 생각했다.

의심조차 하지 않고 있었는데.

‘아무리 봐도 이놈은 추마광이 아니야.’

비로소 그는 이 시체에 뭔가 수작이 부려져 있음을 짐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가 뭐라 주문을 외우며 시체의 얼굴을 문질렀다.

그 순간 추마광의 얼굴이 아닌 전혀 다른 이의 얼굴이 드러났다.

“부문주 이도굉! 어쩐지 좀 더 발악해야 정상인 놈이 너무 쉽게 죽었다 했다.”

크라겔은 낭패한 얼굴로 주위를 돌아봤다.

‘설마 그놈이 이미 이곳을 벗어난 건가?’

그가 살펴봐도 흑사문 내에서는 생기를 가진 존재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추마광이 흑사문에 남아있다면 시체 상태라야 가능한 일.

크라겔은 이를 갈았다.

“추마광! 이 쥐새끼 같은 놈! 네놈이 감히 도주할 수 있을 것 같으냐?”

곧바로 그의 호통이 사방을 울렸다.

“찾아라! 놈이 결코 멀리 가지 않았을 것이다!”

“예, 로드!”

그의 권속들이 좀비들을 지휘해 흑사문 주변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좀비들이 흑사문을 빠져나가자 흑사문은 정적에 휩싸였다.

크라겔이 정말로 개미 새끼 한 마리 살려두지 않은 상태라 남아 있는 건 부서진 건물들과 처참하게 뭉개진 시체 조각들뿐이었다.

* * *

한편 로안은 마음을 졸이며 죽음 위장술이 풀리길 기다렸다.

‘시간 더럽게 안 가는구나.’

8시간이 이토록 긴 시간이었나 싶을 정도였다.

그렇게 다시 얼마의 시간이 흘러 창밖으로 새벽의 여명이 비춰올 무렵.

스스스.

로안의 반쯤 부서진 얼굴이 저절로 복원되기 시작했다. 흘러나간 내장도, 찢겨져 나가 뼈만 남았던 팔다리도 정상으로 돌아왔다.

물론 인간이 아닌 좀비로서의 모습으로 정상일 뿐.

그의 외모는 여전히 흉악하기 이를 데 없어 보이는 블러디 좀비였다.

“후우! 드디어 풀렸다.”

로안은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길었던 지난밤은 악몽과도 같았다.

지금은 조용해졌지만 사람들이 절규하며 죽어가며 질렀던 비명들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크라겔 이 미친 놈!’

흑사문의 양아치들이야 죽어 마땅하지만 노예들과 식솔들이 대체 무슨 잘못인가?

아무리 누나의 복수라지만 악마와 같은 행동을 하는 크라겔의 만행에 치가 떨렸다.

하지만 놈의 만행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이들이 그의 손에 죽어갈지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그런 비극적인 미래를 알고 있으면서도 현재 로안이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그 혼자 살아남는 것도 힘에 부치는 상황이니까.

‘머뭇거릴 때가 아니야.’

추마광이 귀식대법에서 깨어나기 전에 해치워야 한다.

팍팍!

괴력의 좀비이다 보니 손으로도 땅이 어렵지 않게 파졌다.

그러나 추마광이 지둔술을 펼쳐 제법 깊은 곳으로 내려간 터라 손으로 파다보면 끝이 없을 듯했다.

‘이럴 시간이 없어. 어디 삽이 있을 텐데.’

땅을 파는 데는 삽만 한 것이 없다.

로안은 철창을 부순 후 감옥 밖으로 나가 창고를 찾았다.

‘으! 정말 끔찍하군.’

어딜 가도 피바다였다. 그야말로 지옥 중에서도 상지옥을 방불케 하는 참상이 벌어져 있었다.

생각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이곳을 떠나고 싶었지만, 잘하면 대량의 명성을 얻을 수 있는 이 기회를 놓치긴 너무 아까웠다.

‘추마광 같은 나쁜 놈은 어차피 죽어 마땅하니까 내가 죽인다.’

크라겔이 알면 펄쩍 뛸 일이다.

보통 사람이라면 이 경우 고마워하겠지만.

‘그놈은 복수를 대신 해준다고 고마워할 놈이 아니지.’

크라겔은 직접 복수를 해야 직성이 풀리는 자다.

‘내가 추마광을 죽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되레 나를 죽이려 할 거야.’

혹시라도 놈이 돌아올 수도 있으니 그 전에 빨리 삽이나 곡괭이를 찾아 작업을 마쳐야 한다.

‘저기 삽이 있군.’

굳이 창고를 찾을 필요가 없이 삽들이 바닥에 널려 있었다. 따로 무기가 없던 노예들이 곡괭이나 삽을 무기로 좀비들과 싸우다 죽은 것이다.

그런데 그때.

무너진 건물의 한 곳에서 뭔가가 잔해를 밀어내며 벌떡 일어났다.

커다란 덩치를 가진 좀비였다.

‘저놈은?’

다름 아닌 장삼이었다.

‘저놈이 살아있었나?’

하긴 보통의 좀비도 아닌 블러디 좀비였으니 살아있는 건 당연한 일.

문제는 왜 놈이 크라겔을 따라가지 않고 여기에 남았냐는 것이다.

“크으······! 너는 누구냐? 그보다 나는 누구? 여긴 또 어디냐?”

더욱 황당한 건 장삼이 로안을 보더니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하긴 놈은 그냥 좀비가 아니라 상당한 지능을 가진 블러디 좀비다.

인간이었을 때의 기억을 상실했을 뿐 사고력은 인간 못지않다.

【이름】 장삼

【레벨】 9

【신분】 방랑자

【직업】 블러디 좀비

【소속】 없음

그런데 이상한 부분이 있었다.

‘방랑자? 소속이 없다고?’

본래라면 장삼은 당연히 크라겔 소속이어야 한다.

그런데 어째서 소속이 사라진 것일까?

‘잠깐! 데릭이 혹시 죽었다면?’

데릭이 승급 아이템을 얻으려고 호수 밑 던전에 들어갔다가 죽었다면?

그럼 말이 된다.

장삼은 데릭이 블러디 좀비로 만들었기에, 데릭이 로드라 할 수 있으니까.

로안은 특별한 주문으로 속박의 사슬을 끊어버렸기에 권속에서 벗어날 수 있었지만, 장삼은 계속 데릭의 권속으로 남아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데릭이 죽었다면 더 이상 장삼을 구속하는 로드는 없다.

“마, 말해라. 나는 누구고 여기는 어디냐?”

“너는 장삼이다.”

“장삼?”

“그래. 이제부터 너는 내 말을 따라야 한다.”

언데드가 주인을 잃고 혼란에 빠져있을 때 이런 식으로 주인 행세를 하면 간혹 따를 때가 있다.

그래서 해본 것이지만 장삼은 그 즉시 험악한 눈빛으로 기분 나쁘다는 듯 로안을 노려봤다.

“큭! 귀찮게 하지 말고 꺼져라. 난 너 따위 놈의 말을 따를 생각이 없으니까.”

장삼을 부릴 수만 있으면 여러모로 편해질 텐데 아쉬운 일이었다.

비록 같은 블러디 좀비지만 장삼은 레벨 9의 각성자다. 현재의 로안보다 훨씬 강한 전투력을 가지고 있었다.

‘어쩔 수 없지. 저놈은 무시하고 빨리 땅이나 파자.’

장삼으로부터 적의는 없어 보였다. 신경 쓰지 말고 내버려두면 어디론가 사라지든지 할 것이다.

로안은 즉시 삽 한 자루를 들고 감옥으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추마광이 숨어 있는 쪽의 흙을 퍼냈다.

푹! 푸욱!

그런데 잠시 삽질을 했을까?

누군가 다가와 로안의 옆에서 함께 삽질을 하기 시작했다.

푹! 푹! 푸푹!

다름 아닌 장삼.

놀랍게도 그의 삽질은 매우 능숙했다. 로안보다 훨씬 빠르면서도 많은 양의 흙을 퍼내고 있었다.

“뭐냐 너?”

“그냥. 왠지 재밌어 보여서.”

장삼이 키득 웃으며 대답했다.

그러면서도 삽질을 멈추지 않는다.

귀찮게 하지 말고 꺼지라고 말한 녀석이 어느새 다가와 함께 삽질을 하다니.

‘이 녀석의 태도가 퉁명스럽긴 하지만, 아까 내 말이 통한 게 아닐까?’

그렇지 않고서야 삽질을 도와줄 리 없는 것이다.

‘이거 잘하면?’

부하가 생길 지도 모른다.

그냥 좀비도 아니고 레벨 9 블러디 좀비 부하가!

< 위기를 기회로 (2) > 끝

ⓒ 오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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