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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으로 독존한다-5화 (5/240)

< 블러디 좀비 (2) >

“네놈 정말 그 장소를 알고 있긴 하는 거냐?”

데릭은 금세라도 로안을 때려죽일 듯 험악한 눈빛으로 물었다.

[어둠의 기운이 침투합니다.]

[에치스의 독에 중독된 당신의 육체 재구성 속도가 빨라집니다.]

[육체 재구성 중 47%]

데릭의 말대로 로안의 좀비화가 더욱 빠르게 진행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로안은 당황하지 않고 차분히 다시 어둠의 물약을 목구멍으로 넘기며 대답했다.

“흑사문 남쪽 절벽 아래 있는 호수 밑에 숨겨진 던전이 있어. 네가 원하는 건 거기 있다.”

“호수 밑에 던전이?”

“그래. 호수 바닥을 잘 살펴봐.”

그러자 데릭이 인상을 구겼다.

“큭! 헛소리 마라. 내가 지금껏 그 호수를 안 뒤져봤을 것 같아? 거기 어디에도 던전 같은 것 없었어.”

“그렇겠지. 그곳 던전은 하루 중 아주 잠깐만 열리니 아무 때나 발견할 수 있는 건 아니야.”

“열리는 시간이 따로 있다고?”

“정오에만 아주 잠시 그 문이 열리거든. 그러다 금세 던전의 문이 닫히니 그 앞에서 기다렸다가 바로 들어가지 않으면 하루를 꼬박 기다려야 한다.”

로안은 계속 어둠의 물약을 마시며 대답했다.

각성자의 신체가 아니다 보니 이 물약은 아주 천천히 마셔야 한다.

사실 어둠의 기운이 들어있는 이 물약은 보통 사람이 마실 경우 자칫 미쳐버리거나 즉사할 수도 있을 정도로 위험한 증상을 보일 수도 있었다.

‘좀 괴롭긴 하지만 그래도 몸이 잘 버텨주니 다행이야.’

뜻하지 않게 좀비화가 진행되고 있어 어둠의 물약을 마시고도 죽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대신에 좀비화 진행 속도가 빨라졌다.

여기서 다른 방법을 쓰지 않는다면, 잠시 후 로안은 과거의 기억들을 대부분 잃어버린 채 데릭의 명령에 복종하는 블러디 좀비로 변할 것이다.

“정말 정오에만 던전이 열린다는 거냐?”

데릭은 여전히 미더워하지 않은 표정이었다.

설령 맞다고 해도 한낱 노예에 불과한 로안이 그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이 이상했으니까.

로안은 큭 웃으며 대답했다.

“그럼 직접 확인해보든가. 지금부터 서둘러야 정오가 되기 전에 남쪽 절벽 아래 호수에 도착할 수 있을 텐데.”

그러자 데릭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끄덕였다.

“만약 거짓말이라면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

데릭은 로안이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철창문을 잠그고는 어딘가로 사라졌다.

로안이 말한 호수 밑 던전에 대해 확인하러 간 것이 분명했다.

‘안 됐지만 가면 넌 죽는다, 데릭.’

로안은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니다.

정말로 호수 밑 던전은 존재한다.

그리고 그곳에 고대 검은 뿔 도마뱀의 피가 담긴 용기도 존재한다.

그러나 거기는 레벨 19 연금술사 혼자서 감당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초반이 아닌 중반은 되어야 발견될 고렙 던전이니까.

‘분명 크라겔에게 말하지 않고 혼자 가겠지.’

크라겔이라면 그 던전이 매우 위험한 곳임을 간파해 섣불리 들어가지 않겠지만, 데릭은 빨리 20레벨로 승급하고 싶어 안달이 나 있는 상태다.

분명 혼자 몰래 가서 보물을 챙기려 할 것이고, 그러다 끔찍한 최후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이런 걸 바로 손 안대고 코푼다고 하는 거다.’

로안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데릭은 건드릴 사람을 건드렸어야 했다.

‘내가 어쩌다 노예가 되었지만 그래도 이 게임에 통달한 사람이야. 그 따위 녀석 하나 골로 보내는 건 일도 아니지.’

끔찍한 독에 중독되어 블러디 좀비가 될 위기에 처해 있지만 로안은 이렇게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래도 처음으로 호의를 베풀어서 좋게 생각했는데 속으로 그런 흉심을 숨기고 있을 줄은 몰랐네.’

같은 노예라고 너무 쉽게 믿었다.

앞으로는 누구든 선량하게 다가온다고 해도 함부로 믿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보다 이제부터가 중요해.’

로안은 마지막 남아있는 검은 액체를 입안에 모두 털어 넣었다.

‘크으윽!’

목구멍에서 불이 났다.

마치 도수 80정도 되는 술을 마신 것처럼 화끈했다.

츠츠츠!

어둠의 물약이 뜨거운 기운으로 변해 요동치며 몸 안을 휘돌았다.

[육체 재구성 중 67%]

[육체 재구성 중 78%]

[육체 재구성 중 86%]

붉게 충혈 되어 있던 두 눈이 온통 검게 변하는 순간 로안은 괴수가 된 듯 힘이 넘치는 걸 느꼈다.

‘흐읍!’

이건 그냥 나오는 힘이 아니다.

좀비로 변한 육체에서 나오는 것이다.

지금 상태에서는 팔 다리가 떨어져나가도 죽지 않는다. 떨어진 자리에 붙이면 금세 재생될 것이다.

그것이 바로 블러디 좀비의 사기적인 생존력이다.

츠츠츠!

그 사이 어둠의 기운이 뇌 속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육체 재구성 중 90%]

정신이 혼미해지는 순간.

‘바로 지금이야. 이 순간을 놓치면 나는 영원히 좀비로 살게 된다.’

인간의 의식은 존재하지만 기억은 사라진 채로 말이다.

사실 지금과 전개되는 상황과는 다소 다르지만, 게임에서 이와 비슷한 지경에 처한 적이 있었다.

비각성자 상태에서 에치스의 독에 중독되어 블러디 좀비가 될 뻔한 적 있었으니까.

그때 터득했던 생존의 요령을 현실에서 써먹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무드어으···니우즈···! 어둠의 기운으로 명한다!’

어둠의 저주를 어둠으로 제압한다!

그가 언데드 마스터로 플레이를 할 때 습득했던 상위 주문!

미량뿐인 어둠의 기운으로 펼치는 만큼 한계는 존재하지만.

[언데드 마스터의 가호가 발동합니다.]

[당신의 정신을 어둠이 보호합니다.]

[어둠의 기운 지속 시간 : 72시간]

[어둠의 기운이 소진되면 언데드 마스터의 가호도 사라집니다.]

‘후우! 됐다.’

이로써 로안은 정신이 아주 맑아졌다.

주문이 예상대로 성공적인 위력을 발휘한 것이다.

[당신의 신분이 데릭의 권속에서 방랑자로 바뀌었습니다.]

[당신의 소속이 크라겔에서 없음으로 바뀌었습니다.]

언데드 마스터의 가호 덕분에 데릭의 권속에서도 벗어났다.

게다가 소속도 더 이상 크라겔이 아니었다.

[육체 재구성 100%]

[육체 재구성이 완료되었습니다.]

[당신은 블러디 좀비가 되었습니다.]

【이름】 로안

【레벨】 0

【신분】 방랑자

【직업】 블러디 좀비

【소속】 없음

【코인】 0

어느새 검게 변했던 그의 두 눈이 다시 시뻘겋게 변했다. 피부 또한 검붉은 돌기들이 곳곳에 튀어나왔고, 입은 평소보다 두 배는 더 커졌다.

‘뭔가 역한 느낌이지만 기운은 펄펄 난다.’

이제 그의 육체는 완전히 좀비가 되었다. 그것도 보통의 좀비보다 훨씬 강력한 블러디 좀비!

다행히 그의 정신은 멀쩡했다.

그러나 정신과 육체의 부조화로 인해 뭔가 역한 느낌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냥 잠시 몸만 이상해진 것뿐이야. 절대로 정신 줄을 놓으면 안 돼.’

로안은 이를 악물었다.

살아나려면 마음을 독하게 먹어야 한다.

특히 3일 후면 어둠의 기운이 소진되며 언데드 마스터의 가호가 사라진다.

그때까지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그는 정신까지 블러디 좀비가 되고 말 것이다.

그뿐이 아니다.

허락 없이 언데드 마스터의 기운을 쓴 대가로 어떤 끔찍한 저주가 임하게 될지 모른다.

‘선택의 여지가 없어. 3일 안에 무조건 각성석을 구해 각성자가 되어야 한다.’

각성은 그가 레벨 1의 인간으로 완전히 재탄생하는 것이라 이전에 가졌던 모든 저주에서 완전히 풀려나게 된다.

그게 현재로서 블러디 좀비의 저주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

그러나 그 또한 여기서 살아난 이후의 일이다.

좀비가 된 덕분에 다른 좀비들의 공격으로부터는 안전해졌지만, 그렇다고 오늘밤의 재앙에서 살아남는다는 보장은 없으니까.

‘그래도 좀비가 생존력 하나는 죽이지.’

기왕이면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위기에서 기회를 찾는다고 했으니까.

‘머리와 심장만 안 부서지면 절대 죽지 않으니까.’

최악의 상황이 벌어지지 않도록 철저히 주의해야 할 것이다.

‘일단은 최대한 눈에 띄지 않는 게 좋아.’

아무리 좀비들이 먹잇감으로 인식하지 않는다 해도 놈들의 주의를 끌어서 좋을 건 없으니까.

그런 면에서 보면 이곳 감옥이야 말로 최고의 은신처다.

무엇보다 그 말고는 갇혀 있는 사람도 없어 한적하기도 했다.

‘근데 배가 무지 고프다.’

좀비의 육체를 가졌을 경우 가장 골치 아픈 문제는 다름 아닌 식욕이다.

보통의 좀비는 물론이고 블러디 좀비라 해도 이 식욕을 제어하기가 매우 힘들다. 특히 인간에 대한 식욕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러나 로안의 경우 정신을 어둠의 기운이 되레 보호해주고 있어 좀비의 식욕이 아닌 인간의 식욕이 유지되고 있었다.

즉, 인간을 먹겠다는 욕구는 전혀 없고, 라면이나 김치찌개, 김밥과 같은 메뉴만 끝없이 떠올랐다.

‘미치겠네. 뭐 좀 먹을 것 없나?’

그렇다고 먹을 걸 달라고 소리를 칠 수도 없는 일.

흑사문의 무사들이나 노예들이 지금 로안의 모습을 보면 기겁할 테니까.

‘차라리 누워 있자.’

로안은 심한 허기를 애써 참으며 시체처럼 누워 있었다. 물론 거적 등으로 최대한 몸을 덮는 걸 잊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로안은 누워 있는 상태로 위쪽 창문에 비친 빛을 통해 대충 시간은 체크하고 있었다.

정오가 지난 지는 한참.

아직 날은 밝지만 곧 어두워질 것이다.

“크아아악!”

그때 갑자기 바깥 어디선가 처참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으아아! 사람이 사람을 먹는다!”

“으아아악!”

연이어 들리는 소란 소리와 비명들.

갇혀 있는 터라 밖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볼 수 없지만 상황은 충분히 짐작이 갔다.

‘벌써 재앙이 시작된 거야.’

아마도 밖에서 침투한 좀비가 아니라 내부에서 만들어진 좀비들이 먼저 활동을 하고 있을 것이다.

블러디 좀비 말이다.

‘장삼 놈도 지금쯤 미쳐 날뛰고 있겠군.’

로안 또한 특별한 방법으로 해독을 하지 않았다면 이미 에치스의 독이 뇌에 침투해 지금쯤 본래의 자신을 잃어버렸을 것이다.

“마물들을 죽여라!”

“저쪽이다!”

“으아악!”

“크아아악!”

무사들이 분주히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괴물들은 좀비라는 것들이다. 머리나 심장을 박살내면 죽일 수 있으니 인정사정 둘 것 없다!”

“예, 문주님!”

무사들에게 명령을 내리는 자의 음성은 분노에 가득 차 있었다.

“눈알이 시뻘겋게 변한 놈이나 피부가 이상한 놈들은 한 놈도 빠짐없이 찾아내 없애라.”

“문주님의 명을 받듭니다!”

문주라면?

로안은 한 명의 인물을 떠올렸다.

‘추마광! 그놈인가?’

흑사문주 추마광!

양아치들의 우두머리지만 그의 무공은 상당히 강한 편이고, 초반부터 레벨이 무려 30이나 된다.

‘추마광! 그놈도 카오니아 세계의  악질 민폐 캐릭 중 하나였지.’

양아치들의 수괴답게 추마광은 아주 나쁜 놈이다. 살인, 강간, 약탈 등등 온갖 못된 짓은 다 저지른다.

특히나 초반 이전의 비하인드 스토리 중 하나에 놈이 저지른 아주 끔찍한 만행이 있다.

흑사문의 재앙이 도래하기 대략 10여 년 전.

추마광은 부하들과 함께 한 마을을 습격해 남자는 죽이고 여자는 강간하며, 어린 아이는 노예로 삼는 등 평소 지론대로의 나쁜 짓을 했다.

그런데 그때 강간하고 죽인 여자 중 하나가 바로 하필이면 크라겔의 누나였다.

당시 크라겔은 노예로 잡혔다가 탈출했고, 온갖 곡절을 겪어 흑마법사가 된다.

오늘의 재앙도 크라겔의 복수에서 비롯된 것이다.

‘추마광이야말로 크라겔이라는 악마가 탄생하는데 단단히 일조를 한 놈이야.’

어떻게 보면 카오니아 세계에 가장 큰 민폐를 끼치는 존재다.

추마광만 아니었다면 크라겔이라는 치 떨리는 대악종이 어쩌면 생겨나지 않았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하지만 그놈은 오늘 용케 도망친다. 흑사문은 폐허로 변하지만 말이야.’

추마광이 어떻게 도망치는 지는 로안도 알지 못한다. 다만 놈의 생존력이 매우 뛰어나 이후로도 꽤 오랫동안 살아남는 것으로 알고 있다.

심지어 흑사문을 재건하기도 한다.

지금보다 훨씬 강력한 문파로 말이다.

물론 그러다 크라겔에게 끔찍하게 죽임을 당하고 말지만.

“으으! 좀비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밖에서도 좀비들이 공격해 옵니다!”

그 사이 상황은 점점 더 심각해져갔다. 시커먼 구름이 하늘을 뒤덮어 늦은 오후지만 밤처럼 어두워져 있었다.

“으아아악!”

“크아악!”

비명 소리가 끝없이 이어졌다.

그러나 재앙은 이제 시작일 뿐 오늘밤 내내 좀비들의 살육은 계속될 것이다.

살아있는 생명체는 인간이건 짐승이건 좀비들이 모조리 다 죽이고 잡아먹고 나야 살육이 멈출 테니까.

“으아악! 살려줘!”

그때 누군가가 감옥 쪽으로 도망쳐왔다.

피투성이가 된 무사 한 명.

그 뒤로 덩친 큰 좀비 하나가 키득거리며 따라왔다. 놈은 핏발이 가득 맺힌 눈알을 부라리더니 입을 쩍 벌리며 달려들었다.

“키키키! 도망쳐도 소용없어!”

“크윽! 이봐, 장삼! 나라고! 나! 정신 차려, 이 친구야!”

좀비는 다름 아닌 장삼이었다.

“친구는 무슨? 키키! 넌 나의 먹잇감일 뿐이다.”

블러디 좀비는 이렇게 말도 멀쩡하게 한다. 보통의 좀비와 다른 점 중 하나다.

“크카카! 아주 맛있겠구나!”

“아악! 살려줘!”

“조용히 해.”

장삼은 피투성이 무사를 주먹으로 후려쳐 쓰러뜨리고는 그대로 뜯어먹기 시작했다.

으직! 으드득! 우걱우걱!

“크아아악!”

커다랗게 변한 입으로 사람을 산채로 잡아먹는 괴물.

로안은 자신도 모르게 일어나 앉아 그 모습을 바라봤다.

‘으! 젠장!’

진짜 지옥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스윽.

장삼은 빠르게 사람 하나를 먹어치우고도 아쉬운지 입맛을 다시며 주위를 살폈다.

그러다 로안과 눈이 마주쳤다.

“이봐, 넌 왜 그 안에 있는 거냐?”

장삼이 물었다.

그는 블러디 좀비가 되면서 로안에 대한 기억도 사라졌다.

그러나 로안에게는 아무런 식욕을 느끼지 못했다. 그와 같은 블러디 좀비로 인식하고 있을 뿐이다.

“난 상관하지 말고 거기 탁자 위에 있는 열쇠로 이 문 좀 열어라.”

장삼으로부터 별다른 적의가 느껴지지 않아 혹시나 하고 말해봤다.

“크큭! 그러지.”

장삼은 아주 쿨하게 로안의 철창문을 열어주고는 다시 감옥 밖으로 나갔다.

< 블러디 좀비 (2) > 끝

ⓒ 오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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