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으로 독존한다-3화 (3/240)

< 이 현실 내가 알던 게임인데? (2) >

“쯧, 그러게 왜 장삼 님의 심기를 건드렸어?”

“그나마 죽지 않아 다행이야.”

“쿨룩! 아직 여기 분위기를 모르는 모양인데, 여기선 우리 같은 노예들은 그냥 개돼지랑 같다 생각하면 돼. 하루라도 더 살아서 하늘을 보고 싶으면 절대 무사들의 심기를 거스르지 말라고.”

노예들은 철창 안에 누워 있는 로안이 안쓰러운지 몇 가지 충고를 해주고는 멀어졌다.

‘으으······.’

로안은 치를 떨었다.

극악한 난이도로 시작해 초반에 힘들 거라 예상은 했지만, 시작부터 이런 무지막지한 구타를 당할 줄이야.

‘젠장!’

아프다.

혀라도 깨물어 죽고 싶을 정도로 정말 아프다.

물론 게임 플레이 중에 이런 일을 당한 적이 없지는 않다.

하지만 그래봤자 PC 모니터 안의 아바타가 대신 당하는 것일 뿐 현실에서 당하는 게 아니었다.

그러나 여긴 현실이다.

게임 카오니아와 같은 세계지만 이곳은 현실인 것이다.

그 사실을 로안은 뼈저리게 체감하고 있었다.

‘후! 아픈 것도 아픈 거지만 냄새가 나 죽을 지경이야.’

퀴퀴한 곰팡이 냄새.

꾸물대며 기어다니는 벌레들.

로안 아니, 21세기에 살던 준석의 정신으로는 버티기 힘든 극악의 위생 상태였다.

오래 된 똥이나 오물도 감옥 안쪽에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1분도 있고 싶지 않은 쓰레기통과 같은 장소.

‘미치겠다. 하필이면 첫날부터 감옥에 갇히냐?’

특히 장삼만 생각하면 울화가 치밀었다.

‘하마터면 그놈에게 맞아죽을 뻔했어.’

그나마 살아있는 게 다행이다.

이곳 흑사문에서는 노예 하나 맞아죽는다고 해서 누구 하나 신경도 쓰지 않을 테니까.

심지어 다른 노예들에게 공포심과 복종심을 심어주려고 일부러 노예 중 하나를 선택해 죽이는 일도 벌어지는 곳이다.

‘조심하자. 어떤 식으로든 장삼 그놈에게 빌미를 제공해서는 안 돼.’

기적적으로 주어진 새로운 삶의 기회를 허망하게 마칠 수는 없는 일.

조만간 레벨이 오르면 장삼에게 오늘 일의 백배로 갚아줄 생각이지만, 지금은 일단 살아남는 것이 문제다.

‘살아서 일단 각성부터 하자.’

그러려면 각성석을 구해야 할 것이다.

‘그러고 보니 노예가 돈을 벌어서 각성석을 사는 건 쉽지 않은 일인데.’

로안은 힘겹게 일어나 감옥의 벽에 기대앉았다.

어떻게 하면 지금 상황에서 가장 빠르게 각성을 할 수 있을까?

그는 카오니아 세계의 지식 및 초반 레벨 업 요령 등을 하나하나 떠올려보았다. 그러다 돌연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잠깐! 생각해보니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야.’

갑자기 장삼이란 놈에게 죽도록 얻어맞느라 이곳 흑사문이라는 곳에 도사리고 있는 엄청난 위험에 대해 잊고 있었던 것이다.

‘정말로 이곳 세계가 카오니아 게임과 같은 곳이면 전반의 흐름도 동일하게 흐르게 될 거야.’

카오니아 게임의 흐름은 크게 볼 때 전반과 후반으로 나뉜다.

전반은 설정 상 정해진 대로 모든 사건이 발생하는 것으로 카오니아 세계의 역사라 해도 무방하다.

물론 유저가 그중 어떤 사건에 개입하면 부분적으로 바뀌는 경우도 있지만, 그대로 두면 본래 역사대로 흘러가게 되는 것이다.

〈카오니아 세계에 49명의 악마가 출현하고, 그에 대항하는 7명의 용사가 등장하는 시기.〉

이것이 바로 카오니아 세계의 정해진 역사이자 전반의 흐름인 것이다.

반면에 후반의 흐름은 랜덤이다.

이때부터는 뭐가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7명의 용사가 49명의 악마를 무찌르고 카오니아 세계에 평화가 찾아올 수도 있지만, 반대로 악마들에 의해 용사들이 죽임을 당하고 세상이 지옥으로 변할 수도 있다.

혹은 용사와 악마들의 휴전 상태가 지속되어 불안한 평화를 맞이할 수도 있는 등.

후반의 흐름에는 정해진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얘기다.

보통은 게임을 즐기는 플레이어가 용사들과 힘을 합쳐 악마들을 박살내는 것으로 엔딩을 맞이하긴 하지만, 그거야 게임일 때의 얘기일 뿐.

‘어쨌든 지금은 그게 문제가 아니다.’

어떻게 될지 모르는 미래는 걱정해봤자 무슨 소용인가.

하지만 뻔히 벌어질지 알고 있는 미래의 재앙은 얘기가 다르다.

그는 카오니아 초반의 역사는 꿰뚫고 있기 때문이다.

그중 흑사문과 관계된 내용.

‘이곳 흑사문에는 두 번째 붉은 달이 뜬 후 열흘이 되는 날 밤에 끔찍한 일이 벌어진다.’

흑마법사 크라겔이 이끄는 좀비 군단에 의해서 흑사문에 대재앙이 발생하는 것이다.

‘크라겔! 하필이면 그 미친놈이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있어.’

전생의 준석은 크라겔 때문에 매번 상당한 애를 먹었다. 고작 게임 속 NPC에 불과한 크라겔에게 가히 현실 속의 증오를 느끼기도 했다.

‘정말 짜증나는 녀석이었지. 어쩌면 그놈 때문에 말기에 나의 암세포가 더 빨리 자랐을 지도 몰라.’

물론 좀 오버한 생각이긴 하지만, 아주 틀린 얘긴 아니다.

스트레스야 말로 암뿐 아니라 모든 병의 근원이니까.

결론적으로 그 크라겔이란 놈은 이 카오니아 세계에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들을 통틀어 그야말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나쁜 놈이다.

그냥 나쁜 놈 정도가 아니라 그야말로 치 떨리게 악랄한 악마 그 자체다.

그렇다.

놈은 장차 이 카오니아 세계를 피로 물들일 49명의 악마 중 하나이니까.

‘아직 악마로 각성하지는 않았겠지만.’

각성 이전에도 엄청나게 강할 뿐 아니라 사악하기 그지없는 놈이다.

‘어쨌든 그놈과 최대한 멀어져야 해.’

초반에 크라겔과 마주치면 그냥 사망이라고 보면 된다.

하물며 지금과 같은 비각성자 상태라면 말할 것도 없다. 그 즉시 죽어 언데드가 되어 버리고 말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로안은 전생의 기억을 통해 흑사문과 관계된 또 다른 내용을 상기해냈다.

‘이곳 흑사문 어딘가에 비급이 숨겨져 있었던 것 같았는데.’

틀림없다. 지하 감옥 중 어딘가에 흑사문의 실전된 비급이 숨겨져 있다.

‘흑사광살도법!’

그 비급이 숨겨진 이유에 대해서도 대충 기억이 났다.

오래 전 흑사문에 침투했던 도적이 흑사광살도법의 비급을 훔쳐 이곳에 숨겨뒀다가 붙잡혔는데, 그는 비급이 숨겨진 장소를 말하지 않고 죽었다.

그 이후 그 비급은 실전되고 말았다는 무협 소설에 흔히 나오는 에피소드가 여기서는 현실 속의 실제 사건이었다.

‘맞아. 그런 게 있었지.’

세상에 죽으라는 법은 없나 보다.

로안의 두 눈에 생기가 돌았다.

‘후후, 이런 걸 바로 전화위복이라고 하나?’

흑사광살도법(黑蛇狂殺刀法)!

이름은 꽤 그럴 듯하지만 어차피 삼류문파에 불과한 흑사문의 비급이다 보니 그리 대단한 무공은 아니다.

그래도 저렙 구간에서는 상당한 위력을 발휘한다.

문제는 아무리 허접한 무공이라 해도 비각성자 상태에서는 습득이 불가능한 데다, 각성을 했다고 해도 레벨 제한에 걸린다.

그건 레벨 10이 되어야 익힐 수 있는 무공이니까.

따라서 지금은 그것을 찾는다 해도 당장은 로안에게 그림의 떡일 뿐이다.

‘하지만 일단 챙겨두면 레벨 10부터 꽤 편해지겠지.’

로안은 흑사광살도법을 가능하면 챙길 생각이었다.

‘그런데 비급이 숨겨진 감옥은 이쪽이 아니야.’

흑사문에는 두 종류의 감옥이 존재한다.

하나는 지금 로안이 갇혀 있는 일반 감옥이고, 또 하나는 중형을 받은 죄수들만 투옥하는 특수 감옥인 암옥(暗獄)이 있다.

로안이 갇힌 이곳 감옥은 반지하의 형태이다 보니 낮에는 위쪽에 난 작은 창을 통해 햇빛이 들어온다.

그러나 암옥은 암흑 그 자체였다.

경계도 매우 삼엄하고 툭하면 고문이 이루어지는 무서운 장소.

‘거기로 어떻게 가지? 그쪽으로 방을 옮겨달라고 할 수도 없고.’

로안은 고심했다.

‘분명 뭔가 방법이 있을 거야.’

* * *

다음 날 아침.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로안의 앞에 초췌해보이는 소년 하나가 나타났다.

【이름】 데릭

【레벨】 0

【신분】 노예

【소속】 흑사문

데릭이라는 이름의 노예 소년.

굳이 이름을 밝히지 않아도 머리 위에 있는 작은 창을 통해 상대가 누군지 알 수 있으니 편하긴 했다.

“로안! 장삼 님이 부르셔. 빨리 나와.”

데릭은 장삼에게 받은 열쇠로 로안이 갇혀 있는 철창문 자물쇠를 열었다.

‘드디어 나가는구나.’

로안은 치를 떨며 일어났다.

밤 사이 그는 한숨도 잠을 자지 못했다.

아니 잘 수가 없었다.

악취야 어떻게 참을 수 있다지만 툭하면 물어대는 벌레들 때문에 죽을 지경이었다.

말 그대로 악몽 그 자체.

사실 초저녁 때만 해도 그는 앞으로의 삶에 대한 큰 그림을 그리며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흑사문 암옥에 숨겨져 있는 흑사광살도법의 비급을 챙긴 후 크라겔의 재앙이 닥치기 전 흑사문을 빠져나간다!

그 이후에는 최대한 빠르게 각성!

곧바로 광렙을 하며 강해진다.

가능하면 전반의 흐름이 마치기 전까지 카오니아 세계의 7대 용사 수준으로 강해지겠다······.〉

이런 식의 큰 그림을 그리고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저 최대한 빨리 이 끔찍한 감옥에서 나가는 것만이 목적일 뿐.

‘으! 크라겔 놈보다 벌레가 더 끔찍한 것 같아.’

이는 전생의 게임 지식으로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다.

현실이 게임과 확연히 다르다는 걸 이런 식으로 체감할 줄이야.

“고맙다, 데릭.”

철창문이 열리자마자 로안은 뒤에 귀신이라도 있는 듯 후다닥 튀어나왔다. 그리고는 상의를 벗어 몸에 붙은 벌레들을 마구 털어냈다.

“으으! 정말 죽는 줄 알았네.”

그러자 데릭이 엷게 웃으며 말했다.

“거기에 유독 벌레가 많긴 하지.”

“뭐야? 너도 들어와 봤어?”

“정확히 열흘 전에.”

그때가 바로 데릭이 노예로 팔려온 다음 날.

그 역시 청소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장삼에게 죽도록 맞은 후 이곳으로 던져졌다는 것이다.

“자, 받아.”

데릭은 간략하게 말을 하며 로안의 손에 뭔가를 쥐어줬다.

작은 열매였다.

“이건?”

“어서 먹어 둬. 말린 거뜨 열매야. 몰래 하나 꼬불쳤지.”

거뜨 열매?

로안도 잘 알고 있는 열매다.

투박하게 생긴 모양과 달리 허기에 갈증까지 해결해주는 카오니아 세계의 영양 식품.

딱딱한 껍질을 벗겨 속살을 말려 먹기도 하는데, 지금 데릭이 내민 것이 바로 그것이다.

“어떻게 이걸?”

“바닥에 떨어진 걸 몰래 주웠어. 어차피 오늘 넌 음식을 배급받지 못할 거야. 그거라도 삼켜둬. 안 그럼 배고파서 쓰러질 거야. 내가 그때 죽는 줄 알았거든.”

음식이다.

손때가 묻어 좀 더럽긴 하지만 지금처럼 허기진 상황에는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다.

“뭐해? 빨리 먹어. 조금이라도 배를 채워야 오늘을 버틸 수 있을 거야.”

“고, 고맙다.”

눈물 젖은 빵, 아니 눈물 젖은 거뜨 열매다.

‘데릭? 꽤 착한 녀석이네.’

별것 아니지만 그래도 이 카오니아의 세계에서 처음으로 로안에게 호의를 베푼 존재인 것이다.

‘좋아! 나중에 꼭 보답하지.’

데릭은 땡잡은 것이나 다름없다.

장차 이 세계에서 유아독존할 위대한 존재에게 고작 열매 하나로 눈에 들었으니 말이다.

‘그럼 먹어볼까?’

으적! 쩝쩝!

말린 열매지만 씹으니 제법 달콤하고 갈증도 가셨다.

‘이게 이런 맛이었나?’

배가 고파서인지 더 맛있게 느껴진다. 무엇보다 게임 속에서만 봤던 이 열매를 직접 먹어보니 기분이 뭔가 새롭긴 하다.

“휴, 이제 좀 살겠다.”

확실히 뱃속에 뭔가 들어가니 기운도 회복됐다.

정말 죽다 살아난 기분이랄까?

“그나저나 장삼 그놈 아주 상습적이네. 새로 노예가 오면 이런 식으로 일단 두들겨 팬 후 길들이려는 건가?”

로안이 투덜거리자 데릭이 기겁하더니 로안의 귀에 대고 나직하게 말했다.

“소리를 줄이는 게 좋아. 투덜대는 소리도 그놈의 귀에 다 들어간다고.”

“그래?”

“나도 그러다 죽도록 맞았어. 그 미친놈한테. 경험자로서 하는 소리다.”

데릭은 한숨을 푹 내쉬며 조심하라며 거듭 당부했다.

로안은 끄덕였다.

“알았다. 그보다 혹시 최근에 붉은 달이 뜬 적 있어?”

붉은 달이 두 번째 뜬 후 정확히 10일 째 되는 날 밤에 크라겔의 좀비 군단이 흑사문을 덮친다.

따라서 붉은 달이 언제 떴는지를 반드시 알아내야 한다.

“붉은 달? 달이 피처럼 붉게 보이는 걸 말하는 거야?”

“그래. 맞아.”

“내가 여기로 팔려온 다음 날에 떴는데?”

“그게 정말이냐?”

“하필이면 감옥에 있을 때였는데 창문으로 핏빛 달이 보여 얼마나 무서웠는지 모른다.”

데릭은 그때를 생각하자 두려운 듯 몸을 떨었다.

로안은 역시나 싶은 마음에 다시 물었다.

“그럼 그전에 또 붉은 달이 떴다는 얘기를 들은 적은?”

“다른 노예들에게 들었다. 그 날 내가 본 게 두 번째라고 하던데?”

순간 로안의 안색이 굳었다.

‘이런! 그럼 오늘 밤이잖아.’

< 이 현실 내가 알던 게임인데? (2) > 끝

ⓒ 오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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