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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 (9/9)

외전

맥켄지의 호수 같은 눈이 차갑게 일렁였다. 고풍스러운 의자에 앉아 다리를 꼰 채 옆에 있는 협탁에 팔꿈치를 괸 그의 손가락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탁자를 느릿하게 쳐댔다.

시종 조에프는 그런 맥켄지의 행동에 옆에 선 수석 시종 그레머를 도와 달라는 듯 바라보았지만 그레머는 그의 시선을 피하며 왼손에 든 클립보드 위에 얹어진 종이의 구석에 만년필로 의미 없이 끄적이며 말했다.

“치수 안 재? 시간 다 가겠다.”

그레머의 재촉에 조에프가 맥켄지 때문에 멈췄던 손을 다시 들어 제 앞에 선 너자의 가슴팍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너자는 조에프의 손길을 피하지 않고 유순히 시선을 내렸다.

조에프의 투박한 손가락이 아까 풀다 만 셔츠의 단추를 천천히 풀기 시작했다. 검은색 셔츠 때문일까, 셔츠 사이로 보이는 너자의 피부가 창백하리만치 하얘 보였다.

조에프의 초록색 눈이 너자의 드러난 상체를 훑으며 그의 어깨에 걸린 셔츠를 조심스럽게 벗겼다. 스륵, 하며 너자가 입고 있던 검은색 셔츠가 바닥으로 툭, 하고 떨어졌다. 곧게 서 있는 너자의 몸이 어두침침한 방 안에서 유난히 튀어 보였다.

조에프가 훤히 드러난 너자의 상체를 보며 저도 모르게 깊은 한숨을 쉬었다. 마치 이 세상 것이 아닌 것 같은 조각 같은 몸이었다.

작은 머리통 밑으로 굵은 목이 시원하게 뻗어 있었고 어깨가 직각으로 아주 넓었으며 근육으로 뒤덮인 가슴은 매우 넓고 두툼했다. 그리고 그 밑으로 떨어지는 허리선이 통나무처럼 굵었고 복근이 잘게 쪼개져 있었다. 길게 뻗은 팔뚝도 근육 때문에 두툼했고 뼈가 불거진 손등도, 손가락도 모두 커다랬다.

하지만 이상했다. 너자는 마치 곰처럼 커다랬으며 근육으로 뒤덮였는데 가녀려 보였다.

조에프가 무언가에 홀린 듯 너자의 훤히 드러난 상체를 눈으로 훑고 있을 때 그의 꼴을 보고 있던 그레머가 헛기침을 했다. 큼, 크흠…. 적막한 방 안에 그레머의 멋쩍은 기침 소리가 울렸다. 그 목소리에 조에프가 고개를 드니 그레머가 이마를 일그러뜨리며 빨리 치수를 재라는 듯 만년필을 클립보드에 툭툭 쳤다.

그레머의 재촉에 정신을 차린 조에프가 어깨에 걸친 줄자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원래의 목적대로 너자의 치수를 재기 시작했다.

조에프의 손이 양옆으로 벌어져 줄자를 벌렸다. 줄자는 너자의 오른쪽 목 끝에서부터 어깨가 끝나는 곳까지 닿았다. 조에프의 손끝에 너자의 피부가 닿았다.

“…….”

고운 피부였다. 조에프는 남자가 이렇게 매끄럽고 부드러운 피부를 가질 수 있다는 것에 매우 놀랐다. 그리고 그가 놀란 것은 그것 하나가 아니었다.

가까이서 본 그의 피부가 마치 발진에 걸린 것처럼 울긋불긋했다. 풀숲에서 옷을 벗은 채 잠들었던 것일까? 발진이 너무 많았다. 조에프가 너자의 상체에 돋은 발진을 조심히 곁눈질하며 치수를 불렀다. 그레머가 만년필을 굴리는 소리가 경쾌하게 들려왔다. 그는 다시 너자의 피부에서 손을 떼 어깨 끝에서 손목까지 치수를 쟀다. 그리고 반대쪽 목 끝부터 어깨 끝과 손목까지의 치수를 쟀다.

그레머가 만년필을 긋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에 조에프가 다시 손을 떼어내고 너자의 쇄골에 줄자 끝을 대었다. 그리고 오므렸던 줄자를 쭉 폈다. 조에프의 반대쪽 손끝이 너자의 허리 끝까지 미끄러지듯 내려갔다.

미동 없이 가만히 서 있던 너자의 몸이 살짝 움찔거렸다. 조에프의 목구멍이 뜨끔거렸다. 하지만 조에프는 그것을 티 내지 않았다. 그의 시선이 너자의 두툼한 가슴이 걸렸다. 그런데 이상했다. 가슴에 피멍이 들어 있었다. 여기에 멍이 들 일이 있나?

조에프는 젖꼭지 옆에 집중적으로 물들어 있는 울혈을 보며 치수를 불렀다. 그레머가 마찬가지로 만년필로 치수를 적었다. 그가 다시 손을 떼 그의 왼쪽 가슴 끝에 손을 대었다. 그리고 손을 너자의 오른쪽 가슴 끝으로 쭉 미끄러뜨렸다. 스륵 하고 조에프의 손끝에, 너자의 젖꼭지가 스쳤다.

“아….”

굳게 닫혀 있던 너자의 작은 입이 벌어지며 미약하게 소리가 났다. 그때였다.

“억…!”

“그만.”

뒤에서 조용히 지켜보고 있던 맥켄지가 조에프의 뒷덜미를 강하게 잡아채 뒤로 던져 버렸다. 뒤로 나뒹군 조에프가 바닥을 구르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눈을 깜빡거렸다.

저 가녀린 몸에서 어떻게 저런 힘이 나오지? 조에프는 맥켄지보다 키는 조금 작았지만, 그보다 덩치가 커다란 편이었다.

조에프가 멍청하니 맥켄지를 보고 있을 때 맥켄지가 흉흉한 눈으로 그에게 다가갔다. 어찌나 기세가 흉흉한지 조에프가 기어코 겁을 먹고 몸을 웅크렸다. 그 모습에 뒤에서 유순히 서 있던 너자가 천천히 맥켄지의 뒤를 쫓았다. 그리고 그의 손을 잡으며 타일렀다.

“그러지 마.”

조곤조곤한 너자의 말에 조에프의 맹랑한 두 손목을 부러뜨리려 발을 들어 올리던 맥켄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발을 내려놓고 그를 응시했다. 빛이 부서지는 호수같이 아름다운 맥켄지의 푸른 눈을 응시하며 너자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이상한 짓 안 했어.”

“하지만 당신 입에서 신음이 나왔잖아.”

불퉁한 맥켄지의 목소리에는 분노가 그득했다. 그가 아름다운 이마를 찌푸리다 화가 풀리지 않는지 앞으로 흘러내린 금사 같은 머리칼을 뒤로 넘기며 문 쪽에 대기하고 있던 티모시에게 말했다.

“당장 저놈의 눈을….”

“맥! 맥!”

너자가 기겁을 하며 맥켄지 허리를 끌어안고 번쩍 들어 올렸다.

“…너자….”

힘든 기색 하나 없이 자신을 들어 걷기 시작하는 너자의 행동에 맥켄지가 불만을 토로하려다 포기하고 입을 꾹 다물었다.

방 안에 있던 시종들과 기사들은 아이처럼 너자에게 들어 올려져 대롱대롱 매달린 채 옮겨지는 맥켄지의 모습에 서둘러 고개를 돌리거나 숙였다. 이럴 때 눈이 마주치면 어떤 트집이 잡힐지 몰랐다.

맥켄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끙, 하고 소리를 내자 너자가 맥켄지의 허리를 한 손으로 토닥이며 원래 그가 앉아 있던 마호가니로 된 의자로 천천히 걸어가 그를 그곳에 내려놓았다.

너자는 불퉁하게 자신을 바라보는 맥켄지에 작게 미소 짓고 사정없이 찌그러진 그의 이마를 검지로 꾹꾹 누르며 조용히 말했다.

“당신이 어제 너무 깨물어서 그렇잖아. 스치기만 해도 아파.”

너자의 속삭임에 맥켄지의 표정이 일순간 풀어졌다. 맥켄지는 채신머리없이 풀린 얼굴을 너자에게 보이기 부끄러워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홱 돌려진 맥켄지의 호수 같은 눈과 그레머의 눈이 재수 없게도 마주쳐 버렸다.

툭….

마치 눈깔 안 돌리느냐는 듯 저를 응시하는 제 주인의 서슬 퍼런 눈길에 그레머의 손에서 만년필이 떨어져 바닥으로 나뒹굴었다. 잔뜩 굳은 그레머의 얼굴에 맥켄지가 고갯짓을 했다. 그의 의미를 한 번에 알아들은 그레머가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네, 네! 나갑니다! 나가요!”

그레머는 재빨리 바닥에 떨어진 만년필을 주워 들어 저 멀리 멍하니 주저앉아 있는 조에프에게 다가가 그의 팔을 끌었다. 그레머의 거센 손길에 조에프가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레머가 빨리 나가자는 듯 그의 팔을 끌자, 그제야 정신을 차린 조에프가 그레머와 함께 빠른 걸음으로 방문으로 향했다. 그때였다.

“멈춰.”

서릿발 같은 맥켄지의 목소리가 방 안을 울렸다. 그렇게 큰 목소리도 아니었건만 그의 목소리는 그들의 귓구멍에 정확히 내리꽂혔다. 그의 명령에 그레머와 조에프의 몸이 멈춰 섰다.

맥켄지가 말했다.

“클립보드랑 줄자 놓고 가.”

제 주인의 심기가 불편한 목소리에 그레머가 석상처럼 굳은 조에프의 손에서 줄자를 뺏듯이 강탈했다. 그리고 최대한 제 주인과 눈이 마주치지 않게 눈을 내리깔고 빠른 걸음으로 그들의 앞으로 가 제가 들고 있던 클립보드와 줄자를 협탁 위에 살포시 놓고 뒤돌아 올 때와는 달리 뛰듯이 걸으며 문가로 다가갔다.

그레머의 기세에 샬로메가 재빨리 문을 열어 그를 먼저 내보내고 아직까지 멍청히 서 있는 조에프의 팔뚝을 잡아끌어 문밖으로 내보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눈치 없이 아직 문앞에 멀뚱히 서 있는 티모시를 문밖으로 밀어내고 자신 또한 빠르게 문밖으로 나가 문을 닫았다.

쾅, 하고 닫힌 문에 그제야 맥켄지의 얼굴이 조금 풀렸다. 후련하다는 듯 문을 바라보는 맥켄지에 너자가 말했다.

“애한테 왜 그래?”

마치 어린아이를 어르듯 자신에게 말하는 너자에 맥켄지가 입을 삐죽였다. 평소 그를 아는 자라면 그런 그의 모습에 주인이 귀신에 들린 게 틀림없다며, 제정신이 아니라며 호들갑을 떨었을 것이다. 맥켄지가 툭 하고 말했다.

“그 새끼 널 보는 눈빛이 천박했어. 새로 들어온 놈이라 그런지 눈치도 없고, 마음에 안 들어.”

마치 제 암컷을 뺏길까 봐 불안해하는 어린 수컷 같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너자는 그런 맥켄지의 우려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너자가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당신 말고는 아무도 나한테 관심 없어.”

“…그건 당신 생각이고.”

“아니야, 정말이야.”

다들 나랑 눈도 마주치기 싫어하는걸.

여상하게 말하는 너자에 맥켄지가 입을 다물었다. 맥켄지가 사용인들에게 너자와 눈을 마주치거나 불손하게 바라보는 놈의 눈깔을 뽑아 버린다고 엄포해 놓은 탓이었다. 이 사실을 너자가 안다면 싫어할 게 분명했다.

너자는 맥켄지가 제 말에 부정하지 않고 다른 곳을 바라보자 픽 웃었다. 모두 자신을 싫어했다. 처음 워린의 성에 있었을 때 이유도 없이 맞았다. 또 아카데미에 갔을 때도 모두 자신을 보며 역겹다는 듯 눈살을 찌푸리며 눈도 마주치기라도 하면 고개를 돌렸다.

심지어 당신도 그랬는걸.

하지만 너자는 그 말은 하지 않았다. 맥켄지와 말을 제대로 섞은 것도, 맥켄지의 경계선 안에 들어간 것도 거의 반년이 지나서였다. 너자는 아직도 맥켄지의 서슬 퍼렇던 그 눈빛이, 제 발목을 부러뜨리던 맥켄지의 형형함이 아직도 생생했다. 그래, 그랬던 자신과 맥켄지였다. 수없이 그에게 밀려났었다.

그때의 맥켄지를 생각하면 아직도 속이 쓰렸다. 너자가 뜨끔한 목구멍에 침을 억지로 삼키고 있을 때, 문득 애쉬 블론드의 남자가 떠올랐다.

-날 보고 울지 마. 그리고.

-가끔 내가 널 찾아가도… 도망가지 말아 줘.

이름과 하는 행동이 지독히도 어울리지 않던 남자였다. 그렇게 저를 괴롭혔었다. 그를 보기만 하면, 그와 함께 있으면 너무 무서워서 온몸이 떨렸었다. 어쩌면 워린보다 더 무서워했었던 것 같았다.

-노예지만 너도 이름이 있을 거 아니야. 네 이름이 뭔데?

-입 벌려봐.

-달지? 그게 캔디야.

하지만 그는 이름을 물어봐 주었다. 아무도 제 이름을 알고 싶지 않아 했다. 항상 야, 너, 노예로만 불리다 처음으로 그에게 자신의 이름을 들었다. 모든 게 너무 힘들어 죽어 버리고 싶을 때 제 입에 캔디를 쑤셔 넣었고, 이상하게 자신이 힘들고 도움이 필요할 때마다 나타났었다.

잘 살고 있을까?

너자가 입을 다물고 갑자기 밀려오는 알 수 없는 기분에 눈을 천천히 깜빡이고 있을 때, 그를 응시하고 있던 맥켄지의 호수 같은 푸른 눈이 위험하게 일렁거렸다. 스와포네의 생각을 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의 손이 천천히 쥐었다가 펴지기를 반복했다. 당장에라도 꿈을 꾸는 듯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는 너자의 자신의 양팔에 가두고 무슨 생각 하냐며, 그 새끼 생각을 하느냐며 몰아붙이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참았다.

겨우 이 관계를 쌓아 왔다. 한 번 무너진 신뢰를 다시 쌓는 것은 무척 힘든 일이었다. 다시 무너뜨릴 수는 없었다.

맥켄지는 가슴속부터 올라오는 파괴적인 감정을 가까스로 다스렸다. 그리고 제 앞에 멍하니 서 있는 너자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애교를 부리듯 그의 허리에 제 머리통을 비볐다.

“간지러워….”

마치 고양이가 인간에게 관심을 달라며 머리를 비비는 것 같은 맥켄지의 행동에 너자가 귀엽다는 듯 그의 머리를 끌어안아 주었다. 맥켄지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협탁에 널브러져 있는 줄자를 집고 그의 허리를 역으로 끌어안아 번쩍 들어 올렸다.

너자는 지금도 자신을 들어 올리는 맥켄지의 근력이 믿기지 않았다. 이렇게 사슴같이 여려 보이는데, 그는 아직도 키가 자라고 있었고 힘도 점점 세졌다. 너자가 대견하다는 듯 맥켄지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자 맥켄지가 픽 웃으며 너자를 제 침대에 눕혔다.

그리고 아까 협탁에서 가져온 줄자를 제 어깨에 건 뒤 너자의 바지를 끌어 내리고 야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럼, 치수를 마저 재 볼까요?”

그 야해 빠진 맥켄지의 모습에 너자의 구멍이 움찔거렸다.

츕, 춥 하고 맥켄지가 너자의 구멍을 빠는 소리가 적막한 방 안을 음탕하게 울렸다. 너무 지속적인 쾌감에 너자의 허리가 밑으로 빠질 듯 저려 왔다. 맥켄지의 기다란 혀가 제 구멍과 회음부를 게걸스럽게 핥는 탓이었다. 마치 제 구멍에서 물이 나오는 듯한 착각이 일 정도였다. 미칠 것 같았다.

개처럼 엎드려 뒤를 빨리던 너자가 과한 쾌감에 참지 못하고 들어 올렸던 허리를 비틀며 그에게서 벗어나려 했다. 하지만 맥켄지는 너자의 구멍에 처박았던 얼굴을 떼지도 않은 채 양손으로 그의 엉덩이를 들어 올려 다시 세웠다. 그 단호한 힘에 너자가 침대보에 얼굴을 처박고 억눌린 신음을 내뱉으며 결국 애원했다.

“아… 으… 그만… 제발 그만….”

“조금만 더….”

그는 너자의 구멍을 빠는 데 수십 분을 할애했다. 너자가 저릿저릿하게 풀린 구멍의 느낌에 으으, 하며 울었다.

그의 침이 제 구멍에 고이다 못해 질질 흐르는 느낌이 너무도 야했다. 그의 혀가 회음부와 구멍을 한 번에 핥다 못해 빨면 정말이지 죽을 것같이 기분이 좋았다. 너자의 샅 주변에는 그가 이미 두어 번 정액을 싸 버려 끈적끈적하게 말라붙어 있었다.

맥켄지는 이따금씩 너자의 신체 부위 중 한 곳에 꽂힐 때가 있었는데 오늘은 구멍이었다. 어제는 젖꼭지였다. 그래서 아까 치수를 잴 때 젖꼭지에 스치듯 닿은 조에프의 손끝에 저도 모르게 신음을 흘렸었다.

안 그래도 어제 씹히고 빨리고 반복해서 예민해져 있었던 너자의 젖꼭지가 침대보에 닿는 바람에 더욱 예민하게 감각을 받아들였다. 젖꼭지가 불타는 것같이 가려웠고 구멍과 회음부를 빨리는 곳이 너무도 기분 좋아 미칠 것 같았다. 하지만 부족했다.

맥켄지의 리밍을 받는 너자의 구멍이 혀 말고 단단하고 뜨거운 것으로 쑤셔 달라며 유혹하듯 움찔거렸다. 너자는 알고 있었다. 이것보다 더욱 강한 쾌감을. 너자는 간지럽다 못해 타는 것같이 뜨거워진 제 젖꼭지를 침대보에 비비다 결국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제발… 맥, 제발 다른 거….”

너자의 애원에 맥켄지가 너자의 구멍에 뜨거운 숨을 내뱉으며 마지막으로 강하게 츕, 하고 빨아들였다. 그의 강한 흡입에 너자가 몸을 비틀며 달게 울었다.

맥켄지가 드디어 너자의 구멍에서 얼굴을 떼어냈다. 그는 흥분으로 뜨거워진 눈알에 눈을 조용히 감았다 뜬 뒤 너자를 응시했다.

너자는 손목에 줄자가 꽁꽁 동여매진 채 침대에 엎드려 엉덩이만을 높게 들어 올려 울고 있었다. 높게 들린 너자의 엉덩이 사이는 자신의 침으로 흥건히 젖어 있었고, 그 작고 예쁜 구멍은 움찔거렸다.

내 노예는 구멍도 예쁘지. 성 경험이 너자밖에 없는 맥켄지였지만, 그는 너자의 구멍이 세상에서 제일 예쁠 거라 생각했다. 분홍빛의 작은 구멍이 마치 조르듯 움찔거리는 모습은 너무도 야했다. 그리고 그 안에 있는 뜨겁고 습한 구멍도 환상적이지.

맥켄지는 만지지 않았음에도 핏줄이 불거진 채 쿠퍼액을 질질 흘리고 있는 제 자지를 잡았다. 그의 좆 대가리가 너자의 흥건한 구멍에 쑤셔 넣어질 듯 쿡 찌르다 위아래로 문지르기를 반복했다. 그 느릿하고 속 편한 애무에 안달이 나는 것은 너자였다.

너자의 구멍 깊은 곳에 있는 극점이 어서 그 굵고 단단한 자지를 쑤셔 넣으라며 뜨겁게 욱신거렸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그의 자지는 제 구멍을 스칠 뿐 들어오지 않았다.

너자가 침대 시트에 비비던 얼굴을 떼어내고 고개를 뒤로 돌렸다. 너자의 눈썹이 모로 모이며 맥켄지를 애원하듯 바라보았다. 하지만 맥켄지는 자신을 애절하게 바라보는 너자의 얼굴을 씹어 삼킬 듯 응시를 하며 너자의 구멍에 넣어 주지 않고 비비기만을 반복했다.

결국 먼저 입을 연 것은 너자였다. 너자가 거의 울면서 말했다.

“아아…! 빨리, 빨리… 제발….”

숨넘어 갈 듯 애원하는 너자에게 맥켄지가 바짝 말라오는 입술을 제 혀로 축이며 말했다.

“뭐를 빨리해?”

“아… 맥….”

맥켄지는 눈물을 찔끔 흘리며 자신을 탓하는 것처럼 바라보는 너자의 얼굴에 뜨거운 숨을 내쉬었다. 사실 맥켄지도 힘들었다. 당장에라도 벌름거리는 구멍을 한 번에 뚫어 버리고 그 구멍을 마음껏 범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이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

맥켄지는 너자가 자신을 원한다며 애원하기를 바랐다. 그의 까만색 눈이 자신만을 담았으면 좋겠다. 그 천박한 시종이 모르는 척 너자의 가슴을 손끝으로 스쳤을 때 너자가 화를 내기를 바랐다. 금발 머리에 초록색 눈을 가진 시종이었다. 맥켄지는 그 조합이 너무 싫었다.

마치 스와포네가 너자의 몸을 만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화가 나 미칠 것 같았다. 가끔 너자는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멍하니 있을 때가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맥켄지는 불안해서 미칠 것 같았다.

너자의 옆에 있는 것은 자신이었다. 그리고 너자가 선택한 것도 자신이었다. 하지만 이따금씩 맥켄지는 두려웠다. 점점 상태가 호전되어 가는 너자의 발목을 보면 다행이다 싶기도 했지만 때때로 다시 부러뜨리고 싶은 충동에 휩싸이기도 했다.

맥켄지는 목 끝에서 끓어오르는 저열한 질투감에 이를 악물었다. 하지만 그것을 티 내지는 않았다. 너자가 제 질투와 집착을 알게 되면 도망가 버릴 게 분명했다. 분명 그놈에게 갈 것이다.

또 하필이면 내일 가게 되는 파티에 스와포네 놈도 올 게 분명했다. 내일은 베타미 황제의 후계 세이렌 황태자의 데뷔탕트였다. 맥켄지는 그딴 곳에 너자를 데리고 가기 싫었다.

하지만 리마와 다섯 아이를 제 호적에 올리고 리마를 제 후계로 지정했다는 서면을 올렸을 때, 베타미가 후계인 리마를 꼭 데리고 와 인사를 시켜 달라는 부탁 같은 명령을 했기에 어쩔 수 없이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래, 거기까지는 괜찮았다.

너자가 문제였다. 리마를 데리고 황성에 간다고 하니 불안에 휩싸인 너자가 그런 무서운 곳에 리마와 당신만을 보낼 수 없다며, 분명 리마의 검은 머리를 보며 사람들이 손가락질을 하고 안 좋은 말을 할 텐데 그 괴로움을 혼자 견디게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자신도 데려가라는 너자의 주장에 맥켄지는 들을 것도 없이 거절했다.

하지만 진심으로 실망한 듯 자신과 눈도 마주치지 않고 말도 섞지 않는 너자에 이를 깍 깨물며 허락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너자는 리마의 호위 자격으로 황성에 출입하기로 말을 맞추었다. 황제에게 보낼 서면을 쓰던 맥켄지는 제가 꽤 아끼던 만년필을 두 동강 내 버렸다. 그 만년필은 제국에 딱 네 개 있던 만년필이었는데, 한 자루는 너자를 잃어버렸을 때 두 동강 내 버렸었다. 그 만년필의 손맛을 잊지 못한 맥켄지가 공작 가의 후계자가 되고 장인에게 겨우 한 자루를 만들어 내게 하는 데 성공해 애지중지하던 만년필이었다. 하지만 또 너자에 의해 두 동강이 나 버렸다.

맥켄지가 억울한 듯 자신을 응시하는 너자의 얼굴에 입을 맞추며 낮게 속삭였다.

“응? 보지만 말고 말해야지.”

“…시러… 맥… 시러… 그냥….”

너자가 정말 부끄럽다는 듯 질겁하며 고개를 흔들었다. 시팔, 귀엽기도 하지. 맥켄지는 앙탈을 부리는 너자를 보며 정말이지 그를 한입에 삼켜 씹어 먹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당장에라도 구멍에 처박아 좋아서 소리를 지르는 너자의 얼굴이 보고 싶었다. 하지만 협상의 기본은 포커페이스였다. 애가 닳아 안달이 나는 모습을 보이는 순간 지는 것이었다. 맥켄지는 평정을 가장하고 너자의 귓가에 입을 맞추며 말했다.

“어서, 말해 줘.”

“아….”

“말해 주세요.”

마치 어른이 아이를 타이르듯 말하는 맥켄지에 너자가 결국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너자가 파르르 떨며 상체를 들어 올려 맥켄지의 귓가에 대고 입을 꿈질거렸다.

“…제기랄.”

너자의 작은 속삭임을 들은 맥켄지가 작게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너자의 구멍에 자신의 자지를 급하게 쑤셔 넣었다. 그리고 지금껏 참은 것을 보상받겠다는 듯 거세게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 아아! 으…!”

맥켄지의 짐승 같은 허리 짓에 너자가 눈을 커다랗게 뜨며 눈물을 질질 흘려댔다. 구멍이, 구멍이 타는 것같이 뜨거웠다. 맥켄지의 커다란 자지가 푹, 찌르면 온몸이 감전된 듯 찌릿거렸고 그의 자지가 나갈 때면 안타까워서 미칠 것 같았다.

너자의 구멍이 빠져나가려는 맥켄지의 자지를 붙잡듯 꽉 물고 놔주지를 않았다. 맥켄지는 그런 너자의 구멍에 머리끝까지 흥분해 이를 세워 너자의 목덜미를 콱 깨물었다. 피가 나올 듯 거세게 물었지만, 그 고통은 밑에서 짜릿하게 올라오는 쾌감과 섞였다. 비명이 나올 만큼 아픈 고통은 곧 쾌감이 되었다.

그 감미로운 쾌감에 너자가 멍하니 풀린 눈으로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아픈 거… 흐… 좋아… 더… 더… 더 깨물어 줘….”

제 귀를 때리는 너자의 천박하기 짝이 없는 애원에 머리끝까지 흥분한 맥켄지가 엎드려 있는 몸을 한 번에 뒤집었다. 너자는 몸이 돌려지느라 맥켄지의 자지가 제 구멍을 도려낼 듯 크게 움직인 탓에 극심한 쾌감을 느꼈다.

맥켄지는 제 배에 뿌려진 너자의 정액에 이를 악물며 중얼거렸다.

“그대는… 정말이지…….”

나를 미치게 만들어.

너자가 조에프의 도움을 받아 케이프를 둘렀다. 검은색의 케이프 끝단이 너자의 정강이 중간에서 흔들렸다. 검은색의 재킷과 딱 붙는 검은 바지 위로 검은색의 긴 부츠가 그의 긴 다리를 딱 맞게 조였다. 조에프가 마지막으로 너자의 허리춤에 콜트집을 걸었다. 너자는 제 허리춤에 묵직하게 걸린 콜트를 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조에프가 너자의 옷매무새를 정리해 주며 말했다.

“치수가 딱 맞는군요. 보기 좋습니다.”

조에프의 칭찬에 너자는 제가 입은 옷을 이리저리 보며 어색한 듯 몸을 비틀었다. 너자는 코만치에서 로인클로스만 입고 다녔고 이베아에 와서도 항상 얇은 셔츠에 긴 바지만 입고 다녔다. 그런데 셔츠에 재킷에 케이프까지 겹겹이 껴입은 것이 몹시 불편했다. 마치 얇은 이불을 여러 장 두른 것처럼 무겁고 답답했다.

“불편해요….”

너자가 불편한 듯 몸을 털어대자 조에프가 픽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도노반 리피팅 암즈의 정복을 입지 않으면 입장이 불가능한걸요.”

너자가 입은 것은 도노반 리피팅 암즈의 정복이었다. 리마는 호적상 맥켄지의 양녀로 들어가 있어 신분이 보증되었지만 너자는 대륙전쟁에 패한 후 이베아 제국에 끌려온 노예의 신분이었다. 맥켄지가 마음만 먹으면 신분 세탁을 해 줄 수 있었지만, 그는 이전에 노예의 신분으로 베타미의 앞에 선 적이 있었다. 이제 와서 평민의 신분으로 베타미의 앞에 선다면 그것은 기망에 해당이 되었다.

또 노예가 황성 주최의 파티에 발을 들이는 일은 제국 역사상 유례없는 일이었다. 사역노예가 아닌 이상 노예는 황성에 입장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맥켄지가 생각해 낸 건 너자가 도노반 리피팅 암즈의 사병이 되는 것이었다. 도노반 리피팅 암즈는 도노반 공작 가에 속한 기사로 신원 보증이 되었다.

그때 맥켄지의 방문이 활짝 열렸다. 그리고 리마가 마찬가지로 불편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제 옷매무새를 정리하며 들어왔다. 너자는 검은색의 긴 머리를 길게 땋아 꽉 묶고 푸른색의 드레스를 입은 리마를 어색하게 응시했다.

리마 또한 코만치에서는 로인클로스와 가슴을 간단하게 가린 민소매 옷을 입고 다녔고 이베아에 와서도 얇은 셔츠와 바지만을 입고 다녔었다. 그런 그녀도 치렁치렁한 레이스가 달려 있고 제 몸을 꽉 조여 맨 드레스가 불편하기는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너자와 리마가 어정쩡한 자세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웃음을 터트렸다. 본인에게 맞지 않는 옷을 억지로 입은 것같이 어색했기 때문이었다.

리마가 호탕하게 웃자 리마의 뒤를 지키고 있던 시녀 엠버가 불안한 듯 속삭였다.

“아가씨… 아가씨, 웃으시면 화장 무너져요!”

엠버의 말에 너자가 눈에 맺힌 눈물을 슥 닦으며 말했다.

“이야, 리마 화장까지 했어? 다 컸네.”

“아, 짜증 나는 소리하지 말라고. 눈썹만 간단하게 그렸어.”

퉁명스럽게 내뱉는 리마의 목소리가 여전히 걸걸했다. 아마 리마의 가정교사 로즈가 그녀의 걸걸한 말투를 들었다면 기겁을 하며 그런 괄괄한 말씀 하지 마시라며, 레이디는 항상 조곤조곤해야 하며 우아한 말을 해야 한다고 잔소리를 했을 것이었다. 하지만 리마는 말투와 행동거지를 고치지 않았다.

어찌 보면 불량해 보일지 모르겠지만 리마는 말투와 행동을 빼고는 아주 똘똘한 학생이었다. 그녀는 후계자 수업을 잘 소화해 냈다. 제국어도 오 개월 만에 현지인 수준으로 익혔으며 경영 수업과 역사 수업, 경제 수업도 잘 따라갔다.

너자 외로는 남에 관해 관심이 없고 칭찬에 인색한 맥켄지마저도 그녀의 비상한 머리를 칭찬했다. 페리도 처음에는 리마를 탐탁지 않아 했으나 후에는 어린 계집애가 야망이 있어 보인다며 덕담을 했었다. 뜻밖에 페리와 리마는 곧잘 잘 어울렸었다. 지금 리마가 입은 옷도 페리와 함께 록시에 가서 산 옷이라고 했다. 또 리마만 편애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아이들도 귀여워해 아이들을 만날 때마다 손에 무언가를 쥐여 준다고 했다.

다행히 아이들은 잘 적응 중이었고 쑥쑥 자라나고 있었다. 몇 개월 새에 훌쩍 커 버린 리마를 대견한 눈으로 응시하고 있던 너자는 어서 나오라는 그레머의 외침에 리마에게 말했다.

“각오 됐니?”

“…응.”

“누가 괴롭히면?”

“…인중을 쳐 버릴게.”

주먹을 꽉 쥐며 말하는 리마에게 너자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 아니. 날 불러. 내가 대신 인중을 칠게.”

“노예가 인중을 치는 것보다는 공작가의 후계자인 내가 치는 게 낫지 않을까?”

사형…당하고 싶니, 너자? 둘의 대화가 평소와 다름없었다. 조에프가 크흠, 거리며 어서 나가자는 듯 둘의 등을 떠밀었다. 둘은 서로를 보며 픽 웃다가 서로의 손을 맞잡았다. 누구의 손이라고 할 것도 없이 긴장감에 손이 축축이 젖어 있었다. 너자가 살짝 굳은 리마의 표정에 괜찮다는 듯 미소를 지어 주며 말했다.

“가자, 전쟁터로.”

* * *

도노반 공작 가문의 마차가 황성에 당도했다. 그레머와 조에프가 먼저 내리고 너자가 후에 내렸다. 그리고 드레스를 걷어 올려 마차에서 내리려는 리마의 손을 잡아주었다.

평소의 리마 같으면 필요 없다며 배짱을 부렸겠지만, 그녀는 아직 열네 살이었다. 긴장되지 않을 리 없었다. 너자는 조에프와 그레머의 뒤에 서서 그들을 쪼르르 따라갔다. …벌써부터 시선이 느껴졌다.

파티장에 가는 복도가 이렇게 길 줄 몰랐다. 복도는 몹시 넓었고 황성의 시종, 시녀들만이 지나다니는 것이 아니었다. 귀한 옷을 입은 이베아인들도 몇몇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그들은 검은색 머리의 장신의 남자와 검은색 머리의 작은 여자아이에 시선을 빼앗긴 듯 지나가던 걸음을 멈추고 너자와 리마를 바라보았다.

리마와 너자는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얼굴을 굳혔고 허리를 폈다. 하지만 파티장의 입구에 다다를수록 수군거림이 심해졌다. 너자는 바짝 마른 입술을 핥으며 잘생긴 이마를 찌푸렸다.

그는 질리도록 이 시선을 느꼈다. 자신과 다른 인종에 대한 적대감과 호기심, 그리고 비웃음이었다. 이보다 더욱 낮은 신분이었을 때는 더욱 심했다. 어떤 이들은 대놓고 침을 뱉었으며 어떤 이는 대놓고 낯짝에 삿대질하며 욕해댔다.

하지만 지금 걸친 옷이 감투이기는 한지 자신을 바라보는 이베아인들의 수군거림이 덜했다. 지금도 리마보다는 자신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다행이었다.

자신은 그렇다 치더라도 도노반 공작 성의 후계자 네임텍을 단 리마는 그 더러운 꼴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파티장 입구에 도착했다. 그레머가 품 안에서 초대장을 꺼내 시종에게 보여 주었다. 손님의 입장을 알리는 시종이 정신을 빼놓고 너자를 바라보았다. 너자가 거북하다는 듯 시선을 돌리니 그제야 정신을 차린 시종이 제 앞에 내밀어진 초대장을 받아 들었다. 그리고 확성기를 들어 리마가 왔음을 고했다.

“도노반 공작 성의 리마 도노반 님이 오셨습니다.”

맥켄지는 지금껏 제가 가지고 있는 야만인들의 존재를 행정상으로만 알렸다. 그의 집안이 후작에서 공작으로 승급했을 때도 야만인들을 꼭꼭 숨겨 놨었다. 그래서 귀족들은 소문의 그 야만인들을 보지 못했다. 하지만 오늘은 베타미의 명령으로 ‘그 야만인’들이 참석을 한다고 했었다.

그 냉정하고 고고한 맥켄지 도노반이 남자 야만인 노예 때문에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고 했다. 그가 가지고 있는 야만인 노예의 잠자리 기술이 그렇게 대단하여 순진한 공작의 혼을 빼놔 마음대로 조종하여 제 종족인 여자 야만인을 도노반 공작 가문의 후계자로 만들어 놨다고 했다.

그 소문의 ‘야만인’들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도노반 성보다 다섯 배는 커 보이는 파티장은 귀족들로 바글바글했다. 그 수많은 사람의 호기심과 경멸 어린 눈이 너자와 어린 리마에게 꽂혔다.

손에 잡힌 리마의 손이 달달 떨려왔다. 너자가 숨을 깊게 쉬고 제 손에 잡힌 어린 여자아이의 손을 꽉 잡아 주었다. 그 힘에 얼굴을 굳힌 채 조금 떨고 있던 리마가 고개를 돌려 너자를 응시했다. 너자가 코만치어로 리마에게 작게 속삭였다.

“괜찮아. 넌 강해.”

너자가 자신을 굳은 얼굴로 응시하는 리마에게 다정하게 웃어 보였다. 그의 잘생긴 얼굴에, 보는 사람의 마음이 녹아 버릴 것 같은 미소에 리마가 마지막으로 숨을 깊게 내쉬었다. 그리고 평소의 제 표정으로 돌아와 당당하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나도 안다.”

“멋있는걸.”

“나도 안대도?”

혼자가 아니었다. 그때와 달랐다. 너자와 리마가 씩 하며 웃었다. 그리고 꽉 잡았던 손을 놓고 제 발로 당당하게 파티장으로 걸어 들어갔다.

다행히 너자와 리마에게 말을 거는 귀족들은 없었다. 하지만 그들의 근처에서 얼쩡거리며 부채와 손으로 입을 가린 채 속삭여댔다.

마치 구경거리가 된 것 같은 모습이었다. 너자와 리마가 파티장의 구석에 등을 기대어 서며 터져 나오려는 한숨을 목구멍 안으로 밀어 넣었다. 리마가 너자를 보며 말했다.

“맥켄지는 언제 온대?”

“글쎄… 가주 대행으로 먼저 온 거라 시간 꽤 걸릴걸.”

맥켄지는 그들보다 하루 전에 도착한 상태였다. 그는 파티를 즐기러 온 게 아니라 일을 하러 온 것이었다. 본래라면 페리가 해야 할 일이었지만 페리는 기업 경영과 영업을 잘하지는 못했다.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다비드의 뒤를 따라다니며 그 일을 배웠던 맥켄지가 가주 대행으로 행정 업무에 투입되었다.

아마 도노반 리피팅 암즈의 세금과 기사들에게 납품될 신제품 콜맨의 단가를 맞추는 일을 할 것이라고 했다. 맥켄지가 한숨을 쉬며 노인네가 너무 정정하다고, 죽어도 자기가 손해를 보지 않으려고 머리를 쓰는 게 너무 심해 곤란하다고 말했던 것을 기억해 냈다.

“그래도 저녁 종이 여섯 번 울리기 전까지는 온다고 했었어.”

너자의 말에 리마가 지나가는 시녀를 멈춰 세우며 물었다.

“저녁 종이 몇 번 울렸는가?”

리마의 권위 있는 말투에 시녀가 공손히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일곱 번 울렸습니다.”

“고맙다.”

리마의 말에 시녀가 미소를 지으며 묵례를 했다. 리마가 그녀에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

“일곱 번 울렸대.”

“…들었어.”

“피곤하기 짝이 없어. 대체 이런 걸 왜 하는 거야?”

리마의 투정에 너자가 한숨을 쉬며 긍정했다.

“그러게 말이야. 이런 게 뭐 재밌다고.”

사람은 너무 많았고 음식 냄새가 진동했다. 거기에 사람들이 지나갈 때마다 무언가 인위적인 냄새가 코를 찔렀다. 너자는 이곳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벌써부터 진이 빠졌다. 너자가 버릇처럼 제 앞머리를 뒤로 쓸어 올렸다. 답답할 때마다 하는 버릇이었다.

눈썹 밑으로 삐죽하게 내려앉아 있는 너자의 검은색 머리카락이 뒤로 쓸리며 그의 잘생긴 얼굴이 샹들리에 빛에 반사되어 여상히 빛났다. 높은 코와 강인하게 튀어나온 눈썹뼈가 남자다웠다. 하지만 유순하게 내리깐 눈매와 입술은 섬세했다.

그들의 주변에서 야만인들을 훔쳐보고 있던 귀족들의 수군거림이 더욱 심해졌다. 우울함이 침전되어 있는 너자의 창백한 얼굴이 음심을 자극했기 때문일까, 너자의 귓전에 음탕한 단어가 들려왔다.

“저게 그 소문의 색노라고 합니다.”

“제 아들이 아카데미에서 몇 번 봤다고 하는데… 검은색 정액을….”

너자의 잘생긴 눈썹이 일그러졌다. 그레머와 조에프도 그 대화를 들었는지 얼굴에 모멸감이 일었다. 하지만 그들은 일개 시종이었고 천박한 말을 지껄인 사람들은 귀족님들이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리마는 음탕한 단어들을 알지 못했다. 리마가 눈을 깜빡이며 너자에게 물었다.

“너자, 색노가 뭐….”

“아가씨! 아가씨 덥지 않으셔요?”

“그래요. 아가씨. 황성의 정원이 아주 아름답습니다. 어서 나가요.”

당황해서 입을 꾹 다물고 있는 너자를 그레머와 조에프가 구해 주었다. 리마는 눈치가 빠른 편이었다. 그녀는 너자에게 더는 묻지 않고 조에프와 그레머의 말에 따르기로 했다.

그레머와 조에프의 인도를 받은 리마와 너자는 눈을 크게 뜨고 정원을 바라보았다. 어둠이 짙게 깔린 정원은 무척 넓었고 나무와 꽃이 무척 많았다. 하지만 그것에 놀란 게 아니었다. 맥켄지의 성에도 얼마 없는 빛이 나는 구슬, 발광석이 사방에 꽂혀 있다 못해 나무에도 달려 있었다.

맥켄지의 말로는 발광석이라고 하는데, 전투 사제들이 빛의 마법을 건 돌멩이라고 했다. 그것은 마치 반딧불이처럼 빛나는 돌이었는데 무척 비싸다고 했었다. 그래서 도노반 성에도 꼭 필요한 곳에만 달려 있던 것이었는데, 이곳은 사방이 발광석이었다.

어둠 속에서 환하게 빛나는 노란색의 돌멩이는 나무와 꽃들을 더욱 아름답게 보이게 만들어 주었다. 정원에는 작은 냇물 같은 것도 있었는데 물이 흐르는 가장자리에도 발광석이 꽂혀 있어 졸졸 흐르는 물에도 그 빛이 내려앉아 있었다. 마치 꿈을 꾸는 것같이 환상적인 광경이었다.

너자와 리마가 입을 벌리고 사방을 훑어보자 조에프와 그레머가 데리고 나오기 잘했다며 기뻐했다. 밤바람마저 살랑이며 부드럽게 불어왔다. 리마가 저도 모르게 말했다.

“오길 잘했네.”

“그러게… 여기 사는 사람들은 좋겠다.”

마치 시골에서 갓 상경한 촌놈들 같은 대화였다. 그레머와 조에프는 어느새 앞장서서 걷는 리마와 너자의 뒤를 쫓았다. 그렇게 한참을 걷던 리마가 발이 아프다며 멈춰 섰다. 아마 새 가죽 신발 때문인 것 같았다.

너자가 작은 발을 통통 치며 주저앉으려고 하는 리마의 몸을 번쩍 들어 올렸다. 너자의 강인한 팔에 엉덩이를 붙인 리마가 사방을 훑어보다 벤치를 발견했다. 너자는 리마가 발견한 벤치로 천천히 걸어가 그녀를 내려놓았다.

그들을 뒤따라온 조에프와 그레머가 퉁퉁 부은 리마의 작은 발을 보며 안타까워하다 새로운 신발을 받아 오겠다며 일어섰다. 사방에 황성의 기사가 깔렸고, 너자도 예전보다 살이 많이 붙고 체력이 좋아진 상태였다. 무슨 일이 있을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성으로 돌아가려는 그레머에 리마가 말했다.

“미안한데 목이 마르네. 마실 것 좀 가져와 줘.”

그녀의 말에 조에프가 같이 가겠다며 몸을 일으켰다. 그레머가 너자에게 어디 가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며 단단히 당부했다. 너자가 알겠다며 고개를 유순히 끄덕였다.

그레머와 조에프가 빠른 걸음으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벤치에 앉아 있던 리마와 너자가 그 모습을 보다 한숨을 쉬며 벤치에 등을 깊게 기댔다. 리마가 제 작은 발을 주무르며 너자에게 말했다.

“난 신발을 아무리 신어도 익숙해지지 않아.”

그녀의 투정에 너자가 픽 하고 웃고 앞머리를 뒤로 쓸어 올리며 수긍했다.

“나도 그래. 우린 맨발로 다녔잖아.”

너자의 말에 리마가 성가시다는 듯 혀를 차며 제 발을 주물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나 좀 돌아다닐게.”

“너무 멀리 가지는 마?”

“응. 저기 물에다가 발 좀 담그려고.”

너자가 리마에게 손을 흔들었다. 리마도 너자에게 손을 대충 흔든 후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의 냇가에 주저앉아 발을 담갔다. 리마의 작은 뒷모습을 응시하던 너자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벤치에 등을 깊숙이 기대었다.

리마에게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몹시 피곤했다. 너자는 리마처럼 당찬 성격이 되지 못했다. 그는 자신을 마치 더러운 오물 보는 듯한 시선들이 버거웠다. 너자가 쿡쿡 쑤셔 오는 눈을 기다란 손가락으로 지압하듯 꾹꾹 눌렀다. 그때였다.

냇가에 발을 담그고 있는 리마 옆에 한 아이가 서 있었다. 리마가 그 애를 보고 인상을 찌푸리며 무어라 하는 게 보였다. 그러다 리마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냇가에서 벌떡 일어났다.

너자도 리마를 따라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서로 싸울 듯 응시하고 있는 두 아이의 곁으로 뛰듯이 걸어가고 있을 때 어둠 속에서 나타난 키가 훤칠한 남자가 아이들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리마와 대립하고 있던 남자아이의 뒷덜미를 잡아채 그녀에게서 떨어뜨려 놓았다.

“…아….”

커다란 키와 짧은 애쉬 블론드의 머리칼이 밤바람에 흩날렸다. 허리를 굽히며 남자아이에게 무어라 하던 미남자가 뒤뚱뒤뚱 뛰어오는 너자의 인기척에 자연스럽게 미소를 지었다. 발광석 아래에서 남자의 웃음이 환하게 부서졌다.

미남자의 새하얀 웃음을 보던 너자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캔디스.”

남자아이의 이름은 세이렌이라고 했다. 캔디스는 세이렌에게 관심 가는 여자아이한테는 그따위로 행동하면 안 된다며 아이의 콧등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튕겼다. 캔디스의 말에 세이렌은 잠시간 꿍하게 있다가 자신을 경계 어린 눈으로 보는 리마에게 도도하게 말했다.

“나랑 함께 산책이나 하지.”

“싫은데.”

“뭐?”

리마의 단호한 거절에 세이렌이 충격을 받은 듯 표정을 굳혔다. 그리고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말했다.

“왜? 나와 함께 걷는 게 얼마나 큰 영광…. 야, 어디 가!”

세이렌은 제 말을 듣지도 않고 걸음을 옮기는 리마의 뒤꽁무니를 쫓았다. 리마는 그런 아이가 거슬린다는 듯 손을 휘젓고 앞만을 보며 걸었다.

마음에 들지 않은 건 아닌가 보네. 너자가 도도하게 걸어가는 리마의 뒷모습을 보며 픽 웃었다. 그녀가 정말로 짜증이 나고 세이렌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면 주먹으로 입을 다져 놨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고 앞만을 향해 걸어갔다. 쑥스러운 모양이었다.

너자가 다정한 표정으로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나쁜 애는 아닌 것 같으니 같이 있게 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너자는 먼저 앞서 나가는 아이들의 뒤를 천천히 쫓았다. 그리고 그런 너자의 옆을 캔디스도 따랐다.

캔디스는 너자의 느린 걸음이 답답하지도 않은지 앞서 걷지도 않았다. 그저 묵묵히 너자의 옆에 서서 발을 맞췄다. 앞에서 아이들이 말을 텄는지 무어라 하는 게 들려왔다. 너자는 아이들의 프라이버시를 위해 걸음을 좀 더 늦췄다.

너자의 발걸음이 느려지니 캔디스의 걸음도 덩달아 늦춰졌다. 그런 캔디스에 너자가 어색한 듯 눈을 깜빡였다. 예전처럼 그가 무섭지는 않았다. 맥켄지를 구하는 일에 도움을 줘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제 감정이 무뎌져서 그런 것일까. 더는 몸이 떨리지 않았다. 그때였다.

“잘 지냈어?”

다정한 목소리였다. 너자가 눈을 깜빡이며 입을 꾹 다물었다. 너자의 머릿속에 자신과 함께 가자며, 잘 대해 주겠다며 애절하게 말하던 그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잘 살고 있다고 하면 그가 슬퍼할 것 같았다. 너자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앞만을 보며 걷고 있을 때 몸이 휘청였다. 너자가 무너지려는 몸의 중심을 잡기 위해 뒤로 젖히려고 할 때 그의 팔에 강인한 힘이 닿았다.

“…….”

“조심 좀 해.”

캔디스가 제 품 안에 껴안은 너자에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천천히 제 품 안에서 떼어내 그를 일으켜 세웠다. 너자는 캔디스의 부축에 숙였던 몸을 곧게 폈다.

부츠 끈이 풀린 모양이었다. 너자는 껄떡거리는 오른쪽 부츠를 난감하게 바라보았다. 아마 조에프가 불편한 제 오른쪽 발목을 배려해 부츠 끈을 헐겁게 묶은 모양이었다.

차차 나아간다 해도 몸을 숙이는 일은 잘하지 못했다. 부츠 끈을 묶으려면 아예 바닥에 주저앉아 끈을 묶어야 했다. 다시 일어나는 것도 꽤 힘든 일인데…. 너자가 한숨을 쉬며 바닥에 주저앉으려 몸을 숙였다.

“…!”

하지만 자신의 앞에 주저앉아 제 오른발에 손을 뻗은 캔디스에 몸을 굳혔다. 너자가 너무 놀라 말도 하지 못하고 있을 때 캔디스가 아무렇게나 풀려 버린 너자의 부츠 끈을 양손으로 잡았다.

그의 커다랗고 섬세한 손이 너자의 부츠 끈을 동여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손짓이 무척이나 느렸다. 너자가 이러지 않아도 된다며 그에게 잡힌 오른발을 빼내려고 할 때 캔디스의 목소리가 너자의 행동을 멈춰 세웠다.

“기억나?”

“…….”

“내가 너를 도와주는 조건으로 했던 말.”

캔디스가 고개를 들어 올려 너자를 바라보았다. 잘생긴 그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띠어 있었다. 캔디스는 분명 웃고 있는데 이상하게 슬퍼 보였다. 너자가 그런 캔디스의 시선을 피하지 않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너자의 행동에 캔디스가 여상히 말했다.

“…목소리 좀 들려주면 안 될까?”

너자의 목구멍 안으로 무언가가 치솟았다. 하지만 너자는 본능적으로 느꼈다. 이것을 내뱉으면 돌이킬 수 없으리라는 것을.

캔디스는 입을 꾹 다물고 자신을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응시하는 너자를 보다 픽 하고 웃었다.

“너는 항상 이랬어.”

“…….”

“나한테만 비싸게 굴더라.”

“…….”

캔디스가 멈췄던 손을 움직였다. 그의 커다란 손이 섬세하게 리본을 묶기 시작했다. 마찬가지로 그 행동은 무척이나 느렸다. 하지만 리본을 묶는 것은 쉬운 일이라 그리 긴 시간이 지나지 않았다. 그가 벌써 묶어 버린 리본을 오도카니 응시하다 입을 열었다.

“그런데 난 싫지 않았어.”

“…….”

“지금도 싫지 않아.”

캔디스가 너자의 앞에서 주저앉았던 무릎을 폈다. 그의 얼굴이 조금 상한 것 같았다. 너자는 제 눈높이와 비슷한 캔디스의 초원을 닮은 눈을 응시했다. 너자의 가슴이 울렁거렸다.

캔디스의 잘생긴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 그의 입술이 살짝 벌어지다 닫히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그가 무언가를 발견했는지 어둠 속을 한참이나 응시하다 입을 열었다.

“사랑해.”

너자의 얼굴이 결국 일그러지고 말았다. 마치 울 것같이 자신을 바라보는 너자에 캔디스가 다정하게 웃으며 그의 뺨을 툭툭 쳤다. 그리고 제 품 안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너자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캔디스가 그것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혹시라도… 그놈이 널 다시 괴롭히거나, 널 슬프게 한다면.”

그의 손가락에 동그란 무언가가 들려 있었다. 너자가 그것을 보며 입을 벌렸다. 그 유순하고 순진한 반응에 캔디스가 멋지게 웃으며 그것을 너자의 작게 벌어진 입에 넣었다.

“나한테 기회를 줘.”

“…….”

너자의 혀에 그것이 닿았다. 너자가 그것을 한쪽 볼에 굴리자 그의 마른 뺨이 조금 볼록해졌다. 그 모습에 캔디스가 참을 수 없다는 듯 웃으며 그 볼록한 뺨에 손을 잠시 대었다 떼어냈다.

“…네 사랑이 오네.”

캔디스의 말에 너자가 고개를 돌려 그의 시선에 닿는 것을 바라보았다. 어둠 속에서 반짝거리는 무언가가 다가오고 있었다. 캔디스는 그것을 본 너자의 굳었던 표정이 사르르 풀리는 것을 보며 어쩔 수 없다는 듯 웃고 너자의 까만 머리통을 그 큰 손으로 흐트러뜨리며 말했다.

“행복해라.”

그리고 미련 없이 너자의 곁에서 떨어졌다. 너자가 맥켄지를 보느라 돌렸던 시선을 다시 캔디스에게로 돌렸을 때 그는 이미 사라진 후였다. 너자가 몸을 움직여 캔디스를 찾으려고 할 때 어느새 너자의 곁으로 다가온 맥켄지가 너자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뭐 찾아?”

너자는 제 손을 꽉 붙잡은 맥켄지의 절박한 손길에 눈을 느리게 깜빡이다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무것도,”

“…….”

“아무것도 아니야.”

너자의 답에 맥켄지의 굳었던 얼굴이 조금씩 풀려 가기 시작했다. 너자는 그런 맥켄지에게 살포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집에 가자.”

“응. 가자.”

너자는 자신을 잡아끌며 리마에게로 가는 맥켄지의 너른 등을 보며 복잡한 미소를 지었다.

입에 담겨 있는 캔디가 무척이나 달았다.

<휘핑보이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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