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의 시대-157화 (157/159)

157화

"인문대학이나 예술, 철학전공 학생들한테는 경제신문을 통해 세상을 바라봐야 좀 더 객관적으로 사회현실을 이해할 수 있다고 알려주곤 해. 그래서 다음학기부터는 경제나 경영 비전공자를 위한 경영학 특강수업을 개설하려고."

"열심이시군요"

이 말에 멋쩍다는 듯 논길을 애써피하면서 에둘러댔다.

"생각해봐.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 대다수가 나중에 경영자가 되거나 화이트칼라. 즉 사무직 근로자가 될 사람들이야. 그들하고 노조와 상관이 있나?

노조는 오로지 생산직이지. 하루에 15시간씩 의자에 앉아서 일하는 사람들의 권익을 좌파, 노동운동가라는 사람들은 철저하게 외면을 하거든.

사실이 그렇잖아. 하루에 15시간씩 혹사당하는 무등그룹 부장들의 권익을 위해 노동운동가가 나서던가? 그런 놈들은 입만 살아서 자유민주주의는 안된다.인민민주주의를 하자. 이딴 소리나 지껄이지. 대다수 대졸자들에겐 노조는 없어져야 할 존재야."

"맞는 말이죠. 재벌회장들은 감옥 잘도 가더만."

그렇게 답한 배상수 부사장을 보며 그가 말했다.

"회사는 잘 돌아가는 모양이군. 잘된 일이야. 나도 돌이켜보면 많이 모자란 사장이지. 원가팀장도 안해보고. 사장이면서 관리회계도 잘 모르고. 나 때문에 원가팀장인 오상혁 부장. 관리회계 유상은 이사가 고생깨나 했겠지?"

"오상혁 부장은 이제 이사가 되었죠. 사장님이 한테 하도 깨져서 복수심에 일했죠. 유 이사는 상무달았고요. 지금 북미지사장으로 나가있답니다. 다들 잘됐죠."

"그래. 직장인으로서의 삶이라. 아직도 난 모르겠어. 과연 내가 제대로 일은 했는지. 회사가 어떻게 또 돌아가는지. 막상 학생들한테 설명하려니 내가 더 몰라."

과거를 반추하는듯한 어투로 그는 스카치가 담긴 잔을 조용히 흔들었다. 얼음이 유리잔에 부딫히는 소리가 옅게 퍼져나가는 듯 했다.

"배상수. 이제 부사장되고, 아주 승진도 빨라. 뭐 자네 덕에 도리어 더 여유있게 지내기는 하지만 그냥 얼굴이나 보자 한거야. 바쁜 사람 붙잡는거 같아서 미안하지만."

"아이고.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사장님이 아니었다면 전 이자리 못왔어요. 사장님이 부장시절일때부터 절 단련시켰잖아요."

옛날 생각이 다시 떠오른 듯 박기범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구나. 부장일때. 아련한 때였지. 가만 보면 부장일때 뭐랄까 인상이 더 남는 모양이야. 뭔 소린지는 알지?"

"그럼요."

고개를 끄덕인 배 부사장은 잔에 담긴 스카치를 쭉 들이켰다.

"지금도 한잔 하시러 도쿄로 가세요?"

"자주 가. 주말에 술생각나면 도쿄로 가고. 거기 술집은 단골이라 내가 가면 잘 해줘. 서울에서 술을 마시면 아무래도 걱정거리도 많고 생각할게 많아. 하지만 외국에서 술을 마시면 아무런 잡생각도 없지. 정말 평온해. 그 맛에 도쿄로 가곤 했지. 2010년부터 가기 시작했으니까."

여기까지 말한 그는 남은 술을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냥 술생각 나서 찾아온거야. 집에 들어가야지. 그대나 나나."

박기범은 자기가 술값을 계산하고 밖으로 나왔다. 뒤따라 나오는 배상수 부사장을 보면서 말했다.

"들어가. 난 택시타고 가면 되니까."

마침 다가오는 택시를 잡아타고 사라지는 모습을 보며 배상수 부사장은 택시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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