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5화
며칠 뒤, 서울소재 사립대학의 교수로 재직하는 송영찬이 전화를 했다.
"너 올 9월부터 시간강사로 우리 학교에 올래?"
"나더러 경영학을 가르치라고? 재무관리? 그거야 가볍게 커버해주지. 하하하."
"그것도 있고, 우리 학교에서 문과대학은 예술관련 수업을 듣도록 했는데, 너 팝 역사나 이런거 강의 안할거야? 기왕이면 재무관리도 좋지만 그런 음악쪽 강의를 해보는 것도 좋을 듯 싶어서."
솔깃한 제안이었다. 시간강사라면 흔히 겸임교수라고 불리는 직책이 아닌가? 일부 정신병자 같은 겸임교수가 미친년 날뛰듯 대중매체에서 설쳐대기는 하지만 박기범은 그럴 필요는 없었으니까.
"좋아. 학교측에 말해줘. 9월부터 하도록 할게."
전화를 끊고나서 박기범은 어딘가 즐거워졌다. 자신이 알고 있는 팝에 대한 지식을 전달해주는 것. 또 문과대학 학생들이 이러한 다양한 지식을 겸비함으로서 또 다른 경쟁력을 갖는 것도, 그런 것을 이끌어내는 것도 중요하고 가치있다고 생각했다.
"재미있겠다."
2012년 9월. 서울시내 대학들이 일제히 개강을 했다. 그는 자신의 벤츠를 타지 않고 지하철로 학교에 왔다.
"음. 햇빛도 따뜻하고, 분위기도 젊다."
혼자 중얼거린 그는 예술대학 학사지원실에 들러 여러 가지 서류를 인계받았다. 그리고 강의실로 들어갔다.
"대학교라. 번잡한 경영학을 벗어나서 인간의 창의를 가꾸는 예술대학 겸임교수라."
중얼거린 그가 시간에 맞추어서 강의실로 들어갔다. 이미 학생들이 와 있었다.
"안녕하세요. 이번 학기. 팝의 역사와 이해를 맡은 박기범입니다. TV나 신문에도 저랑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이 나오는데 그게 저 맞고요. 공주경제신문에 저 자주 나와요. 논설위원으로. 한때 무등그룹 사장까지 했으니 여러분들 공강시간 때 나한테 오면 밥은 사줄게요."
몇몇 학생들은 놀라기도 했고 몇몇은 밥을 사준다는 말에 환호하기도 했다.
"강의계획서. 그딴거 없어요. 종이낭비지 뭐. 시험은 없고, 매주 리포트가 나가요. 그 누적점수로 성적을 매길것이고, 그래서 지각하거나 결석하면 타격이 크죠. 어쨌건 수강정정기간 거치고 확정되면 일사천리로 진행합니다."
이제 박기범은 대학의 시간강사로서 새출발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대학에서 경영학도 함께 가르쳤다.
"자. 이번 시간부터 본격적으로 팝 음악의 이해를 진행합니다."
그렇게 말을 한 그는 분필을 하나 들고 시간표를 그렸다.
"팝 역사를 잘 이해하려면 먼저 간단한 역사를 알아야 합니다. 팝송은 미국 팝을 지칭하는데, 이미 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기 전부터 미국인들은 집집마다 라디오, 자동차, 냉장고가 있었어요. 그러니 생활수준이 높았고 여가시간도 많아서 팝송이 본격적으로 부흥하게 되었죠."
그리고 칠판에 시간표 시작부근에 표기를 했다. 1945라고 적었다. 바로 2차 대전이 끝난 해였다.
"2차 대전이 끝나고 미국은 대호황이 도래합니다. 1950년 기준으로 이 당시 미국의 연간 자동차 생산량이 무려 800만대. 이 때 전세계 자동차 총 생산량이 1천만대였던걸 감안하면 아주 놀라운 수치죠."
파워포인트로 당시의 사진을 보여주면서 수업을 이어나갔다.
"자. 이때 미국의 베이비붐 세대가 막 태어나게 되었고, 이들이 10대 초반이 되던 1955년. 엘비스 프레슬리의 등장으로 본격적인 팝송의 시대가 열리게 됩니다. 그 전에는 주로 가정주부, 캐럴송, 댄스 홀에서의 댄스뮤직 위주였죠. 본격적인 팝의 시대가 이 때 열렸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