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화
번잡한 회사를 뒤로하고 놀러다니거나 팝을 들으면서 소일하던 중 전화가 왔다. 무등그룹의 자회사 중 하나인 공주경제신문이었다.
"여보세요."
"공주경제신문입니다."
"신문 구독 안해요."
전화를 끊으려고 하자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닙니다. 박기범 선생님께서 논설위원을 맡아주셨으면 합니다. 신문에 논설을 실어주세요."
"이 나이먹고 논술고사 치라고?"
말을 잘못 알아듣자 전화에서 다시 목소리가 들렸다.
"논설위원입니다. 황영식 회장님의 지시에요. 부탁드립니다."
가만히 들어보니 괜찮을 것 같았다. 뭐 사장까지 했던 경험을 가지고 아무렇게나 갈겨대도, 물론 그러면 안되지만, 좋은 글이 될 듯 싶었다.
"그렇게 하지"
"고맙습니다. 이메일로 관련 서류 보내드렸으니 부탁드립니다."
전화를 끊고 나서 이메일을 확인하자 그가 논설을 신문사에 제출해야 하는 날이 적혀있었다. 매주 수요일. 그의 이름을 걸고 기재하는 칼럼이었다. 마음에 들었다. 마침 다음주 수요일에 올라가야 하므로 화요일까지 제출해야 하는 칼럼이 있었기에 차분하게 마음을 가다듬고 원고를 작성했다.
[복지국가와 경제민주화의 저주]
박기범 전 무등그룹 사장
1987년 필자는 넥타이 부대로서 명동성당에서 전두환 독재를 타도하라는 대학생을 지지했다. 월급봉투의 일부를 떼어 격려금으로 주었다가 나중에 보너스를 몽땅 주어서 아내에게 몰매를 맞았던 기억이 떠오른다. 당시 민주화는 시대정신이었다.
민주주의를 도입하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하지만 이 시기 이후 전투적 노조의 탄생, 노조의 권력화가 이루어졌고, 노사관계에서도 노조는 슈퍼 갑, 회사는 슈퍼 을이 되었다.
자동차 한대를 만드는데 울산은 30시간, 알래바마 미국공장은 15시간이지만 월급은 울산이 알래바마의 2배다.
아마 1987년에 민주주의를 도입한건 당시 우리나라 국민들의 수준에는 맞지 않은 모양이다. 한 1997년경에 도입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필자는 팝을 좋아한다. 빌보드 차트는 그야말로 자유시장경제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소비자의 선택에 의해 순위가 집계되며 적나라하게 얼마나 많은 앨범이 팔렸는지 나온다. 좌파들은 뒤집어지겠지만 이걸 학교에 적용하면 학교간 성적이고, 우리 반에서 누가 성적이 좋은지 알게되는 것이다.
요즘 경제민주화가 논의된다. 무상복지라는 말도 나온다. 이미 노조의 파워는 기업과 정부를 압도한다. H자동차만 해도 임원으로 승진한 사람들도 나사나 조이고 데모하면 억대를 타가는 생산직을 부러워하겠는가?대한민국 상위 0.001%는 재벌이나 대기업 회장이 아니라 귀족노조, 황제노조, 아니 브라만 노조라고 한다.
재벌회장은 조그만 잘못을 저질러도 구속되지만 노조위원장은 절대 구속되지 않는다. 정부를 쥐고 흔드는 것은 재벌이 아니라 노조다. 이런 상황에서 경제민주화에 우선할 것은 지나치게 노조 편향적인 정부의 법을 바꾸어야 한다.
학교현장에서 이런 말을 한다. 열심히 공부해서 명문대를 들어가 대기업 사무관리직이 되면 45살에 짤리는 이른바 수드라의 삶을, 아이들 돈이나 뺏고, 공부못해서 기술배운 아이는 생산직이 되어 정년도 60살에 에쿠스를 타는 브라만 혹은 크샤트리아의 인생을 산다. 좌파들은 이런 시스템을 좋아한다. 북한이 그랬고 쿠바가 이랬다. 이들 나라에서 굶어죽는 사람만 수백만.
복지는 좋다. 다만 과하면 안된다. 게다가 과도한 복지는 인간의 창의성을 떨어뜨리고 경제를 망하게 한다. 복지와 인간의 창의성은 역의 관계이다. 빌보드를 점령한 가수들을 보라. 신자유주의 시스템을 갖춘 미국과 영국 가수들이, 신자유주의를 도입한 우리나라 가수가 올라간다.
그 잘난 복지국가 스웨덴의 가수가 빌보드에 올라가는가? 74년 블루 스위드와 77년 아바 이외에는 없다. 창의력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좌파라는 사람들도 멋진 카페에 앉아 레이디 가가의 노래를 듣는다. 그들이 좋아하는 애플의 아이폰. 미국제품이다.
바로 신자유주의 시스템이 만들어낸 것들이다. 복지국가 스웨덴에서 이런 혁신적인 제품이 나왔는가? 볼보도 망했고 사브도 망했다. 복지했더니 다 망해버렸다. 대단한 복지국가다. 이런 복지를 하느니 차라리 정글이 더 아름다울 것이다.
그는 아무렇게나 원고를 휘갈겨대고 놀러갈 채비를 했다. 그런데 그가 기고를 할때마다 공주경제신문은 판매고가 급증하고, 많은 기업인들은 박수를 보냈으며 좌파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울화통을 터트렸다. 박기범은 이해를 하지 못했다.
"옳은 소리라 그런가? 내가 조금이라도 틀렸다면 사장 했겠나?"
그는 신문에 고정칼럼을 쓰는 것이 재미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