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화
배상수 상무가 문쪽으로 다가가 문을 열자 인사총괄 본부장인 황선욱 전무가 안으로 들어왔다. 아마 내용을 다 들은 모양이었다.
"박 사장. 자네 임기는 4월 20일까지 합세. 충분한 시간이 될거야."
황선욱 전무가 위로하듯 말했다.
"뭐 퇴직금에 뭐다 하면 두둑하게 나와. 걱정 말아. 퇴직금 산정 기준 월급이 7천만원. 32년 근무니 22억 4천만원이 퇴직금이 될 것이고, 예상보다 빨리 물러나니 그 퇴직수당도 한 5억은 나갈거야. 그리고..."
잠시 말을 멈춘 황 전무가 다시 말하기 시작했다.
"우리회사 주식 가지고 있는거 한 45억은 되잖아."
"사장이니까 그렇지"
박기범 사장은 의자에 주저앉아서 대답했다.
"이제 석유화학위주의 무등그룹이 금융산업위주로 개편된다? 하지만 실패사례가 많아. 내가 기억하기로 일본에 가서 100억엔 차입시킬때, 세계최대 자동차 회사는 미국의 제너럴 모터스였어. 지금은 일본의 도요타 자동차지만."
잠시 말을 멈춘 뒤 배상수 상무와 황선욱 전무를 번갈아가며 쳐다보았다.
"비록 도요타는 제너럴 모터스보다 생산량도 뒤진 세계 3위였지만 더 주식시장에서 가치가 높았어. 83년 당시 시가총액이 세계 6위였다고. 그만큼 제조업이면서도 가치가 있는 회사였지. 그렇게 하면 돼."
"맞습니다. 하지만 그래봐야 한계가 있죠. 도요타가 골드만삭스보다 더 위대한 기업이 될 수는 없죠."
배상수 상무의 반박을 들은척 못들은 척 박기범 사장은 아까의 말을 이어나갔다.
"도요타는 그 때도 GM보다 순이익도 많았고. 제너럴 모터스는 본업인 자동차 제조에도 이미 80년대 초반부터 밀렸는데도 더 좋은 차를 만들기 보다는 할부금융, 오토론등의 금융에 치중했지. 그러다가 2008년에 파산했고."
"우리는 달라요. 조선은 중국인들에게 매각하지만 유전은 가지고 있을 겁니다. 공주와 전주를 잇는 탄소섬유라인의 지분은 중국과 미국기업에게 넘겨도 여전히 우리가 이니셔티브를 가지고 있거든요."
"이니셔티브라"
박기범 사장은 중얼거렸다.
"지금 2011년 현재 전세계 제조업의 주도권은 중국이 쥐고 있지요. 현재 중국 제조업은 전세계 제조업 생산액의 22%로 세계 1위. 다음이 미국으로 18%를 차지합니다. 일본이 미국을 능가할거라고 폴 케네디 같은 바보 천치가 떠들던 1989년에도 일본의 제조업생산액은 전세계의 15%로 미국의 25%에 비하면 택도 없었죠."
"그래. 내 말이 그거야. 이미 중국이 제조업에서 미국을 꺾은 순간 미국의 운명은 중국에게 밀려나게 되어있어. 지금도 미국의 자동차 회사. 심지어 보잉 같은 항공기 회사들도 미국투자는 취소해도 중국투자는 늘리거든."
따지는 듯한 목소리로 말하자 배상수 상무는 차갑게 말했다.
"겉보기엔 그렇지만 현재 중국의 GDP는요? 미국 GDP의 절반입니다. 제조업 장악해봐야 별거 아니라는 것이죠. 사장님. 지난달 IR때 그 호화롭던 증권회사의 임원실 기억나시죠?"
"그래."
힘겹게 말을 한 박기범 사장과 달리 배상수 상무의 목소리는 아주 크고 쾌활했다.
"우리도 그렇게 업그레이드 해야죠."
"좋아. 배 상무. 회사 경영잘해. 내가 가진 무등그룹 주식 45억 어치가 10년 후에는 450억이 되고 20년 후에는 4500억이 되도록 말이야. 이 나이 먹고 페지나 주으러 다닐 수는 없잖아. 사무실에서 쓰는 A4용지 같은 복사용지가 더 폐지값을 높게 받는대."
"그럼 경지실 폐지함을 털면 벤츠 한대 사겠는걸?"
황 전무가 웃으면서 말했다.
"지나다니다 보면 폐지줍는 노인들 죄다 질낮은 종이박스만 모아. 무겁고, 품질도 나빠서 돈도 안되는데 말이야. 사무실에서 쓰는 복사용지가 질도 좋고, 그래서 가격도 더 높게 쳐주거든. 무등오피스에 줄거를 회사 앞에 다니는 노인들에게 한트럭씩 안겨다 줘?"
"재생사무용지나 노트, 메모지로 재활용해서 버는 돈을 기부하라고 해. 젠장. 난 이제 사장도 짤리고 알량한 퇴직금 받는데 유머가 나와? 벤츠 S500은 어떻게 하려고?"
이제 화보다는 푸념위주로 변한 박 사장을 보면서 배상수 상무가 미소를 지어보였다.
"퇴직금이 있잖아요. 주식도 있고. 국민연금도 있으니, 최소한 한달에 돈 백만원은 그냥 먹잖아요. 사모님도 교사니까 교원연금도 3백은 되겠고."
"사람이 그렇게 이성에만 의지해서 살 수 있나?"
다시 푸념을 했다.
============================ 작품 후기 ============================
한국투자증권 대졸초임이 4800만원이더군요. 우리투자증권도 4560만원이 초임이고. 제가 사회로의 첫발을 가구 제조 및 유통 중견기업의 경영지원실 자금팀에서 시작했습니다. 그 때 초봉이 3천만원. 근무시간은 8-8 or 8-10였답니다. 월 마감할때는 10시나 11시에도 가곤 했지요.
국가적으로야 제조업의 기반이 튼실해야 발전하겠지만 (일본의 경우 잃어버린 10년에도 끄떡없던 것은 난공불락의 제조업 생산성이죠. 도요타를 봐도 알 수 있죠) 개인의 입장에서는 제조업 들어가서 개고생하고 푼돈 버는 것 보다는 증권회사가서 9-3하고 초봉도 두둑히 받는게 좋겠죠. 은행도 초봉이 5천만원 수준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