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의 시대-150화 (150/159)

150화

"알아요. 이럴때, 중국의 경쟁자에게 비싸게 파는거죠. 현명한 행위입니다. 어차피 조선업은 중국에게 밀리게 되어있습니다. 나중에 경쟁력 다 잃고 헐값에 매각하느니 지금 고가에 팔아치우게 하죠. 중국 같은 멍청이들이나 작업복 입고 용접이나 하라고 해요. 우리는 수준높게 커프스 단추를 찬 정장을 입고 미국주식, FX마진 트레이딩, 선물옵션, 이런 걸 해야죠."

박기범 사장은 뭐라고 해야할지 몰랐다.

"사장님. 지금은 21세기입니다. 우린 현명하게 돈을 벌 수 있어요. 일본이 그렇게 제조업이 세계최강이라 잃어버린 10년을 맞이했나요? 독일이 그렇게 제조업 경쟁력이 뛰어나서 영국에게 주도권을 빼앗겼나요?"

배상수 이사는 계속 자신의 주장을 피력했다.

"이제 제조업은 끝났습니다. 멍청하게 공장에서 힘들여서 뭘 만들고, 손에 기름때나 묻히는 그러고도 저임금에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바보짓을 하면 안됩니다. 9시 출근해서 주식시장 개장과 함께 현명하게 돈벌고 3시에 마감하면 퇴근하는 그런 현명한 삶을 살아야죠. 탄소섬유? 조선업? 그냥 중국에게 넘깁시다. 우리는 고차원적인 일을 하는겁니다."

"야. 셰일가스 운반선도 제조해서 미국의 석유메이저들에게 비싸게 넘겼어. 우리가 바가지 씌운걸 알면서도 사갔다고. 그렇게 뛰어난 우리 조선업을 뭐? 멍청해? 그걸 중국에게 넘겨?"

박기범 사장은 배상수이사의 사고방식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배 이사는 자신감을 가지고 이야기 했다.

"요즘 가장 뛰어난 대학생들은 증권회사 갑니다. 공부 못하고 못날 수록 제조업에서 일하고요. 그래서 제조업은 평균 연봉도 가장 낮고 근로시간만 긴 비효율적업종이죠. 금융업은 평균 연봉도 가장 높고 가장 적게 일하죠. 사장님은 21세기에 사십니다. 왜 18세기적 사고를 하시죠?"

"그래서 우리가 돈 더주잖아. 2008년부터 대졸초임도 4천으로 올렸고, 지금 우리회사 대졸초임이 5천이야. 내년엔 5250. 내후년엔 5500으로 올릴 거라고. 이젠 증권사들도 3천 중반 주는 곳도 생겨나고 있다고."

항의하듯 말을 했지만 배상수 이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IB로 전환하면 돈을 더 줄 수 있거든요."

배 이사는 가져온 두툼한 서류철을 건네면서 말했다.

"긴 말 안하겠습니다. 여기 사장님에 대한 불신임결의안입니다. 읽어보시죠."

"불신임? 나를?"

서류철을 열어보자 A4용지에 -경영지원실 박기범 사장 불신임 결의안-이라고 쓰여져 있었고 그 아래에는 이 결의안에 서명한 임원들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어떤이는 자신의 이름을 한문으로 쓴 뒤에 도장을 찍기도 했고 한글로 쓴 이름에 도장을 찍거나 서명을 한 사람들도 있었다.

"신종원 조선사업본부장이 왜 반기를?"

"웨이하이가 인수하면 연봉을 지금의 3배를 주거든요."

태연하게 대답하는 배 이사를 원망스러운 눈으로 보면서 다른 임원들의 이름을 지켜보았다.

"오원철 석유사업본부장은...후....그럴법도 하겠군. 석유팔아 얻은 이익으로 주식투자라......자금담당, 대학에서 재무를 공부한 임원들은 누구나..알겠군."

책상에 서류를 내려놓으며 박기범 사장은 자신이 이 게임에서 졌다는 것을 직감했다.

"내가 졌군. 아무래도......."

"그런 말이 있죠. 선진국은 이제 자기들이 가진 것을 팔아서 돈을 벌어야 한다. 맞습니다. 우리는 이제 중국에게 우리의 조선산업을 넘겨서 돈을 벌고 새로운 미지의 영역으로 가야죠. 탄소섬유. 그거 얼마나 돈을 버나요? 자동차를 100% 탄소섬유로 만드는 것도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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