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화
2012년 3월 7일 아침 10시. 경영지원실로 들어온 배상수 기획실 상무는 박기범 사장을 만나러 왔다. 그는 유리로 된 문을 두드렸다.
"들어와요."
박기범 사장이 대답했다. 문이 열리고 배상수 상무가 들어왔다.
"오. 배 상무. 아침부터 무슨 일이야?"
쾌활한 목소리로 월요일 아침을 맞이하는 박기범 사장은 기획실장 겸 자금팀 총괄 본부장인 배상수 상무의 방문을 반겼다. 그는 두터운 결재철 파일을 들고 있었다.
"뭐 결재라도 받을 거 있는 모양이지?"
박 사장은 방금 전 도장을 찍은 결제파일을 덮으며 말했다. 배상수 이사가 입을 열었다.
"사장님. 그 신산업 기획과 관련해서요."
"신산업?"
고개를 가로저으며 손사래를 쳤다.
"봐. 나도 신산업 운운했지만 우리는 신산업이 필요없어. 알잖아. 섬유. 섬유는 석유화학이지. 그래서 석유정제소를 건설하고, 안정적 석유공급을 위해 유조선이 필요했고, 그래서 조선소도 건설했지. 그것 뿐이야? 석유는 탄소덩어리라고. 결국 세계최대 탄소섬유 생산라인을 건설 중이잖아."
"잘 알고 있습니다. 그게 사장님의 아이디어라는 것도요."
기분좋게 웃으면서 소파에 몸을 기댔다.
"2013년 완공예정인 당진 제2 탄소섬유라인은 잘 돼가고. 2016년 완공예정인 공주 3공장도 계획대로 추진되는거지?"
박기범 사장은 벽에 걸린 한반도 달력을 쳐다보았다. 충남 공주에서 시작해서 전북 전주까지 커다란 원이 그려져 있었다. 무등그룹이 추진중인 탄소섬유벨트였다.
2014년이 되면 여수에 위치한 제1 탄소섬유라인은 생산포화에 이르게 되고 당진 역시 수년간 이어진 중화학공업 투자로 인해 인근 산업지대가 포화상태가 된다. 때마침 당진-공주간 고속도로가 완공된 터라 공주에 제3 탄소섬유라인을 증설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일본의 킨키 상사와 함께 손잡고 추진한 인도네시아 석유광구의 발견은 탄소섬유산업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이제 석유채굴-석유화학-화학섬유-탄소섬유로 이어지는 수직계열화, 섬유의 원료인 석유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한 해운-거제 옥포조선소 설립으로 이어지는 수평계열화는 무등그룹을 국내 3위의 거대기업으로 만들어냈던 것이다.
"제2 공장과 관련해서, 그리고 조선소와 관련해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뭔데 그래?"
박기범 사장은 에상치 못한 대답을 들었다.
"현재 거제 옥포조선소를 중국의 웨이하이 조선그룹에게 매각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뭐야? 누구 마음대로? 내 허락도 없이 뭐를 매각해?"
박기범 사장은 소리치며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언제 그런 결정이 떨어진거야? 사장인나의 허락도 없이. 사장의 도장없이 무슨 일을 한다는거야? 결재라인에 내가 없으면 안될텐데?"
하지만 배상수 이사는 눈하나 깜짝하지 않고 태연하게 대답했다.
"제2 탄소섬유라인은 지분의 1/3을 미국의 플로리다 케미컬에, 1/3을 중국의 둥펑 화학에 매각할 계획입니다. 플로리다 케미컬은 무려 지분가치로 250억 달러를 제안했습니다."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거야? 왜 멀쩡한 지분을 매각해? 탄소섬유시장이 얼마나 확대되는데. 그걸... 우리 무등그룹의 탄소섬유는 세계최고의 경쟁력을 가지고 있어. 현재 탄소섬유시장 점유율 1위. 생산능력 1위인데 뭐가 아쉬워서 넘에게 지분을 매각해?"
이어지는 배상수 상무의 대답은 박기범 사장을 더욱 놀라게 했다.
"그러니까 팔아야죠. 현재 세계1위의 경쟁력. 모두가 가지고 싶어합니다. 제값 쳐줄때 팔아치우고 그 돈으로 더 똑똑한 일을 해야 옳겠죠."
"그게 뭔데?"
"증권입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박기범 사장은 놀라서 벌어진 입을 다물지도 못했다. 그는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증권? 금융업을 하기 위해 세계최고인 탄소섬유를 팔고, 대우조선해양과 더불어 우리의 조선업도 세계적이야. 유조선은 우리가 세계에서 가장 잘만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