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의 시대-148화 (148/159)

148화

"사장님."

FICC파트장으로 다시 복귀한, 배상수 상무가 사장실로 들어왔다. 2012년 2월 6일 월요일이었다. 박기범 사장은 짬을 내서 그에게 배달된 자동차 카탈로그를 보고 있었다.

"배 상무 왔어? 저기 작년에 스위스 역외계좌로 국회에서 떠들던거 잘 막아주었다고 오 명예회장님이 1억원 주시더라고."

또한 부당한 정부의 압력으로부터 해방되었다는 기념으로 부장급 이하 전직원이 2백만원의 금일봉을 받았다. 배상수 상무도 2천만원의 금일봉을 받았지만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 1억에다 다른 돈을 좀 보태서 차를 한대 사려고. 신형 벤츠 S클래스나 BMW7시리즈, 아니면 렉서스 어때? 배 상무 미국에서 뭐 타고 다녔어?"

"대리 시절 미국가서는 도요타 카롤라를 탔죠. 지사장 시절에는 제네시스를 탔는걸요. 현대꺼. 렌트카였죠."

"이런 제네실수를 타다니. 아주 큰 실수를 했군 그래."

한번 너털웃음을 짓고 나서 박기범 사장은 책상위에 놓인 텀블러를 들고 뭔가를 한모금 마셨다.

"국산차는 믿을게 못돼. 황제노조 뒤치다거리나 해주는 격이지. 신형 벤츠를 하나 더 사던지, 렉서스를 타던지 해야겠어."

"사장님. IR일정은 언제로 잡는게 편하세요?"

"왜? 2월달에 한번 하려고?"

"뭐 허락만 하신다면야."

이 말에 박기범 사장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무슨 2월부터 IR을 하나? 4월에 해. 4월."

"좋긴 하지만 다른 회사들도 그즈음에 해서요. 미리 IR을 해야 주가 부양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겠죠."

"그럼 그렇게 해. 하긴 양적완화다 뭐다 해서 경기불황인데도 주가는 사상최고치를 계속 갱신중이니. 청년실업이 사상최고치네, 가게부채가 사상최고치네, 중산층이 붕괴하네 해도 주가가 팍팍 올라간다는게 나 같은 두자리수의 아이큐를 가진 인간은 이해하지 못할거야."

"사장님이요?"

"그럼. 뭐 이런 주간 경제지를 보면."

박 사장은 책상에 놓인 경제지를 들었다.

"무슨 투신운용이니 자산운용사의 펀드매니저들은 손실한번도 안내고 떼돈 벌더라고. 가치투자인지 뭔지 해서 연봉이 수백억에 이르고 펀드 자산도 몇십조원이 되는 모양인가봐. 프로필 보니까 나보다 나이도 열살 이상 어린데 돈은 나보다 수백배를 버는 모양이야."

"그렇게나요? 설마요. 사장님 연봉이 얼만데요."

아무리 자산운용이 잘나간다고 해도 그렇게까지는 안된다는 듯 말을 하자 박 사장이 정색을 했다.

"나 10억 안돼. 고작 8억대다. 재계 3위 대기업 사장 연봉이 10억 안되다니. 개가 웃을 일이지. 강석천 부장이 증권회사로 이직할때 그랬어. 증권회사는 신입사원이 미니 쿠퍼나 BMW굴리고 우리회사 초임연봉을 한달 월급으로 받아간다고. 그러니 이직했겠지."

배 상무가 뭐라고 말을 하기도 전에 박기범 사장이 선수를 쳤다.

"어쨌거나 IR일정 잘 잡아봐. 내가 가서 또 IR해야하잖아. 자료는 계속 업데이트 하고?"

"주간으로 업데이트 합니다."

"그럼 됐어."

가볍게 말을 한 박기범 사장은 올해가 자신의 사장 임기가 만료되는 연도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2007년에 사장이 되었으니 이제 올해 12월 31일자로 재선임되느냐 계약만료로 집에 가느냐가 결정될 터였다.

"그래. 고작 그거때문에 온건가?"

"예. 일단 사장님 의견도 들어야 해서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만 나가보라고 말했다.

"오케이. 그런건 알아서 해. 알아서."

사장으로서 지나치게 많이 일을 한다고 생각한 그는 책임을 질 수 있는 큰 단위의 일을 하고 작고 번거로운 일은 다 위임하기로 했다. 그게 맞는 것인지도 모른다.

"벌써 2월이야."

창밖을 내다 보며 혼자 중얼거렸다.

2월 중순 열린 무등그룹 IR. 여의도의 한 증권회사에서 열렸다. IR프리젠테이션을 위해 세미나실로 가기 전, 임원실에 들러 해당 임원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박기범 사장의 사장실은 대략 8평 정도로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았다. 그렇게 클 필요가 없어서 8평 정도인데, 이 정도면 괜찮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기 증권회사의 임원실은 박 사장의 방보다 두배는 최소한 컸다. 상당히 호화롭다고 생각할 무렵, 같이 동석한 황영식 회장은 무등그룹 회장실보다 여기 증권회사 전무급 임원의 방이 더 크고 호화롭다고 혀를 내둘렀다.

"이건 무슨 호텔 스위트룸이야"

그렇게 혀를 내두른 황 회장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하하. 무등그룹은 어떤가요? 재계 3위의 대기업인데 겨우 저희 전무실이 스위트룸이라면 아마 거기는 뭘까요?"

"여인숙이죠."

황 회장의 말에 그 전무라는 사람이 웃었다.

"아마 저희 사장님께서 세미나실로 내려오실 겁니다. 선약때문에요. 금감원에 불려가셔서요."

"확실히 증권회사가 돈을 많이 버는 모양이군요. 이렇게나 호화롭다니. 영화속 무슨 건물 같애. 원래 아시다시피 제조업이나 조선산업은 천박하기 그지 없어서 임원실도 거지같죠."

같이 따라간 배상수 상무가 그렇게 말하자 박기범 사장은 눈을 찌푸렸으나 황영식 회장은 호탕하게 웃었다.

"이런것도 산업의 특성이라오. 이 친구가 대리때부터 미국가서 고생하다보니 말도 거칠죠. 미국가서 서부 총잡이들의 와일드함을 배운 듯 해요. 하하하."

"무등그룹 주식은 현재 인기랍니다. 그리고 이런 말도 있죠. 임원실이 호화로운 회사의 주식은 사지 마라고요. 지나치게 호사스러우면 연구개발이나 이런데 돈을 못쓰는 거죠."

그 전무의 말에 박기범 사장이 일침을 가했다.

"그래서 여기 여의도 투자증권 주식이 아직도 2007년도 가격을 회복 못한건가요? 그 말이 맞다면요."

이 말에 전무는 멋쩍은듯 웃기만 했다.

"투자자들은 속상하겠어요. 임직원 월급은 그때보다 많이 올라도 주가는 빠지니. 원래 주가가 오르면 임직원 월급도 오르는 거잖아요. 회사가 잘된다는 말이니까."

이렇게 농담삼아 말을 하고 시간에 맞춰 세미나실로 향했다. 예정된 IR의 실시였다. 박기범 사장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임원실을 부러워한 황영식 회장이나 거칠게 말을 내뱉은 배상수 상무의 말이 모두 하나의 시그널이라는 사실을.

어쨌거나 IR은 성공적이었고 인도네시아의 석유, 이를 바탕으로 한 탄소섬유, 화학섬유로 이어지는 사업구조에 조선까지 겸비한 무등그룹은 탄탄한 기반을 다진 기업으로 평가받았다.

많은 애널리스트들이 무등그룹의 FICC부서의 실적에 대해서 묻기도 했지만 또 다른 사람들은 석유와 탄소섬유등 주력에 대해서도 질문공세를 펼쳤다.

뭐가 되었든 박기범 사장에게는 기분좋은 일이었다. 다만 FICC부서에 대해 묻는건 살짝 기분이 나쁘기도 했다. 그게 박 사장의 발목을 잡고 있어서였다.

회사로서는 금덩이지만 자신에게는 아킬레스 건같은 존재가 바로 FICC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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