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배상수 상무의 반란이 시작됩니다 147화
"한번 접촉해봐."
이 말을 듣고 당연하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말투로 그 임원이 말했다.
"박기범 사장 몰래 해야겠지?"
"알면서 물어?"
배상수 상무는 그렇게 여러 임원들을 만나면서 회사를 자신의 의도대로 바꾸어나가기 위해 설득을 하는 작업을 진행중이었다. 물론 여기에는 황영식 회장의 암묵적인 동조도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제 박기범 사장은 외톨이가 되고 있어. 많은 임원들은 이미 그 사람 편이 아니야."
임원의 말에 쓸쓸하다는 듯 위스키를 한모금 마셨다.
"그런 식으로 말을 하지 마. 말은 그렇게 하면 안돼. 적어도 내 앞에서는. 내가 신입사원이던 시절, 하늘 같아 보이던 부장님이셨어. 그 때 황영식 전무님은 그야말로 어디 말도 못했지."
그는 신입사원시절을 회상했다. 신입사원에게 있어서 자기가 일하는 부서 혹은 팀의 책임자인 부장은 그야말로 부장님이었다.
아침에 인사할때 90도 가깝게 허리를 숙이고, 행여나 일이 부장님보다 먼저 끝나면 부하직원이 퇴근을 할 수 있는 문화를 가진 무등그룹에서 조차 신입사원은 조심스러웠다.
과장이나 대리급은 먼저 들어간다고 인사하고 갈 수 있지만 사원은 눈치를 봐가면서 부장님 퇴근 안하시냐고 너무 늦게까지 계신것 같다고 말을 하면서 어렵게 퇴근한다고 했던 그 시절이 떠올랐다.
그게 예의인지 원래 사람이 그렇게 타고나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배상수 상무는 자신이 사원시절, 박기범 당시 부장보다 먼저 퇴근하면 굉장히 미안해했고, 부장이 먼저 집에 가야만 기쁜 마음으로 퇴근을 할 수 있었다.
대학생 시절, 데모를 하며 경찰과 안기부의 추적을 받을 때, 그는 우리나라의 노동자들이 기업인들에 의해 착취를 당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노농정권수립을 목표로 매진했다.
하지만 무등그룹에서 일하면서 정체성이 흔들렸다. 넥타이를 매고 사무실에 앉아서 일하는 사무직 근로자는 야근수당도 없이 일하는데, 왜 거기에 대해서는 침묵하는가? 사무직 근로자는 과연 착취를 당하는가? 노조를 결성해 권익을 보호할때 사무직은 그 대상이 되는가 등 다양한 생각이 그의 머릿속을 강타했다.
1995년과 달리 지금은 브라만 노조, 황제노조가, 그야말로 슈퍼 갑의 위치를 점하며 기업을 쥐고 흔든다.
또한 대기업 정규직 노조는 비정규직을 더 착취하기를 원하고, 정규직의 과도한 철밥통때문에 비정규직이 양산되는 것을 보면서 이제는 대학생들이 기업인을 위해 데모를 해야 하지 않을까하고 생각하기도 했다.
"어쟀든 대학때 학생운동하고 안기부에 끌려가기도 했던 내가 대기업 임원이 되어서 열심히 일을 하다니. 그 분 아니었으면 아마도 난 무등그룹 몇달 다니다 그만두고 농땡이나 피웠을지도 몰라."
"그래? 그렇게는 보이지 않는데?"
임원의 말에 배상수 상무가 이야기 했다.
"오남현 명예회장님하고 우리 아버지가 좀 아는 사이야. 무등그룹이 광주에서 서울로 옮기고 나서 우리 아버지가 좀 힘을 보탰지. 창업공신은 아니고 거래처 였거든. 그 덕에 여기서 일하게 된거지."
여기까지 말하고 다시 위스키를 마셨다.
"그리고 그 때 박기범 부장한테 일을 배웠지. 첫날 부터 무지하게 혼났어. 아마 제대로 군기 잡으려고 그랬는지도 모를 일이야. 자금팀에서 한달 일하고 마감까지 하고 해외영업부로 간거야. 북미 디비전에서 진짜 일만 했어. 자금이 재미있더라고. 그래서 미국 뉴욕에 무등그룹 북미 본사가 있잖아. 월스트리트도 자주 가고, 외근간다는 핑계로 투자회사, 투자은행을 많이도 돌아다녔지."
대리시절, 미국에 가 있으며 석유개발을 할때 박기범 당시 상무의 지시를 받아 밤잠을 설치며 뉴욕에서 자카르타, 다시 도쿄, 뉴욕을 여러차례 오갔다.
부족한 잠은 비행기 안에서 보충했다. 황영식 회장과 박기범 상무의 위임장을 들고서 일주일 가량을 그렇게 다녔다.
이후 과장으로 승진하고 FICC파트장을 맡아 막대한 이익을 회사에 안겨준 그는 지난 1985년 해외차입으로, 1997년 IMF당시 환차익으로 이익을 내고 임원이 된 박기범 사장과 겹쳐지는 인물로 평가받았다.
그 아성을 넘어서는 실력을 보여주었고 실제로도 박기범 사장의 뒤를 이을 인물로도 사내에서 인지도가 높았다. 배상수 상무는 학생운동을 하면서 안기부의 추적을 받았을 정도였다. 자연히 막후교섭능력, 물밑작업에 대한 내공이 충분히 쌓여있었다.
그래서 그는 미국에 잠시 가 있는 동안 그는 박기범 사장한테 직격탄을 맞은 걸 한탄할 시간이 없었다. 멋지게 롤백할 방법을 구상했다.
오히려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고, 그 결과로 파산한 한 탄소섬유 중소기업을 헐값에 사들이고, 미국에서 부상하고 있는 셰일가스와 관련하여 무등조선소가 셰일가스 운반선을 만들 수 있도록 계약도 체결한 것이었다.
하지만 박기범 사장은 이런 배상수 상무의 반란을 전혀 감지하기 못했다. 그는 이제 57살의 대기업 사장으로서 신형 벤츠 S시리즈에 관심이 많았고, 업무상 정관계 인사를 만날때마다 황제노조, 브라만 노조라고 불릴 정도로 강성인 노조로부터, 이미 노사관계에서 일방적으로 노조가 우세한 2012년 대한민국의 현실에서 그 기울어진 균형추를 바로잡기 위해 논리로 무장하고 설득하기 바빴다.
또 주말에는 아내와 함께 골프를 치고, 팝송을 들으며 시간을 보냈다. 누가보아도 성공한 인생. 거칠 것이 없었다. 그 역시 이런 자신의 삶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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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현대차 노사 합의가 이루어졌죠. 보나마나 노조의 100%승리였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