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화
의장의 말과 함께 진행된 또다른 청문회. TV기자들도 관심을 가지고 이를 지켜보았다.
"무등그룹이 재계를 대표하는 거대기업으로서 좀 책임감을 느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그런 차원에서 말을 하자면 조세피난처로 자금을 예치한건 올바른 행동인가요?"
"뭐 저희는 법인세를 매년 수천억 내고 있죠. 부가세도 내고. 저 역시 개인소득세를 연간 2~3억을 내지요. 책임감을 너무 많이 느껴서 문제랍니다. 국회의원은 개인소득세 몇원이라도 내나요?"
"묻는 말에 대답하세요."
질문을 던진 국회의원이 말하자 박기범 사장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이게 대답입니다."
이번에는 보수당 국회의원이 나섰다.
"조세피난처가 왜 문제가 되는지는 아세요?"
이 시기 미국 월가에서는 상위 1%의 탐욕을 비난하는 점령 시위대가 열렸다.
2008년 리먼브라더스 파산으로 촉발된 세계금융위기 당시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은 구제금융을 절대로 주지 말아야 한다고 했으나 일부 얼빠진 학자들은 이미 다 낡을대로 낡아서 폐기된 케인즈 이론을 들먹이며 7천억 달러에 달하는 구제금융을 퍼주어주었다.
'이익은 사유화, 손실은 공유화'하는 그릇된 관행이 서서히 퍼지기 시작했다. 국내 은행 등 금융권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도 들려오고 대기업에 대해서도 쌓여왔던 불만이 터지기는 했지만 무등그룹은 다행히 이를 비껴갔다.
특별히 족벌경영도 하지 않았고 자회사도 몇개 없던 터라 일감 몰아주기를 할 수도 없는 처지였다. 모든 것을 그룹 내 사업부에서 담당하는 구조여서 그렇다.
이제 서서히 2012년 대선이 다가오면서 누가 대통령이 될 것인가에 초점이 맞추어지면서 정치권에서도 이만하면 됐다는 목소리도 흘러나왔다.
박기범 사장에게는 다행하게도 무등그룹의 해외계좌 설립과 관련한 논의는 줄어들었고, 그 해 12월 초순. 모든 청문회는 그렇게 흐지부지 끝나버렸다.
"잘됐어. 대충 흘러가 버려서."
"그러게요. 뭐 정치권이라는 곳이 하는게 늘 그렇지요 뭐. 시덥잖은 것들."
짜증난다는 말을 뱉어냈다. 박기범 사장은 호텔 라운지에서 식사를 끝내고 커피를 마시면서 황 회장에게 말했다.
"어쨌든 방어를 참 잘해주었어. 오 명예회장님도 좋아하셔."
"잘 됐군요."
그렇게 대답하고 창밖을 내다보았다. 2011년 12월 겨울. 참으로 다사다난했던 2011년도 이제 저물어가고 있었다.
"벌써 2011년이? 2010년대도 순식간에 가는구나."
조용히 그렇게 중얼거리고 커피를 한모금 마셨다.
2012년 새해가 밝아왔다. 마야달력에 의하면 지구가 멸망하는 시점이 바로 2012년이다. 그러나 박기범 사장은 결코 지구가 멸망하지 않을거라고 생각했다.
이사에서 상무로 승진한 배상수가 요즘 뭔 꿍꿍이가 있는지 약간 비밀스럽게 행동하는 모습이 눈에 보였다. 그러나 그게 무엇인지는 몰랐다.
"어이. 배 상무."
다른 임원 하나가 불렀다. 그 임원 옆자리에 앉은 배상수 상무는 웨이터에게 버번을 하나 달라고 했다.
"바쁜 모양인데 잘 지내는가 봐?"
배상수 상무의 이 말에 그가 답했다.
"그렇지 뭐. 그나저나 뭐하고 있어? 새로운 전략구상은 잘 되어가나?"
"노력하고 있는 중이지 뭐. 여하튼 2011년은 나에게 행운이었어."
웨이터가 내온 위스키를 한모금 마신 배상수 상무는 얼음이 가득 담긴 컵을 양손으로 움켜잡으면서 중얼거리듯 말했다.
"박기범 사장한테 직격탄 맞고 미국으로 쫓겨났지만 난 다시 롤백했다고. 이젠 롤백까지 한 마당에 뭔가를 보여주어야 하지 않겠어?"
"그래. 자네 정도라면 석유채굴도 그렇고 막후에서 뭔가 이루어내는 힘이 있으니. 어찌됐든 난 배 상무 자넬 지지할거야."
"고마워. 저기 중국의 웨이하이 조선소가 우리 무등 조선에 관심이 많다던데."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위스키를 들이킨 임원이 말했다.
"응. 중국이 이제 우리의 강력한 산업경쟁국이 되고 있지. 뭐 H자동차 황제, 귀족, 브라만 노조가 아무리 연봉 100억 달라고 날뛰면 뭐할거야? 이제 중국차도 브라만 돼지 노조가 만드는 차와 비슷한 품질을 보이는 차를 만들어. 어느덧 조선산업도 바짝 쫓아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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