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화
"박기범 사장님. 그렇다면 이는 순전히 정치공세라고 보시나요?"
한 기자가 마이크를 가까이 가져가댔다.
"물론입니다. 이는 정치공세를 넘어선 정치적 살인, 학살, 이른바 제노사이드입니다. 히틀러도 이런 짓은 안했어요. 히틀러보다도 더한 학살자가 저기 저 국회에 있습니다. 국민들이 피땀흘려 번 돈을 월급으로 받아가면서요."
그가 더 흥분한 목소리로 말하자 기자들이 계속 질문을 해댔다.
"아까 정치학살을 저지르고 말을 듣지 않는 기업에 대한 세무조사애기도 하셨는데..."
또 다른 기자의 말에 그는 즉각 대답했다.
"당연하지요. 특히나 우리는 더 정치권의 미움을 산 회사입니다. 왜냐? 우리 회사는 정치자금 한푼 안주는 회사요. 아 그런 놈 베기 싫다 이거지. 이게 대한민국이요?"
여기까지 말하고 그는 급히 차에 탔다. 기자들이 문을 두드렸지만 그는 무시하고 차의 시동을 켰다. 그렇게 말하고 그는 벤츠의 가속페달을 밟았다. 차가 빠르게 국회를 빠져나갔다.
비록 차는 벤츠 S500이지만 기자들은 운전기사 없이 손수 운전하는 박기범 사장을 집중 조명하면서 서민적인 CEO, 서민출신 대기업 사장이라는 어구를 단 사진 한장과 그 옆에는 시카고의 호화저택을 대비시켰다.
하루에 15시간씩 1980년부터 지금까지 일하고 (출근 7시 45분~퇴근 22시 45분) 회사원으로서 충실히 일을 해서 부자가 되었다. 그것도 작은 부자에 불과했다.
외국인 학교나 명문 사립학교에 자녀 하나도 보내지 않았고 나이도 50이 다 되어서 벤츠를 타는 박기범 사장은 일반 시민들에게 있어서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는 시민으로 인식했다.
게다가 무등그룹의 사외이사로 있는 그의 형. 중학교 교장인 그가 사외이사로 있다는 점이 신문에 나왔다.
후학을 양성하는 교수처럼 고액연봉이나 장차관 한자리 하지 못하는 푼돈에 가까운 급여를 받아가며 제자를 아끼는 마음 하나로 평생을 살아온 평범한 중학교 선생이 사외이사로 있다는 점은 교수, 장관, 국회의원 같은 이른바 한가닥 하는 사람들을 먼발치에서 구경만 하던 일반 시민들의 마음을 훈훈하게 했다.
"과연 어떻게 될까?"
소주를 들이키면서 대학교수로 있는 송영찬 교수가 말했다.
"몰라. 나도 힘들어. 목적이 돈을 빼돌리려는 것이 아니었거든."
"그래? 난 사외 이사 안주냐?"
퉁명스러운 어투를 내보이는 송영찬 교수에게 박기범 사장이 말했다.
"자식. 넌 교수잖아. 프로젝트 하나 받아도 수천만원 받을거 아니야? 금융감독원으로부터 무슨 프로젝트 타면 에쿠스 한대요, 한국은행으로부터 뭐 하나 받으면 벤츠 한대. 이럴텐데. 무슨 소리를. 거기다가 사외이사까지? 연봉 100조원 찍으려고 그래?"
"그랬으면 원이 없겠다. 100조원은 커녕 100만원도 힘들다."
송영찬 교수는 2011년 한해 동안 프로젝트 1개만 받았는데 그 용역수임료가 200만원이었다. 그것도 조교한테 100만원 정도 준데다가 택시비, 이것저것 빼면 남는건 없었다. 그래서 그 자신도 의아해했다.
"어떤 교수가 되어야 프로젝트 하나에 몇천이야? 마케팅 전공 교수가 되어야 하나? 마케팅은 솔직히 쓰레기더만. 그딴걸 대학에서 배워? 마케팅 하나도 안배워도 마케팅 할 수 있어. 나 같이 금융론, 투자론, 이런 쪽은 왜 아무것도 없는거야?"
툴툴거리자 박기범 사장이 말했다.
"글쎄. 회계학 교수들은 잘도 해먹더군. 뭐 법대 교수들이 가장 잘 나가고. 경영쪽은 마케팅 교수들이 좀 해먹더라고. 아니면 경제학 교수들. 경제학과가 경영학과보다 학생들 성적도 떨어지고 수준도 낮은데 교수들은 경제학이 더 많이 해먹는 것 같애."
"봐. 철학과니 국문과니 별로 해먹을 거 없는 과 교수들도 억대연봉에 고급차 타고 댕기는데, 소위 잘나가는 과 교수는 얼마나 배때지가 터질거야? 나도 서울 소재 명문 사립대 교수지만 그것도 경영학과, 지하철 타고 출퇴근하고, 진짜 어렵게 사는 학생들 학비 몇번 대주니까 내가 파산신청을 해야 할 지경이야."
송영찬 교수는 그랬다. 자신이 가르치는 경영학과 학생들은 물론 형편이 어려워 학비마련에 고생을 하는 자기 학교 학생이 있으면 학비를 대신 내주기도 했다.
"남들은 좋은 일 한다고 하지만 그래봐야 한학기에 두명 내지는 셋이야. 경영대 학비도 한학기에 450만원이야. 두명만 지원해도 900만원이니. 1년이면 1800만원. 교수인 나도 '이까짓 돈 개나 줘'하고 던질 정도는 아니야. 참. 상류계급인 교수가. 힘들어."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송영찬 교수가 넋두리를 했다. 소주를 한잔 들이키고 그가 계속 말했다.
"우리나라 학생들 불쌍해. 언젠가 이 부자나라에서도 학비 마련이 힘들어 휴학을 밥먹듯 하는 애들이 한둘이 아니라는건 속상하지."
혼자 세상 걱정을 다 하는 듯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애들 가르치는, 명색이 교수가, 그렇게 알바하고 고생해서 마련한 돈으로 월급 두둑히 받아가면서 그랜저 끌고, 제네시스 끌고. 가끔은 내가 월급 받는게 부끄러워. 학교 앞 까페에서 최저임금 받아가며 어렵게 돈 마련한 애들 한테 학비 받아 제네시스 탄다? 이런게 교수였나 싶어."
"그럼 때려 치던지. 재경원 공무원하다가도 IMF때 국민들이 고통받는데 태평히 월급받는거 싫다 하고 그만 뒀지. 그건 그렇다 쳐도 이젠 안돼. 니가 교수로서 그 애들을 도울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봐. 경영대 교수들 불러놓고 외부 프로젝트 받은 돈의 절반은 장학금으로 적립하던지. 제네시스 팔라고 해. 소나타만 타도 되잖아."
이 말에 송영찬 교수가 회의적인 눈초리로 말했다.
"그게 되겠냐? 제네시스 타면 소나타는 진짜 소나 타는 차야. 달구지여. 달구지."
"달구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