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화
그 말에 조형윤 의원은 할말을 잃었다.
"자. 자. 이것 보세요. 당신네 무등 그룹. 명색이 대한민국 재계 3위의 대기업이 무려 37억 달러를 조세피난처로 빼돌리지 않았어요? 우리는 지금 이걸 논하는 겁니다. 답변 똑바로 하세요."
청문회 의장이 준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자. 의장자격으로 묻겠습니다. 조세피난처에 왜 돈을 빼돌린 겁니까?"
"빼돌린 적 없습니다. 우리는 과거에도 그런 적이 없었고 앞으로도 그러지 않을 겁니다."
"뭐요? 아니 그럼 언론에 보도된 것은 대체 뭐요?"
이 말과 함게 기자들은 웅성거렸다. 기자들이 열심히 노트북의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빼돌릴 이유도 없고, 우리는 스위스의 OBS계좌에 돈을 묶어두고 있는 거죠. 쉽게 말하자면 이런겁니다. 중동에서 석유를 사올때 그 수입대금을 반드시 우리나라에 있는 계좌에서 내보낼 필요가 없죠. 미국에서 받은 수출대금을 이용할 수도 있죠. 그렇게 대외대표결제계좌가 스위스에 있는 겁니다. 아무래도 공신력, 자금안전성, 결재업체의 요구조건 때문에요. 기업이 다 이유가 있으니 그런 거죠."
이 말에 다른 국회의원들이 답변할 거리를 찾기 위해 잠시 서류를 뒤적일 무렵, 박 사장은 한마디 더 던졌다.
"조세피난처와 관련해서 또 말씀드리자면,"
기자들의 시선과 다른 국회의원, 그리고 텔레비전 카메라가 박기범 사장을 주시했다.
"만일 제가 5만원권을 사과박스에 실어서 국회의원들에게 바치면 더 이상의 청문회도 없죠. 순전히 우리 무등그룹이 정치자금을 바치지 않으니 트집을 잡아서 괴롭히는 겁니다. 우리는 희생자입니다. 우리 무등그룹은 정부의 정치외압에 죽어나는거라고요."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고 기자들이 열심히 받아적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한쪽에서는 웅성거리며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조용히 해요. 조용히. 그리고 박기범 사장님.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거요? 이건 어디까지나..."
의장이 말을 했지만 박 사장은 이를 무시하고 오히려 더 큰소리로 말했다.
"이것은 순전히 정치공세입니다. 지난 1980년에는 공수부대로 억압을 하더니 이제는 국회의 힘을 앞세워서 멀쩡한 기업을 죽이는거라고요. 이제는 총칼이 아니라 국민의 대의기관이라는 명분을 앞세워서 멀쩡한 기업을 사냥하는 겁니다. 이건 정치공세를 넘어서 정치적 암살입니다."
당황한 의장은 박기범 사장의 마이크를 껐다.
"마이크를 끄겠소. 지금부터 이 모든 것은 오프 더 레코드입니다."
그러나 너무 당황한 나머지 마이크를 끄지 못하고 손만 헛되이 움직였다. 이를 눈치채고 박기범 사장은 더 크게 소리쳤다.
"국민의 자유로운 의사진행을 방해하다니. 국민의 알 권리 그리고 표현의 자유를 막겠다는 거요? 어디 한번 해보시지. 말을 듣지 않고 뇌물을 바치지 않는 기업들은 앞으로 세무조사를 하고 지속적으로 괴롭힐 것이라는 말을 난 들은 적이 있습니다."
결국 국회 경비원들이 출동해서 박기범 사장의 발언을 제지시키려 했고 이를 막고 하나라도 더 취재를 해 특종을 잡으려는 기자들이 이를 막기 위해 박 사장 주변을 에워쌌고, 흥분한 국회의원들은 서류를 마구 내던지며 고함을 질러댔다.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된 국회청문회장은 텔레비전 전파를 타고 전국으로 생중계되었고 바로 그날 저녁 프라임타임 뉴스는 이 국회청문회를 조명하면서 무등그룹의 조세피난처 자금회피 의혹보다는 기업을 괴롭히는 국회의원들의 태도, 국회의원들의 급여논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려는 국회에 대한 특집뉴스를 쏟아냈다.
언론은 절대적으로 무등그룹의 편이었다. 청문회장을 급히 빠져나온 박기범 사장은 국회주차장에 주차된 자신의 벤츠를 향해 걸어갔다.
기자들이 계속 뛰어오고 있었다. 그는 여유있게 벤츠의 문을 열어둔 채 기자들이 올때까지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