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화
다음날. 대한민국이 발칵 뒤집어졌다. 무등그룹의 비밀계좌의 존재를 폭로한 조형윤 의원이 미국에 75만 달러짜리 집이 있으며 아들은 미국국적자임이 드러난 것이다.
외신을 통해 이 기사를 접한 국내 언론은 신나게 이를 헤드라인에 올렸다.
[서민의 아들은 군대로, 국회의원 아들은 미국에?]
[미국주택구입을 위해 외화를 빼돌린 국회의원]
[조형윤 국회의원. 서민을 위한척하면서 미국에 대저택보유]
[시카고에 75만 달러짜리 저택. 미국변호사도 비싸서 못사]
[국회의원 연봉. 일본, 미국보다 높아. 대한민국의 최상위 0.1%]
[대한민국을 쥐락펴락하는 무소불의의 국회의원이 나라망쳐]
국내 주요 6개 일간지가 헤드라인을 화려하게 장식했다. 박기범 사장은 신문 하나를 집어들었다.
"서민의 아들은 군대로. 국회의원 아들은 미국에? 거 참. 제목하나 잘 뽑았네."
신문들을 대충 보면서 박기범 사장은 이제 여론이 어떻게 움직일까 살폈다. 정확히 그의 예상과 맞았다.
이제 대다수의 언론은 무등그룹이 스위스를 통한 조세피난처에 숨겨둔 37억 달러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
오로지 언론의 관심은 서민을 위한척하는 국회의원이 얼마나 타락했는지, 미국의 호화저택에 대한 궁금증만 키울 뿐이었다. 그러는 동안에 국회에서 청문회에 참석할 날짜는 코앞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며칠 후, 국회 청문회장. 박기범 사장은 조금 일찍 가서 자리에 앉았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조형윤 의원을 비롯, 여러 국회의원들이 청문회에서 그에게 질문을 던지기 위해 여야를 막론하고 모여들었으며, 기자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청문회를 시작하겠습니다."
청문회 의장의 말과 함께 곧바로 청문회가 열렸다. 이는 TV로 생중계되고 있었다. 그래서 박기범 사장은 자신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게임이라고 생각했다.
"박기범 사장님. 지금 우리나라는 심각한 양극화로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저희가 조사해보니 무등그룹은 현재 조세피난처에 무려 57억 달러를 빼돌렸던데, 이게 과연 기업이 할 짓인가요?"
한 국회의원이 말했다.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건지요? 그런건 제게 물어볼 사항이 아닙니다. 나에게 물을 필요가 없죠."
"그렇다면 누구에게 물어야 합니까?"
"그건 내 소관이 아니죠. 내가 그쪽한테 시시콜콜하게 다 대답할 법적 근거도 없으니까요."
이 말에 국회의원이 화를 내면서 소리쳤다.
"아니. 국민이 선출한 국회에서 질문하는건 국민들이 당신에게 묻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시군요. 네. 정말 대단합니다. 제가 보니까 국회의원분들, 자기들 월급 올릴때는 여야가 없더군요. 서로 형님 아우하면서 자기들 월급 팍팍 올리고. 누가 뭐라고 하면 국민이 뽑았네 하고요. 대단하세요."
그는 엄지손가락을 뻗어보였다. 이 모든 것이 텔레비전을 통해 전국에 생중계되고 있었다. 이를 지켜본 일부 시민들은 서서히 박기범 사장의 편을 들기 시작했다. 기업은 국민의 친구지만 국회는 국민의 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문제는 나보다 마릴린 한테 물어보세요."(Ask Marilyn)이 말을 들은 국회의원은 참담한 표정이었다.
"아니. 당신이 무등그룹의 자금을 관리하는 최고책임자잖소."
"빌리 조엘 노래 아시죠? 텔 허 어바웃 잇. 그녀한테 물어봐요. 그래서 애스크 마릴린이 있잖아요. 나한테 묻지 말고 마릴린한테 물어봐요."
"지금 장난하는 겁니까? 여긴 국회청문회장입니다. 박기범 사장님. 좀 더 진지하게 해주시길 바랍니다."
청문회 의장이 말했다. 그러나 박기범사장은 전혀 그럴 의도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