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의 시대-138화 (138/159)

138화

2011년 9월 15일 목요일. 충격적인 뉴스가 신문에 폭로되었다. 전날 노동당 조형윤 의원이 무등그룹이 스위스 OBS를 통해 보유한 해외계좌에 대한 내역을 폭로했기 때문이다.

조형윤 의원은 현재 무등그룹이 Zurich & Merk Textile이라는 페이퍼 컴퍼니를 통해 해외에 보유한 자산이 무려 38억 7천만 달러고, 그는 이를 가리켜 '빼돌린 돈'이라고 표현을 했던 것이다.

"미치겠구만."

박기범 사장은 아침부터 화를 삭이지 못했다. 그는 이미 어제 저녁 뉴스를 통해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대응시간을 주지 못하도록 조형윤 의원은 국회발언이 아닌 언론사 기자들을 대동하고 밤 11시에 폭로했기 때문이다.

"젠장. 그 망할 국회의원이 어떻게 알았지?"

그는 소파에 주저앉았다. 그러다 다시 일어나서 창문을 통해 서울풍경을 바라보았다.

"우리가 스위스에 비밀계좌를 왜 만들었는데. 왜. fuck, fuck, fuck, shit."

한번 욕을 내뱉고는 신문을 바닥에 패대기를 쳤다. 황 회장은 이 사실을 알았지만 박기범 사장을 부르지 않았다.

굳이 그에게 뭔가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을 할 필요가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사장님."

경영지원실 류원식 상무였다. 지난 97년도 IMF당시 데리고 있던 유능한 직원이었다. 이제 40대의 젊은 상무로 그는 박기범 사장에게 다가왔다.

"벌써 기자들의 전화가 엄청나게 옵니다."

"도쿄 경제신문 아마미 그 여자 당장 불러. 독점 인터뷰 한다고 해. 어서."

"하지만. 가능하겠습니까?"

"시끄러워. 어서 전화해."

박기범 사장은 짜증을 내면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넓은 사장실을 서성거렸다. 류 상무의 전화를 받고 도쿄경제신문의 아마미 타카코 기자가 급히 택시를 타고 무등그룹에 도착했다.

그녀는 이제 기자생활을 마감하고 2012년경에 은퇴를 결심하고 있었기에 마지막 일정을 한국에서 마무리하고 있었다.

"나 왔어. 오늘은 화가 엄청 났네."

문이 열려있던 터라 그녀는 문틈에 몸을 기대고 문을 두드렸다.

"헛소리 말고 들어와."

"아까 보니까 국회에서 조사한다고 하던데. 명색이 대한민국 3대 재벌이야. 자산총액이 175조원."

아마미 기자는 여전히 젊어보였다.

"늙지도 않는군. 방부제로 식사하나?"

"요즘 다 그래. 나만 이런가? 미국 갔을 때, 킴 베이싱어, 크리스티 브링클리 등 70년대 최고의 모델들을 우연히 보게 됐는데, 피부가 좋더라고."

아마미 기자는 하이힐 소리를 내면서 손님접대용 소파에 앉았다.

"역외계좌. 진실이 뭔가? 나도 몰랐는데."

"우리가 왜 조세피난처에 계좌를 만들었는지는 알아? 어제 기자회견한대로 1994년부터 했지."

이 말에 아마미 기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래됐군."

"94년이면, 내가 차장시절이야. 우리는 미국증권투자를 계획했고. 재경원은 이를 불허했고. 당연히 우리는 정부로부터 허가를 받아야했지. 헌데 방법이 없었던 거야."

"좋아. 그래서?"

아마미 기자는 두 손을 모으고 손에 입을 가져가댔다. 더 자세히 듣기 위해서였다.

"언론에 나온대로 스위스에 Zurich & Merk Textile이라는 페이퍼 컴퍼니를 세웠지. 그리고 그 회사는 존재하지도 않는 회사야. 재무제표도 다 가짜로 만들었는데, 정부는 그걸 모르지. 그래서 그 회사를 사들인다고 거짓으로 인수합병한다고 하고 스위스의 OBS에 인수대금명목으로 3천만 달러를 보냈어."

"대단한걸? 그런 생각을 하다니."

아마미 기자는 살짝 손뼉을 치는 시늉을 했다.

"OBS가 대행사였지. 스위스의 대형 투자은행이니까."

여기까지 말하고 그는 한번 씩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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