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화
짧게 대답한 박기범 사장의 말에 황 전무가 대답했다.
"좌천이야? 아니면?"
이 말을 듣고 나서 별 소리를 다한다는 듯 피식 웃었다.
"황형. 무슨 소리야? 북미디비전으로 보내는게 왜 좌천이지? 더 잘하라고, 더 승진 빨리 시키려고 이러는 거 아니겠어? 봐요."
몸을 앞으로 내밀면서 말을 이어나갔다.
"난 그 친구를 믿어. 장차 우리 회사를 이끌 차세대 임원이야. 내 직계이기도 하고. 미국에서 돌아왔을 때 더 큰 중책을 맡기기 위해 이러는 건데 그렇게 말을 하면 내가 서운하지. 물론 좌천입네, 힘겨루기입네 하고 보일 수는 있어. 그래서 내가 황 형에게 말하는거 아니야. 황 회장도 그렇고 내가 다 내 사람을 잘 챙겨주려고 이런다는 점을 인식시키고 싶어."
"정말 배 이사한테는 악감정이 없나?"
황 전무의 질문에 박기범 사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부장일때 키운 녀석이야. 이 경영지원본부 및 경영총괄본부장 자리를 그 녀석에게 주고 싶어. 그러려면 더 많은 경험이 필요해. 그리고 와인버그도 그렇고 다 회사를 사랑하니 저러는거야. 다 잘되라고."
박기범 사장의 말에 설득당한 황선욱 전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말했다.
"나만 믿어. 황 회장님 잘 설득하지 뭐."
자신있는 태도로 말을 한 황선욱 전무를 내보낸 뒤, 박기범 사장은 소파에 몸을 파묻고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은 배상수 이사가 자꾸 자신의 등에 칼을 쑤셔 박는 것 같아서 내보낸 것이다. 여지껏 사내 정치라는 것은 몰랐고 알았다 할지라도 신경쓰기 싫었지만 어느덧 이것에 대해 심각한 고민을 해야 하는 시점이 왔다.
2010년 4월 1일자로 배상수 이사가 북미지사장으로 발령이 났고 그 전날 오후, 배상수 이사가 그에게 와서 인사를 했다.
"미국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가서 잘하고. 많은 미국회사들도 우리 탄소섬유 제품에 대해 지대한 관심이 있는 모양이야."
"열심히 하겠습니다."
배상수 이사를 미국으로 보낸 후, 다시 회사의 모든 파워를 다잡은 박기범 사장은 다시 배상수 이사가 돌아와도 어찌할 수 없도록 대못을 박아버리기로 했다.
황영식 회장이 문제이긴 하지만 실무 최고책임자는 자신이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추진을 하면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회사를 이끌 수 있다고 여겼다.
가장 먼저 한 것은 충남 공주에 탄소섬유 제조라인을 증설한 것이다. 기존에 추진중이었지만 와인버그 때문에 중단된 프로젝트를 재가동시켰다.
이 시기, 기업의 투자를 간절히 원하던 충남도와 중앙정부는 무등그룹의 대단위 투자를 환영했다.
2010년 6월 1일. 충남 공주시. 탄소섬유 제조라인 기공식이 열렸다. 이 자리에는 박기범 사장과 공주시장, 충남도지사, 그리고 지식경제부 장관, 국무총리까지 참석했다.
"이제부터 무등그룹의 탄소섬유라인 기공식을 시작하겠습니다. 셋하면 버튼을 동시에 눌러주시기 바랍니다. 하나. 둘. 셋."
사회자의 목소리가 끝나자마자 참석자들은 버튼을 눌렀고 발파작업이 진행되면서 기공식 세러모니가 열렸다.
"먼저 김태형 국무총리의 축하연설이 있겠습니다."
연단위로 올라온 국무총리는 간단한 소회와 함께 무등그룹의 투자를 격찬했다.
"국내 3위의 대기업이 대규모 투자. 무려 10조원의 투자를 단행한 것도 존경스럽지만 지역 균형발전을 위해 상대적으로 낙후된 충남지역에 투자를 결정한 것은 기업의 사회적 도리와 책무까지도 늘 생각하는 자랑스러운 무등그룹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요. 또다른 탄소섬유 라인이 곧 전북 전주시에도 들어서게 된다는데, 우리나라가 탄소섬유산업에서 세계 최정상을 유지함과 동시에 지역균형발전과 청년실업이라는 세마리 토끼를 한번에 잡는데 기여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