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화
회의가 끝난 후 박기범 사장은 인사팀 황 전무를 따로 불렀다.
"황형. 오늘 실망이요. 내 편좀 들어주지."
"하지만 오늘 일은 사내 정치가 아니야. 누가 더 잘했느냐 못했느냐의 평가고, 내 주장은 기획실 분석정보일뿐, 그게 누구 편을 드는건 아니야."
이 말에 박기범 사장은 발끈했다.
"편을 들었잖아. 황형의 논리는 배이사를 밀어주는 격이었다고. 황 회장님을 좀 진정시켜야 하는데 지금 어이구."
"난 누구 편도 아니거든. 언제나 기획실은 공명정대해야 하는 법이라서."
"됐어요. 나 황형한테 실망했어."
황 전무는 알겠다는 듯 고개만 끄덕이고 급히 밖으로 나갔다.
2010년 3월 8일 월요일 아침. 박기범 사장은 주간회의를 끝내고 배상수 이사를 자기 방으로 불렀다.
"사장님."
문을 닫고 들어온 배상수 이사를 쳐다본 그가 말했다.
"앉아."
자신도 응접용 소파에 앉고 나서 말했다.
"조직개편을 단행해야겠어. 그래서 말인데 생각해보니까 FICC파트 자체가 기존의 자금팀 업무와 너무 많이 겹치는 부분이 많아서. 솔직히 FICC는 증권회사에나 있는 부서지 굳이 수출제조기업인 우리가 가질 이유가 없어요."
"하지만 사장님. 말은 FICC지만 결국 선물환도 잡아서 환리스크도 줄이고 주식투자, 헤지펀드 투자도 하지않나요?"
박기범 사장은 잘 안다는 듯이 말했다.
"알지. 알지. 헌데 FICC. 말 그대로 Fixed Income, Currency, Commodity야. 헤지펀드 투자는 고정수입을 제공하는 자산이 아니지. 그러면 이름을 바꿔야지."
여전히 불만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배상수 이사에게 박기범 사장은 용건을 말했다.
"게다가 탄소섬유가 점차 중요해지고 있어. 미국도 그렇고 자동차의 연비를 개선시키라는 압력을 가하는데 탄소섬유는 좋은 대안이지. 굳이 강철이나 알루미늄을 쓰지 않아도 되는 부분은 탄소섬유로 교체를 해도 되니까. 뭐 세일가스다 뭐다 하는데 누군가는 미국에 가서 정보수집, 거래처 확보도 해야 하고. 자네가 적임자야. 북미본부장을 맡아. 거기 대표로 가라는 거야."
깜짝 놀란 배상수 이사는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어차피 애들도 있고 국내에서는 외국인 학교나 사립학교 같은 좋은 곳은 이사 봉급으로도 힘들어. 에쿠스가 자동차야?라고 떠드는 상류층자제들이 다니는 학교를 보내려면 미국에서는 가능해. 해외주재원들 자녀 교육은 필요하거든. 교육비 지원도 되니까. 자녀에게도 좋고, 자네 커리어에도 좋고."
박기범 사장은 미안하다는 듯 배상수 이사의 어깨를 툭툭쳤다.
"이 사람아. 자네는 내 직계야. 내 사람이라고. 내가 사장 물러나면 그 후임은 배상수 이사. 바로 자네야. 그러니 다 자네를 위해서 보내는거야. 나도 고민 많이 했어."
배상수 이사가 생각해보니 나쁜 선택은 아닌 듯 했다. 어차피 자녀교육을 위해 외국으로 보내야 한다는 말도 듣는 마당에, 이렇게 되면 자녀와 함께 미국으로 가는 셈이니 그로서도 좋았다. 또 그의 경력개발에 있어서도 유용했기 때문에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인사팀에는 곧 말하지."
여기까지 말을 한 후, 배 이사를 돌려보내고 나서 황선욱 전무에게 들어오라고 전화를 했다. 잠시 뒤, 귀찮다는 표정으로 황 전무가 들어왔다.
"아. 황 형. 앉아요."
그가 의자에 앉자 박기범 사장이 말했다.
"우리 배상수 이사를 북미 디비전으로 보내야 할 것 같아. 거기 대표로. 북미 본부장이지."
"그래? 의외네?"
"뭐가?"
============================ 작품 후기 ============================
박기범 사장도 허당만은 아니었습니다. 역공세를 펼쳤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