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화
"기획실 분석결과 이제 우리는 사업모델을 변경해야 한다는 것이 명백합니다. 제조업 기반 국가인 일본과 독일. 금융업 위주의 미국과 영국. 어디가 경제가 더 튼튼한지는 아시죠? 영국의 1인당 GDP가 45000달러입니다. 일본이 34000, 독일이 36000입니다. 벤츠나 렉서스 만들어봐야 증권회사의 트레이딩 하나 못이겨요."
냉철하게 숫자를 들이대자 박기범 사장은 침묵을 유지했다.
"박 사장. 벤츠 같은 명차 만들면 뭐해? 제조업은 끝났어. 현명한 영국인들은 벤츠를 사주시는 국가가 된거야."
"지금 런던에서는 영국정부가 막대한 돈을 퍼부어 카나리아 워프라는 경제특구를 만들고 있습니다. 세계 금융의 중심지를 뉴욕에서 런던으로 옮기는 것이죠. 독일이 제아무리 BMW, 벤츠, 포르쉐를 가지고 있다고 한들 HSBC, 바클레이즈 같은 투자은행에 비하겠습니까?"
배상수 차장의 말은 이제 행동으로 옮기라고 주문을 하고 있었다. 박기범 사장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황 형. 신입사원 급여 크게 올립시다. 4천 줍시다. 그거에 맞춰서 전 직원 급여 상향조절합시다."
"음. 매출액이 55조원. 직원수가 3만 5천. 인당 매출액이 15억 수준이야. 현재 계산하면 3만 5천에 7500만원."
잠시 머릿속으로 계산을 하더니 황 전무가 입을 열었다.
"2조 6천억 내지는 7천억이 전체 인건비야. 뭐 세금고려하면 더 되겠지만. 직원들 급여를 높여주면 사기진작이 되어서 더 좋을 수 있지. 우리회사의 능력으로는 충분해. 사실 나도 시뮬레이션 해봤어."
"그래요?"
박기범 사장의 말에 황 전무는 고개를 끄덕였다.
"신입사원 급여를 5500만원으로 끌어올려도 그에 맞춰 다 재조정해도 능력이 돼. 전사적으로 불필요한 비용줄이고, 경영효율을 동반하면 그 절감된 재원을 직원급여로 돌려도 되는거지. 게다가 우리에게는 석유가 있잖아. 어차피 인건비는 비용이라기 보다는 투자야. 돈을 많이 줘야 좋은 인재가 오는 거야."
고심을 하던 박기범 사장은 결심한 듯 크게 숨을 내쉬고는 황 전무에게 말했다.
"좋아요. 내년에 당장 대졸초임을 4천으로 맞춥시다. 그리고 2015년까지 초임연봉을 5500으로 맞추는 방향으로 나가죠. 이제부터 억대연봉 증권맨이 부럽다고 우리 회사를 때려치우는 일은 없어야 할테니까."
"솔직히 부럽다고 때려치우는 사람은 얼마 안돼. 다만 무능해서 때려치우지 못할 뿐이지."
원망스러운 시선으로 황 전무를 바라본 박 사장은 즉시 기안을 작성했다. 황영식 회장의 결재를 받은 후, 무등그룹은 이에 맞춰 전사적인 급여조정에 나섰다. 그리고 2008년 1월1일자로 입사한 신입사원들은 통장을 보고 깜짝 놀랐다.
생각보다 많이 나왔고, 증권사에 입사해서 즐거워하는 친구들을 보며 부러움을 느끼고, 다 죽어가는 제조기업에 입사한 것을 인생의 불운으로 여기던 그들은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는 신입사원으로 변해나가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재의 유출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인사팀에서 올라온 데이터를 보면서 박기범 사장은 한숨을 쉬었다. 경영을 총괄하는 사장으로서 이 추이가 적힌 종이를 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유능한 인재의 유입이 기업의 발전과 직결되는 시대에서 이런 추이는 장래 기업 발전에 영향을 주지 않을지 걱정이 되었다.
============================ 작품 후기 ============================
2007년. 영국은 증권업 호황으로 국민소득이 45000달러로 당시 미국의 47000달러에 근접하였죠. 일본의 국민소득이 고작 34000달러인 이유는 이 당시 1달러당 120엔 수준으로 엔화가 엄청 저평가 되었던 것이죠. 지금 98엔~100엔 하니 환율효과로만 일본인들의 생활수준은 20%나 늘었죠. 당연히 수입물가가 떨어지니 물가가 떨어지는 것이죠.
독일도 소득은 형편없었는데 유로화가 형편없이 떨어진 탓이죠. 이 당시 미국 달러화는 사상 유례없는 강세였고, 유로화와 엔화에 대해서 강세를 나타냈답니다. 영국은 이 때 일시적으로 외환시장에서 뉴욕을 앞질렀고 이에 자부심을 가지고 막대한 돈을 금융산업 육성에 퍼부었는데, 독자님들이라면 미국 달러화를 믿나요? 영국 파운드를 믿나요?
리먼 사태가 터지자 파운드는 휴지가 되었고 영국의 금융업은 초토화 됩니다. 전통적으로 상업은행이 강한 독일과 일본 은행들은 피해가 오히려 적었던 기이한 일도 생기게 됩니다.
이 때 우스개 소리로 2차 대전의 승전국인 미국과 영국은 잘살고 패전국인 독일과 일본은 못살아서 2차 대전의 책임을 아직도 지는 거라고 농담하던 기억이 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