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의 시대-126화 (126/159)

126화

태그호이어 시계는 아니어도 롤렉스나 피아제 시계는 찰 수 있다는, 나이 45살에 증권사 직원들처럼 벤츠나 BMW는 못타도, 소나타나 그랜저는 탈 수 있다는 희망도 없다면 삶의 낙은 없을지도 모른다.

뿐만 아니라 무등그룹의 근로시간은 여전히 길었다. 9-5 체제를 도입하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근을 완전히 피할 수는 없었다. 회사의 일이라는게 특히 사무직은 일을 하다보면 늦게까지 해야할 경우가 생기게 마련이다.

하지만 증권회사의 경우는 3시. 주식시장이 마감되면 집에 바로 가는 것이고, 언제나 여유가 있었다. 그리고 신입사원도 외제차를 타고 다닌다.

박기범 사장은 벤츠도 타고 다녔고, 연봉과 성과급을 모두 합해 8억 8천만 원의 연봉에, 오남현 명예회장으로부터 격려금 차원으로 1억 원의 금일봉을 받았다.

자동차도 사장급에게 지급되는 벤츠 S 500. 물론 그는 자기돈으로 벤츠 S600을 하나 더 샀다. 아내에게는 BMW 3시리즈를 선물했다.

그런 면에서 월급이 낮다는 이유로 중견 간부, 신입사원 할 것 없이 회사를 떠나는 것은 이해가 갔다.

자신은 섬유-석유-조선으로 이어지는 수직계열화와 탄소섬유로 연결되는 수평적 계열화의 완성을 자랑스러워 했고 이를 위한 자금조달을 잘해왔다고 생각했지만 앞으로의 미래를 짊어질 신입사원들은 그렇지 않았다.

지난 2007년 중순. 코스피 지수가 2000을 돌파하고 증권사들이 직원들에게 돈파티를 벌일 때, 무등그룹도 이익을 냈지만 그 정도의 돈파티는 하지 못했다. 무등그룹의 조선사업부는 유조선 발주호조로 인해 성과급을 많이 주었다고는 해도 증권사보다는 적었다.

가장 돈을 많이 번 부서는 석유사업부. 하지만 해당 사업부의 직원평균연봉은 8900만원. 근속연수는 12년이었다. 무등그룹 전체로 보면 3만명의 직원 평균 연봉은 7500만원. 근속연수는 17년이었다.

박기범 사장은 직접 금융감독원 공시시스템으로 증권회사들의 연봉을 알아보았다. 강석천 부장이 이직한 XX증권은 직원 1500명에 평균 연봉 9800만원이었다. YY증권-신입사원이 떠난-은 직원 2500명에 평균연봉 1억 1400만원.

"나라도 떠나겠군."

박기범 사장은 혼자 중얼거리며 어떻게 해야 이직하는 인력을 막을 수 있을지 고민해보았다. 물론 직원들의 평균근속연수는 어지간한 증권사의 두배 수준이지만 이는 인기요인이 되지 못했다.

사실 무등그룹은 임원으로 승진하지 못해도 정년은 무조건 보장한다. 그래서 임원이 되지 못한 부장급들의 95%가 정년인 60세까지 무조건 자리를 차지한다.

월급이 낮다면 오래라도 해먹어야 한다는 것이 창업주인 오남현 명예회장의 신념이었고 이는 무등그룹의 법칙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그건 20세기적 사고방식이었다. 능력만 있다면 어디든지 회사는 옮기는 것이고 결국 대졸초임과 평균연봉만이 모든 것을 의미했다.

"뭔가 조치를 취해야겠어."

바로 다음날. 기획실의 배상수 차장과 인사팀 황 전무를 불렀다. 그는 곧바로 말을 했다.

"황형. 인사 담당자로서 어떻게 생각해?"

"뭐가?"

황 전무는 귀찮다는 듯 투덜댔다.

"강석천 부장도 그렇고, 유능한 인재들이 다 나간다고."

"어쩔 수 없지. 요즘 세상에 어떤 미친놈이 우리회사의 사업구조를 보며 박수를 치겠어? 지금 시대는 말이요. 머리를 써서 돈을 버는거야. 알잖아."

여전히 불만스러운 표정을 짓는 박기범 사장을 바라보면서 황 전무는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주식투자로 현명하게 돈을 벌고, 채권딜링하고, IRS, CRS등으로 돈버는. 즉 증권회사나 골드만삭스 같은 투자은행이 21세기형 기업모델이고, 우리 같은 섬유기반 기업은 망해야 하는거지. 다행히 증권가에서는 우리 회사를 종합 화학기업으로 보고 있지. 하지만 이것도 20세기 모델이야."

인사팀 전무인 그는 아주 냉철하게 말했다. 기획실 배상수 차장도 힘겹게 입을 열었다.

"앞으로 조선은 중국의 추격으로 어려워질 것이고, 섬유도 중국에게 밀릴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증권사로의 이직은 타이타닉에서 누가 먼저 구명보트를 타느냐는 것으로....."

이 말에 박기범 사장은 벌컥 화를 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지금?"

"임원연봉은 우리가 높지. 전무인 나만 해도 연봉이 7억인데. 이는 증권회사 사장급이니. 하지만 부장급 이하 직원연봉은 우리가 후져. 근로시간도 길고."

"게다가 사장님."

배상수 차장이 입을 재차 열었다.

============================ 작품 후기 ============================

필자가 눈여겨 보니 제 나이 또래(필자는 27살)의 모 증권회사 직원(한국투자증권이라고 말 못해)들 보니까 미니 쿠퍼 타고 다니고 6시 땡하면 집에 가더라고요. 공무원인줄 알았습니다. 외제차 많이들 타더라고요. 저는 차도 없는데. 원래 서울에서 지하철이나 버스타면 돈이 없으니 타는거죠.

29살~30살 초반대의 대리급들은 그랜저를 타고, 40대 과장~차장급들은 더 좋은 고급차를 타더군요. 채권평가사 근무 전 가구제조기업에 있었는데(자금팀으로) 38살의 우리 부장님 차가 세피아였답니다. 클래식카죠. 그게 허섭쓰레기 같은 제조업과 위대하신 증권업과의 격차랍니다. 이런 곳에서 부터 격차사회가 이루어지는 것이죠.

거제도에 친척이 살아서 자주 가면 거기 조선소가 수주 100억 달러 기념해서 보너스도 직원들에게 두둑히 준다고 하지만 dart.fss.or.kr가서 보세요. 그깟놈의 조선소? 증권회사 급여에 비하면 용돈수준이지요. 최저임금이랍니다. 황제노조(현대차)도 대단하지만 증권사는 자릿수가 다르지요.

증권회사 못가면 루저라고 누가 말한 기억이 나는데 10000000% 진실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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