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화
석유가 나왔다는 뉴스는 한국 경제계를 뒤집어놓았다. 이제 무등그룹은 거대한 석유 유전을 손에 쥠으로서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할 충분한 연료를 확보한 셈이었다.
"말이 그렇지 10억 배럴이라. 우리나라의 연간 소비량이 7억 배럴이니 상당하지. 하루 채굴량이 10만 배럴이라지?"
류준혁 사장이 대답했다.
"네. 그리고 오늘 주식시장에서도 회사의 가치를 지켰지요."
"자네 좀 벌었다지? 그거 공시에 올려야하지?"
두둑히 주식으로 번 돈을 생각하면서 박기범 전무가 말했다.
"그래서 박정수 부장에서 말 해 놓았습니다."
"얼마나 번거야?"
"2억 5천이요."
"이야."
감탄을 하면서 류준혁 사장이 말했다.
"그럼 오늘 저녁은 자네가 사."
"아이고. 법인카드로 긁지요 뭐."
서둘러 둘러댄 후, 박기범 전무가 대답했다.
"저도 먹고 살아야죠.
이틑날 오후.
"아. 박 부장"
IR팀장인 박정수 부장이 서면보고를 끝마치고 전무실을 나갈려고 할 무렵, 박기범 전무가 불렀다.
"이따가 6시 되면 자금팀 전부 다 데리고 신라호텔 가자고. 내가 저녁 살테니까."
"전무님이요?"
놀란 듯 되묻는 박 부장에게 그가 말했다.
"그래. 어제 다들 너무 수고해주었어. FICC, IR, 자금 모두. 다 가서 밥 한번 먹어야지. 6시 땡하면 바로 나가자고."
"알겠습니다."
박 부장이 밖으로 나가자 박기범 전무는 몸을 깊에 의자에 파묻었다. 어제 하루에만 2억 5천을 벌 수 있었다.
물론 큰 돈이기는 하지만 돈을 더 벌 수록 더 초라해지는 것 같았다. 대기업 전무라고 해봐야 월급쟁이. 하지만 세금은 엄청나게 많이 낸다.
대한민국 근로자 중 상위 20%가 근로소득세의 80%이상을 납부한다. 게다가 근로자 중 50%는 면세점 이하여서 아예 근로소득세를 내지도 않는다.
그에 비하면 박기범 전무는 엄청나게 세금을 많이 낸다. 성과급은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자신의 기본연봉은 무려 4억원. 성과급을 받는다면 5억 5천까지는 가능하다.
하지만 38%가 중앙정부에 내야 하는 세금이고 지방세까지 합하면 42%를 내는 셈이다. 연봉 5억 5천만원 중에서 42%가 세금이다.
실수령액은 고작 3억 1900만원에 불과하다. 미국만 해도 연봉 5억 5천만원(55만 달러)는 40%는 커녕 20%대의 세율을 적용받는다.
"확 미국시민권을 취득하고 세금을 미국정부에 내버려?"
세금이 높은 나라는 왜 망하고, 부유층과 지식인들이 타이타닉에서 빠져나가려는 사람들처럼 탈출하고 세금부담이 낮은 나라는 항상 흥하기만 하고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이는지 알만했다.
"전무 달아도 먹고 살기 힘들다. 세금이 너무 많아. 가렴주구가 다로 있나? 호랑이보다 무서운게 세금인데 말이야. 사람 잡아먹는 호랑이보다 무서운게 세금"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모니터 앞에서 자신에게 온 결제문서들을 쳐다보았다.
신라호텔에서 식사를 한 뒤, 벤츠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벤츠 S500. 누군가에게는 하찮은 이동수단에 불과하지만 박기범 전무에게는 자부심이었고, 노력의 댓가라고 여겼다.
그는 요행을 바라지 않았다. 서서히 종부세다 뭐다 해서 부동산 보유자들을 잡으려고 했지만 박기범 전무는 여전히 강남의 27평 아파트에서 살고 있었고, 다른 임원들처럼 아파트를 여러채씩 소유하지 않았다. 원래 부동산은 흥미가 없었다.
"박 전무는 부동산도 안하고, 주식만 하나?"
"부동산은 흥미없어. 할줄도 모르고. 그리고 유동성이 없잖아. 주식이나 현금이 더 나아. 고가 아파트보다는 그 돈주고 아내한테 렉서스 한대 더 사주고, 나도 벤츠 타면 돼. 이번에 일본가서 크라운을 한대 사가지고 올까? 나 어릴적만 해도 크라운이 최고였잖아. 언제냐? 신진 퍼블리카. 그런차도 기사를 두던 시절이 있었지. 그 차가 일본에서는 대학생들 첫차나, 가정주부들이 장보러 갈때 타던 소형차였는데 말이지."
며칠 전 다른 임원과 식사를 하면서 나눈 대화를 떠올리면서 차를 운전했다. 8기통 5리터 벤츠엔진은 무거운 차체를 깃털처럼 가볍게, 라인을 굴러가는 볼링공처럼 매끄럽게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