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의 시대-119화 (119/159)

119화

고개를 가만히 끄덕인 후 류 사장이 말했다.

"퇴직금 물어보니 18억이라는데? 36년 근속에 퇴직금 기준 산정이 5천이라서. 월급 곱하기 근속연수니까."

물을 한모금 마시면서 그가 말했다.

"자네도 노후 대비해. 사장도 좋지만 퇴직을 하고 뭐 먹고 살지도 고민해야지. 내가 그래서 벤츠를 안사는거야. 회사차로 나오는 에쿠스만 해도 탈만 하거든. 뭐 자네나 나나 월급쟁이 아닌가? 다른 말로 하면 노비지."

보신탕이 나오자 배가 고팠다는 듯 국물을 연거푸 들이키고 류 사장은 과거를 회상하듯이 말했다.

"1970년에 무등그룹 입사했지. 그 당시에는 완전히 노가다. 자금 수금 맞추려고 날뛰고, 결산하면 밤을 진짜 샜어. 안 그러면 일이 안돼. 오일쇼크때는 죽는 줄 알았지. 근처 목욕탕서 자기도 하고. 그러다가 해외영업부로 가서 고생도 했지. 결국 사장이 되었지만. 아. 93년인가? 서해훼리호 침몰 이후, 내가 기획실을 접수했지. 그 후 쭉 거기서 일했고. 경지실 사장까지."

"서해훼리호 때문에 저 독일로 쫓겨가서 고생했어요. 노동법 위반으로 벌금도 물고. 오 명예회장한테 무지하게 혼났죠."

"자넨 편하게 생활한거야. 자금통으로 나가서 사장을 노리다니. 영업도 안해. 공장도 안가. 사무실에서 도장이나 찍고."

박기범 전무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런 말 마세요. 저는 임원된 지금도 아침 8시 출근 저녁 8시 퇴근이랍니다. 하루 12시간씩 1년 주말빼고, 공휴일빼면 250일. 연간 3천시간 일한다고요. 우리나라 근로시간이 2100시간? 내가 3천인데? 뭐 귀족노조는 1000시간 일하나 봐요. 그러면 2100 되겠네."

고기를 입에 넣고 우물거리면서 류 사장이 말했다.

"자네도 일만 하는군."

"똑같은 일을 해도 우리 회사 정도 되면 미국은 임원연봉이 최소 5배래요. 그럼 노후 걱정 없죠,"

류준혁 사장은 이렇게 말했다.

"그래. 미국은 기업 임원들 급여가 엄청나지. 그런데 그렇다 해서 일반직원들 급여가 과연 그것에 발맞춰서 올라갈까? 오히려 일반 회사원들은 그나마 격차가 적은 우리나라가 더 살기 좋을지도 몰라. 임원급여가 높으면 어디에선가 그 부족분을 뽑아야할테니까. 손쉬운게 직원급여지."

그렇게 말을 하고는 .

"그나저나 외국계 증권사의 장난질이라? 대응하려면 제대로 하고. 오히려 그 놈들에게 엿을 먹이라고. 이도 저도 아니면 하지 마. 솔직히 나 퇴직하기 전에 나에게 영광을 안겨다주던지."

2006년 10월 4일. 이 날은 미국계 증권회사인 로젠바움은 무등그룹의 주가를 하향전망한다는 내용을 공표하는 날이었다. 바로 일주일 전인 2006년 9월 27일 인도네시아.

"석유야. 석유."

깊이 파고들어간 시추공을 통해 석유가 솓구쳐 오르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풍부한 천연가스 층도 확인을 했던 것이다. 확인된 가채매장량만 10억 배럴. 이 소식은 아직 언론에 알려지지 않은 채 서울과 도쿄, 자카르타에 타전되었다.

"석유? 석유가 나왔다고?"

자카르타에 위치한 무등그룹 사무소 임원의 전화를 통해 이를 보고받은 박기범 전무는 흥분에 휩싸였다. 그는 이 소식을 바로 윗선에 보고했다.

"그래? 그럼 언론에 발표는 언제로 하지? 자카르타와 도쿄하고도 이야기를 나누어야 할텐데."

이 말을 류준혁 사장으로한테 듣고 난 후, 자기 사무실로 돌아오자마자 도쿄로 전화를 걸었다.

"유키치 사장? 나 박기범 전무입니다."

"석유가 나왔다지요? 언론보도를 해야겠는데"

"그거 10월 4일로 연기합시다. 아직 얼마나 경제성이 있는지 파악도 안되었고, 아. 미국계 증권사가 우리 회사를 음해하려는데 이번기회에 박살을 내려고요. 당신네들도 미국 증권사가 목표주가를 가지고 장난쳐서 손해를 보지 않았던가요?"

잠자코 듣고 있던 레니 유키치 사장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우리도 로젠바움이라는 미국회사가 장난질을 치려고 해서 지금 대책을 세우고는 있으나, 지갑이 두둑하지 못해서."

"나한테 맡겨요. 인도네시아에다가도 말해놓고."

유키치 사장이 말이 끝나자 일단 그는 10월 4일까지 이 사실을 비밀로 했다. 그에게 전달된 사내 인트라메일로 PDF첨부파일이 하나 와 있었다. 그 파일을 열어본 박기범 사장은 출력버튼을 눌렀다.

그는 대부분의 경우 이면지에 프린트를 했다. 그가 가난한 집안 출신이어서 그랬을지도 모르지만 그가 보는 문서는 혼자 보거나 부하직원들에게 간단한 메모나 원하는 사항을 몇가지 적어서 프린트해 전달해 주는 수준이라 굳이 새종이를 사용하지 않아도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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