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화
그 주 토요일 아침 9시. 서울 외각의 한 골프장. 류준혁 사장과 함께 골프 라운딩을 나간 박기범 전무는 맑은 공기와 더불어 업무의 부담감을 같이 맛보고 있었다.
"왜 공이 잘 안들어가?"
평소 장타가 잘 나왔지만 이 날따라 시원찮았기에 류 사장이 말을 던졌다.
"아이언이 나쁜가? 박 전무. 혹시 아이언이 미제야? 메이드 인 유에스에이?"
"네. 저 미국건데요?"
"그러니 안나오지. 버려. 골프채는 일본제품이 좋아. 우리 체형에도 잘 맞고 부드럽고. 미국놈들은 힘으로 밀어붙여대니 하드한거 써도 된다고. 어쨌거나 뭐 안 좋은 일 있나?"
"별건 없고요. 지난번에 말씀드린 거 때문에요. 외국계가 매도의견 낼거라는 점이."
"뭘 그런걸 가지고 걱정하나? 그래봐야 하루이틀 지나면 원상복구가 되는거라고."
"그래도 외국계한테 휘둘리는게 싫어요. 박살을 내버리고 싶어서요."
이 말에 류준혁 사장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려워. 미국게 증권사들은 힘이 세다고. 어쩌겠나. 당해야 한다면 참아야지."
뭐라고 항의라도 하고 싶었지만 그 말도 아주 틀린 소리는 아니어서 일단은 입을 다물고 있었다.
"맞다. 박 전무 차가 벤츠 S500이라고?"
"네. 널찍하고 좋지요. 골프백이 10개 들어갈걸요? 트렁크도 넓어서."
"차를 뭘로 바꾸나?"
"S600타시죠."
골프채를 캐디에게 건네주면서 말을 하자 류 사장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황 회장님이 S600타시는데. 그나저나 그런 면에서 우리 회사는 좋아. 자기돈만 내고 차를 산다면 뭘 타고 허용되니까. 내 회사차가 에쿠스거든. 자네 차보다 후져."
"저야 제 돈 주고 샀잖아요. 사장님도 한대 사요."
류 사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렉서스를 사야겠어."
박기범 전무는 골프장을 나서면서 캐디에게 10만원권 수표를 세 장 건네주었다. 원래 그는 캐디에게 팁을 후하게 주기로 유명했다.
가끔은 캐디와도 골프를 치면서 대화를 하는데 고향이 같거나 대화가 잘되는 캐디에게는 30만원 정도 팁을 주었다. 이 날 아침에는 캐디에게 사장님에게 잘 해드리라고 또 얼마를 얹어주었다.
"박 전무는 통이 커. 캐디에게 돈도 듬뿍 주고 말이지."
"있는 사람이 베풀어야죠. 그래야 부가 아래로 흘러내리지요."
"보신탕 먹으러 가자고."
주차장에 주차된 차를 각자 타고 보신탕 집으로 향했다. 박기범 전무의 벤츠 S500에 비하면 류준혁 사장의 에쿠스는 작고 볼품없이 보였다.
물론 류 사장은 렉서스 LS나 BMW7시리즈를 한대 사기로 마음먹었다.
자주 가는 보신탕 집에서 탕과 수육을 같이 주문했다.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면서 류준혁 사장이 말했다.
"이번에 아마 자네는 경영지원실 총괄 본부장. 즉 사장으로 승진하게 될거야."
류준혁 사장의 말에 그는 깜짝 놀랐다.
"사장이라니요?"
"그래. 사장. 뭘 그리 놀라나? 내가 해방둥이라고 하지 않았어. 벌써 61세라고. 만으로 따져도 말이야. 그리고 힘들고. 애들도 다 컸고, 그래도 걱정 말라고. 황 회장님이 신경 써 줘서 이번에 우리 회사 본사 건물 안에 직원들을 위한 카페를 설치할 계획이야. 그 때 내가 그 카페를 운영할 권리를 5년 보장해 준다 했어."
"잘됐군요."
"임대료도 안 내. 직원 복지차원이라서. 다른 커피전문점이 아니라 내가 들어가는거니까. 이름은 아무거나 지으면 돼. 커피머신이야 내가 사면 되고. 퇴직금 받는걸로 하면 되지. 뭐 알아보니 인테리어에 직원고용에, 2억이면 되더라고. 할만하지."
"퇴직금도 필요없네요. 그 정도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