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화
이날 열린 자금팀 회의. 전사의 자금업무를 담당하는 자금팀. 그 내부에서 회사의 기업가치 향상을 위해 주가를 관리하는 IR파트, 보다 효율적인 자산운용, 환율관리를 통해 수금 리스크를 축소해 나가는 FICC파트로 구성되었다. 이들 파트장들과 자금팀장이 모두 한자리에 모였다.
"이슈가 뭐야?"
박기범 전무의 말에 IR파트장인 박정수 차장이 말했다.
"현재 IR은 특별한 이슈가 없습니다. 류준혁 사장님께서 주식을 추가 매수하셔서요. 특수관계인이라 지분공시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최근에 우리 회사 지분을 블록딜 형식으로 사들이려고 많은 자산운용사들이 눈독을 들이는 모양입니다."
"그런거야 뭐. 우리 자사주 물량 주는거 아닌 이상 신경쓸거 있나? 어차피 단기차익 위주로 갈텐데. 아. 어디 증권사였지? 애널리스트 탐방하는거."
"네. 김영춘 연구원이라고 종범증권 수석 연구원이라는데요?"
"뭐 알아서들 해."
박기범 전무의 말이 끝나자 자금팀장이 말했다.
"현재 탄소섬유 관련해서 신규공장을 충남지역에 지을겁니다. 토지 구입비 해서 대략 400억 정도 드는데, 전액 현금으로 지출할 겁니다. 전사의 여유 현금이 조 단위고, 올해 잉여현금이 2조를 넘어서요. 큰 무리는 없을 겁니다. 그리고 전무님 말씀대로 FICC파트에 3천억 추가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물론 조선사업부가 걸리네요."
"그건 내게 맡겨. 어차피 조선쪽도 돈이 필요할테니, 그 옥수수 선물로 한 700억 벌었나? 그걸 조선사업부에 지원해 줘. 도크가 낡았다더라고."
여기까지 말하고 헛기침을 한 박기범 전무는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탄소섬유는 우리 회사의 주력이야. 이미 우리 회사의 근간이었던 섬유는 매출비중이 15%도 안돼. 석유본부 비중이 20%, 조선사업이 20%, 특수섬유 사업부가 45%나 되는데, 장기적으로는 탄소섬유 25%, 조선 25%, 석유 25%, 그 외 25%로 맞출 모양이야. 섬유사업부도 이번에 아웃도어? 등산복 출시로 재기를 하겠다는데. 잘 해나가야지."
서류를 한 장 들고 눈여겨 보면서 FICC사업부의 강석천 부장을 불렀다.
"뭐해? 말하지 않고.'
"아. 네. 이번에 원유선물에 투자를 했습니다. 두바이 선물에 롱포지션을 걸었는데, 이익이 많이 났습니다. 배럴당 65달러에 잡은 포지션이 지금 배럴당 80달러까지 올랐으니까요. 지금 포지션 청산해도 될 듯 싶습니다. 물론 중국과 인도의 수요도 있어서 장기적으로는 배럴당 100달러 시대가 안착될 것 같습니다."
"그래. 국제유가가 배럴당 10~20달러하던 90년대 후반에도 휘발유가격이 리터당 900원~천원 언저리였는데, 지금은 에닐곱배나 올라도 리터당 1800원이라면 국내 유가가 안정되어있다고 봐야겠지. 어쨌든, 국제유가는 더 오른다? 그럼 포지션 유지해야지."
"그 이건 보고를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만"
강 부장이 어렵게 운을 떼자 박기범 전무가 대답했다.
"왜 그래? 말해봐. 괜찮으니까."
"외국게 증권사에서 근무하는 제 친구 말로 우리 무등그룹 주가를 패대기 치려고 한다네요. 석유개발도 성과가 없고 그래서 목표주가를 현재 주가보다 낮추어서 일종의 매도의견을 내려고..."
이 말이 끝자자마자 회의실의 분위기는 냉각되었다. 갑자기 표정이 굳어진 박기범 전무는 아까와는 달리 강한 눈빛으로 강 부장을 노려보고 있었다.
물론 그에게 화가 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강 부장은 마치 자신이 죄인이라도 되는 마냥 잔뜩 얼어있었다.
"그 증권사 접촉해서 언제 매도의견을 내는지 알아내. 그리고 포지션 규모가 얼마인지."
"어떻게 하시려고요?"
IR 파트장이 말했다.
"어차피 석유도 곧 나와. 그리고 주가도 결국 수요와 공급이니 매도 물량을 능가하는 매수물량을 퍼부으면 돼."
"하지만 너무 위험합니다. 외국계라면 쏟아부을 돈도 막대할텐데요."
강 부장이 손사래를 쳤다.
"만에 하나. 우리가 킨키와 손잡고 원유개발하는 것에 착안했다면, 그리고 외국계라면 킨키와 우리 모두 숏 포지션이나 숏 셀링하려는 걸 수도 있어. 그렇다면 공동대응해야지. 킨키는 작년에 턴어라운드했지만 여전히 기초체력이 부족해. 여전히 빚에 허덕이고, 우리는 금융에 대해 외국계만큼 모르고. 일단 언제인지 파악해."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급히 전화를 걸었다. 현재 인도네시아에서 석유개발중인 석유사업부였다.
"나 경지실 박 전무야. 이재명 상무 바꿔."
전화가 연결되자 박기범 전무는 마구 쏘아붙이듯 말했다.
"현재 어디까지 된거야? 어. 계속 파고, 현장 독촉해서 원유 캐내라고 해. 야간 작업도 독려하라고. 가시적인 성과가 있어야지 뭐하는거야 이거?"
현장을 독려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일단 류 사장님께 보고하고, 킨키 상사와도 이야기를 해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