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고 직원들 데리고 일요일에 봉사활동 가는거랍니다. 그래서 주중에 힘들게 일했지만 일요일에 봉사활동하러 가래요. 그래서 일요일 같은 날, 친구 결혼식이나 부모님 제사도 가지 말고 봉사나 가래는거죠. 그게 사회적 책임이죠."
얼굴을 찡그리는 임원들이 눈에 보이자 그가 말했다.
"그렇잖아요. 누구는 신입사원이라 눈치 보느라 매주 주말마다 봉사활동가고. 연애도 못하고 고향도 못 내려가고, 쉬지도 못하고. 누구는 친구결혼식입네, 친척들이 다 지방 살아서 자주 내려가네, 누구는 부모제사네 어쩌네 해서 빠지면 안 되니까요."
"그딴 게 사회적 책임이라고?"
류준혁 사장이 불쾌한 듯 말을 씹었다.
"네. 원래 그런거죠. 사장이나 임원은 달동네에서 연탄나르는 척 하고 사진 찍고 집으로 가고 말단 직원들은 새벽 6시부터 밤 11시까지 연탄 나르고 바로 다음날 월요일에 출근해서 일주일 일하고 토요일은 고아원, 일요일은 달동네. 이거죠."
"그럼 언제 쉬나요?"
박기범 전무가 조심스럽게 묻자 황 상무가 대답했다.
"죽으면 영원히 쉬게 되어있어."
이 말에 류준혁 사장이 말했다.
"이거 박 전무 때문에 우리 직원들만 고생하겠어."
"아시잖아요. 아무것도 모르고 입만 살아서 떠드는 놈들이 더 득세하고, 실무진이나 전문가의 말은 무시하는게 이 나라니까요. 그리고 제가 신문을 보니까 박기범 전무가 옳은 말만 했던 걸요? 저도 전경련 회원사 임원 중에 친구들 있어요. 전경련 회원사들이 힘을 합하면 저우도 어쩌지 못하겠죠. 그 많은 대기업을 다 세무조사 하게요?"
황 상무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쩌면 좋지?"
류준혁 사장의 탄식에 황 상무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기다려보세요. 전경련이 움직일겁니다."
황 상무는 친구들이 대기업 인원으로 많이 가 있었다.
국세청이 무등그룹에 대해 세무조사를 실시한지 2일째 되는 날. 전경련은 기자들을 대동하고 기자회견을 열었다.
"우리 전경련은 무등그룹의 부당한 세무조사에 대해 반대를 표하는 바입니다. 전경련 회원사인 무등그룹의 전무 하나가 개인적인 사견을 신문사에 기고했다는 이유만으로 세무조사를 통해 보복을 한다는 것은 지나친 간섭이며, 이는 과거 박정희, 전두환같은 독재자와 현재 집권한 386세대가 동격이라는 점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과연 이 정부가 얼마나 무고한 기업인을 괴롭히는지 그 극치를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전경련 관계자가 이렇게 말했다. 기자들은 연신 셔터를 눌렀고, 텔레비전 방송사들은 생방송으로 이를 중계했다.
그러나 다음날 경제신문과 같은 일부 신문사를 제외하고는 이 전경련 회견을 아에 누락시키거나 조롱하는 어투로 기사를 써댔다.
정권을 장악한 친노조 성향의 386과 나라를 장악한 귀족노조의 힘은 언론마저 쥐고 흔들 정도였으니까.
그러나 전경련 회원사들이 모두 항의를 하는 데다가 석유개발을 추진중인 일본의 킨키 상사와 인도네시아 국영석유회사는 불쾌감을 드러냈다.
"대사님. 외무부에서 잠깐 들어오시랍니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위치한 주 인도네시아 한국대사관. 여비서가 들어오더니 대사에게 일정을 이야기 했다.
"지금 들어가야겠군."
대사가 탄 벤츠가 인도네시아 외무부 청사로 들어갔다. 차에서 내렸을 때 그는 한국석유공사 인도네시아 본부장과, 한국전력 인도네시아 사업본부장이 마침 같이 차에서 내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아이고. 대사님."
한국석유공사 본부장의 말에 대사가 대답했다.
"다들 오셨네요. 나야 외무장관을 보러온건데. 그쪽은요?"
"우리도 장관님을 보러 왔어요. 아마 이번에 추진중인 발전소 관련해서 뭔가 알려주려나 봅니다."
경제대국화 되어가는 인도네시아의 입장에서 발전소는 매우 중요했다. 그래서 앞선 선진 기술을 가진 한국전력을 통해 신규발전소 건설은 물론 인도네시아 전역을 보다 효과적으로 연결하는 전력망 개선을 국가적 사업으로 추진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전력망 개선과 더불어 한국건설사들의 신규수주물량도 기대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뿐만 아니라 석유수급 다변화를 위해 인도네시아에서 막대한 원유를 수입하는 한국의 입장에서 석유공사 역시 대규모 계약을 통해 천연가스와 석유를 수입하고 있었다.
"들어갑시다."
의아한 것은 이들 세명이 모두 외무장관을 만난다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