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의 시대-100화 (100/159)

100화

미국에서 대학시절을 보낸 유키치 사장은 다행히 차 안에서 즐겁게 박기범 상무와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1977년부터 1983년까지 미국에서 고등학교와 대학을 다녔다는 유키치 사장의 말을 듣고 박기범 상무가 영어로 가볍게 말을 던졌다.

"오. 대단한 시기에 대학을 다녔군요. 그야 말로 팝의 전성기 시절 아닙니까? 디스코와 각종 팝이 휩쓸던 시기죠."

"음악을 좀 아시는군요."

"물론이죠. 제가 1955년생인데, 제 로망이 누구였나면 올리비아 뉴튼 존하고 데비 해리였죠. 둘 다 영롱한 블론드 헤어를 휘날릴때면... 남심(男心)을 녹인다니까요. 그렇게 본다면 크리시 하인드나 조안 제트는 너무 남성적이어서 데비 해리와는 또 다른 매력이 있지요."

"헌데, 어찌보면 데비 해리의 블론디를 필두로 여성보컬이 지배하는 펑크 락의 시대가 열리지 않았나요? 저는 크리시 하인드. 그러니까 프리텐더스 공연을 미국에 있을 때 자주 갔었죠. 매력적이던데요. 바브라 스트라이샌드도 매력적이고요."

"설마. 그 유태인 여자요? 난 그 매부리코가 싫던데. 가창력은 끝내주지만."

별것 아닌 것 같은 대화지만 레니 유키치 사장은 박기범 상무에 대한 의심이나 적의가 금방 해소되었다. 아무래도 같이 통하는게 있다보니 쉽게 대화가 되었다.

"그런데 미국에서 어느 고등학교를?"

"아. 캘리포니아에 있는 밴 나이 고등학교랍니다."

"거기 대단한 학교잖아요. 마릴린 먼로가 다녔던. 거기다가 UCLA도 다녔잖아요. 선배가 마릴린 먼로라니. 정말 대단합니다."

이렇게 말하고 박기범 상무는 혼자 중얼거렸다.

"내 선배 중에 저런 위대한 위인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야. 아주 잘 아시네요."

유키치 사장이 감탄하듯 말했다. 박기범 상무는 자신의 지식을 뽐내듯 말했다.

"원래 제가 할리우드와 빌보드를 좋아해요. 그래서 회사만 안 다녔다면 영화 혹은 팝 전문 잡지 기자노릇을 했었을 겁니다."

무등그룹 본사에서 레니 유키치 사장은 무등그룹과 인도네시아 국영석유회사와 각각 3분의 1씩 출자해 석유를 공동개발한다는 박기범 상무의 생각에 흔쾌히 동의했다.

"좋은 생각이죠. 다만 인도네시아 측이 어떻게 반응을 보일지가 걱정인데."

그것이 문제였다. 과연 인도네시아 측은 자신들의 지분 일부를 포기하고 지분율을 33.3%로 맞출 것인가?

이를 알아내기 위해 박기범 상무와 황영식 사장의 위임장을 들고 배상수 대리가 뉴욕에서 자카르타로 날아갔었다.

이미 뉴욕에 위치한 인도네시아 국영석유회사의 담당자를 만난 배 대리는 이 덕분에 석유회사의 최고책임자를 만날 수 있었다.

배상수 대리는 박기범 상무의 생각보다 더 훌륭했다. 그는 타고난 선동가였고 상대를 휘어잡는 마력을 입으로 발휘할 수 있는 남자였다.

이 능력으로 인도네시아 국영 석유공사는 자신의 지분율을 낮추는 것이 지금 당장은 손해일지라도 이를 계기로 우수한 실력을 갖춘 한국기업의 인도네시아 진출을 열 수 있고, 아시아에서 일본-중국 다음가는 거대 석유소비시장인 한국으로의 접근을 용이하게 하는 데 필수적이라는 점을 인식시켰다.

이 내용을 서면으로 받아낸 배상수 대리는 이 서류를 가져왔고 이를 직접 보면서 유키치 사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렇게 될 때 킨키 상사도 지분위협을 느끼지 않고 석유개발을 하는데 움직일 수 있다는 점을 명확하게 했다.

인도네시아 측이 유망한 광구를 제시하면 무등그룹이 돈을 대고, 킨키 상사가 시추를 하는 개념이었다.

물론 더 정확히 말을 하면 모든 비용은 3분의 1씩 나누어서 낸다. 이득도 나눠가진다.

리스크가 작은만큼 수익도 작은게 흠이긴 해도 각자의 자금사정, 시장진출, 활용도 등을 고려할때 서로의 이해를 가장 잘 반영한 것이라고 보는게 현명할 것이다.

하지만 유키치 사장을 불안하게 한 것은 수익이 작다는 것이다. 지분이 3분의 1이지만 기술력, 인력은 킨키 상사가 더 뛰어났기 때문이다.

"유키치 사장님"

박기범 상무가 말했다.

"지분문제때문에 걱정하시는거 잘 압니다 하지만 그건 염려 마십시오. 우리는 안정적인 나프타 수급을 위해서 석유가 필요한 겁니다. 일단은 투자를 해야 하기에 3분의 1에 해당하는 지분을 갖게 되지만,"

잠시 말을 끊은 박기범 상무는 큰 결심을 하려는 듯 숨을 내쉬었다.

"반드시 우리가 원유 채굴량의 3분의 1을 가져간다는 소리는 아니지요."

"그럼..."

이 말에 놀란 유키치 사장이 박기범 상무를 쳐다보았다.

"우리에게 필요한 원유양만 가져가고 나머지는 가져가세요. 싸게 넘기죠. 서산에 있는 정유소에서 휘발유나 디젤이 나오면 가져가세요. 우리는 나프타만 필요합니다"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만 있는 유키치 사장을 보면서 계속 입을 열었다.

============================ 작품 후기 ============================

드디어 100회입니다. 어마어마하네요.

제 소설 덕에 배경지식도 풍부하게 늘어났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마릴린 먼로가 졸업한 고등학교가 바로 밴 나이 Van Nuys High였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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