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화
박기범 상무는 뉴욕으로 전화를 걸었다. 뉴욕시간이 밤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전혀 개의서 않았다.
같은 시각 뉴욕. 요란하게 들려오는 전화벨 소리에 잠이 깬 배상수 대리는 졸음이 가득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예."
-나 박기범 상무야.-
이 말에 그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군인처럼 경직된 자세로 대답했다.
"예. 상무님."
-단잠을 깨워서 미안하게 됐어-
"아닙니다.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말씀하세요."
-다름이 아니라 내일 뉴욕시간으로 아침이 되면 킨키 상사 미국지사를 찾아가. 거기서 석유담당 관계자를 만나서 우리가 킨키 상사와 관련해서 조인트 벤처를 하고 싶다고 전해. 내 이름 대면 될거야. 그리고 그거 끝나면 인도네시아 대사관이나 인도네시아 국영석유공사 뉴욕지점을 찾아서 우리가 조인트 벤처하겠다고 해-그러자 배상수 대리는 희열이 가득 묻어나는 목소리로 말했다.
"상무님. 드디어 우리가 유전을 개발하는 것입니까?"
그는 7년 전. 신입사원 시절, 당시 부장이던 박기범으로부터 장래에 원유개발까지 이어지는 수직계열화를 꿈꾼다는 이야기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전화상으로는 말을 못해. 일단 해봐. 그리고 자네도 서울로 복귀해야지. 뉴욕엔 보신탕도 안팔잖아. 어디 살겠어?-
"예. 아침이 되면 지시하신 대로 바로 하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박기범 상무는 배 대리가 충분히 일을 해 주기를 바랬다. 그는 즉시 도쿄로 전화를 걸었다.
1995년 당시 직접 무등그룹에게 신용보증을 해줄 정도로 잘나갔던 킨키 상사는 최근 이토추, 미쓰비시, 마루베니 상사들에게 차츰 밀리고 일본경제의 침체와 맞물려 2000년, 2001년, 2002년. 3년 연속 적자를 냈다.
전반적으로 기업의 활력이 많이 떨어진 가운데, 너무 나이가 많아 퇴직한 사토이 사장 후임으로 임명된 레니 유키치 사장은 기업을 어떻게 재정비를 해야 할지 고심했다.
오키나와 미군기지에 주둔하던 미군 어머니와 일본인 아버지를 둔 그는 대학시절을 미국에서 지내며 미국식 경영방식을 몸에 익힌 일본에서도 얼마 안되는 국제통이었다.
"현재 기업 전체의 위기가 너무 심각한데. 그 인도네시아 석유채굴건도 현금 지출이 너무 크지 않나요?"
"그래서 그것 때문에 말이 많아요. 우리가 아직 본격적으로 채굴작업을 하지 않으니 인도네시아 측 불만도 크답니다."
"이거 미치겠군."
유키치 사장은 머리가 복잡한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다행히 어제 뉴욕지사에 무등그룹 담당자가 와서 조인트 벤처에 대해 논의했다고 합니다."
"무등그룹? 거기 95년도에 우리한테 석유를 대주었던 회사 아닙니까? 음. 거기가 조인트 벤처라?"
잠시 생각에 잠긴 그는 같이 대화하던 임원에게 말했다.
"서울행 비행기를 예약해야겠어요. 무등그룹하고도 연락을 해 놓읍시다. 아무래도 거기 담당자와 이야기를 해야겠네요."
유키치 사장은 희망을 한국에서 찾으려는 듯 해보였다.
3일 후, 도쿄발 보잉 747 비행기가 김포공항에 착륙했다. 공항 터미널에는 오남현 회장의 1971년형 시보레 카프리스가 대기하고 있었다. 차의 뒷좌석에 탔던 박기범 상무는 유키치 사장을 알아보고 차에서 내렸다.
"유치키 사장님?"
그는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돌아다보았다.
"무등그룹 박기범 상무입니다. 같이 가시죠."
박기범 상무는 직접 뒷좌석 문을 열고 유키치 사장이 탈 수 있게 했다. 그리고 맞은편 뒷좌석에 올라탔다.
"오. 차가 클래식카로군요."
"원래 미국산 풀사이즈 세단이 누구를 모실때는 좋잖아요. 뽀대도 나고, 무게감도 있어보이고요. 우리나라 차가 싫다는 건 아니지만 높은 사람 모시기에는 한국산 고급차는 무게감이 없죠."
차 안에서 유키치 사장은 박기범 상무와 이야기를 했다. 둘 다 영어로 의사소통이 되었기에 그 점은 다행이었다.
============================ 작품 후기 ============================
과거 1985년. 킨키 상사와 협력관계였던 한신은행으로부터 100억엔 차입을 한 무등그룹은 1995년. 고베 대지진으로 어려움에 빠진 킨키 상사에게 휘발유와 디젤을 공급합니다. 이후 협력관계가 유지된 무등그룹은 이제 킨키와 손잡고 석유개발에 뛰어듭니다.
필자 역시 모 중견기업 자금팀 출신이고(휴렛팩커드, 인젠소마 트레이더를 거쳐 현재는 모 채권평가사에 있습니다만은) 경영학, 특히 재무를 전공했습니다.
덧글을 보니까 공기업, 노조 문제가 많이 거론됩니다. 경제를 조금이라도 아신다면, 적어도 재무를 공부했다면 아마 한국경제신문의 정규재 칼럼에 100% 동의할 겁니다. 그 사람 칼럼을 보면 87년 체제로 인해 민주화라는 허울을 뒤집어 쓰고 쇠파이프 귀족노조의 등장, 생산성을 웃도는 고임금, 파업을 옹호하는 정권때문에 기업들의 엑소더스가 이루어지고 현재의 한국경제의 문제점이 파생되었다고 합니다. 100% 맞는 말이죠.
좌승희라는 유명한 경제학자는 87년부터 97년까지 민주하라는 이름아래 그동안 번걸 다 까먹어서 IMF과 왔다고 합니다. 대다수 경제학자들은 100% 동의하는 모양입니다. 우리 같은 비전문가들이 떠드는것보다는 학자들의 말을 귀담아 들어야 한다고 봅니다.
어쨌거나 이제 100회인데, 독자분들을 위해 어떤 서비스를 해드려야할지 고심하게 만드는 99회가 되는군요. 주말에도 업뎃은 계속됩니다. 취미로 시작했는데, 어느덧 의무감을 가지고, 사명감을 가지고 업뎃 늦추지 않으려고 하네요. 자금을 맡아서 그런가? 책임감마저 비장하게 느낍니다. 하하하아 참. 저는 여전히 미국에 대해서 소설의 박기범 상무가 생각하는 것과 꼭같이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