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화
주말. 월요일에 출근하면 강 과장의 보고서를 읽고 의사결정을 내려야 했기에 주말만큼은 회사 업무에서 해방되어 쉬고 싶었다. 그는 컴퓨터 앞에 앉아서 평소 그가 늘 쓰던 글을 썼다.
===============================================================================
블론디(Blondie)
블론디처럼 그야말로 다재다능한 밴드는 없을 것이다.
디스코가 세상을 지배하던 1976년. 금발머리의 데비 해리가 이끄는 밴드 블론디는 디스코 음악인 'Heart of Glass'로 전미(全美) 빌보드 1위를 차지했고, 1980년, 락큰롤인 'Call Me'로 그 해 빌보드 1위와 누적순위 1위를, 1981년, 레게음악 스타일인 'Rapture'로 전미 1위와 같은해 팝인 'The Tide is High'로 또 1위를 한다.
1945년 미국 플로리다 출신의 데비 해리는 한때 플레이보이 버니로 활약했었다. 이후 가수로 전환하면서 크리스 스타인(1950~. 기타리스트), 지미 데스트리(드러머)와 밴드를 구성하여 1975년부터 본격적으로 활동한다.
1982년 해체를 하게 되지만 1999년 재결성한 블론디는 'Maria'를 통해 성공적으로 데뷔하며 미국 음악사에 한 획을 그은 것으로 평가된다.
이미 1970년대 초반 재니스 조플린을 시작으로 여성 로커들이 등장하였고, 블론디 이후, 프리텐더스의 크리시 하인드, 조안 젯 앤 블랙하츠를 이끈 조안 젯......
=============================================================================
여기까지 원고를 작성한 그는 잠깐 생각에 잠겼다. 팝에 관한 책을 쓰는 것은 박기범 상무의 취미였다.
작년에 엘비스 사후 25주기를 맞이해 엘비스 프레슬리의 대표곡들을 모은 음반이 발매되었다. 박기범 상무는 그 음반을 샀는데, 과거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1977년 엘비스가 죽은 소식이 국내에 전해진 다음날, 서울대 경영대학은 유신반대 시위를 구상하고 있었다.
그 때 총무를 맡은 박기범은 엘비스의 죽음을 추모하기 위해 총무로서 각 대학에 전화를 하는 대신 팝을 좋아하는 친구 몇명과 대포집에서 막걸리와 소주를 진탕마셨다.
그 순간만큼은 유신독재고 나발이고 없었다. 락큰롤의 황제가 세상을 떠났다는 건 그야말로 엄청난 충격이었다.
1962년 미국의 마릴린 먼로가 죽었을 때 전세계인들이 느꼈을 충격과 맞먹었다. 그야말로 인류의 위대한 별을 잃었다고 생각했기에, 유신독재, 민주주의 탄압 따위는 하찮은 먼지에 불과하다고 여겼다물론 서울대 경영대를 필두로 한 전국 경영대학 연합시위는 무산되었고, 학생들의 비난을 받기도 전에 그는 군대로 갔다. 전방 소총수로 군복무를 마치고 대학에 복귀해서 취업준비를 했다.
다행히 부대장 아들에게 과외를 해 주는 댓가로 편한 군복무와 함께 휴가도 왕창 땡겨 쓰고 바로 취업을 할 수 있게 되었다.
77년 당시 그에게 연합시위는 중요했지만 엘비스의 죽음에 비할바가 아니었다. 존 레넌의 말처럼 '엘비스 이전에는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엘비스에 대한 글도 쓰고 싶지만 감히 그 위대한 존재에 대해 함부로 펜대를 놀리는 것은 'blasphemy(신성모독)'보다도 더한 죄라고 여겼다.
"그러고 보면 고이즈미가 엘비스 팬임을 과시하니 미국이 껍뻑 죽는거지"
중얼거린 그는 잠시 키보드에서 손을 떼도 생각에 잠겼다. 최근 미일, 미영관계가 어느 때보다 돈독하다. 이라크 전쟁이라는 자유민주주의 세력의 정의로운 전쟁에 반대한 프랑스나 독일과 달리, 미국과 마찬가지로 자유, 민주, 인권 수호를 위해 히틀러와 싸운 영국은 군대를 보냈고, 미국의 동맹국으로서 일본도 자유세계의 일원으로서 자위대를 파병했다.
우리나라도 자유, 민주, 인권이라는 인류보편의 가치를 이라크인들에게 심어주기 위해서 자이툰에 군대를 보냈다.
국회에서 이라크 파병동의안이 통과되었을 때, 박기범 상무는 드디어 후세인의 압제로부터 이라크인들이 해방되었구나 생각했었다.
이라크 전쟁 당시 미군의 작전명인 'Operation Freedom(작전명 자유)'가 맞는구나 생각했었다.
============================ 작품 후기 ============================
벌써 100회가 눈앞이네요. 댓글로 질문사항 달아주시면 100회 특집으로 후기에 올리겠습니다. 뭐 어느 회사를 배경으로 했다던가 소설에서 궁금한 점 등등 질문주시면 답하죠. 웹툰 작가들은 그렇게 하더군요. 100회, 200회 특집. 저도 흉내 내보려고요.
76회 댓글도 그렇고 다른 화 댓글 보니까 너무 편향되었다. 한쪽만 바라본다고 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누구나 한쪽만 바라보겠죠. 희망버스가 현대차 울산공장 가서 저지른 불법, 쇠파이프를 저는 보는 것이고, 사회적 약자니까 아무리 쇠파이프를 휘둘러도 좋다 하시는 분은 뭐 그렇게 생각하시는 것이죠.
저는 그렇습니다. 대한민국은 민주국가이고 법치국가죠. 그렇다면 내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해서 쇠파이프를 휘두르고, 불지르고 죽창으로 전의경 눈을 찌르면 안되죠.
내가 서울대 가고 싶다고 해서 서울대 건물에다 불지르고, 교수 눈에다 죽창을 찔러 넣고, 교실로 쳐들어가서 공부하는 학생들한테 쇠파이프 휘두르면 합격되는거 아니죠. 우리나라는 그런 점에서 뭔가 잘못되었죠. 열심히 노력해서 뭔가를 얻어야 하는데, 열심히 쇠파이프를 휘두르고 일은 안하고 데모만 해서 얻으려고 합니다.
제가 노무현때 군생활 했는데, 가관이었답니다. 그 때 경찰대 간 친구들이 그래요.
"데모할때 쇠파이프 휘두르면 그냥 맞아야 좋은 경찰'이라고. 시민을 위협해도 그냥 맞아야 한답니다. 안그러면 징계 먹는답니다. 그건 정상적인 국가가 아니라 소말리아 같은 찌꺼기 국가지요.
오죽하면 대통령이 '법질서 강조'를 외치면 거칠게 항의할까요? 법질서는 지켜야죠. 그렇게 법을 어기고 싶으면 도로교통법을 어기세요. 고속도로 버스 전용차로로 역주행해서 마주오는 고속버스와 부딫히면 정신이 들까요?
원래 공정한 법질서, 높은 준법정신, 공정한 세금, 높은 기업가 정신이 선진국으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경제학 시간에 배운게 생각납니다. 쇠파이프 휘둘러서 선진국되면 소말리아가 미국 제꼈죠. 백년 전에.
노동자들의 합법적인 시위나 파업은 법에 보장되었으니 보장받아야 하고, 그건 권리입니다. 다만 쇠파이프를 휘두르고, 화염병을 던지고, 죽창으로 전경 눈을 가격하는건 안되죠. 그것도 민주화인가요?
어쨌거나 이제 본격적으로 석유개발을 위한 사전 준비작업에 들어가게 됩니다.
97화는 일부러 회사 업무와 상관없이 주말을 보내면서 추억에 잠기고, 2003년 당시의 시대상황을 조명하는 부분으로 구성했습니다. 98화부터는 다시 치열한 기업의 일상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가볍게 보세요.
참. 한국경제신문 사설 보니까 '정말 말 안듣는 한국인'이라는 글이 있어요. 규칙 위반을 훈장으로 여기는 한국인들. 정확합니다. 쇠파이프 휘두르는걸 자랑스러워하는 한국인. 일치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