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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의 시대-96화 (96/159)

96화

동시에 한때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국가가 이제 세계최고수준의 생활수준을 누리는 선진국 반열에 들어섰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믿었다.

이제 박기범 상무는 자신의 승진과 회사의 발전을 넘어서 한국경제를 견인해가는 또 하나의 이름 없는 거인(巨人)이 되어야한다는 책임감도 가지고 있었다.

2003년. 이른바 386의 지지를 얻고 등장한 노무현 정권. 이제 박기범 상무는 48살의 대기업 임원이었다.

서서히 그의 시각은 급격한 변화보다는 안정과 번영을 추구하는 전형적인 40대 후반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1955년 생. 서울대 경영학과 74학번. 재계서열 7위인 무등그룹 경영지원실 상무. 이제 그에게 절실한 것은 벤츠와 50평대 아파트이지 말만 거창한 '개혁'은 아니었다.

물론 그 역시 데모를 했다. 박정희의 유신독재에 반기를 들고 70년대 후반 내내 최루탄을 마셔가며 데모를 했고, 87년 6월 항쟁때는 저 유명한 넥타이 부대로서 명동성당에서 시위하는 대학생들에게 격려금이 담긴 두툼한 돈 봉투와 얼굴도 모르는 또 다른 넥타이 부대와 함께 경찰에 맞서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그들은 회사에서 정부조직에서 묵묵히 일하며 밤낮을 가리지 않았고 이 나라를 번영의 길로 가게 만든 장본인들이었다. 과로사로 쓰러지기도 했고, 열사의 땅, 중동에도 진출했다.

'안되면 되게 하라'는 불도저식 사고방식은 전세계 그 누구도 도전하기 어려운 과제였던 사우디 주베일 항만공사를 끝냈다.

조선산업에 뛰어들던 무렵, 경제학자, 경영학자, 모두가 미친 짓이라고 여겼지만 2001년부터 세계1위의 조선강국이 되었다.

심지어 1983년. 반도체 산업에 뛰어들 때, 당시 첨단산업인 반도체, 컴퓨터를 장악한 미국과 일본은 '한국이 끼어들만한 수준이 아니'라고 했다.

객관적으로 당시 한국의 기술수준으로 반도체는 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누가 보아도 한국이 반도체 산업에 뒤어드는 것은 휘발유통을 들고 불구덩이로 뛰어드는 격이다.

아니. 지금의 소말리아나 에티오피아가 스마트폰을 개발하겠다고 나서는 것과 하나도 다를 바 없었다.

그러나 해냈다. 세계적인 반도체 기업들, 전자산업에서 미국은 이미 도태했고 일본은 한국의 강력한 도전에 힘겨워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2003년 현재, 한국의 삼성전자는 일본 전자 대기업들의 공포의 대상이 되어있었다. 일본 회사들은 삼성전자 수준의 경쟁력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일부는 미련하다고 비난하는 '불도저식' 경영이, '안되면 되게 하라'는 상명하복의 기업문화는 정말 다 되게 만들었다.

아마 선진국이라면 무등그룹도 석유에 관심을 갖지 않았을 것이다. 중진국이기 때문에 선진국의 라이벌을 따라잡아야 하기 때문에 다양한 아이디어, 추진력으로 이제는 석유에 까지 관심을 가지는 것이다.

직장생활은 하나도 해보지 않고 데모를 하다가 전향하여 국회의원이 되거나 정치권으로부터 사면조치를 받고 민주투사라는 거창한 플래카드와 함께 국회로 향한 사람들과는 질적으로 달랐다.

지금 이 나라의 정치와 국회를 장악한 386들이 받아가는 돈은 바로 그들이 헐뜯고 저주하는 유신세대의 피와 땀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에휴. 이 나라가 어떻게 돌아가려는지"

그냥 무의미하게 내뱉은 말은 아니었다. 그러나 어저겠는가? 이미 386에게 선거라는 합법적 수단으로 정권을 5년 양보했으니 그들을 믿을 수 밖에.

"대한민국을 시원하게 말아먹기야 하겠어?"

박기범 상무는 아파트의 문을 열고 가족이 기다리는 집 안으로 들어갔다. 주말을 집에서 쉬면서 보내고 월요일 회사로 출근해 강석천 과장이 작성한 보고서를 읽어보았다.

============================ 작품 후기 ============================

2004년. 삼성전자의 순이익이 일본 전자대기업 9개와 맞먹었죠. 지금은 몇배나 차이가 납니다. 세계최대 전자회사가 삼성전자죠. 얼마나 대단합니까? 이 작은 나라에서, 엄청난 달러박스가 있죠.

일본 대졸초임이 얼마나 될까요? 찾아보니 4년제 대학 나오고도 일본은 겨우 월 20만엔받아요. 20만엔 곱하기 12하면 240만엔. 100엔당 1200원 잡아도 대졸초임이 2880만원 수준입니다. 진짜 못받는거죠. 1인당 국민생활수준이 47000달러나 되는 나라에서요. 삼성전자 초임이 성과급 합하면 5~6천. 현대자동차는 고등학교만 나오고 생산직 입사해도 연봉이 1억이 그냥 넘는다죠?

그런 귀족노조가 쇠파이프를 전의경에게 휘두르는게 이상하지만(귀족이라 자식들이 군대 안가나 봐요. 병역면제? 국회의원들이 귀족노조 앞에 절할겁니다. 자기들보다 더 군대 빼서요. 그러니 쇠파이프 휘두르지)어쨌거나 우리나라의 대기업들이 이렇게 생활수준을 높여놓았습니다. 일본에서 대학나오고 직장인 생활하면 초임은 매우 낮아서 우리나라 보다 못하다던데 좀 웃깁니다. 하긴 미국서도 취업한다고 반드시 한국보다 많이 받으란 법은 없지만요.

1985년 2.12총선때 야당인 신민당열풍을 일으켜 김대중과 김영삼의 정치적 입지가 강해졌는데, 그런 힘을 이끈, 87년 6월항쟁때 정권을 뒤엎은 넥타이부대. (경찰도 대학생은 두들겨패도 직장인은 못팹니다.) 바로 지금의 50대 중후반~60대 초반입니다. 베이비붐 세대이자 전후 황금기를 이끈 세대였죠.

이 황금기(1962~1987)를 거치면서 축적한 돈과 에너지는 민주화 이후 더 발전의 원동력이 되어서 1995년 국민소득 1만 달러, 수출 1천억 달러, 2011년 소득 2만 달러. 무역액 1조 달러라는 위대한 선진 경제대국의 발판이 됩니다.

삼성의 이건희가 반도체 하려할때, 정주영이 현대전자 만들때 미국의 IBM사장이 말렸습니다. '중공업'하세요.라고 지도까지 해주었는데 지금 한국 전자산업. 세계를 장악하죠. 정주영이 자동차를 만들때, 당시 우리나라 상공부는 '한국의 현실에서 자동차 독자 생산은 비경제적'이라고 했죠. 그냥 CKD로 수입차 반조립이나 하는게 최고라고 생각했답니다.

정부말 믿었다면 박살났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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