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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의 시대-94화 (94/159)

94화

이미 거제도에 위치한 조선소에서는 유조선도 만들어내고 있었다. 1호 유조선은 현재 60%가 완공되었고 이 추세대로라면 2004년 8월에 처녀항해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2004년 8월부터 사우디에서 계약을 맺은 석유를 국내로 도입할 심산이었다.

정부의 눈을 속이기 위해 외국에서 계약을 따냈다고 했지만 내부 소비용이었다.

'석유만 직접 도입하면 될텐데'

그렇게 생각에 잠긴 박기범 상무는 원통한 표정으로 허공을 바라보았다.

"망할 석유공사. 왜 우리를 못 괴롭혀서 안달이야?"

이라크전쟁까지 발발하면서 국제유가는 종잡을 수 없었다. 이라크를 미국이 평정하면 증산을 통해 유가를 끌어내릴 것이고, 만일 실패하면 유가가 올라갈 것이다.

더욱이 중국이 경제대국으로 부상하면서 막대한 석유를 사들이고 이는 가격상승의 한 요인이 되었다. 하지만 이것보다 더 큰 가격상승요인은 엄청나게 풀린 돈때문이었다.

닷컴버블이 붕괴하면서 미국경제가 일본처럼 장기침체에 빠질 우려가 커지자 미국 FRB는 기준금리를 1% 수준으로 낮추고 이를 통한 경기부양을 꾀했다.

저금리에 힘입어 엄청난 돈이 원자재 시장으로 흘러들어갔고 석유가격은 1배럴에 25~30 달러 수준에서 50~60 달러로, 급기야는 150달러까지 치솟게 만든다.

"중국이 석유를 많이 쓴다고 해봐야 이제 일본 수준이야. 미국이 하루에 2천만 배럴의 석유를 소비하고 중국이 아직 5백만 배럴도 채 못써. 전세계의 하루 평균 석유소비량은 8700만 배럴이고. 그 중에서 중국이 겨우 470만 배럴을 쓰는데 이것때문에 국제유가가 오른다는 건 조금 말이 안되지. 뭐 멍청이들이야 중국때문에 유가 오른다고 떠들겠지만. 뭐 바보들이나 그러지."

박기범 상무는 석유도입이 시급하기는 해도 이것은 에너지 조달의 다변화일뿐 미래의 가격상승에 대비한 것이 아님을 분명히 했다.

"하지만 상무님."

강석천 과장이 말했다.

"미국 FRB가 금리를 인하하고 있습니다. 닷컴 버블 붕괴로 인한 경기침체를 우려하는 것이지요. 따라서 시중에 돈이 많이 풀릴 것이고 자연히 원자재 시장이 영향받을겁니다."

"그렇다면 석유선물을 최대한 많이 확보하라?"

"예. 경우에 따라서는 우리 필요량 이상으로도 확보는 해야 합니다. 필요물량만 남기고 되팔아도 이익을 낼 수 있지요."

박기범 상무는 확신이 서지 않았다. 석유확보는 필요하나 물량은 쉽게 결정하기 어려운 사항이었다.

"일단 해보고. 물량조절은 봐가면서 해야겠지.거 참."

답답하다는 듯 박기범 상무가 투덜했다.

"이거 석유를 산다는 건지 만다는 건지. 학교도 아니고. 공부만 하다가 끝나는거 아니야 이거?"

이 말에 강석천 과장이 대답했다.

"상무님도 참. 상무님께서 결정하셔야죠. 그럼 일단 저희 필요량의 80%선에서 주문하도록 하죠. 그래야 석유공사로부터 기존 물량의 20%만 사올거 아님니까?"

"좋을대로."

그 날 저녁. 미국에서 돌아온 송영찬을 만났다. 그는 이제 국내 모 사립대학의 경영학과 교수로 자리를 옮겼다.

"오랜만이야. 이제 교수가 된다니 다행이다. 정말로."

박기범 상무의 말에 송영찬이 대답했다.

"아직 아니야. 9월 1일부터야. 2학기부터 수업을 시작한대."

"학교는 좋아?"

"뭐 우리때보다야 많이 나아졌어. 어쨌거나 너도 상무로 승진하고 잘됐구나."

송영찬도 계속 승진을 거듭하는 친구의 모습에 반가움을 느꼈다. 둘이 자주 가는 보신탕 집에서 식사를 하면서 박기범 상무가 현재 무등그룹에 산적한 문제를 말했다.

"미국사람들은 보신탕을 안먹으니까. 이게 그립더라고. 그리고 순대도. 순대 못먹으니 아주 섭섭하더라."

"그렇겠지."

보신탕을 들이켜면서 송영찬이 말했다.

"석유도입?"

고깃점을 한입 물면서 송영찬은 잠시 생각에 잠긴 듯 했다.

"석유공사가 그렇게 반대한다면 이중플레이도 그다지 큰 의미는 없어. 무엇보다 석유공사의 뒤에는 최천식 국회의원이 버티고 있잖아. 오연세 석유공사 총재도 과거 상공부 출신이라 그 인맥이 지금도 남아있고. 너한테 불리하겠어."

"별걸 다 아네."

"교수에, 한때 재경부 공무원이니 한눈에 보이지. 여전히 중앙부처 공무원들 친구하고도 자주 만난다고."

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거나 너네는 쉽지 않을거야."

"그게 걱정이야. 아주 머리가 다 아파."

고충을 토로하자 송영찬이 다소 활기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야. 뭘 그런걸 가지고 걱정이냐. 별것도 아닌 걸 가지고."

"그게 무슨 소리야?"

의아해하며 되묻자 송영찬이 말했다.

"너네 회사랑 인연이 깊은 킨키 상사있잖아. 개네들 유전도 가지고 있어. 개네들한테 구매해."

순간 박기범 상무는 머리가 멍해졌다. 뭔가에 얻어맞기라도 한 듯.

"젠장 그럴걸. 왜 내가 그 생각을 못했을까?"

"너무 업무에 몰두해서 등잔 밑이 어두운 거겠지."

대수롭지 않게 들릴 수 있지만 바로 이 킨키 상사와의 접촉은 뜻하지 않는 기회와 도전을 동시에 주게 된다.

"킨키 상사요?"

강석천 과장이 놀라면서 되물었다.

"왜 그렇게 놀라?"

"거기라면 해볼만 하겠습니다. 외국기업과 손을 잡는다고 하면 외자유치라는 명목으로 더 반기는 분위기니까요."

"다행이다. 쉽게 풀릴 수 있겠어."

============================ 작품 후기 ============================

제 소설 앞부분 (1부)에 박기범 상무가 대리였던 1985년. 당시 산업은행 도쿄지사장이 오연세 대한석유공사 총재입니다. 악연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지요.

아. 날도 비가와서 힘들고 보신탕이나 또 먹으러 가야겠습니다. 소/돼지는 사료를 먹여 키우다 보니 사람이 먹어야 할 옥수수가 소비되고 메탄가스가 많이 생겨 지구온난화가 생기죠. 인간이 먹고 남긴 잔반을 먹는 개를 먹는게 더 친환경일 수 있다고 생각이 드네요.

어쨌건, 미국으로 지난 99년에 갔던 송영찬도 교수로 복귀하고 상무가 된 박기범은 석유확보라는 것에 매진하게 됩니다.

실제 이 당시 국내언론들은 이라크 전쟁이 끝나면 국제유가는 폭락할 것이고 이라크 파병한 우리나라는 전후복구에 뛰어들어 막대한 돈을 벌 수 있을 거라고 보도했습니다. 불행하게도 미국이 이겼어도 별무소용이었죠.

국제유가가 오르면 당장 휘발유가격이 오르지만 사실 그만큼 경제가 잘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막말로 중국이 하루에 1800만배럴을 쓰는 미국보다 더 많은 석유를 쓴다고 생각해보세요. 13억 중국인이 다 자가용을 가지고 다니면 휘발유소비가 지금의 몇배로 뛸텐데, 이 말은 뒤집으면 그만큼 자동차 시장이 열리고 우리의 수출길이 뚫리며, 중국인들도 집집마다 에어컨을 가지게 되면 그 에어컨. 삼성과 LG가 수출해 돈을 벌겁니다.

경제는 단순하게 바라보면 안됩니다.우리도 중진국이지만(선진국 아닙니다)중진국끼리 깎아내리는 짓을 우리가 합니다. 한때 우리가 잘살게 되고 자가용을 굴리니까 '한국이 자가용타서 배기가스 배출한다'고 선진국에서 눈치를 주었죠. 말이 안되죠.

이런 점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서 소설을 보시면 경제감각+주인공인 박기범의 사고방식+무등그룹의 발전로드맵을 더 잘 이해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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