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의 시대-86화 (86/159)

86화

다음날. 출근을 하자마자 박기범 이사는 류 과장을 불렀다.

"류 과장. 98년 1년 동안 사원경비 나간거 전표좀 파악해줘. 전표 개수하고, 그 전표들 중에서 비품관련 전표있지? 비품은 다 표시를 하니까. 그래서 사원경비전표 중에서 비품관련 전표가 비중이 얼마인지. 그리고 금액적으로도 얼마인지 알려줘."

"알겠습니다."

류 과장이 짤막하게 대답했다.

"그거 시간이 좀 걸릴거야. 이 업무가 우선순위니 먼저 좀 해줘. 기왕이면 보고를 해야 하니까 엑셀로 그래프까지 잘 해서 출력해주고."

"알겠습니다. 부장님."

자리로 돌아가려다 류 과장은 다시 발언을 수정했다.

"아니. 이사님"

류 과장은 바로 일을 시작했다. 박기범 이사는 자리에 앉아서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아무래도 클텐데. 이거 이사가 되니 남의 부서까지 다 가지고 떠드는구만."

이사가 되니까 좋은 점은 올라오는 모든 서류를 부장시절처럼 꼼꼼하게 검토할 필요가 없었다. 이제 자금부장이 된 직원이 서류를 꼼꼼하게 검토해서 올리기 때문이다.

전에는 황 부사장에게 보고를 하기 위해 부장인 자기가 직접 들어갔다. 물론 그건 변하지 않지만 한번 더 부장이 검토를 하니 이사인 자기는 부장을 믿고 도장을 찍어주면 되는 것이다.

"그래도 할 건 많구나."

그날 오후 자기가 지시한 결과물이 도착했다. A4용지에 인쇄된 프린트물을 보면서 박 이사는 매우 놀랐다.

"뭐야? 전체 사원경비 전표 중 85%가 비품관련? 전체 지출전표의 18%라니. 야. 너무하군."

"네. 저희도 몰랐는데 놀랐어요. 그나저나 이사님 정말 어떻게 이런걸 알아낼 생각을 하셨는지요?"

류 과장의 말에 박 이사가 대답했다.

"그러니까 이사인 거지. 임원은 노는가?"

가볍게 답하고 그 프린트물을 들고 급히 인사팀 황 부장에게 갔다. 마침 담배를 태우러 나가려던 황 부장을 그는 붙잡았다.

"황형. 좀 봅시다. 총무부장은 자리 없어요?"

"저기 있잖아. 왜?"

박기범 이사는 황 부장이 일러주는 대로 총무부장에게 달려가 자신이 알아낸 것에 대해 말했다.

"심각하군요. 뭔가 대책을..."

한눈에 보아도 기계적으로 반응하는 듯해보였다.

"보라고. 이런거 관리 안해? 총무부장이 나한테 이런 문제가 있습니다 하면 내가 안 도와 주겠어? 어쨌거나 이 건은 내가 사장님께 보고해서 해법을 강구해 볼테니, 총무부장은 잘 좀 해. 다음부터 말이야."

타이르듯 말을 한 박기범 이사는 서류를 들고 사장실로 향했다.

"그건 뭔데?"

황 사장이 박기범 이사가 건넨 서류를 보면서 말했다.

"지출전표내역입니다. 사원경비전표입니다."

"뭐 대수야?"

"대수입니다. 사장님"

이 말에 황 사장은 눈을 씰룩거렸다.

"현재 비품관리가 하나도 되질 않아서요. 총무부도 딱히 관리 안하는 모양입니다. 비용도 크고 전표도 많다보니 자칫하면 오지급 우려도 있죠."

박기범 이사가 건넨 서류를 보면서 황 사장이 대답했다.

"그건 안되지. 그래서 생각해낸게 뭐야?

"종이나 일반 사무비품은 총무팀에서 일괄구매하거나 필요한 것들을 총무부가 파악한 뒤 외부업체를 통해 일괄구매하는 겁니다. 총무부의 일도 줄겠고 더 싸게 사겠죠."

이 말에 눈꺼풀을 씰룩거리는 황 사장을 보면서 그가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이른바 구매대행이지요. 이미 선진국에서는 MR라 해서 유지보수, 소모성 자재를조달한다고 하더라요."

"그거 좋은 생각이야. 그렇다면 외부 업체를 어딜 선정해야..."

순간 황 사장은 사장 답게 큰틀에서의 그림을 머릿속으로 그려나가는 듯 해보였다.

"좋아. 그 회사도 우리가 하지. 무등오피스 이런 걸로 해서 우리가 조달하자고. 종이의 경우 우리회사에서도 사무용지 소비가 많아. 그거 그냥 버리지 말고 한데 다 모으라고 해. 그걸로 재생 사무용지 다시 만들어서 쓰면 되잖아. 그런식으로 하면 비용을 여러모로 절감할 수 있을거야."

"알겠습니다. 기획실에도 말을 해 놓도록 하겠습니다. 사업이 또하나 확장되는 셈이군요."

"그렇다고 볼 수 있지. 대한민국의 모든 오피스 건물에서 나오는 사무용지만 모아서 다시 가공해 되팔아도 돈이 많이 남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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