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의 시대-81화 (81/159)

81화

다음날 10시. 깜짝 발표가 나왔다. 재경원은 하동은행의 M&A를 허락했고 그 대상은 바로 미국의 테네시 인베스트먼트였다. 뿐만 아니라 기존의 6억 달러에서 6억 5천만 달러로 금액을 더 높였고 모든 인수과정은 한달 이내에 진행하도록 결정했다는 내용이었다.

이 소식을 TV로 접한 박기범 이사는 산업은행을 통하지 않고 다른 방법으로 팔공그룹에 대한 인수합병을 하기로 결정했다. 바로 테네시 인베스트먼트를 통한 간접 인수였다. 일단 그는 경제신문을 뒤져가면서 라인하트 데커 사장이 현재 한국에 와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좋아. 잘 될 수 있겠어."

박 이사는 한번 중얼거리고는 급히 택시를 타고 재경원으로 향했다. 재경원에 도착해서 송영찬 부국장을 만난 그는 송 부국장의 부하직원인 과장을 통해 라인하트 데커의 소재를 파악해냈다.

"누구세요?"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라인하트 데커는 호텔 방문을 열었다. 키가 170cm밖에 안되는 박기범 이사에 비하면 190cm의 라인하트는 거대한 거인으로 보였다.

"무등그룹의 박기범 이사입니다."

영어로 된 명함을 건네주면서 찾아온 용건을 말했다.

"아래 카페에서 이야기 합시다."

15분 뒤. 본격적으로 박기범 이사는 협상에 들어갔다.

"당신네들이 하동은행은 6억 5천만 달러에 인수한다는 소리는 잘 들었습니다. 당신네가 인수한 하동은행이 보유한 가장 큰 부실채권인 팔공그룹 말이요. 우리가 인수하리다."

"얼마에 인수하려고요?"

아까 송영찬 부국장을 통해 인수가액을 미리 알아낸 박기범 이사는 팔공그룹 전체를 2500억 원에 인수하겠다고 말했다. 이 말에 라인하르트는 깜짝 놀랐다.

"아니. 왜 갑자기 팔공그룹을 사려고 하나요?"

"그건 당신 알 바 아니고 우리는 살겁니다. 우리한테 파시오. 당신네들은 재경원이 승낙했으니 뭔가 가시적인 성과가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산업은행은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죠. 실질적인 부실채권은 산업은행이 쥐고 있으니까."

"사실 그것 때문에 골치요. 산은은 인수를 반대하고 재경원은 급히 추진하려고 하고."

이를 잘만 부추기면 뭔가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니까 우리에게 팔공을 팔아요. 그게 가장 부실채권의 규모가 크니까 이걸 먼저 덜어내면 산은도, 재경원도 서로 만족시킬 수 있지 않겠나요?"

하지만 라인하트는 별로 흥미가 없는 듯 해보였다. 일차적으로 협상이 실패로 돌아가자 박기범 이사는 근처 공중전화로 송영찬 부국장에게 연락을 취했고 그날 저녁. 남들 모르게 신라호텔의 한 커피숍에서 만났다.

"너 이사 달더니 호텔에서 커피 마시는구나."

송영찬 부국장이 웃으면서 말했다.

"오늘 라인하트를 만나고 왔어. 하동은행을 헐값에 매입한다는 그 회사 말이야."

"어떻게 됐어?"

송 부국장의 말에 박기범 이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실패야. 거기는 내가 팔공그룹만 사겠다는 걸 반기지 않는 모양이야."

"그럴테지. 그나저나 산업은행은 반대하고 재경원은 급하게라도 팔려고 하고. 참 죽겠구만."

"이렇게 된 이상 양면 작전을 써야겠어."

박 이사의 말에 송 부국장이 커피를 마시려다 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양면 작전이라니?"

"간단해. 내가 얼마 전에 산업은행에 가서 팔공그룹 인수 우선협상대상자 자격을 신청하기로 했어. 그게 접수 되면 산은은 최대한 국내기업에게 팔려고 할테고 게다가 이제 새정북 출범하게 되면 정부조직개편이 이루어질테니 잘만 하면 되겠어."

"그건 옳아. 팔공그룹의 실질적 채권자는 지금 산업은행이니 산업은행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팔공그룹이 라인하트에게 넘어가나, 너희에게 넘어가는가가 결정되겠지."

송영찬 부국장은 한번 해보라는 듯한 어조로 말했다.

"원래 산업은행과 재경부는 협조체계가 강하지만 이번건은 예외야. 이유는 돈 때문에. 지금 산은이 떠앉은 부채가 너무 많아. 그 부담을 덜어야 하고 산은은 외국기업에게 특혜를 준다는 여론을 의식하는 모양이야."

잠시 말을 마치고 커피를 마신 송영찬 부국장은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내가 볼때도 국내기업이 사는게 낫다고 봐. 비싸게만 쳐준다면 해외매각도 찬성이지만 지금 너무 싸게 사려고 하거든. 어차피 헐값에 매각한다면 특혜시비가 일더라도 국내기업에게 파는게 낫겠지."

"그렇지? 그리고 뭐 내가 인수가액을 라인하트에게 2500억 불렀지만 어차피 그 가격은 한번 던져본 거고. 아마 산은을 통해서 산다면 5000억은 주어야겠지. 일단 거기 부실채권을 우리가 떠안는 셈이 될테니까."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송 부국장에게 박기범 이사가 말했다.

"처음부터 5천억 부르면 더 높일테니까. 2500억이 하한선이라는건 거기도 아는 눈치더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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