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의 시대-79화 (79/159)

79화

일주일 후. 박기범 이사는 택시를 타고 여의도에 위치한 산업은행 본점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산업은행이 어떻게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하는지, 그 기준이 무엇인지, 어떤 절차를 밟아나가는지를 알 필요가 있었다.

“안녕하세요. 산업은행 부실채권을 담당하고 있는 최철용 부장입니다.”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남자였다. 그는 명함을 꺼내서 박기범 이사에게 건네주었다. 박 이사 역시 명함을 건네주고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전화로도 연락을 드렸겠지만 현재 산업은행이 가지고 있는 부실채권을 조금이나마 덜어드리려고요.”

“팔공그룹 건이군요.”

고개를 끄덕인 박기범 이사는 소파에 앉아서 본격적인 협상에 들어갔다.

“솔직히 지금 정신이 하나도 없습니다. IMF체제라서 부실채권을 다 정부가 떠앉아서요.”

“그러니 저희가 부실채권을 다 사들이겠습니다. 팔공그룹의 부실채권이 2조원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채권을 다 떠앉은 하동 은행이 지금 부실은행이 되어서 산업은행 관리하에 있죠? 듣자하니 현 정부가 IMF+1이라고 해서 외국인의 기업인수를 허용한 판국에 미국자본이 하동은행을 인수할텐데.”

여기까지 말하고 커피를 한모금 마셨다. 이에 최 부장이 대답했다.

“잘 아시는군요. 솔직히 말하자만 현재 우리나라의 자본으로는 정부가 베일아웃(구제)하느라 투입한 공적자금을 회수할 방법이 없으니까요. 외국자본에게 판다면 공적자금의 조기회수가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다만 문제가 되는건 외국자본이 한국에 들어온다는 거죠.”

“요즘 같은 세계화시대에 구태의연한 태도로군요. 자본에는 국경이 없잖아요. 한때 가장 폐쇄적인 마인드를 지녔다고 하는 일본인들마저도 제로금리를 유지하니 일본에서 돈을 빼서 해외에 투자를 하잖아요. 외환위기라고 외제차에 주유를 거부하는 정신나간 주유소가 아직도 대한민국에 있다는 걸로 보면 우리는 아직도 우물안 개구리죠.”

박기범 이사의 말에 최 부장은 자신과 생각이 다르다고 여겼다.

“기업인은 그렇게 생각하지겠죠. 어쨌든 정부는 하동은행을 해외매각하려고 합니다. 그러면 팔공그룹도 해외로 넘어가겠죠.”

“그럼 산은측은 이를 막으려고 하나요?”

그 말에 최 부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박기범 이사는 소파에 몸을 기대로 머리를 굴렸다. 이는 천재일우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공적자금 회수를 위해 은행을 해외투자자들에게 팔아야 하는 상황에서 해외투자자는 하동은행이 떠않은 부실채권을 즉 부실기업까지 가져가게 되는 것이다.

부실채권의 규모가 크면 클수록 해외투자자는 헐값에 은행을 살 것이고 잘만 다듬으면 빛을 발할 기업들까지 도매금으로 헐값에 팔리는 상황인 것이다.

“팔공그룹 정도가 외국인들의 손에 넘어가면 어떨까요? 어차피 거기도 무능해서 망한거 아닙니까?”

“그건 아닙니다. 단기차입금 규모도 큰데다 외채라서 흔들린 것이죠. 95년 이전만 해도 좋았습니다. 다만 급격하게 무너진 것이지 자체 경쟁력은 있습니다.”

“좋습니다. 매각공고를 내면 저희가 입찰하도록 하지요. 어차피 국내기업이 인수하는게 낫지 않나요?”

박기범 이사의 말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일단 그 쪽에서 정리가 되면 연락을 주시죠. 뭐 인수금액이나 조건들이요.”

“좋습니다.”

협상은 생각보다 잘 풀렸다. 뭐 이제 시작이니까 박기범 이사는 악수를 하고 나서 바로 산업은행을 빠져나왔다. 회사로 돌아와서 박기범 이사는 황 부사장에게 구두로 보고를 했다.

“부사장님. 산은은 최대한 빨리 매각하고 싶어하는 모양입니다.”

“잘됐군.”

“그럼 어디까지 생각하고 있나?”

“최대 인수금액은 2조원이죠. 부실채권을 저희가 떠안는 셈이니까요.”

“그렇지. 어쨌거나 인수한 회사에 대한 추후 경영계획은 아직 생각 안했지.”

황 부사장이 의자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네. 거기까지는 아직.”

말끝을 흐리면서 말을 하자 황 부사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뭐 괜찮아. 이해해. 일단은 M&A가 최우선이니까.”

============================ 작품 후기 ============================

오늘 디트로이트가 파산했답니다. 한국경제신문에 정확한 분석이 나옵니다. 지나치게 강한 노조. 노조의 요구를 100% 수용한 경영진 때문에 생산성보다 월급이 더 많은 기이한 구조가 지속되었습니다.

지금 GM, 포드의 미국공장은 인디애나, 알라바마, 켄터키 주들에 위치해힜는데, 이들 주는 남부 주들이라 UAW(전미 자동차 노조)같은 노조가 개입하는걸 외부의 개입으로 간주합니다. '우리 일에 끼어들지 말라'이거죠.

한국경제 정규재 컬럼에 '우리는 새벽 6시에 모입니다'가 있는데, 현대차 관리자들이 미국알라바마 공장 노동자를 절대 울산에 못오게 한답니다. 울산공장은 연봉 10만 달러. 생산성 5만 달러. 미국공장은 연봉 5만 달러, 생산성 10만 달러니까요.

또한 한국경제신문에 영국의 NHS가 대실패했다고 나오죠. 무려 13000명이 영국의 국영의료시스템 덕에 죽어버렸죠. 엉터리니까요. IMF는 우리에게 아픔이지만 정부주도의 비효율적 시스템을 버리고 민간주도의 신자유주의적, 밀턴 프리드먼 식의 시스템이 이식되고 시장경제를 다시 건설하는 계기가 되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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