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개고기를 무척 좋아하는데요, 복날되면 백인의 똥도 달다는 작자들 보는 앞에서 먹어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한국인인게 자랑스럽거든요 77화
“글세. 영화라고 해봐야 토요일에 하는 토요명화나 EBS에서 일요일마나 하는 시네마천국 프로밖에는 안봐서.”
잠시 말을 끊더니 곧 대답했다.
“감동이 있는 영화는 아이고. 이름이 기억 안난다. 누구더라? 스티브 맥퀸 아내였던...”
“알리 맥그로요?”
박기범 이사의 말에 드디어 기억이 난다는 듯이 말했다.
“유명한 대사 있잖아. 러브 민즈 네버 해빙 투 세이 아임 쏘리.(Love means never having to say you're sorry 임.)”
“유아 쏘리(you're sorry)겠죠. 사랑은 미안하다고 하는거 아녀 뭐 이런거.”
“맞다. 이 그려. 그 말이 맞어. 아무튼 그 영화보면서 울었다니까. 아내랑 같이. 자넨 뭐 있나?”
"레이먼드 챈들러라고 아세요? 미국이 낳은 하드보일드 추리문학의 거장."
"난 추리하면 애거서 크리스티만 생각했지."
"아니에요. 레이먼드 챈들러가 필립 말로우라는 캐릭터를 창조했는데, 그건 소설이고, 그 사람이 극본을 쓴 영화가 있어요. 프레드 맥머레이와 바바라 스탠윅, 에드워드 G 로빈슨이 출연한..."
"아하. 에드워드 G로빈슨. 그 미국 갱스터 영화에 많이 나왔지."
알겠다는 듯 류준혁 상무가 말했다. 역시 영화를 TV로 많이 본 경험이 대화를 이어지게 한 듯 했다.
"재미있더라고요. 원래 전 스릴러를 좋아해서요. 44년도 영화인데, 미국인들은 그 때도 다 집집마다 차가 있었더군요."
"그렇지. 적어도 50년은 앞서있다고 보면 돼. 1944년도 미국의 철강생산량을 지금 우리가 따라 가나? 시민의식, 다 앞섰지. 지금 우리가 사는 수준을 개네들은 20년대에 살았으니까."
이렇게 애기하면서 회사에 도착한 그들은 곧바로 일을 시작했다. 일을 하는 것이야 말로 회사원으로서의 최고의 미덕이었기에.
“자. 이제 일을 시작해 볼까?”
박기범 이사는 자기 자리에 앉아서 일을 시작했다. 얼마전에 산 워크맨이 있기에 이어폰을 귀에 꽃았다.
“오늘은 어떤 음악을 들을까?”
대학시절부터 미국 팝송을 들었기에 그는 지금도 팝을 선호했다. 한때는 회사를 그만두고 팝 전문 잡지를 창간하고 싶은 생각이 일기도 했으나 이사라는 직책까지 오른 마당에 그런 꿈은 잠시 접어두었다.
“프랭크 시나트라 되게 좋아.”
그는 중얼거리면서 얼마 전에 산 프랭크 시나트라 테이프를 넣고 틀었다. 대학시절, 영어를 원어민에게 배울 기회가 있었는데, 주한미군 군목이 오는 영어예배였다.
기독교에는 관심이 없고 영어에만 관심이 있어서 매주 일요일마다 간 그는 예배가 끝나고 발음교정을 하거나 평소에 궁금하던 영어표현들을 물어보았다.
그 목사는 고향이 뉴욕이라서 그런지 동부사투리로 말을 했다. 발음도 그 사람에게 배운 터라 실베스터 스탤론이나 알 파치노처럼 뉴욕출신 배우나 프랭크 시나트라 같은 뉴욕출신 가수의 발음이 더 친근했다.
이어폰에서는 프랭크 시나트라의 ‘Fly me to the moon'이 흘러나왔다.
-Fly me to the moon
Let me play among the stars
Let me see what spring is like on a Jupiter and Mars In other words, hold my hand In other words, baby, kiss me Fill my heart with song and let me sing for ever more You are all I long for all I worship and adore.....
1950년대 미국의 대중문화를 상징하는 하나의 아이콘인 프랭크 시나트라. 그는 10대들의 우상이던 엘비스 프레슬리의 강력한 라이벌이었다. 왜나하면 1940년대 당시 미국 10대들의 우상은 프랭크 시나트라였던 것이다. 50년대가 되자 그 공은 엘비스 프레슬리에게로 다시 10년이 흘러 1964년. 영국에서 건너온 비틀즈가 미국 10대들의 우상이 된다.
1943년. 그가 데뷔해서 시카고에서 초연을 가졌을 때, 여고생들이 열광했고, 흥분해서 쓰러진 여고생도 있었으니까. 요즘말로 하면 ‘오빠부대’의 원조는 프랭크 시나트라였던 셈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서태지가 이런 열풍을 불고 왔다. 그게 1992년. 미국에 비하면 49년이나 늦어지는 것이다.
============================ 작품 후기 ============================
스티브 맥퀸 Steve McQueen 1930~1980 : 미국의 영화배우, 전설적인 배우죠. 1960년대~1970년대 최고의 몸값을 자랑한 스타입니다. 1974년 '타워링'주연으로 영화 박스오피스 수입의 10%를 러닝개런티로 가져갔는데 타워링은 74년 한해 무려 1억 4천만 달러를 벌어들입니다.
당시 스티브 맥퀸의 최대 라이벌은 저 유명한 폴 뉴먼이었답니다. 둘 다 스피드광이었고 폴 뉴먼은 닛산 스카이라인을 또 좋아했는데 그래서 닛산은 폴 뉴먼 스페셜 버전을 한정판매하기도 하지요. 역시 닛산차는 환상적이죠. 포르쉐와 겨루어서 꺾을 수 있는 유일한 차가 바로 닛산 GT-R입니다. 실제로 포르쉐를 꺾기도 했답니다.
알리 맥그로 Ali MacGraw 1939~ : 미국의 영화배우. 스티브 맥퀸 부인이었죠. '러브스토리'로 스타덤에 오르게 됩니다.
레이먼드 챈들러 Raymond Chandler 1888~1959 : 미국의 소설가. 추리소설가로서 하드보일드 문학의 창시자. 일본의 무라카미 하루키가 지대한 영향을 받았습니다. 비록 백만장자 소설가가 되지는 못했지만 미국문학을 새로쓴 사람이라고도 합니다. 45년 이전까지 미국의 문학은 영국과 독일의 영향을 많이 받았거든요.
프레드 맥머레이 Fred Macmurray 1908~1991 : 30~40년대 인기를 끈 할리우드 배우. 50년대 부터는 TV에 주로 나옴. 키가 189cm나 되는 장신으로 유명함바바라 스탠윅 Barbara Stanwyck 1907~1990 : 브루클린 출신의 미국 여배우. 인기 절정이던 1944년에는 연소득 40만 달러로 고소득 여성 리스트에 오름에드워드 G 로빈슨 Edward G Robinson 1893~1973 : 루마니아 출신의 미국배우로 본명은 엠매뉴엘 골든버그로 유태인임. 암흑가 배역을 주로 맡았음. 죽기 직전 마지막 작품이 찰턴 헤스턴과 촬영한 저 유명한 1973년 작 '소일렌트 그린'이었고 그걸 찍고나서 죽습니다. 키도 작고 못생겼지만 타고난 카리스마, 연기력으로 청중을 휘어잡았고 미국최고의 배우가 되지요.
프랭크 시나트라 Frank Sinatra 1915~1998 : 미국의 국민가수라고 불릴 정도로 유명한 미국 가수. 그의 딸인 낸시 시나트라도 유명한 가수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