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의 시대-75화 (75/159)

75화

회의가 끝나고 그는 기획실 직원들과 경지실 직원들을 따로 소집했다.

“사장님께서 팔공그룹을 인수하라는 명령을 내리셨네.”

“그게 정말입니까?”

류 과장이 되묻자 박기범 이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잘 됐습니다. 다만 팔공그룹의 부채비율이 걱정입니다.”

“그건 나도 알아. 팔공그룹의 부채가 대략 2조원가량 되지? 전부 부실채권인데 그걸 떠앉게 되면 조금 우리에게 안좋지. 어쨌든 해볼 심산이야. 사장님 지시고.”

뒤이어 기획실 류준혁 상무가 말했다.

“이 일은 기획실과 경지실이 각각 따로 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괜히 두 부서의 직원들이 필요할 때마다 회의열고 하는 건 아니라고 봐. 아예 경지실에서 자네가 전담팀을 꾸리게. 그리고 필요한 직원들은 기획실에서 전부 데려가. 그게 더 낫지 않겠어?”

상당히 괜찮은 제안이었다. 박기범 이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나쁘지 않은 제안이군요.”

“그렇게 하도록 하게. 무엇보다 데이터를 확보해야 하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데이터가 필요한지 다 구해줄테니까.”

“우선적으로 재무제표가 필요합니다. 그거야 우리도 할 수 있으니 어렵지는 않고요. 어찌보면 어렵지 않을 듯 한데요?”

“어째서?”

류준혁 상무의 말에 박기범 이사는 가볍게 말했다.

“솔직히 가치평가만 제대로 하면 됩니다. 그리고 우리에겐 일본의 킨키 상사가 있습니다. 최대 50억 달러를 빌려준다는거요.”

“헌데 일본도 힘든 상황에 가능하겠어?”

“킨키 상사가 미국 최대 은행인 맨하탄 은행을 손에 쥐고 있으니 그 문제는 없습니다.”

이 무렵, 파산한 팔공그룹은 그 부채를 산업은행이 부실채권으로 떠앉은 상황이었다. 점심시간. 류준혁 상무는 박기범 이사를 데리고 근처의 보신탕 가게로 데려갔다. 둘 다 보신탕을 좋아했고 자주 먹었기에 잘 아는 가게로 들어갔다.

“아주머니. 두 그릇주세요.”

류준혁 상무는 주문을 하고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앞에 앉은 박기범 이사에게 말을 걸었다.

“이번 M&A건 어떻게 할텐가?”

담배연기를 허공으로 내뿜으며 말했다.

“잘 해야죠. 다소 큰 건이라 걱정은 됩니다.”

“문제는 자본조달인데. 팔공그룹이 가진 부채가 2조원 정도 된다고 하더라고. 다 산업은행이 떠않은 모양이야.”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인 박기범 이사는 잠시 생각했다.

“제가 외화로 번 돈을 일단 투입하면 4600억이니 대략 1조 5천억만 어디서 구해오면 되겠죠.”

“쉽게 생각하지 마. 말이 그렇지 이번 M&A 아주 어려울 수 있는 건이야.”

“쉽게 접근하죠. 상장기업은 아니니 주식시장에서 매겨진 가치는 없는 셈이고. 비상장인데 지금은 채권단에게 넘겨갔으니 특히 부실채권으로 고통받는 산업은행의 사정을 고려한다면 부실채권 2조만 지불해도 될 것 같은데요?”

“그렇게 쉬우면 다 M&A하게?”

류준혁 상무가 핀잔을 주듯 말했다. 식당 아주머니가 보신탕 두그릇을 가져다 주자 류 상무는 미소를 짓고 수저를 들었다.

“자 들자고.”

한입 먹고나서 류준혁 상무는 기분이 좋다는 듯 말했다.

============================ 작품 후기 ============================

IMF.대한민국 역사상 최대의 국난이자, 뼈아픈 경제실패였지요. 누군가에게는 아픔이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기회였습니다. 무등그룹에게는 기회였죠.

왜 IMF를 맞이했는가? 무분별한 금융시장의 개방을 꼽는 사람도 있습니다. 흔히 회사다니시는 분들이 말하시길 '이 나라는 민주화가 잘못되어서 망했다'고 하시죠.

87년 민주화와 함께 이어진 노동자 대투쟁 이후, 노동생산성을 웃도는 임금인상이 이어졌습니다. 현대차 생각하시면 돼요.

북경 현대보다 일은 못하는주제에 돈은 10배를 받아가죠. 중국노동자보다도 일을 못하는데 돈은 열배? 안망하는게 신기했죠.

이런 움직임이 90년대를 장악했고, 특히 민주정권 10년은 이런 포퓰리즘의 극치를 달렸답니다.

일안하고 데모하면 '민주화', 법을 어기고 경찰을 두들겨 패도 '민주화', 쇠파이프를 휘둘러 전경을 실명시켜도 '민주화'라 해서 처벌도 받지 않는 그야말로 소말리아 수준의 막장국가로 2007년에 전락하기까지 했죠.

그래서 경제학 교수들은 과도한 민주화가 경제의 발목을 잡았다고 하기도 한답니다.

작금의 경제상황-세계최강의 강성노조, 노조에게 휘둘리는 기업, 노조의 횡포는 눈감고 기업인은 작은 실수로도 구속하는 그릇된 법질서가 또다른 IMF를 이나라에 가져오지는 않을지 걱정됩니다.

75화에서 IMF를 일부 정리했습니다. 정부실패를 파고들자면, 정부는 OECD가입에 모든 총력을 기울였고 이를 위해 선진국 수준의 개방을 단행합니다. 증권시장, 은행, 금융전반에 개방을 하는데 우리의 수준은 아직 중진국/개도국이지만 욕심때문에 선진국수준의 개방을 한 것이죠.

또한 정부는 1만 달러시대를 국정과제로 삼고 이를 위해 외환시장에 돈을 퍼부어 달러당 600원으로 고정시킵니다. 실제로는 800원대가 되어야 하지만 억지로 600원대로 맞추기 위해 막대한 돈을 퍼부었고, 이 때문에 수입이 급증하고 수출에 브레이크가 걸렸죠.

96년 미국과의 무역에서조차 200억 달러의 적자가 나자 더 이상 견디지 못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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