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의 시대-72화 (72/159)

72화

12월 23일. IMF구제금융의 여파에도 불구하고 환율은 자꾸 올라가고만 있었다. 그래프를 쳐다보던 박기범 부장은 깜짝 놀라서 눈을 크게 뜨고 모니터를 쳐다보았다. 1달러당 환율이 2000원을 돌파한 것이다.

“이거 대박이다.”

그는 전화기를 들고 고려은행 기업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담당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요. 박기범 부장.”

“아. 예 안녕하세요.”

“우리가 지금 가지고 있는 달러가 2억 3천만 달러인데.”

류 대리가 헐레벌떡 달려왔다.

“부장님.”

박기범 부장은 잠깐만이라고 말하고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왜? 무슨 일인데?”

“지금 1달러당 2000원을 돌파했습니다.”

“알아. 지금 고려은행 담당자와 통화중이야. 오늘 전부 다 팔려고. 2억 3천만 달러.”

다시 수화기를 가져가 댄 그는 고려은행 담당자에게 말했다.

“지금 달러가 2000원이 넘었는데 우리가 가진 물량 다 팔게요. 얼마에 팔 수 있어?”

“지금 벌써 2005원에 팔 수 있어요. 조금 더 지나면 2010원 되겠는데?”

“알았어. 그럼 2000원에서 2010원 사이에서 다 팔아줘.”

하지만 고려은행 담당자는 다른 제안을 했다.

“2억 3천만 달러. 다 파는 것도 좋지만 우리한테 팔면 안돼요? 우리가 갚아야 하는 외채가 있어서 2억 달러를 급하게 조달해야 하는데 조달할 방법이 없어요.”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다. 한번에 다 팔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당신네들도 외채 있어?"

"우린 심각해요. 못갚으면 부도가 난다고요."

외환시장에서 2억 3천만 달러의 매도물량은 아주 작은 액수일 수도 있지만 소화할 물량이 없다면 제대로 비싸게 팔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알았어. 당신네 은행한테 다 팔면 되는거지. 수수료는 좀 부담해주고. 고려은행과는 안면이 있으니 조금 싸게 팔게. 달러당 2000원. 수수료는 거기가 부담하고. 어때?”

“좋아요. 달러당 2000원씩 2억 3천만 달러라. 4600억 이체할게요. 잠시만 지점장님하고 말하고.”

몇 초간 침묵이 흐른 후 다시 전화를 받은 담당자가 말했다.

“지점장님이 좋다고 하시네요. 본점에서도 긍정적이고 5분 이내로 4600억원 이체가 될거에요. 확인하시고요.”

“알았어. 고마워요. 전화 끊지말고.”

아직 전화를 끊지 않은 박기범 부장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수금담당 직원을 불렀다.

“민영씨. 지금 바로 고려은행 대표수금계좌 확인해봐요.”

“지금 환전하고 있어?”

전화에 대고 말을 하자 응답이 들려왔다.

“지금 이체 중이에요. 기다려요.”

아무 말 없이 기다리고 있는 동안 은행 담당자가 말했다.

"한국은행 발표로 현재 우리나라의 외환보유고가 고작 39억 달러랩니다. 그런 마당에 무등그룹의 2억 3천만 달러는 아주 단비 같은 것이죠."

"쳇. 그럼 나라에서 상이라도 주나?"

"환차익이 상이죠."

수금담당 직원이 다가왔다.

“부장님. 고려은행에서 4600억원이 입금되었습니다.”

“아. 그래? 고마워요. 전표 빨리 끊고.”

박기범 부장은 전화를 다시 받았다.

“오케이. 입금완료. 그럼 된건가? 2억 3천만 달러 딜은?”

“물론입니다.”

순간 그는 몸을 감싸는 거대한 흥분에 휩싸였다. 1995년 중순부터 석유도입등의 이유로 달러를 800원대 이하로 사들이고 96년 들어서 계속 사들인 그는 평균 달러 매입단가가 800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1달러에 800원을 주고 사들여 2000원에 모두 팔았던 것이다.

무등그룹은 1840억 원을 들여 산 달러를 4600억에 모두 처분한 것이다. 평가차익은 무려 2570억원. 1996년도 무등그룹의 실적이 매출액 2조 2천억원, 영업이익 2400억원, 당기순이익 1800억원임을 감안하면 대단한 수치였다.

‘외화처분이익이 무려 2570억원.’

그는 주먹을 쥐고 한번 허공에 휘둘렀다. 아폴로 크리드를 제치고 헤비급 세계 타이틀을 획득한 록키 발보아보다 더 기분이 좋았다. 2년간의 투자로 2배가 넘는 수익을 냈으니 당연도 했다. 박기범 부장은 곧바로 황 부사장실로 가서 이를 보고했다.

“뭐라고? 세. 세상에 4600억?”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황 부사장은 몇 번이고 되물었다. 무등그룹 바깥 세상은 대한민국 역사상 유례가 없는 환란으로 힘들어하지만 무등그룹은 떼돈을 벌 수 있었다.

“전사 손익이 올해 당기순이익 천억이야. 그런데 달러를 팔아 이렇게 돈을 남기면 하하하.”

유쾌하게 웃은 황 부사장은 다시 오남현 사장에게 이를 보고하기 위해 사장실로 달려갔다. 박기범 부장은 책상으로 돌아와 형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형에게 가지고 있는 달러를 모두 팔아치우라고 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