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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의 시대-69화 (69/159)

69화

추석연휴를 지내기 위해서 아침 첫 열차를 타고 고향으로 향했다. 미리 사둔 선물꾸러미를 챙긴 채 열차에 몸을 싣었다. 역시 공대를 나와 굴지의 대기업에서 엔지니어로 근무하는 동생가족 일행과 같이 열차에 탔다. 열차가 도착하자 혼잡한 터미널에는 승객들로 가득 차 있었다.

“기범아.”

어디선가 그를 부르는 소리에 그 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마중 나온 형이 서 있었다.

“형.”

가방을 들고 그곳으로 향했다. 박기범 부장의 아내가 먼저 인사를 했다.

“아주버님 오셨어요.”

“네. 제수씨도 건강하군요. 어디보자. 우리 민정이는 많이 컸구나. 벌써 몇 살이지?”

“7살이에요.”

귀여운 조카를 본 형은 모두를 데리고 터미널 바깥 주차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어서 타라.”

형의 자동차는 지난 85년에 산 프린스였다. 1500cc급 검정색 승용차. 겉보기에는 고급스럽고 멋졌지만 많이 낡았다는 느낌을 지울 수는 없었다.

“형은 차 언제 바꿔요?”

“곧. 니가 달러 사라고 해서 샀잖니. 800원에 만 5천 달러를 사 놓았지. 지금 팔까 말까 고민중이야.”

“아직 팔지마요. 내가 팔라고 전화를 할게. 그리고 환율전쟁은 이제 시작이거든.”

차를 타고 가면서 형이 말했다. 동생이 알려준 정보로 돈을 벌어 자동차를 더 좋은 것으로 바꿀 심산이었다. 그게 아니라면 아파트를 사도되겠다고 생각했다.

“너네 회사는 어떠냐? 요즘 기업들 난리다. 달러가 뭔지.”

운전을 하면서 말했다. 그 말에 박기범 부장은 대답했다.

“뭐 미국 달러화는 언제나 강하죠. 뭐 미국의 경제력과 그 신용이라는 것은 전세계가 공히 인정하는 것이니까요.”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리고 차를 운전했다. 부모님이 사는 방 두칸짜리 작은 단독주택에 도착했다.

50평 대지에 20평짜리 단층 단독주택이었다. 마당에는 아버지가 심어놓은 리키다 소나무 두 그루와 미선나무 한 그루가 잘 가꾸어졌다. 그리고 시금치도 조금 심어져 있었다.

무등그룹 서울본사에서 컴퓨터 앞에 앉아 NDF지수, 주가선물지수, 환율데이터를 늘 주시하며 기업의 자금을 담당하는 최일선에서 피가 마르게 지내는 자신의 느낌과는 너무나도 다른 것이었다.

방안에 들어가서 부모님께 큰 절을 먼저 올렸다. 그리고는 가족들과 같이 이야기 꽃을 피워나갔다.

“맞다. 영범아.?”

아버지는 막내를 불렀다.

“예. 아버지.”

“너네회사는 요즘 어떠냐? 국내 굴지의 기업이니 버틸 수는 있겠지? 그렇지?”

“글쎄요. 저희 회사도 지금 정신이 없어요. 특히 저 같은 경우는 엔지니어인데 회사가 얼마나 버틸지를 모르니.”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엔지니어면 오래 붙어있어야 하는거 아닌가?”

큰 형이 말하자 막내동생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게 웃긴거에요. 엔지니어들은 실적이 바로바로 안나오잖아요. 과학자나 기술자들은 지금 당장 뭘 파는게 아니니까. 그렇지만 돈은 주어야 하니 회사입장에서는 성가시죠.”

“그 듀퐁있잖니. 나일론을 만든. 캐러더스 같은 사람들도 수많은 실수를 거듭한 끝에, 그 상품을 만든거 아냐? 그렇다면 과학자가 아무리 실패해도 그 기록을 보존해서 후대에 빛을 보게 하는 것도 필요한데. 과학이 하루아침에 뚝딱하고 나오는 게 아닌데.”

안타깝다는 듯 큰 형이 말하자 막내동생은 그 말에 동조하는 듯 했다.

“그러니까요.”

“그렇지만 어쨌든 사장입장에서는 연구진들이 쓸모없이 돈만 쓴다고 생각할 수 있지. 수천억 들여 연구해놓고 ‘아. 이거 아니네. 미안.’이러면 안되지. 연구자는 신이 나지만 회사는 거덜나는거 아니야?”

박기범 부장이 거들자 큰 형이 말했다.

“당연하지. 그렇지만 너무 과학을 모른다는거야. 대전에 국립과학단지 연구원들도 그래. 행정고시 통과해서 과학엔 문외한인 친구들이 과장이다 국장이다 와서는 ‘이게 뭐야?’이런다고. 국민의 혈세 운운하면서 무슨 연구한다치면 ‘집어쳐. 돈이 안돼’이러지. 그 사람이 볼땐 그렇지.”

“하긴 비전문가니까.”

박기범 부장이 씁쓸하다는 듯 말했다.

“우리회사는 어려워지고 있어요. 그래서 잘하면 난 짤릴지도 모르겠어.”

막내동생의 말에 큰 형이 안타까운 듯 말했다.

“벌써 그런 분위기인거야?”

“그렇죠.”

“그나마 우린 낫다. 일단 장단기 차입금은 거의 갚아나가고 있으니까. 우리는 사장 지시로 부채를 다 갚으라는거야. 그래서 돈이 들어오면 다 갚는데 일차로 쓰고 수출해서 들어온 달러는 환전 안하고 있어. 달러 가치가 오르니까.”

박기범 부장의 말에 큰 형이 말했다.

“너네 회사는 잘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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